외국 형제님/탄쯔웨이 형제님

주님의 부활 : 다른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느냐

박이레 2025. 10. 21. 15:25

< 주님의 부활 : 다른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느냐 > 탄쯔웨이 형제님

예, 여러분 모두 안녕하십니까? 이번 말씀 집회를 위해서 이렇게 시간을 내서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다시 한 번 저희 가족을 대표해서 여러분이 저희들에게 보여주신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친절에 대해서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저의 영혼이 또 신성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육체적으로도 아주 맛있는 음식을 대접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이와 같은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는 교제 가운데서 많은 기쁨을 누렸습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 여러 형제님으로부터 눈이 온다는 그런 문자를 받았습니다. 참 저희 가족은 이제 눈이 있는 곳에 가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눈이 오는 현장을 경험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희는 아주 특별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참 눈이 오고 추운 날씨였지만 여러분의 따뜻한 사랑과 또한 접대 가운데서 저희는 즐거운 시간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앞에 김범 형제님께서 또한 집회에 딱 맞는 찬송가를 선택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그 찬송가와 관련돼서 이 말씀 집회 전에 먼저 히브리서 13장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오늘 이 시간에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요한복음 21장이지만 먼저 히브리서 13장의 두 구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11절에 여기서 "그것들은" 천사들입니다.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히 1:11-12).

그래서 12절에 마지막 부분에 "주는 여전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13장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앞에 찬송가를 부른 것처럼 히브리서 13장 7절과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7-8).

이 히브리서 서신서는 마치 그 책받침처럼 이 처음과 시작의 두 곳에서 우리 주님께서 여전하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1장에서 "주는 여전하시다"라고 말하였고, 이제 13장 마지막에서 또한 "주는 동일하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첫 번째 말씀드릴 때 시간에서 언급한 거를 여러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이 히브리서 서신서는 우리 그리스도께서 '대한 아들'이라는 주제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분은 위대하신 아들이시며 그분의 영광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는 여전하고 연대가 다함이 없다"고 말한 것은 또 주님의 위대한 아들로서 그분의 영광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히브리서 마지막에 도달했을 때, 이제 여기서는 위대한 아들로서의 영광이 아니라 그분이 '큰 목자로서의 영광'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분이 여전하고 같으신 것을 말하였고, 여기서는 우리를 돌보시는 그 목자로서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일하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7절과 8절을 연결시켜서 또한 생각을 해봐야 됩니다. 제가 왜 이 7절을 함께 읽었을까요? 저는 항상 왜 8절이 7절과 연결돼서 언급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10절에서는 이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는 장로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장로들이 이제 영적으로 이 땅 가운데서 우리를 인도하고 돕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땅 가운데서 우리를 돌보고 있는 그 영적인 경건한 장로들은 또한 우리를 돕다가 사라질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그분이 우리를 계속적으로 돌보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분의 부활과 함께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므로, 그들에게 그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신 그분이 또한 오늘도 우리에게 그와 같이 부활하신 주님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우리 주님이 나타나시고, 또한 베드로에게 나타나시고, 또 여러 개인들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셨는데, 우리는 때때로 그와 같은 사람들이 우리하고는 좀 다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여전히 지금도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우리에게 찾아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서론 말씀을 마치고요.

다시 이제 요한복음 21장으로 가겠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절부터 22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거가 불과 한 오십 간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요 21:1-22).

주님께서 주님의 이 보배로운 말씀을 공적으로 읽은 것에 대해 축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이제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이 제시한 우리 주님의 부활하시고 나타나심에 대해서 그 마지막 부분을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시간에 우리의 인생의 여정 가운데서 경험하게 되는 부활하신 주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슬픔 가운데 있을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의 슬픔을 다루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성경을 더디 믿는 것에 대해서도 교정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참으로 참을성 있게 그 성경을 펴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쳐주십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가정 아래서 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경험하게 되는지를 보았습니다. 참으로 우리들이 주님을 우리 가정 안으로 초청하고, 그분께서 우리 가정을 주관하시도록 내어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그 가정 안으로 초청했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기를 나타내시고, 특별한 계시 가운데 그들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 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지역 모임의 집회 가운데서 경험하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참으로 우리 가운데서 주님께서 가장 탁월한 위치에, 그분께서 가장 중심 되는 위치에 있어야 되는 중요성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말씀을 따라서 참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실제적으로 경험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특별히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주님을 경험하는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 강조점은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 '가장 높은 위치'에 있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주님의 관점에서 그러한 내용들을 말씀드렸다면,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의 관점에서 주님을 어떻게 바라봐야 되는지'를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데 있어서 우리가 무엇에 우선순위를 둬야 되는지를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 주님을 따라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또한 무엇입니까? 참으로 이 요한복음 21장은 이런 것을 아주 자세하게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 다룰 만한 시간이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또한 요한복음 1장이 이 요한복음 21장과 대칭적으로 그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이와 같이 한번 살펴보도록 격려를 드립니다. 예를 들어서 요한복음 1장에서는 침례 요한이 우리 주님에 대해서 이렇게 선언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우리가 요한복음 1장에서 그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았다면, 이제 21장에서는 그 '어린 양들'을 보게 됩니다. 1장에서 이제 제자들을 주님께서 부르시는 초청을 "와 보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리고 요한복음 21장에서는 "이리 와서 조반을 먹으라"라고 주님 또한 초청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요한복음 1장과 21장에는 서로 대응되는 면들이 이렇게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 관계상 이것은 여러분께서 한번 상고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께서는 평일이고, 아마 일터에서 바쁜 하루를 보내셨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러한 내용들을 또한 간략하게 전달해 드리기 위해서 먼저 '개요'를 21장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고, 여러분이 잘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1절부터 8절까지 우리 주님께서 제시하시는 그 주제의 내용은 이제 '물고기 잡는 것'입니다. 이제 물고기 잡는 것을 주요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9절부터 17절은 물고기 잡는 것에서, 이제 '먹이는 것'으로 주제를 바꾸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먼저 먹이시고, 그리고 이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라고 그를 보내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 8절부터 17절까지는 먹이는 것과 관련된 주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8절부터 22절까지는 이제 물고기 잡는 것에서 먹이는 것으로 주제가 발전되었고, 여기서는 '따르는 것'을 세 번째 단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요한복음 21장에 22절까지 나오고 있는 세 가지 중요한 내용이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첫 번째 8 구절에서 물고기 잡는 것에 대해서 보게 될 때, 주님께서는 이것과 관련돼서 '증거하는 것'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이 제자들이 어떻게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성경에 나와 있는 단어들을 또한 그 원어를 살펴보신다면, 그 단어들이 누가복음 5장에 나와 있는 단어와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 주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행하십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그물들을" 복수형으로 "내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성경에 이 정확하게 그 단어들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누가복음 5장에서는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그물들을 다 내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 베드로는 단지 하나의 그물만 내렸습니다. 베드로는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서 얻은 것이 없지만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다." 하고 한 개의 그물만 내립니다. 이 베드로가 그물을 내렸을 때 기적적인 많은 수의 물고기가 그물안에 잡혔고 그래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그 고기가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졌다고 되었습니다. 그 누가복음 5장에서 그와 같은 장면에서 베드로는 너무나 놀라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으로소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러한 가운데서 베드로에게 "네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요한복음 21장에서 누가복음 5장과 비슷한 그런 내용들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11절을 보게 될 때, 11절에도 "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 주님은 "네가 가지고 있는 그물 모두를 다 내리라."라고 했지만 베드로는 한 개의 그물만 내렸고, 그리고 많은 물고기가 잡혔고 그물은 찢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 요한복음 21장에서는 주님은 한 개의 그물을 내리라고 했고, 베드로는 1개의 그물을 내렸고, 그리고 많은 물고기가 잡혔지만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이 첫 번째 단락에서는 주님께서 물고기 잡는 것, 증거하는 것,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제 이와 같은 경험을 통해서 알려주고 계십니다.
21장 3절에 보면 이제 시몬 베드로와 또 함께한 다른 여섯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지만, 또한 그날 밤에도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베드로가 물론 이것을 자기 스스로 이 일을 시작한 것이고, 그리고 그 다른 제자들이 따라간 것이지만, 이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비난하는 것을 그런 주제를 이번 시간에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제 그러한 가운데 그들은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수고를 마치고 돌아오는 이 제자들은 배고프고, 갈증 가운데서,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런 것들을 경험하게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우리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느라고 수고하고, 우리 지역에서, 또 다른 나라까지 그 복음을 전하는 데 추구했지만, 그 결과가 너무나 없는 것을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싱가폴 제 모임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이와 같이 우편함에다가 초청장을 넣는 그런 전도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일 학교나 또 복음 집회에 오라고 초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개월에 걸쳐서, 수많은 주를 거쳐서 그 일을 하고 있지만, 단 한 건의 반응도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저는 그때 여기 있는 베드로와 다른 6명의 제자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주님께서 어떤 사역을 하고 계시는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4절에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들에게 첫 번째 말씀하신 것은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우리가 이런 사역을 했을 때에, 그리고 실패했을 때, 그것을 바라보는 주님께서 그와 같은 자들에게 그와 같은 우리에게 처음으로 하실 말은, "그봐, 네가 지금 내 말을 안 듣고 이렇게 했으니까 아무것도 얻지 못했잖아." 이런 책망을 받을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떠한 책망의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이 "얘들아"라고 말씀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서에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첫 번째로 기록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또 그가 요한일서에서 이 똑같은 단어를 사용해 가지고 성도들에게 "자녀들아"라고 보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제 부드럽게 불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한 여기에 주님께서 그들이 고기를 잡기를 원한다는 그분의 소망을 또한 보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물으신 것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특별히 복음 전하는 일 가운데 있어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책망하시는 데 아주 오래 참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는 또한 그들이 고기를 잡기를 바라고 계시며, 그리고 그 소망을 가지고 계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고기를 잡을 수 있는지도 말씀을 해 주십니다. 6절에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만약에 우리가 그 배 왼쪽으로 던진다면, 우리는 항상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됩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했을 때 우리는 그 물고기를 잡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10절에 주님께서는 이제 "지금 잡은 생선을 가져오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이 물고기를 잡고 그리고 그것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지금 너희들한테 알려줘서 잡은 그 생선을 가져오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지금 잡은 생선을 가져오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 생선에 대해서 내가 말해줘서 잡은 생선이라고, 이것은 다 내 덕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잡은 잡은 생선"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비록 주님께서 알려주신 것이지만 그들이 잡은 생선이라고 그들에게 칭찬을 돌려주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이런 일들 가운데 자신이 영광을 취하시는 것보다, 이런 일들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칭찬해 주시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실패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이 사역을 인도하시는지를 보게 됩니다. 참 형제 자매님 여러분, 이렇든 실패는 우리의 최종적인 결과가 아닙니다.
사실 베드로가 주님을 따라가다가 실패한 것,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것, 그것은 분명히 이 21장에서 배경으로 나와 있는 그런 내용들 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실패가 최종적인 것으로 보지 아니하시고, 주님께서는 그것을 능가하는 사역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이 과거에 실패로 말미암아 이제 더 이상 여기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할 때에, 참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회복시키시고 더 놀라운 사역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참 저는 어렸을 때 자주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어떻게 그 베드로 같은 사람이, 공개적으로 주님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부인한 그런 베드로 같은 사람이, 이제 주님으로부터 유용하게 다시 형제들을 세우는데 사용될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만약에 우리가 그 어떤 베드로의 섬김을 평가한다면 우리는 당장 그를 내쫓아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참으로 너무나 온유하게, 너무나 자상하게, 그 실패한 자를 회복시키기 위해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두 번째 단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먹이시는 것'입니다. 이 제자들은 갈증과, 굶주림과, 많은 피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바로 그런 제자들을 위해서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주님께서 숯불을 피우고, 그리고 생선을 넣고, 떡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그때 많은 사람들이 먹은 그 떡과 고기는 아마도 차가운 것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여기서는 따뜻한 음식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또한 주님께서는 이 음식을 준비하시고, 그리고 그분이 친히 제공하시는 분입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음식들을 다 가져오신 분입니다. 제자들이 잡은 고기를 가져오라고 하신 그걸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다른 고기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다른 사람을 먹이는 것을 이제 가르치시기 전에, 먼저 제자들을 주님 자신이 먹이십니다. 참으로 이제 말씀을 전하는 분들이 다른 분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을 먹이기 위해서는, 항상 먼저 잠깐 뒤로 물러서서 그 자신이 먼저 주님으로부터 공급을 말씀을 받아야 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물고기 잡는 것에서 이제 주님은 '양을 먹이시는 주제'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제 15절에서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가 이 사람들보다' 또는,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먼저 이 '나를 사랑하느냐?' 이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질문하시는 것은 "네가 지금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네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네가 정말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거기에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리고 '이 사람들보다' 또는 '이것들보다'라고 또 번역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신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제가 그러한 해석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조금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 두 사람이 있는데요. 주님께서 "여기 강 형제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렇게 물으신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러한 상황을 생각해 보면 주님께서 그와 같이 다른 사람하고 비교해서, "네가 이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렇게 물으셨다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우리 다른 사람들 간의 질투와 분쟁을 일으키는 그런 시작이 될 것입니다. 여기 또 다른 견해는 "이제 물고기 잡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물론 이제 고기 잡는 것을 좋아해서 고기를 잡으러 갔었죠. 그래서 주님께서 "베드로야 네가 이 고기 잡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와 같이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이해하는 것도 더 나은 이해지만, 그것이 100% 동의하기 어려운 면이 또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떤 견해가 더 좋은 것인지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 말씀에 그 해답이 담겨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 질문이 스스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 봐야 됩니다. 그리고 정말로 내가 주님을 그렇게 사랑하고 있는지를 대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너의 아내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너의 직장 경력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이 이렇게 물으신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또는 "너 자신보다 너는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께서 이와 같은 질문을 하시는 목적은 이것입니다. 참 다른 어떤 것보다도 주님만을 사랑하는 것을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다른 모든 것 외에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이 질문에 세 번 대답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것에 대해서 세 번의 응답을 해 주십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그리고 "내 양을 먹이라" 그래서 우리는 이 본문에서 이 교훈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에 대한 증거는 주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아주 유능한 성경 교사가 있었고, 그리고 큰 홀을 빌려서 말씀 집회를 하였습니다. 그분은 아주 잘 알려진 성경교사였고 이름은 '제이빗 니콜슨 시니어'라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미국의 교회들이 가스펠홀과 또한 채플로 나눠져 있습니다. 이 채플이라고 불리는 그 그룹에서는 교회 진리에 대해서 강조해서 다루지 않고 있다고 우리가 그렇게 여깁니다. 그런데 이 제이빗 니콜슨 시니어라는 분은 바로 그 채플에서 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채플은 아주 경건하고 말씀대로 하는 모임이었습니다. 그분이 자주 싱가포르에 방문해서 말씀을 전할 때마다 저는 그분이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많은 도움과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제이빗 니콜슨 형제님은 아주 유능한 선교 교사였기 때문에, 채플에서 존경을 받을 뿐만 아니라 가스펠홀 사람들도 많이 그분을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직 어렸을 때에 그분께서는 하늘로 소천해 가셨습니다. 또 그분의 아들을 제가 알고 있는데요. '제이빗 니콜슨 주니어'라는 분입니다. 그분도 역시 유능한 성경 교사였습니다. 그분이 이야기하기를 저의 아버지가 소천하실 때에 참으로 전 세계 각국에서 성도님들이 많은 조문의 카드를 보내오셨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놀란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그 모든 조문 카드와 그런 문구들을 다 정리하고 기록하고 있을 때에, 그 카드의 내용들에 '아, 이분은 얼마나 유능한 성경 교사였는가!' 이런 찬사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받은 카드들에서 계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그 두 가지는 바로 이것이었다고 아주 놀라면서 말해주었습니다. 그 제이빗 니콜슨 형제님에 대해서 신자들이 그분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는 두 가지는 이것이었습니다. '이분은 주님을 사랑했고, 또한 주님의 백성을 사랑했다.' 이것이 반복적으로 신자들이 보낸 조문 카드에 나와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주님께서 그리고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이것은 그들에게 먹는 것을 공급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이 단어들이 조금씩 다르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주의 깊게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그 어린 성도들을 그들에게 말씀을 공급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내 양을 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더 이상 어린 양이 아니라 성장한 양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을 치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먹이를 공급하는 것보다 이제 그들을 돌보고 인도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내 양을 먹이라." 이것은 또한 나이가 든 양에게 먹는 것을, 이제 돌보는 것뿐만 아니라, 인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첫 번째와 같이 먹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종합해서 우리는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면 이 어린 양을, 또한 나이 든 양을 그들에게 먹이고 그들을 인도하라." 참 그들을 먹일 뿐만 아니라, 그들을 돌보고, 인도하고, 그들과 함께 있으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는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돌보고 있는 데서 증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제 시간이 거의 다 돼서 마지막 부분을 빠르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17절에 베드로는 이제 근심하면서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한다라고 고백하게 될 때에, 특별히 18절 말씀을 주님께서 대답해 주십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베드로가 말했을 때, 주님께서는 이렇게 응답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그가 어떻게 죽을 것을 그것에 대한 응답으로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저는 결코 "당신은 몇 년 후에 아주 끔찍한 죽음을 맞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대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19절에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르치심이로다" 우리 믿는 자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은 우리의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오늘 아침에도 제가 이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이것은 저에게도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이와 같은 사랑의 진정한 증거는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사랑하느냐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응답하신 후에,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가 어떻게 죽을 것을 말씀하시고 이제 이 두 단어를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그 어느 누가 "네가 이렇게 죽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이제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렇게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제 그러면 그 주님의 품에 기대했던 요한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하게 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죽겠지만, 이제 요한은 그가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살아 있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하고는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형제 자매님 여러분, 참으로 주님께서는 우리의 사랑을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애가 섬기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참 우리가 그분을 따라가기에 합당한 분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그분에게 드리기를 그분이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이 참으로 주님의 부활하심을 제시하고 있는 사도 바울이 또한 우리에게 증거하고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런 말씀으로 여러분을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