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 가상칠언, 일곱가지 열린 것 > 조나단 블랙 형제님
다시 한 번 여기 대전 중구 모임을 방문하게 될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 성도님들께서 저희에게 또 친절하게 초청을 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시간 동안 저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 여러분들께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옆에 강 형제님께서 통역을 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먼저 마태복음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입니다.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누가 복음 23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33절과 34절입니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눅 23:33-34).
39절부터 47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눅 23:39-47).
요한복음 19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25절부터 30절까지 읽겠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 19:25-30).
저는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최근에 어떠한 기사를 읽었는데 그 기사의 제목은 이것이었습니다. '세상의 역사 가운데 가장 큰 사건 10가지.' 저는 역사가들이 과연 우리의 이 세상 가운데 일어났던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부르는 그 10가지 사건이 무엇인지가 궁금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그 역사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는 '자동차의 발명'이었습니다. 카롤드 벤이라는 사람이 그 자동차를 발명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세상에서 중요한 역사는 '인터넷의 발명'이었습니다. 참으로 이 세상에 인터넷이 없는 그런 세상을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록 중에 이제 10번째 사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사렛 예수의 탄생'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참 그 이름이 그러한 목록 중에 하나임을 발견하게 될 때에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그래도 그러한 사건이 예수님의 탄생이 목록에 있는 것이 꼭 괜찮지 않나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게 사실은 아주 잘못된 리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또한 자동차의 발명과 같은 레벨에서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또는 어떻게 인터넷과 그런 사건을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사실 사람들이 많이 죄를 저지르는 데 사용되는 그러한 도구들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분이지 않습니까?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목록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무엇인지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바로 그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그와 같이 죽으시기 위해서 그분은 먼저 이 땅에 나셔야 됩니다. 그래서 또한 그분의 탄생도 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분이 단지 이 세상에 태어나셨고 죽으시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여러분과 저의 구원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분이 또한 그분의 생애 때문에 그 구원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지만 그분이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왜 그분이 죽으셨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주제입니다.
특별히 구체적으로 그분께서 십자가에 계실 때에 하신 7가지 말씀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말씀은 다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그분이 하신 그 일곱 가지 말씀에 우리가 주목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들으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이 다른 사람들의 일반적인 죽음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죽으신 분이 누구신지를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왜 죽으셨는지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집회가 끝났을 때, 이제 여러분은 중요한 책임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 알게 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여러분이 태도를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로마의 총독이 직면한 그 선택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그 사람에 대해서 "내가 그리스도를 어떻게 하랴?" 그 총독은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슬프게도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 복음서의 각 책은 왜 그가 이 잘못된 선택을 했는지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쪽으로는 그는 자신의 아내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 아내는 이 의로운 사람에 대해서 관여하지 말라고 그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쪽으로는 빌라도는 군중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군중들을 기쁘게 해주기를 원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는 또한 정치적인 의견을 들었습니다. 그날 그는 헤롯과 함께 친구가 되며 그것에 같은 의견을 표시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친구를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먼저 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보다 자신의 남편이나 아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이 하늘나라 앞에서 이렇게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간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어느 날 이 빌라도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제 빌라도가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심문한 것과 반대로 입장에 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빌라도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떻게 할 건지 결정하는 순간이 아닙니다. 이제 그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빌라도를 심판하고 그를 결정하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여러분은 여러분이 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그 책임의 순간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여기서 그분을 돌이킨다면, 그분에게서 떠나간다면, 하지만 미래에 이제 그분 앞에서 다시 설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어떻게 심판을 내리시겠습니까?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할 때에 단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만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죽음에 놀라운 점은 그분이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그 7가지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 특별히 7가지라는 그 숫자의 의미가 또한 있습니다. 참으로 성경은 이 숫자에 대해서 중요한 의미를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은 '7일'이라는 언급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또한 이 성경의 마지막 책에서는 '일곱 교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7'이라는 숫자를 말씀하실 때 항상 그 온전한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다른 더할 것이 없는 그런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보게 될 때에 우리는 이것이 온전한 완성된 사역임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 주님의 죽으심과 관련된 중요한 다른 숫자는 '3'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세개의 십자가'가 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성경은 기록하기를 '3시'에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주님께서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못 박혀 달려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또한 그 6시간은 2개의 나눠진, 3시간과 3시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6시부터 9시까지는 세상에 암흑이 있었습니다. 3시간 동안의 암흑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또한 '세 가지 부상'을, 그분의 상처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손과 그분의 발과 그분의 옆구리에 그 상처를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3'이라는 숫자가 하나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하나님, 삼위일체입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에서 십자가에서 첫 번째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은 '아버지'라는 단어였습니다.
사실 이 십자가는 세상에서 아주 크게 오해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건물에 그 십자가를 붙인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를 목걸이로 해서 메고 다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 시대에, 그 1세기 바로 이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그 십자가를 여러분의 목걸이로 만들어서 착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 십자가라는 것은 가장 멸시를 받는 그런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그 십자가를 자신의 건물 외벽에 부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십자가라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아주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십자가의 형벌은 범죄자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범죄자에게 주는 그런 형벌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형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으심으로 선택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십자가의 가운데 있는 십자가에 달린 것을 보게 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이제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특별히 또한 역사가들은 이 양 옆에 달린 강도를 포함해서 그들은 모두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던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목하길 바라시는 것은 이 가운데 있는 예수께서 달린 십자가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십자가가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가치 있게 보시는 그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이 십자가의 가치는 그것이 만들어진 나무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바로 그 나무에 달리신 그분 자신에게 이 십자가의 가치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첫 번째 말씀에는 여기에 나무에 달린 분이 누군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주님의 손과 발에 망치를 들고 못을 박을 때에 주님께서는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희는 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사건 가운데서 여러 가지 것들이 열렸다는 기록을 찾아보게 됩니다. 첫 번째로 그 '아버지의 귀'가 열렸던 것입니다. 그분의 아들의 기도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아버지께서 귀를 열고 들으신 것입니다.
여기에 십자가에 또한 그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십자가에 달린 이분이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었다면, 여기 당신의 장자가 여기 십자가에 달려 죽고 있는 거 아닙니까를 물었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맞습니다마는 하지만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그는 대답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은주님의 그 첫 번째 말씀이, 그 기도가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십자가에 달린 분이 누구신지를 우리가 바로 알 수 있게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아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십자가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세상을 사랑하는 증거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에서 첫 번째 그 단어는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 기도는 이 십자가의 중요한 것을 또 한 가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사해달라고,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인의 죄를 사하게 만드는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이것은 여러분과 저의 죄를 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죄를 사할 수 있는 분은 오직 그 죄로 말미암아 그 죄를 당하신 사람만 죄를 사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만약에 강 형제님한테 나를 용서해 달라고 요청한다면, 그럼 당신이 뭘 했는데 제가 용서를 해야 되는 걸까요? 물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면, 먼저 여러분은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됩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범죄한 자들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질렀는지 명백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잠언 6장 말씀을 보게 될 때에 우리는 거기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 7가지를 보게 됩니다. 여기에 7가지의 죄가 있습니다. 그 목록의 첫 번째는 이것입니다. 그것은 '교만한 눈'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거짓말하는 혀'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교만한 게 죄인가라고 아직 깨닫지 못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이 교만하다는 것은 높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낮춰 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사실 모든 사람이 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죄인이라는 말을 듣게 될 때, 다른 사람들을 낮춰 보면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어, 나는 저렇게 나쁘진 않은데?"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사실상 다른 사람은 죄인이고 나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좋은 사람인데 저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가장 나쁜 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만의 죄입니다. 이 자랑하는 것 역시 죄입니다. 아주 자기가 좋은 것, 자기가 잘하는 것을 자랑합니다. 자기가 한 잘한 일들을 사람들에게 자랑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자랑하는 가운데 그들은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죄악된지 깨닫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어떤 좋은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그 좋은 일들이 나의 이 죄를 없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죄라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 대하여 범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셔야 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하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바로 그와 같은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저는 이제 미술 작품,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이 있습니다. 렘브란트라는 아주 유명한 화가가 있습니다. 그는 이 십자가에 대해서 많은 그림을 그린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그림을 그린 후에 자기의 이름을 한 구석에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그런데 십자가에 기록을 하였습니다. 왜 당신의 이름을 하필이면 그 십자가에 적었냐고 다른 사람이 물었습니다. 그리고 렘브란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이 그림을 그리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십자가에 내 이름을 적음으로써 내가 거기서 죽었어야 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렘브란트는 그리스도가 왜 죽어야 되는지를 이해한 사람입니다. 그것을 개인적으로 이해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그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과 또한 베드로는 바로 이 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죄사함을 받는 길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죄사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리아는 십자가 옆에 서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또한 사도 요한도 십자가 옆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로 말씀하시는 이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양쪽의 십자가에 달린 두 사람이 있었고 이 두 번째 말씀은 그들과 관련된 것입니다. 사실 이 양쪽의 두 사람은 처음에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중에 한 사람의 마음이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떻게 변화됐는지를 이 말씀을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23장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 강도는, 이 십자가에 달린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될 때에 이분은 십자가에 달릴 만한 어떠한 잘못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먼저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한 강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형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 바로 이것이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는 먼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다른 한 강도는 그것을 인정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이 문제를 이 문제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이 하나님에 대해서 단지 잘못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아플 때만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들이 어떤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했을 때만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하나님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이러한 태도는 구원받을 수 있는 모습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가 없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드리는 그 기도를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세상에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라고 그는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 이것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는 '나사렛 예수'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강도는 예수님께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그의 마음이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무릎 꿇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 이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을 말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왜 주님께서 죽고 있는데 어떻게 다시 올 것을 그는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까? 그는 이 성경 말씀을 믿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예수께서 다시 부활하신다는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 예수께서는 그에 대해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주님께서 이 사람에게 이제부터는 착하게 살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 강도는 지금 십자가에 못 박혀서 손을 까딱 움직일 수 없는 상태입니다. 주님께서 그러한 사람에게 이제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이제 열심히 다녀라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는 이제 몇 시간 안에 죽게 될 것입니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어디도 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단순히 믿기만 하면 그 구원이 그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오늘 구원받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사실 오늘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에서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어떤 것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특별한 장소에 가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참으로 자신이 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믿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도울 수 있다라고 믿으라고 말씀드리지는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으로 이렇게 믿으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지금 아주 큰 위험 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지금 지옥에 반 시간 후면 들어가야 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사람에게 그때 하늘나라가 열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이라고 말했습니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참으로 이 완악한 죄인이 이 놀라운 변화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그 하루가 끝나기 전에 그는 구원받고 이제 하늘나라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또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제 이 사람은 어떻게 자신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까? 이제 구원받았다고 뭔가 다른 느낌이 있는 것입니까? 그는 지금 여전히 그 십자가의 고통을 육체 가운데 느끼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자신이 하늘나라 갈 수 있다고 알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 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저에게도 동일한 이 질문을 한다면, 내가 어떻게 하늘나라에 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고 나는 그분의 말씀하신 그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귀'가 열려 있었고, 또한 이와 같이 여기서는 '하늘이 열린'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세 번째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은 어머니께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요 19:26).
그리고 26절에 특별히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그 제자에 대해서 특별히 표현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여기에 특별히 '사랑'이라는 그 단어가 표현된 것이 놀랍다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이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장소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아들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말하였습니다. 참 이 자리에 제가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많은 분이 계십니다. 하지만 이 한 가지는 여기 있는 모든 분에게 동일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한국 사람은 잘 모릅니다. 제가 한국어를 잘 모르지만 옆에 강형제님이 통역을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이 소년이든, 소녀이든, 남자든, 여자든, 여기에 나이 드신 분이나 하나님이 그분도 사랑하십니다. 여기에 가장 어린 분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참으로 이 도시에 여러분이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 여기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또한 그분들도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또한 이 자리에 이 도시에 가장 나쁜 사람이 이 자리에 앉아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바로 그분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이것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마리아, 그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마리아가 그 십자가 옆에 서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게 됩니다. 참으로 그의 앞에 그가 사랑했던 아들이 그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에 달린 그분은 아이였을 때 자신이 자신의 품에 안았던 그 아이였습니다. 그 십자가에 달린 그분은 어떠한 잘못도 한 적이 없는 그 사랑스러운 아들이었습니다. 참으로 온전하게 순종적인 그러한 아이였습니다. 여러분은 그 광경을 보면서 "마리아, 당신의 아들은 저런 형벌을 받을 받아선 안 됩니다. 그 형벌은 당신의 아이에게 합당하지 않은 겁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마리아, 당신은 지금 빌라도 총독에게 가서 이것은 말도 안 되는 형벌이라고 말하고 다시 그 아들을 달라고 요구하십시오!"라고 말할 것입니다. 저는 마리아는 그것을 거절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는 나의 아들입니다.
하지만 그는 또한 나의 구주입니다." 사실 그 구주께서 태어나시기 전에 마리아가 실제로 한 말입니다. "참으로 내 영혼이 나의 구주로 인하여 기뻐 즐거워하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물론 십자가 옆에서 마리아는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 역시 제가 그분을 알고 있는 것처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죽어가고 계십니다. 그녀의 죄로 인해서 지금 죽음을 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마리아의 죄를 위해서 죽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이 여러분의 죄를 위해서 죽으신 것을 받아들이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 마리아에게 "여자여"라고 부르십니다. 왜 여기에 '마리아'라고 부르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첫 번째 예언을 지금 이루고 계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이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죄가 처음으로 이 세상에 들어왔을 때에,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 사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의 후손이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것은 남자의 후손이 아니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마리아였습니다. 사단은 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이 '여자'라는 단어를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사단으로 하여금 참으로 하나님이 맨 첫 번째 말한 그 예언의 말씀을 지금 이루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사단의 앞에 여기에 여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는 여자의 후손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사단은 그 가운데서 패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께서는 제자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여기에 이 십자가에서 열린 세 번째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제자 요한에게 이제 그 어머니를 돌볼 것을 당부하십니다. 이제 그 제자는 자기의 집을 열고 어머니를 모시게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를 자신의 집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 여자를 돌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요셉이 아마 일찍 죽었을 걸로 예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서 얼마나 잘 돌보셨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부모님을 잘 돌봐야 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오늘 여기에 있는 젊은 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참으로 여러분께서 여러분의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을 내버려 두고 자신의 일에 너무 분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부모님들이 나를 이 세상에 낳아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동일하게 그 부모님을, 어머니를 돌보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 제자를 돌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네 번째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세상에 암흑이 전체적으로 있었습니다. 그 암흑은 3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단지 그 십자가 주위에만 이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 세상에 어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께서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었고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주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드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이제 법적으로 사함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 대가가 치러져야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우리 자신의 죄의 값을 치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단지 손과 발과 거기의 상처로만 고난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하지만 또한 성경이 기록하기는 하나님께서, 그 "여호와께서 그가 상함을 받기를 원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죄가 바로 그분께 놓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의 죄를 위해서, 참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기 위하여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질문할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분이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실 수 있단 말인가?" 그것에 대한 대답은 그분이 누구인지 알면은 해결이 됩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28절에서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을 아시고"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목마르다." 이 온 세상에 어둠이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할 수가 없고 이제 멈춰 있어야만 됩니다. 하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신이 지금 하고 계신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을 다 완성할 때까지 그분은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분이 말씀하셨을 때에,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그분께서 바로 이 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열어 보이고 계십니다. 바로 그분의 십자가의 고난의 중간에 시편 22편의 말씀을 인용해서 우리에게 열어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 수백 년 전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바로 이 말씀이 먼저 기록되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십자가는 항상 하나님의 마음속에 이미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로 버림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천사들도 그분 옆에서 그 고난을 돕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분이 받는 고통을 경감시켜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 홀로 그 고통을 받으신 것입니다. 오직 여러분과 저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고통을 홀로 받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와 같은 분을 버리신다면, 여러분이 이분을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하지 않으신다면, 여러분은 영원히 그분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원토록 어두운 그 곳으로 버려짐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 어두움은, 그 불못이라고 불리는 곳은, 그 지옥이라고 불리는 곳은, 단지 세 시간만 어두운 곳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어두운 곳입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영원토록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이 지옥은 고통받는 아주 끔찍한 공간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받으신 그 고통을 보게 될 때에 그 지옥의 형벌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과연 무엇이 그러한 형벌로부터 우리를 건질 수 있겠습니까? 누가 여러분을 대신하여 그 고통을 대신 받아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대신하여 그 고통을 받으신 것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참으로 성경이 기록하기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드리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로 말씀하신 것이 바로 "내가 목마르다"입니다. 왜 주님께서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이것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실제 한 사람으로서 그 고난을 받고 계심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 죄가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죄를 없이 하는 일에도 역시 사람이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루는 일인 것입니다. 이분은 사실 강을 만드시고 그리고 바다를 만드신 분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분이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강대상에 한 병 하나가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그분은 고난을 받으시면서 그 물 한 방울도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이 지옥에 간 사람이 있습니다. 그도 역시 단지 자신의 혀를 식혀줄 한 방울의 물만 구하였지만 그것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여기에 이 내가 목마르다 하신 이 분도 지금 그와 같은 고통을 받고 계신 것입니다.
참으로 이분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은 이분에게 쓴 식초를 그분에게 드렸습니다. 저는 이 십자가에서 발견하게 되는 어떤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에게 가시 면류관을 씌웠고 그리고 홍포를 그분에게 입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분에게 이 식초와 그리고 그것을 우슬초에 찍어서 주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시편 96편을 응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시편 69편을 응하게 하는 것이었고, 또한 사람들이 주님의 옆구리를 찔렀을 때에 물과 피가 나왔습니다. 주님께서 그 입술을 열어 그것을 입에 대셨을 때에, 그리고 그분의 입술에서는 다시 한 번 이 말이 나왔습니다.
여섯 번째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다 이루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까? 여섯 번째 날에 하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여섯 번째로 입을 열어 하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로 하늘나라로 들어가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그 일이 완성됐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속 사역이 완성된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또한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도 역시 내가 뭔가 해야 된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그 말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이 충분하지가 않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께 뭔가 해야 되는 더 남은 일이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친절하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이 구원에 대해서 더 이상 해 드릴 것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모두 여러분의 죄로 더럽혀진 것을 하나님께 드릴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자신을 드리신 것은 죄 없는 그 온전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이 사역은 완성되었습니다. 이 사역은 이제 최종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역은 그래서 영원토록 유용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은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바로 이분께서 '단번에 영원히 한 제사를 드리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늘 여러분께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다 완성된 것을 믿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거기에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습니다. 단순하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수년 전에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한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그 아기는 이제 2층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잠든 사이에 시장에 가서 우유를 사서 와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오래지 않아서 아이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금방 갔다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트에 가서 서 있을 때에, 그런데 소방차가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는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그는 어디서 불이 났나 보다 생각하였습니다. 여기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봐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바로 자신의 집이 그 불난 집이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아이가 있는 그곳으로 빠르게 달려갔습니다. 그 소방관이 거기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여기 위험하다고 들어갈 수 없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뿌리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젊은 소방관이 그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여기에 두 아이가 있고 그중에 한 아이는 나의 아이다. 나는 그를 구해야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소방관은 그 2층으로 가서 침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방관은 그 와중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25년 후에 이제 한 젊은 여인이 무덤 앞에 서 있게 됩니다. 그녀 앞에는 여기에 한 기념 비석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석에는 소방관의 사진이 부착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비석 앞에서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한 남자가 지나가면서 그가 멈춰 서서 "여기 죽어 있는 소방관이 당신의 아버지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죽어 있는 소방관이 당신의 남편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역시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남자는 "그럼 이분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참으로 이분은 내가 만난 적이 없지만 나를 위해 죽으신 분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와 같이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그분을 육신의 눈으로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곧 그분을 직접 보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저를 구하기 위해서 죽음으로 달려가신 분입니다. 저의 죄와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날 밤에 그 구원을 받은 그 아기가 해야 될 모든 것은 단지 그 소방관을 믿고 안기는 것입니다. 바로 그 아기를 위해서 죽은 분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다시 한 번 아버지께 말씀을 드립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이 아버지의 손이 열린 것이, 열린 것의 일곱 번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참으로 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되는 또 중요한 교훈은 이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분으로부터 그분의 목숨을 빼앗지 않았습니다. 그분 자신이 자신의 영혼을 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이 그분의 십자가 앞에 왔을 때에 주님께서는 이미 자신을 죽음으로 내어주신 후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말씀하신 것은 "나는 다시 목숨을 얻을 권세도 있다." 사망이 그를 붙잡아둘 수 없었습니다. 그와 같이 사흘 만에 주님께서는 다시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언제 죽을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죽음이 오는 것에 대해서 저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바로 이 저를 위해서 죽음을 겪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 죽음을 건너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제가 이제 마치면서 다시 한 번 빌라도가 한 질문을 여러분에게 드리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 예수를 어찌 해야겠습니까? 참으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여 주옵소서."라고 말씀하신 이 분을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 참으로 그 완악한 강도를 십자가에서 구원하신 분입니다. 어머니께 그분의 여전한 사랑을 보이신 분입니다. 여러분이 영원토록 버림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분께서 버림을 당하신 분입니다.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신 분입니다. 그 구속 사역을 완성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분입니다. 참으로 이분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십자가를 떠나서 그냥 여러분의 길로 가시겠습니까? 참으로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한 사건입니다. 참으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생애 최초로 여러분의 손이 지금 비어 있다 할지라도 그분께 나와 그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죄인입니다."라고 인정하면서 나오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이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나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참으로 이분을 믿고 구원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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