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탄쯔웨이 형제님

주님의 부활 : 지역 모임

박이레 2025. 10. 16. 23:39

< 주님의 부활 : 지역 모임 > 탄쯔웨이 형제님

여러분 모두 안녕하십니까? 이번 말씀 집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제가 사과의 말씀으로 먼저 시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5년 전에 이 모임을 방문해서 말씀 집회 앞에 만찬 예배가 11시 5분에 끝나야 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덕언 말씀을 좀 더 길게 해서 여러분이 짧게 휴식을 취한 것에 대해서 사과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조금 집회를 짧게 말씀을 전해서 그것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을 전하기에 앞서서 먼저 주쳇 모임 성도님들과 또 저희 가족을 대표해서 여러분들이 보여주신 사랑과 친절에 대해서 감사의 인사를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 저기 박희준 형제님께서 서울에 왔을 때 우리가 어디를 방문하기를 원하는지를 질문을 해 오셨습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제가 서울에 와서 어디에 있고 싶냐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에 저는 여기 모임에, 성도님들과 함께 거하는 것을 가장 기쁘게 생각을 합니다. 정말 주님의 백성과 함께 모이는 그 장소보다 더 나은 장소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모임을 방문할 때마다 제 가족 모두를 대표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인데요. 항상 저는 큰 힘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의 사랑과, 또 여러분의 친절과, 특별히 저희 가족에 대한 여러분들의 그 친절한 배려에 대해서 저희는 항상 신선한 힘을 얻게 됩니다. 또한 형제님들이 여러 가지 실행을 하시는 것을 볼 때에, 여러 성도님들이 또한 주님 앞에서 합당하게 행하시는 것을 볼 때에, 또한 그런 것들도 제 마음속에 더욱 큰 힘을 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의지해서 다시 한 번 이 모임이 계속해서 주님 앞에서 그와 같은 실행을 계속해 나가도록 말씀을 통해 격려를 드리고 싶습니다.
참으로 이 마포 교회에 올 때마다 참 이 모임에 만큼 형제님들이 많이 감사에 참여하는 모임이 있을까 생각이 듭니다. 제가 수를 세어보니까, 열 일곱분 형제님께서 그 감사에 참여하셨던 것 같습니다. 참으로 이와 같이 실행을 하고 있는 다른 모임, 제가 방문했던 모임과 그런 데서 찾아볼 수 없는, 그러한 모습을 여기서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 성경 말씀을 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20장입니다. 시간상 20장 19절부터 29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 20:19-29).

주님께서 우리가 공적으로 읽은 말씀에 대해서 복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몇 가지 그림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들은 모두 각각 다른 환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어떻게 사역을 하셨는지, 주님은 각각 다르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님께서 오늘날 어떤 사역을 하고 계시는지 보여주고 있는 그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길 여정 가운데 있는, 그 가운데서 만나는 주님을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집으로 향해 가는, 우리 본향으로 향해 가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또한 집으로 가는 그 두 사람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 잘 알려지지 않은 두 사람에게, 또한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을에 가고 있는 그 두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가까이 다가가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슬픔을 다루셨습니다. 그들의 슬픔을 먼저 다루신 후에,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더디 믿는 것을 다루셨습니다. 두 사람의 그 마음에 더디 믿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모든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가르켜 기록된 것을 펼쳐 보이실 때에 해결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3시간 반 동안 성경을 펴서 그들에게 설명해 주는 성경 공부 시간을, 놀라운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3시간 반 후에 그들이 집에 도착했을 때는 더 이상 그들의 마음속에는 그 더디 믿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오히려 뜨겁게 불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 가운데서 그리스도로부터 배울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집에서도 그리스도로부터 배우게 됩니다. 그 두 사람이 주님을 가정 안으로 초청하였을 때 그 가운데 더 많은 축복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더 큰 축복은 이것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식사하실 때 주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번 시간에 요한복음 20장을 보면서 다른 각도에서 '주님의 부활'을 살펴보겠습니다. 주님의 부활하심을 경험하는 것은 단지 우리의 인생의 여정 가운데서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주님의 부활하심을 경험하는 것은 단지 우리가 가정 안에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활하심은 또한 우리 '모임 안에서' 함께 경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네 번째 주님의 부활로 나타나신 것이 이 지역 교회에 적용될 수 있는 원리가 담겨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19절에 "제자들이 모인 곳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 '모인 곳'이라는 것은 흥미로운 단어입니다. 이것은 같은 단어가 마태복음 18장 20절에 사용되었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내가 그들과 함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서 '모인 곳에'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지역 모임에 대해서 그 원리와 본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원리를 통해서 우리가 지역 모임에 모일 때에 이러한 성경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는 슬픔과 또한 더디 믿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는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제자들에게 그들의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그리고 그들의 '충성'에 대해서 다루고 계십니다. 이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였다라고 돼 있습니다. 그리고 도마는 주님에 대해서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 두려움과 이 믿음 없는 것을, 두 가지 문제를 다루십니다. 이것은 때때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 본문 말씀을 통해서 특별히 이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두려움의 문제, 그리고 이 믿음이 없는 문제를 주님께서 다루십니다.

이제 몇 가지 것을 이 부문에서 다루겠는데요. 이 첫 번째가 "안식 후 첫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19절에 "이날 곧 안식 후 첫날"입니다. 지역 교회가 이 매 주의 첫날에 모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주의 만찬을 주의 첫날, 그 주님의 날에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렇게 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지역 교회의 실행을 정확하게 성경의 말씀을 따라서, 사도행전 20장 7절 말씀을 따라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이 주에 먼저 해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 매주의 첫날에, 세상에서는 이 일요일을 한 주의 마지막으로 생각합니다. 이제 직장에서는 제 동료들이 금요일이 되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TGIF라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제 금요일입니다."라고 하는 것을 봅니다. 이제 금요일이 오면, 이제 곧 토요일이고, 또한 일요일이고, 이제 휴일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즐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이 일요일이 한 주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이것은 한 주의 첫날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주의 첫날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토요일까지 계속해서 놀고, 또한 파티를 벌이고, 그래서 피곤해져서 이 주일에 오게 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너무나 피곤해서 어떤 것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한 상태로 나오게 됩니까? 그래서 이 본문에서는 이와 같이 우리의 '우선순위'에 대해서 먼저 말하고, 또한 그 이후에는 주님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9절에 모인곳의 문들을 닫았는데 예수께서 그 가운데 오셔서 서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가지신 몸은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변화된 몸인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물질을 통과할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문도, 어떤 자물쇠도, 그분이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서 우리 주님의 그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전 시간에 우리 주님의 십자가에서 고난과 그분의 죽으심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또한 우리가 기뻐하고 누리는 것은 이 부활하시고, 또한 그분께서는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단지 그 잠겨진 문을 통과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 그다음에 우리가 읽어보겠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역 교회로 모일 때에 이와 같이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참으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해야 될 일을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같이 주시는 분입니다.
우선 첫 번째로 우리에 있어서 '우선순위'를 말씀을 드렸고, 또한 그뿐만 아니라 '주님의 능력'을 말씀을 드렸고, 또한 이 본문에서는 세 번째로 우리 지역 모임에서의 '장소'를 또한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문들이 닫혔다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바깥 세상과 구별된 장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문들은 닫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것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지역 교회에 합당하지 않은 것이, 세상의 것이 들어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지역교회는 구별된 장소여야 됩니다.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였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종교적으로도 구별되어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과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모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구약의 그 옛 경륜을 따르는, 그들은 유대인들의 신도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지역교회에 모일 때는 우리는 과거에 우리가 다른 종교로부터 온전히 구별된 그런 가운데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가복음 22장을 보게 될 때에, 거기서 다락방이 언급되는데 세 가지 측면에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 누가복음에서 기록된 다락방은 첫 번째로 '큰 다락방'이고, 두 번째로 '다 갖추어진 다락방'이고, 세 번째로 다락방이라고 해서 이제 위에 있는, '높이 있는 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방이고, 갖춰진 방이고, 또한 위에 있는 방으로 언급됩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것은 또한 지역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지역교회는 큰 곳입니다. 이것은 제가 어떤 메가처치처럼 성도 수가 많은 교회야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참 이 지역 교회는 많은 신도들을 포함할 수 있는 그 가능성을 가진, 그 힘을 가진 곳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단지 그냥 많은 사람을 포함하는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 교회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락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으로부터 높이 솟아 있는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역 교회로 모일 때 우리는 세상과 다른 장소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높이, 그 다락방에서, 하늘의 질서를 따르는 공간임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세 번째 것이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크고, 높이 있는 다락방이고, 또한 그것은 '갖추어진 다락방'이었습니다. 참으로 이 지역 교회의 놀라운 점은 하나님께서 이 지역 교회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춰 주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구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16장에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물론 이러한 교회를 세우는데 우리의 책임을 또한 염두에 두게 됩니다. 하지만 이 영적인 자원에 관련돼서는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공급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빌립보서 4장에서 우리의 개인적인 필요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공급하시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것을 한번 빠르게 살펴보고 돌아오겠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우리는 때때로 이것을 나의 개인적인 필요를 채우시는, 내가 모든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채우실 것을 말하는 데 사용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구절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이 '지역 교회가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공급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우리에게 채우신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지역교회 집회로 나오는 그 기쁨은 이것입니다. 여기에 큰 방이 있고, 그것은 갖춰진 방이고, 이제 여기서 또한 높이 있는, 그것은 구별된 방입니다. 이것은 어떤 다른 종교와도 구별된 그런 방인 것입니다.

이번 본문에서, 요한복음 20장에서 네 번째로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이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임재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사" 1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그 가운데 그냥 계실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가장 높은 위치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냥 가장자리에 서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뒷자리에 앉아서 구경하는 분으로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것'을 잃어버리는 순간에, 우리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 가운데 서셔야 된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때에, 우리는 그때부터 무너지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지역교회 집회 가운데로 모일 때 형제자매 여러분, 항상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가운데, 우리 중심에 서 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가운데 계신 주님을 생각하고, 그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준비하면서 이 지역 모임으로 나와야 됩니다.

그리고 다음 주제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리스도의 평안'이 이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19절에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1절에 다시 한 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께서 여기서 특별히 이중적으로 이 평안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단지 한 번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두 번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가운데 두려움을 느끼고 계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그럴 수도 있으며 또한 지역 모임 전체적으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 두려움에 대한 해결책이,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평안'입니다. 이 두려움이라는 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우리의 복지에 대해서 위협하고 있는 것을 느낄 때 입니다. 이 환경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우리는 감정적으로 그렇게 반응하게 됩니다. 하지만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지역 모임 안으로 모일 때에 바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평안을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앞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주님께서는 단지 한 번뿐만이 아니라 두 번에 걸쳐서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사야의 기록을 생각나게 합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 26:3).

요한복음 20장에 나와 있는 우리 주님께서 평안을 두 번 말씀하신 것은, 이 이사야서 26장 23절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어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제 영어 성경에는 또한 그 간주 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그리고 또 평강으로 지키시리라."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이중적으로, 평안으로 지키신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한다면, 그분을 믿는다면, 주님께서는 반드시 이와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 '평안'이라는 것은 더 이상 나를 괴롭게 하는 그 환경적인 요소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에 주시는 이 평화는 환경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로 나가시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내 심령이 민망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심정이 민망한 가운데서도 주님께서는 그 안에 평안이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은 우리 신자들이 누리는 놀라운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아주 어려운 그런 상황 가운데 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가운에 대해서도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실제적으로 또한 누리는 게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평안으로, 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우리가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평화를 누리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단지 하나의 평안이 아니라, 이 이중적인 평화를 우리가 누리기를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다음으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주님의 증거들'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20절에서 "주님께서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지역 교회 모임 가운데로 나올 때는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보게 되는 무언가'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참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에 대해서 나타내 보이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주님께서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분이 손을 들어서 떡을 떼시며 축사하시고, 그 주인의 행동을 하시면서 주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께서는 단지 19절에서 그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20절과 같이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역 교회 집회 가운데로 나올 때마다 항상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사랑을, 그 증거를 하는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말씀드릴 주제는 이 지역교회로 나올 때 '그 목적은 무엇인가'입니다.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제가 이것을 질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지역교회 집회로 나올 때, 여러분의 마음이 이와 같이 기쁩니까? 그것은 우리가 이 지역 교회 집회에 나올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지역 교회에서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인해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 자신의 어떤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목적은 우리가 모두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계획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21절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래서 우리는 이 원리를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주님께서는 이의 형제들을, 또한 자매들을 세상 가운데로 증거하기 위해서 보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임명을 받은 '전심 사역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로 가서 '주님을 증거하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주님의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이 '온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22절에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여기에서는 또한 우리 '주님의 능력'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제 주님의 권위로 사도들에게 위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활하신 주님의 권위로 말미암아, 이제 그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맡기신 일을 이와 같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부분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잘 경청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말씀드린 마지막 부분은 이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강권하심'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도마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인물을 살펴보게 됩니다. 24절과 25절에 보면, 8일 전에 이 제자들이 모였을 때 도마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참 이것을 강조해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지역교회 그 한 집회를 참석하지 못했을 때, 여러분은 아주 큰 축복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지역교회 집회에 얼마나 충성되게 모여야 된다는 것을 자주 말씀을 드립니까? 단지 주일만 이 자리에 참석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도마처럼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그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주님을 보는 그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25절에서 도마는 아주 놀랍게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내가 그 손에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만약에 성경에서 가장 완고하게 행동한 사람을 꼽자면 바로 도마가 될 것입니다. 도마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잘 모르겠는데, 아직 확실하지 않아. 좀 생각해 볼게." 그가 말하는 것은 '믿지 않겠다'라고 강하게 말한 것입니다. "내가 직접 그것을 보고, 그것을 만져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 참 이 자리에 있는 어떤 분, 또 특별히 어린 분들께서, 아마도 이 도마와 같을지 모르겠습니다. '내 방식대로 되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육체적으로 우리 주님께서 내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난 믿지 않겠다라고 한 것입니다.
24절과 25절에 기록된 것처럼, 이제 도마는 그와 같은 말을 하고 그 집회가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도마가 말한 그 말을 들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에서 배우게 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집회 후에 우리가 말하는 것을 또한 조심해야 됩니다. 참으로 우리가 말하는 것이 항상 이 지역 교회의 하나 됨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됩니다. 그리고 또한 주님께서 그것을 듣고 계시다는 것을 주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6절에 여드레를 지나서 주님께서 다시 그 다락방에 오십니다. 같은 방식으로 문들이 닫혀 있었고, 예수께서는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다." 하십니다. 그런데 27절에서 우리는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하셨나요? 아닙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에 이와 같이 믿지 않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주님께서는 바로 여러분에게, 지금 당신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참 이 지역 교회의 놀라운 점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말씀 집회에서 이 말씀이 모든 회중에게 다 전해지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이것을 실제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가운데서 특별히 나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보고 내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참으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 믿지 못하게 하는, 방해하는 그 장애물이 있었는데, 그것을 완전히 제거하시고 이제 믿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주님께서는 이렇게 내어보시고 있는 것입니다. "내 손을 보고, 내 옆구리를 보라."
우리는 도마가 주님을 만졌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저는 그가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이 다섯 단어로 응답할 뿐이었습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참 이 완고한 신자가 이제 가장 놀라운 경배를 드리는 신자로 변화된 것입니다. 참으로 이와 같은 것을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을것입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다." 만약에 그가 그 불신이 단지 제거되었다면, 그는 반드시 주님을 경배드리는 경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약에서 이와 같이 고백한 사람을 네 명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마가 그중에 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가 지역 교회로 모일 때에 어떠한 원리와 어떠한 본이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은 우리의 지역 모임의 집회에서 경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두려움 가운데 있다면, 여러분은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 없는 가운데 있다면 그분을 더욱 믿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