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로몬 성전 5. 성전 기둥 > 데이빗 길리란드 형제님
우리가 지난시간 계속 읽었던대로 열왕기상 6장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사백 팔십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년 시브월 곧 이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솔로몬왕이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한 전은 장이 육십 규빗이요 광이 이십 규빗이요 고가 삼십 규빗이며"(왕상 6:1-2).
"제 십일년 불월 곧 팔월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전이 다 필역되었으니 솔로몬이 전을 건축한 동안이 칠년이었더라"(왕상 6:38).
이번 시간에 다룰 주제인 역대하 3장을 보겠습니다.
"전 앞에 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고가 삼십 오 규빗이요 각 기둥 꼭대기의 머리가 다섯 규빗이라 성소 같이 사슬을 만들어 그 기둥 머리에 두르고 석류 일백개를 만들어 사슬에 달았으며 그 두 기둥을 외소 앞에 세웠으니 좌편에 하나요 우편에 하나라 우편 것은 야긴이라 칭하고 좌편 것은 보아스라 칭하였더라"(대하 3:15-17).
"후람이 또 솥과 부삽과 대접을 만들었더라 이와 같이 후람이 솔로몬왕을 위하여 하나님의 전에서 하는 일을 마쳤으니 곧 기둥 둘과 그 기둥 꼭대기의 공 같은 머리 둘과 또 기둥 꼭대기의 공 같은 기둥 머리를 가리우는 그물 둘과 또 그 그물들을 위하여 만든바 매 그물에 두 줄씩으로 기둥 위의 공 같은 두 머리를 가리우게 한 사백 석류와 또 받침과 받침 위의 물두멍과 한 바다와 그 바다 아래 열 두 소와 솥과 부삽과 고기 갈고리와 여호와의 전의 모든 그릇들이라 후람의 아비가 솔로몬왕을 위하여 빛난 놋으로 만들 때에 왕이 요단 평지에서 숙곳과 스레다 사이의 차진 흙에 그것들을 부어 내었더라 이와 같이 솔로몬이 이 모든 기구를 심히 많이 만들었으므로 그 놋 중수를 능히 측량할 수 없었더라"(대하 4:11-18).
우리가 솔로몬 성전을 상고함에 있어서 항상 열왕기상 6장의 말씀을 읽게 됩니다. 그런데 열왕기상은 이 주제에 대해서 많이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늘 이 주제에 다루기 전에 먼저 솔로몬 성전이 건축된 그 년도와 날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두 날짜가 거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이 그 성전을 그가 통치한지 4년째에 만들기 시작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 또 다른 날짜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아주 특별한 날짜 입니다. 그 날짜는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지 480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주의깊게 성경을 읽는 이 독자에게 이것은 아주 특별한 표현이라는 발견할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건도 애굽으로부터 이와같이 날짜를 계산하여 그 날이 며칠째라고 한 사건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사기를 살펴봐도, 사무엘 상과 하를 살펴봐도 이것이 애굽에서 나온지 몇년째 되는 날이라고 기록한 사건을 볼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솔로몬 성전과 관련되서는 애굽에서 나온지 몇년째다 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 성전을 만드는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더욱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일종의 기준이 되는 그런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무엇과 관련된다는 것을 우리가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출애굽기에서 구속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애굽땅에서 구원해 내셨습니까? 단지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와서 그것을 즐기고 있는것을 목적으로 하셨습니까? 하지만 그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더 큰 목적을 가지고 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통치할실 목적을 가지고 이제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임재라는 특권을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계획은 출애굽에서부터 벌써 시작된 사건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임시적으로 거하실 성막을 만들게 하신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것은 이동하는 하나님의 임재 장소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막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임시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구적인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를, 그 성전을 마음속에 두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백성을 구원해내신 그 목적은, 하나님과 가깝게 되는 그 관계를 두고자 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 날짜에 대해서 흥미로운 사실 한가지 더 있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이 그 통치 4년째에 성전건축을 시작하였고, 그리고 11년째에 마친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성전 짓는것은 7년이 걸렸습니다. 이 7이라는 숫자는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성경에서 완전에 관한 숫자입니다. 그래서 이 성전이 7년동안 건축되었다는 사실은 이 건축물이 온전한 것이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잠깐, 다른 주제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솔로몬은 이 성전을 만드는데 7년이 걸립니다. 하지만 그의 궁전을 만드는데는 13년동안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바로 이 사실로 솔로몬은 여러가지 비판을 받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비판하기를, 솔로몬은 자기집을 위해서는 13년동안이나 공을 들여 만들고 하나님의 집을 위해서는 7년동안만 만들었다 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비판을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이것입니다. 솔로몬이 그 7년 동안 그 성전을 다 건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윗이 이미 충분히 많은 준비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바닥부터 그 만드는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금과 은과 많은 필요한 물질들을 다윗왕이 이미 미리 다 준비놨던 것입니다. 이런 많은 물질들이 이미 사용되도록 완전히 준비가 갖춰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은 단지 7년안에 완료될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자신의 궁전을 만드는데 있어서는 처음부터 다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궁전을 만드는데 13년이 걸린 이유입니다. 이것은 제가 아주 실제적으로 설명을 드린 것입니다.
이제 성막과 성전은 많은 연관성이 있다는것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성전에 있는 많은 것들은 성막에 있던 사이즈의 거의 두배의 크기가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이 성소는, 성막 같은 경우에서는 20규빗이었는데 성전에서는 40규빗이 됩니다. 그리고 이 성소가 성막에서는 10규빗의 폭을 가지고 있었는데 성전에서는 20규빗이 되는 것입니다. 성막에서는 이 지성소의 가로 세로가 10규빗,10규빗이었지만, 성전에서는 20규빗, 20규빗이 됩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성막은 보다 더 큰 성전의 작은 모형이 되는 것입니다. 성막과 성전은 많은 유사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밤에 다룰 주제는 그 차이 중 가장 커다란 차이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막에는 많은 기둥들이 있었습니다. 예를들어서 그 성막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장막을 칠때에 60개의 기둥들이 사용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둥들을 거치며 세하얀 세마포가 둘러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막의 주 출입구는 다섯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안쪽 문에는 네개의 기둥이 또한 사용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막에는 최소한 69개의 기둥이 사용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전을 보게 될때, 단지 2개의 기둥만이 언급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 2개의 기둥이 이 차트에서 보여드리는 성전 앞의 두개의 기둥입니다. 여기엔 기둥이 단지 두개만이 있었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아주 커다란 감흥을 주는 기둥이었고 그리고 아주 중요한 기둥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제가 이 기둥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번째로 이제 말씀드리고자 하는것은 이 기둥에 대한 언급입니다. 이 특별한 두개의 기둥에 대해서 성경이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서 열왕기상에서는 이 번제단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책에서 기둥과 관련해서는 10개의 구절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역대기에서는 이 번제단이 단 한구절 언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책에서 6-7개의 구절이 이 기둥을 언급하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예레미아에서 이 기둥이 언급되고 있음을 찾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기둥이 자세하게, 또 여러번 언급되어 있다는 것을 볼때에 이 기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두번째 중요한 사실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기둥의 의미가 또한 두번째로 생각해 볼 주제 입니다. 우리가 그 의미에 대해서 추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약성경이 우리에게 그것에 대해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디모데전서 3장에서 이 지역모임에 대해서 언급할때 "진리의 기둥과 터" 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이 기둥은 전시하는데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둥은 지지하는데 사용이 됩니다. 바로 이 지역모임이 그 진리를 전시하는곳이고 지역모임 이 진리를 받들고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모임이 기둥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3장에서 "이기는 자는 새 예루살렘의 기둥이 되게 하리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바로 그 말씀에서는 각각의 믿는 자들이 그 기둥이라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기둥에 대해서 생각할때 그것은 견고한 것이고 강한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것은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강건해야 합니다. 여러방향으로 그냥 요동하는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세번째로, 그 기둥이 사용되고 있는곳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형제들은 이제 예루살렘 모임에 있었던 사람들 입니다. 그 모임의 인도자들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세 형제를 언급하면서 기둥과 같이 여기는 형제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이 시간 다루면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주제입니다. 솔로몬 성전에 이 기둥이 있었던 것처럼 지역모임에도 이 기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금방 말씀드린 것처럼 각각의 성도님들이 이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특별한 의미에서 지역모임 안에 기둥과 같이 여겨지는 인도자가 되는 형제들이 있어야 합니다. 구약 성경에서도 기둥이라는 단어가 바로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실때 하나님께서는 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십니다. 그 성막위에 있던 구름기둥이 움직일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디로 가야할지 그 방향을 알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의 기둥을 생각할때, 하나님의 집의 기둥을 생각할때, 우리는 영적으로 인도하는 형제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지역모임 안에는 자격을 갖춘 그 인도자, 그 권위와 위엄을 갖춘 인도자가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지역모임인 단지 그냥 민주적으로 운영 되는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투표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든사람이 다 각각 발언권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 지역모임은 민주적으로 운명하는 데가 아닙니다. 또한 그렇다고해서 독재적으로 운영하는곳도 아닙니다. 이 지역모임은 한 목사라든지, 한 성직자가 다스리는곳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두개의 기둥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두개의 기둥이 연합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2라는 숫자는 증거와 관련된 숫자 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 이해해야 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신약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신약성경의 진리입니다. 이 위엄을 가지고 있는 두개의 기둥처럼 지역모임에는 복수의 인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복수의 인도자들이 지역모임의 인도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 복수의 인도자들이 지역모임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커다란 책임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된 것입니다. 제가 5분전에 읽은 성경말씀을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에서 이 지역모임에 대해서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그 동일한 장에서 성경은 장로들과 집사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형제들이 공적인 그 인도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나라를 방문할때, 또 다른지역모임을 방문할때 많은 연약함이 있다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바로 그 모임의 인도력이 연약한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경건한 인도력이 있는 모임은 커다란 특권인 것입니다. 참으로 존귀한 인도자들이 있는 모임은 영적인 인도를 할수 있습니다.
이제 다른것을 또 고려해 보겠습니다. 이 기둥에 사용된 재료들입니다. 여기에 아주 흥미로운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인도자가 되는데 어떠한 재료들이 필요한 것인가?
"다윗이 하닷에셀의 신복들의 가진 금방패를 빼앗아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고 또 하닷에셀의 성읍 디브핫과 군에서 심히 많은 놋을 취하였더니 솔로몬이 그것으로 놋바다와 기둥과 놋그릇들을 만들었더라"(대상 18:7-8).
이것은 우리가 이 기둥을 이해하는데 아주 특별한 관점을 제시해 줍니다. 우리는 이 기둥을 만들때 사용된 재료가 놋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 놋이라는 재료는 원래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소유하고 있던 재료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왕이 아람왕으로부터 그것을 빼앗아서 가져왔다는 사실을 여기서 보게 됩니다. 단지 다윗왕은 이 재료들을 아람왕으로부터 빼앗아 왔을뿐 아니라 이것을 가지고 이 큰 놋기둥을 만든 것입니다. 저는 감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윗이 이 놋을 대적에게서 빼앗아오지 않았다면 무엇으로 이 기둥을 만들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계속해서, 그 놋들은 우상의 신전에서 사용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놋들은 계속해서 아람왕의 궁전에서 그릇들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왕은 그 재료들을 가져와서 하나님의 집의 유용한 물질로, 재료들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역모임을 지금 아주 훌륭하게 섬기고 있는 몇몇 인도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예전에는 죄와 사단을 섬기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바로 그랬던 사람들이 이제 하나님의 집에서 기둥들로써 지역모임을 훌륭하게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거기 굳게 서서 지역모임의 존귀함을 더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주 큰 용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고 큰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입니다. 하지만 20년전에, 25년전에, 그들은 사단의 종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적에 속해 있던 그런 사람들이 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옛 종되었 곳에서 완전히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 입니다. 이 놋과 같이 구속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집의 기둥으로 서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위해서 다윗왕은 큰 싸움을 싸웠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큰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의 승리로 말미암아, 이 막대한 자원들을 이스라엘로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일을 하셨는지 우리에게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바로 그 분께서 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분께서 가장 큰 승리자 이십니다. 바로 이 자리에 우리가 이 지역모임이라는 트로피가 주님께서 승리의 승전물로써 받은 것입니다. 바로 이 인도자를 상징하는 이 기둥이, 한때는 대적의 종이었지만, 이제는 구속받아서 백성들의 인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제가 여기 모인 분들을 볼때에 여러 기둥들이 있고, 그 지역모임의 인도자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중에 있는 인도자들은 또한 많은 세월동안 인도하는 일을 해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아직 인도의 위치에 있지 않은 젊은 성도님들도 계십니다. 그분들은 '이러한 집회는 나에게 별 상관이 없는데' 라고 생각하런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어느날 이와같은 인도자 위치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이러한 기둥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 전세계 각각 어느곳에서든지 이 경건한 인도자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주님께서 곧 오시지 않는다면, 이중에 여러분들은 또 이와같은 인도자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교훈을 통해서 우리가 계속적으로 격려를 받기를 원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인도자로 세움을 받기에 합당치 않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께 이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아람왕에게서 그 놋을 빼앗아 와서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으로 만드신 그 동일하신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하신 하나님이시며 또 여러분을 변화시켜서 지역모임의 인도자로 세우시는 그런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제가 이 재료에 대해서 마치면서 이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성전뜰에 있는 또한 동일한 놋으로 만들어진 그릇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번제단이 놋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부어만든 바다가 놋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개의 기둥도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이 놋으로 만들어진 번제단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놋바다는 하나님 말씀의 그 정결케하는 능력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개의 놋기둥은 두개의 놋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 두개의 성격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들의 인도자가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무엇이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의 인도자로 만드느냐에 관해서 제가 두가지 확실한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의 인도자로 선다면, 그 위엄과 존귀를 가진 인도자로 선다면 그는 반드시 그의 삶 가운데서 두가지의 것에서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그 경건한 인도자는 먼저 갈보리 십자가의 사역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경건한 인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부어만든 바다' 입니다.
이제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의 중심에 대해서 더 다루겠습니다. 네번째 주제는 그것이 나타내고 있는 증거입니다. 제가 사용하고 있는 단어가 가진 의미는 이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전 안으로 들어가게 될때 이 큰 기둥을 보고 그것은 여러분 마음속에 큰 감흥을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제 유대인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처음 성전을 방문하는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소년은 성전에 들어가면서 이 커다란 번제단과 이 커다란 놋 바다를 보고 감흥을 받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그에게 감명을 주는것은 이 커다란 놋 기둥입니다. 그것은 10미터 높이로 굳게 서 있는 기둥입니다. 여러분이 그 밝게 빛나는 커다란 놋기둥 바로 옆에 서서 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아주 커다란 감명을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이것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구조물일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전을 갔다왔다고 한다면 이웃이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그 기둥을 보았어?" 그 질문에 "아 보지 못했어."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분명해서 그것을 안보고 지나칠수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제가 이것과 관련해서 동의하지 않는 몇가지 것들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여러가지 다른 의견들이 있습니다. 우리 영어성경에는 "낭실 안에 기둥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그림에 나와있는 것처럼 낭실안에 기둥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글성경에는 그 기둥이 "낭실 앞에 있다."고 쓰여 있고 또한 히브리어 성경에서도 그것이 "낭실 앞에 있다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다이어그램에서 보듯이 이 기둥은 낭실 앞에 있는 것이고, 완전히 독립적으로, 성전과 따로 떨어져서 앞에있는 두개의 기둥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나중에 이쪽 그림에 가까이 와서 보시게 된다면 왼쪽에 있는 한개의 기둥은 낭실안에 있는데 오른쪽에 있는 단면으로 짤려져 있는 저 기둥은 낭실 앞으로 나와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 두개의 위치 중에 무엇이 맞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그 위치가 분명하게 그 위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믿기로 이 그림에 나와있는 것처럼, 이 두개의 기둥은 낭실앞에, 그 성전 구조물과 상관없이, 떨어져서, 아주 기둥만 두개가 뚝 서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한번 말씀드리는것은 그 기둥을 안보고 그냥 지나칠수 없는 아주 독특한 것입니다. 지역모임의 인도자는 어떻습니까?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까?
제가 5년전에 어떤 한 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 모임에 한주 동안 있었습니다. 제가 방문한 두번째 날에 거기 모임 형제에게 물었습니다. "이 모임의 인도자가 누구입니까?" 그분은 "여기에 다섯명의 장로 인도자가 있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누구입니까?" 그가 말하기를 "말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금요일밤까지 그가 나에게 "그 인도자가 누구인지 맞춰보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시험이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살펴야 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관찰했습니다. 제가 돌아다니고 있는 형제들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밤에 제가 생각하는 다섯명의 이름을 말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다섯명 중에 다섯명을 다 맞춘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아, 그 사람들 혹시 그 가슴에 '나는 인도자'라는 뱃지를 달고 있었던것 아닙니까?" 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인도자는 그 작은 뱃지가 필요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인도자는 분명한 것입니다. 지역모임의 인도자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독재를 하기 때문에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영적인 자격과 그의 영적인 성숙함이 그 모임에서 그를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저에게 금요일 밤에 마포모임의 인도자가 누구인지 맞춰보라고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그 도전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제가 그것을 받아들이겠습니다.(웃음) 제가 2년전에 이 모임을 방문했고 이제 또한 다시 여기서 2주를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저는 반드시 누가 인도자인지 맞출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모임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여러번 반복해서 아주 흥미로운 표현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말씀들을 다 읽지 않겠습니다. 제가 그냥 그 구절들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절에서 "너희 가운데 다스리는 자들" 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 5장 17절에서 "잘 다스리는 장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이 두 구절에서 "다스리는"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흥미로는 단어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다스리는'이라는 그 사용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제가 여기서 그 단어를 썼는데요 나중에 한번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금방 쓴 단어는 '바실레오'라는 단어이고, 그것은 '왕으로 다스리는 단어'이고 일반적으로 이것이 '다스리다'를 쓸때 쓰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인도자들에게 사용된 단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도자는 왕으로 다스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전서 5장과 디모데전서 5장에서 사용된 '다스리다'는 단어는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주 다른 단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 '인도자들이 다스리다' 라고 사용될때 사용된 단어는 두개의 합쳐진 단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번째 접두사는 '앞에 있는'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있는 이 단어는 '서다' 입니다. 이 모임의 인도자는 왕으로서 다스리는 것이 아니고 '그들앞에 서서 있는것'이, '다스리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 뒤에 서서 그 사람들에게 이리로 가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인도자가 아닙니다. 모임의 인도자는 그 사람들 앞에서서 본으로써 인도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 '다스리다'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 인도자가 '목자'로 비유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성경 시대에 목자는 양들 앞서서 행하는, 양들을 인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인도하고 그들을 먹이는 임무를 맡은 사람들 입니다. 바로 이 성전의 두개의 기둥이 독특하게 드러나는, 두개의 기둥이 하나님의 인도자를 상징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다섯번째로 그 치수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아주 빠르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이미 말씀드린대로 이것은 10미터 높이로 서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커다란 높은 기둥은 존엄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밖에 서있지만 낭실 바로 앞에 서 있습니다. 마치 두개의 문처럼 세워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 성전에 나아가게 될때 그 입구 바로앞에 서있는 두개의 기둥을 볼때 '이곳은 존엄하고 존귀한 곳이구나.' 라는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 두개의 기둥사이로 들어가게 될때, 여러분은 단지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편하게 지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는 아주 심각하고 진지한 곳이라는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경건한 인도자들이 그렇게 서서 하고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모임의 인도자들은 영적인 문지기로써, 지역모임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둥으로 말미암은 존엄한 분위기를 볼때에 '아! 이곳은 진지한 곳이구나.' 이곳은 특권과 책임이 있는 장소라는것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섯번째로, 표시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이 기둥은 아주 웅장함을 보여줄뿐만 아니라 아주 아름답게 장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두개의 기둥은 그 장소의 웅장함을 더할뿐만 아니라 그 장소의 아름다움을 더해 줍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에도 경건한 인도자들이 지역모임에 행하고 있는 그런 일들이 아닙니까? 우리는 디모데전서 3장에서 이 인도자들의 그 아름다운 자격들에 대해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로 말미암아 그 하나님의 모임은 영적인 아름다움을 계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 기둥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더욱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기둥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그 기둥머리에 있습니다. 그 기둥의 중앙부분은 완전히 평평한 그런 장식없는 기둥 입니다. 이것은 18규빗의 높이 입니다. 그리고 이 기둥머리, 아름답게 장식이 되어 있는 부분은 5규빗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도자의 모습과 같습니다. 무엇이 정말로 그 인도자를 두드러지게 만드냐면, 그의 머리입니다. 여러분이 신약성경에서 디모데전서 3장과 디도서1 장을 통해서 그 인도자의 자격을 보게 될때 여러분이 처음으로 주목하게 되는것은 이 사실입니다. 여러번 반복해서, 또한 다른표현으로, 계속적으로,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는것은 인도자는 반드시 '근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균형이 잡혀야 하고 그의 생각에 있어서 바르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생각, 사고에 있어서 성경적으로 생각할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많은 모임들이 어떤 장로로 공식적으로 지정이 된, 그 사람이 생각이, 사고가, 올바르게 할 줄을 몰라서 그 지역모임이 망가진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아주 성을 쉽게 내는 사람이 있는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리고 그 말을 너무나 현란하게 하는 그런 사람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좋은 성경교사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분을 잘 냅니다. 그는 모임의 인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의 마음이 균형잡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주 유능한 형제는 어떻습니까? 그런데 그는 교만한 형제 입니다. 그래서 다른사람들과 말하는 것도 싫어합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를 자랑하고 다닙니다. 또한 그도 역시 모임의 장로가 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머리가 바로 사고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어떤때는 단지 가족적인 관계 때문에 인도자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것은 전혀 맞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어서 장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그냥 인도자의 좋은 친구이기 때문에 또한 장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성경의 자격이 아닙니다. 이 인도자는 반드시 그 존엄한, 반드시 이 기둥처럼 올바라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훌륭한 성경교사를 본다고 합시다. 하지만 그가 하고 있는 사업에서 그가 좋은 평가를 받고있지 못하다면 그는 모임의 인도자가 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도자는 반드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어떤 면에서 구부러져 있고 법을 어기고 있다면 그는 인도자가 될수 없는 것입니다. 인도자는 반드시 올곧아야 되며 그리고 그의 성격에 있어서 바르게 균형잡혀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 자격에 대해서 "이것은 너무 높은 기준이 아닙니까?" 라고 말합니다.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 장소가 지극히 거룩한 장소라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지역모임도 그와같이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래서 그 지역모임의 인도자의 기준은 굉장히 높은 것입니다.
제가 이 기둥머리를 장식한 장식에 대해서 조금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자세히 보지는 못하겠지만 제가 가능하면 빠르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 기둥의 꼭대기에는 백합화 장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금방 표시한 기둥머리에서 약간 밑에는 두줄로 한줄로 석류가 100개씩 장식으로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 기둥을 볼때에 위에는 꽃과 밑에는 열매를 보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이 백합꽃은 정결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모임에 있어서도 그 인도자들이 가져야 되는 중요한 성격인 것입니다. 만약에 어떠한 사람이 잘못된 결혼관계에 있다면 만약 그의 아내에 대해서 성실하지 못한 관계가 있다면, 그가 다른이성에 대해서 잘못된 관계가 있다면 그는 모임의 인도자가 될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얀 백합화처럼 그 순결함을 갖고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석류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이 하얀 백합화가 깨끗함을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이 석류는 그가 열매를 맺는사람이어야 한다는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석류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석류를 반으로 짤라서 그 안을 보게 된다면, 그 안에 수백개의 씨앗들이 들어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그 석류가 지식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마치 그 영적인 지식으로 가득찬 마음은, 그 석류와 같이, 그 씨가 가득찬 석류와 같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지역모임의 인도자가 되고자 하는 형제는 반드시 그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조언을 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인도자는 반드시 가르치기를 잘하며"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10대 청소년들에게 조언할 수 있습니다. 막 결혼한 성도들에게 조언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도 조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또한 위로해 줄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픈사람들을 방문하게 됩니다.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답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상황에서 또한 많은 죄를 다루어야 하는 그런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것을 하기 위해서 그의 마음 속에는 그 지식의 많은 씨앗들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 인간이 본성적으로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인간의 경험에 대해서 그는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을 속게하는것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사람들이 느끼는지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것에 기본적으로 그는 성경말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젊은 성도님들에게 특별히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시간이 있을때, 젊은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얻어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제 하나님의 백성의 그 인도자로 기둥과 같이 서게 될때, 여러분은 그 필요한 자격인 지식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전앞에 서있는 이 두개의 기둥은 그 하나님의 성전의 아름다움을 더해서 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적인 인도자는 역시 같은 그런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일곱번째로 이 기둥이 하는 역할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기둥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 기둥이 무엇을 하기위해 만들어진 것입니까? 왜 이 기둥이 이 자리에 서있는 것입니까? 이 장소(말씀을 전하고 있는 교회당 안)에서도 세개의 기둥이 서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장소(교회당)에 기둥이 서있는 유일한 이유는 시계를 매달고 있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제가 시간을 더 사용하게 된다면 이 기둥을 탓하겠습니다.(웃음) 하지만 이 기둥은(성전앞의 기둥) 이와같은 시계를 달고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기둥은 심지어 그 건축물을 받치고 있지도 않습니다. 이 기둥은 완전히 홀로 독립적으로 서져 있는 것이며, 어떤 건물을 받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기둥이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세워져 있는 것이냐, 물을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빠르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솔로몬 성전 안은 아주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지만 사람들은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단지 할수 있었던 것은 이 바깥뜰을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일밤에 주님의 뜻이면 우리가 이 안에 대해서 보겠지만, 이 안은 일반 사람들이 절대로 그 안에 들어가서 보는것이 허용되지 않는 곳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그 숨겨진 아름다움이 기둥으로 말미암아 공개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곱게, 그리고 높게 서있는 두개의 기둥을 보면서 그 아름다움을 볼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두개의 기둥은 하나님의 성소의 아름다움을 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임의 인도자들이 오늘날에도 해야하는 임무입니다. 그 인도자들은 하나님의 성소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어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이 기둥은 특별한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둥은 단지 무엇인가를 받치고 있는데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기둥이 하는 역할은 그 숨겨진 아름다움을 공개적으로 전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제가 이제 아주 중요한 주제를 또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기둥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가 입니다.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는 참으로 아주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이 기둥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특별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바로 이 주제는 아주 많은 시간동안 다룰만한 주제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것과 관련해서 단지 한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어떻게 그 인도자들이 세워지는가 입니다. 그 기둥들은 항상 이 자리에 서있습니다. 이것은 하룻밤만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그 기둥들은 이미 모양을 갖추고 서있긴 하지만 계속해서 그 안에서는 숨겨진 작업들을, 만들어지면서 기둥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읽은 구절에서 요단 계곡에서 이 기둥이 부어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25마일 떨어진 요단 계곡에서, 그 낮은 계곡에서, 이 기둥은 주조되어 만들어 집니다. 그리고 이 기둥이 모리아산에 높게 서게 됩니다. 그들은 그 자리에 높게 서기 위해서 그 낮은 계곡에서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여전히 동일하게 인도자들이 낮은 계곡에서 만들어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일찍 승진하는 것을 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제 인내심을 잃고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내가 지금 충분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내심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때가 오면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두개의 기둥처럼 그 앞에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요셉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바로의 궁전에 섰는지, 하지만 그가 바로의 궁전에 서기 전에 그는 깊은 감옥의 웅덩이에 있어야 했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왕이 되었는지를, 그 전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요. 그는 왕이 되기 전에 10년 넘게 핍박 가운데 있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대한 모세도 그렇습니다. 인도자가 되기 위해서 그는 40년동안 광야의 외로움 속에서 있어야 했습니다.
또 성경은 요단 낮은 계곡을 말할 뿐 아니라, 또한 차진 흙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차진 흙이라는 것은 그것을 가지고 뭔가 작업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무거운 흙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흙만이 이 기둥의 그 둥근 표면을 만들기에 아주 적합한 흙이 되는 것입니다. 이 무거운 흙을 가지고 이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양을, 그 형틀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기둥을 볼때에 어떤 부분도 구부러진 면이 없는것을 봅니다. 어디 툭 튀어나와있는 모서리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면이 부드럽게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임의 그 인도자가 가져야 하는 성격도 그와같이 둥근 성격인 것입니다. 제가 어느곳에 방문했을때, 그곳의 인도자는 약간 조금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성격을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 두셔서 그 성격을 둥글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이 중에 어려운 결혼생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어려운 직장생활이라는 그 찰진 흙틀 안에 계신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심각한 병이라는 그 찰진 흙틀 안에 계신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가족의 문제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 고난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내 삶에 이러한 어려움을 겪게 하십니까? 친애하는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격려를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고난을 사용 하셔서 여러분을 지금 둥글게 만들고 계시며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양으로 만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둥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또한 다른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빠르게 했지만 조금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처음에 이 놋들이 아람왕에게서, 구속해서 가지고 온 것들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놋은 고난을 받습니다. 이 용광로에서 녹아지게 됩니다. 열을 더 뜨겁게 해서 녹입니다. 그리고 그 딱딱했던 놋이 부드러워 집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어떤사람은, 자기가 구원받고 나더니 모든일이 행복되고 잘되더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문제가 하나도 없더라." "항상 햇빛만 비치더라." 하지만 그런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받고 나서 심각한 어려움과 고난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가 그와같이 부드럽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부드럽게 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양으로 형성이 됩니다. 그 모양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부드럽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광을 냅니다. 광을 낼때는 아주 거친 표면에 사포가 사용됩니다. 광을 내면서 붙어있는 모든 먼지를 다 떨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이 기둥이 성전앞에 서게 될때에, 그것은 햇빛을 받고 빛을 반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만약에 이와같은 어려움의 고난을 겪고 계시다면 여러분은 낙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치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서 더 나은것을 지금 계획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둥과 같이 여러분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분이 부드러워지고 여러분의 그 모양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잠깐동안 '본'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잠시 말씀드릴 것은 이것입니다. 바로 이 두개의 기둥만이 솔로몬 성전에서 사람의 이름을 가진 기구가 됩니다. 이것은 '야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보아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긴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보아스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솔로몬의 큰, 큰, 큰 할아버지 정도 됩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대, 대, 대 할아버지의 이름을 바로 이 아름다운 기둥에다가 붙인 것입니다. 제가 이것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룻기에서 찾아볼수 있는 사람의 이름을 왜 솔로몬은 이 기둥에 붙였을까요? 왜냐하면 그 룻기에서 보아스는 바로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주 간단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룻기를 읽어볼때, 그 땅에 기근이 드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아비멜렉 그 가정은 모압 땅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두 아들이 죽게됩니다. 그리고 그 과부가, 사람들이 죽고 세 유가족을 남기게 됩니다. 그 과부는 깨어진 마음을 가지고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돌아온 그날은 아주 슬픈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움직이지 않았던 한 사람을 생각 하시기 바랍니다. 보아스는 베들레헴을 떠난적이 없습니다. 어려움이 그 땅을 찾아 왔을때도 하나님이 주신 그 땅을 그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치 기둥처럼 거기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아주 아름다운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그의 순결과 그의 지식이 특징되어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모임에서 이 기둥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권합니다. 어려움이 찾아왔을때, 즉시로 도망가버리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바랍니다. 기둥은 그렇게 도망가지 않습니다. 기둥은 굳게 안정적으로 굳건하게 서 있는 것입니다. 보아스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존귀를 가지고, 그리고 확신속에서 이 어려움 속을 대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한가지를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기둥이 어떻게 손상되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30초동안 이 슬픈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기둥이 무너질때가 있었습니다. 이 기둥은 300년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바벨론 군대가 이제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이 커다란 기둥을 쓰러뜨렸습니다. 그리고 이 기둥을 잘게 잘라내었습니다. 그리고 수레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으로 가져 갔습니다. 이것은 마음이 찢어지는 일입니다. 그 오랫동안 굳게 서있던 기둥이 무너져서 잘게 잘라져서 먼곳으로 실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서 있을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보존 하시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제 인생 가운데서 제일 슬펐던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모임의, 마치 기둥과 같이 굳게 서있던 어떤 한 형제가, 슬프게도 어떤일이 일어났습니다. 무너집니다. 그리고 세상 가운데로 실고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간증은 다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삼손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삼손은 기둥처럼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삼손이 블레셋의 감옥에 갇혀 있을때가 온 것입니다. 그는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거기로 끌려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마치면서 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가 모두 기둥처럼 서기를 바랍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굳게, 똑바르게, 그리고 아름답게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역모임의 영광을 위해서 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우리가 보아스와, 야긴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한번 늦게 끝내게 되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들을 통해서 복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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