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언 : 그리스도의 평강 / 24년 11월 3일 일요일(요약) / 김보영 형제님
지난 시간 골로새서 3장 말씀을 교제 했습니다. 이어서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3:5-17, 개역한글)
주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가 어떤 삶을 살것인가? 어떤 삶을 삶으로 주님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할 것인가 하는 말씀이 주어져 있습니다.
5절 말씀에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합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 있습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새 사람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 영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이미 완전함을 받은 자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악한 것들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죽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완전하지만 우리 안에 여전히 죄의 본성이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음란, 부정, 사욕, 탐심, 악한 정욕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벗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더러운 옷을 벗어버리는 것처럼 영적인 측면에서 합당하지 않은 모든것을 벗어버리라는 의미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절에서는 입을것을 말씀합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을 옷입고" 그리고 여기서 사랑을 더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어떤것을 행하든간에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헌신적인 측면에서 하라는 말씀을 지난 시간에 받았습니다. 사랑이 빠져 있다면 아무 유익도 없고 영적인 측면에서 성장하는데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함을 말씀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는 말씀을 받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으로는 "하나님의 화평이 너희 마음을 지배하게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3:15, 개역한글)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우리를 평강하게 하기 위함임을 말씀으로 받습니다. 그래서 이 평강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평강은 헬라어로 '엘엘레나'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샬롬'입니다. 샬롬은 안전함, 건강함, 풍족함, 안녕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샬롬이라는 단어는 어떤 단어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연결되지 않으면 샬롬이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이" 진정한 샬롬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이 평강을 여러 측면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평강, 평화, 화친 등 모든 단어가 샬롬으로 아우를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을 평강의 왕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평강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주시겠다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개역한글)
세상 사람들도 평안을 원합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지거나 높은 지위에 올라도 평안을 누릴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많이 가진것 때문에 빼앗길까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그 지위가 영원하지 않음에 불안해 합니다.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요20:19, 개역한글)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20:21, 개역한글)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첫번째 하신 말씀이 평강입니다. 이같이 말씀하심은 우리에게 주신 평강이 대단히 혹독한 대가를 치뤘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 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온전히 사함으로 우리에게 평강을 주신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53:5, 개역한글)
이 평안은 사라지지 않는 평안입니다. 영원한 평안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는 저희가 주님을 어떻게 섬기고 사느냐에 따라서 평강을 누리기도 하고 못누리기도 하겠지만 주님 앞에 가서는 영원한 평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한 죄사함을 통해서 의로운 자가 되었습니다. 또 영원한 생명이 있고, 영원히 주님과 교제하며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5:1, 개역한글)
성경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강을 주셨는데 그 평강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에 젖어 있으면 그 평강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우리가 범죄하더라도 우리는 지옥에 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측면에서 평강은 깨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사26:3, 개역한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5, 개역한글)
우리는 주님이 어떤 평강을 가지고 세상을 사셨는가를 보게 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6-8, 개역한글)
주님은 세상에서 핍박을 받으셨으나 전혀 요동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는 그 순간에도 주님의 마음은 변화가 없었습니다. 상대를 미워하거나 분을 내서 평강을 깨지 않으셨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의 지배를 받아 순종하는 삶을 살 때에 우리가 평강을 누릴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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