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언 : 성도가 가져야 하는 성품 / 24년 10월 13일 일요일(요약) / 김보영 형제님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3:1-17, 개역한글)
지난 시간에는 성도들이 영적인 삶을 위해서 영적인 삶을 방해하는 것들을 죽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죽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 행위를 벗어버리라 말씀했습니다.
1-4절에서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았기에 신분도 천국의 사람이요, 그 삶도 천국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부분을 교제했습니다. 그리고 성도가 영적인 삶에서 방해가 되는 것들을 먼저는 죽여야 하고 벗어버려야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지체를 죽인다는 것은 육체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옛 본성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잠재우는 것입니다.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골3:7, 개역한글)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행하던 일, 육신적으로 행하던 일들은 구원받기 전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이후에는 성도답게 살아야 합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골3:9, 개역한글)
또한 벗어버릴 것에 대해서도 말씀합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골3:10, 개역한글)
새 사람을 입었기 때문에 옛 것은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새 사람을 입을 것이 아니라 새 사람을 입었다고 말씀합니다. 구원받는 순간 우리를 하나님께서 거룩한 신분으로 바꾸셨습니다. 완전한 새 사람을 입었기에 옛 행위를 벗어버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2절 우리가 교제할 말씀은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새 사람을 입은 측면에서, 그리고 옛 사람의 행위는 옛사람 때까지만이라는 것을 염두해두고 "그러므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 사람을 입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여기서 택했다는 것은 창세부터 계획하신 것이고 그 계획에 따라 우리는 구원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 택정론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택정론과 부딧치는 내용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아는데 이르며 영생을 얻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할수 있습니다만, 오늘은 나누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로서 택함을 입었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입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긍휼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이러한 마음을 갖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구원받았다하면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을 불쌍히 여기고 돕는데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긍휼입니다.
자비는 친절한 것입니다. 사심없이, 어떤 조건없이 남을 이해하고 돕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을 행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성 중에 자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은 우리의 구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지 않고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면 우리는 구원을 얻을수 없었습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우리 주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가셨습니다.
온유는 유순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항상 유순해야 합니다. 안정된 심령으로 늘 살고 있는 사람을 온유한 사람이라 말한다고 합니다. 온유는 항상 유순하기에 남이 보기에는 연약한 사람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온유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남을 책망할 때도 온유하셨습니다. 이러한 온유함이 성도들이 갖춰야 할 덕목입니다.
마지막은 오래참음입니다. 나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 사람에 대해서 맞받아서 복수하지 않고 참는것을 말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 분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꼐서 이 세상에서 얼마나 배척을 당하신지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오래 참으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사실 주님의 심정을 가지고 주님의 본을 좇아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할수 없는 것드입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3:13, 개역한글)
혐의라는 원어의 뜻은 비난 다툼이고, 용납은 너그러운 마음, 용서는 상대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고 합니다. 곧 상대가 나를 비난한다 할지라도 맞서지 아니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저 형제가 나에게 상처를 준다고 해서 나도 저 형제처럼 그럴수 있다는 동일한 연약함을 가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를 마음에 두고 피차 참고 용서해야 합니다. 이는 피차 하는 것이기에 서로 짐을 져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상대가 아무리 괴롭게 한다 할지라도 용납하고 용서하는 것은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심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을 엄격하게 말하면 주님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3:14, 개역한글)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기독 신앙의 시작이고 완성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4:16, 개역한글)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4:19, 개역한글)
하나님이 사랑하기에 우리도 사랑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랑없이 행한다는 그 자체는 영적인 의미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13:1-3, 개역한글)
사랑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우리의 어떤 행위는 하나님께서 받으실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기반으로 하는 것이 우리 신앙의 본질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항상 마음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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