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로몬 성전 4. 놋 바다 > 데이빗 길리란드 형제님
"솔로몬이 또 놋으로 단을 만들었으니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이십 규빗이요 고가 십 규빗이며 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직경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고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줄을 두를만하며 그 가장자리 아래에는 돌아가며 소 형상이 있는데 매 규빗에 소가 열씩 있어서 바다 주위에 둘렸으니 그 소는 바다를 부어 만들 때에 두 줄로 부어 만들었으며 그 바다를 열 두 소가 받쳤으니 셋은 북을 향하였고 셋은 서를 향하였고 셋은 남을 향하였고 셋은 동을 향하였으며 바다를 그 위에 놓았고 소의 뒤는 다 안으로 두었으며 바다의 두께는 한 손넓이만하고 그 가는 백합화의 식양으로 잔 가와 같이 만들었으니 그 바다에는 삼천 밧을 담겠으며 또 물두멍 열을 만들어 다섯은 우편에 두고 다섯은 좌편에 두어 씻게 하되 번제에 속한 물건을 거기 씻게 하였으며 그 바다는 제사장들의 씻기를 위한 것이더라"(대하 4:1-6).
"또 제사장의 뜰과 큰 뜰과 뜰 문을 만들고 놋으로 그 문짝에 입혔고 그 바다는 전 우편 동남방에 두었더라"(대하 4:9-10).
오늘 이 시간에 저희가 상고하고자 하는 주제는 솔로몬 성전의 뜰에 있던 중요한 기구 중 하나인 바다입니다. 지난시간 그 성전에 처음 방문하는 방문자가 느끼는 감흥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그 전의 뜰의 문을 통과하자마자 커다란 번제단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을 것입니다. 또한 그가 이제 동일하게 감명을 받을것은 지금 나타나 있는 이 기구입니다. 이것은 성전의 전면에, 그리고 우편에 있던 기구입니다. 이것은 놋을 부어만든 '바다'입니다.
제가 이 특별한 기구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드리기 전에 제가 한 표로서 우리가 지금 어느 위치에 있고 어느 방향으로 말씀드릴지 먼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수요일 저녁 솔로몬 성전과 관련해서 성경 전체적으로 주제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처음부터 계시록까지 성전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가장 전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 중 하나인 것입니다. 그리고 목요일 시간에는 그 성경에 관련되서 누가 만들고 누가 설계를 했고 어떤 장소에 두었는지 선택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그것은 첫번째로 건축자를 누구로 하느냐? 그것은 솔로몬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장소에 지을 것인가? 그것은 모리아산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시간에는 성전 뜰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에는 씻는 것과 관련해서 이 커다란 놋 바다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주일 오후 시간에는 성전과는 약간 다른 주제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주일 저녁에 말씀드릴 주제는 완전히 다른 내용은 아니지만 조금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성전의 그리스도'라는 주제입니다. 그리고 월요일 저녁시간에는 다시 이 성전 주제로 돌아와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월요일 저녁에는 이 성전 앞에 있는 두개의 기둥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에는 성전안에 나눠진 공간에 대해서, 지성소와 성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세개의 공간이 있습니다. 이 세 저녁시간에 걸쳐서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에는 이 성전 건축과 관련해서 살펴 보겠습니다.이 성전을 건축함에 있어서 수천의 다른 사람들이, 또한 다른 기술을 사람들이 서로 협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토요일 이 시간에는 주님의 뜻이면, 이 성전을 헌정해 드리는것을 살펴 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주 토요일 이 시간이면 모두가 성전에 대해서 아주 전문가가 되어 있을거라고 기대합니다. 그때 당시에 여러분은 제가 이 성전에 대해서 아는 것만큼 여러분은 알게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기대하기는 여러분이 더 많이 알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말씀드린 표는 제가 이번 집회기간에 다루게 될 내용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오전 시간에는 이 화면에 보이고 있는 특별한 기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번째 말씀드리고자 하는것은 이 기구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관심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구에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전의 정결함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기구는 제사장들이 그들의 손을 씻고 그들의 발을 씻는데 사용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구약성경에서 사람들이 맨발로 다녔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은 쉽게 그 발이 더럽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일을 함에 있어서 그의 손은 쉽게 더럽혀 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고 그분의 제사장들은 거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기구를 주시면서 그 제사장들에게 정결함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행함에 있어서 정결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일하는것에 있어서도 정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경배함에 있어서도 정결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동일하게 이 지역모임의 안에서 행함에 있어서 정결함으로 나타내질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3장에서 주 예수님께서도 동일한 이 정결함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주님께서는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특별히 이 거룩함에 대한 주제로 가르쳐주시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마치 성막에 물두멍이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이 커다란 대야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요한복음 13장에서 그 대야를 가지시고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다루고 있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주 더럽혀진 세상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쉽게 더렵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계속해서 깨끗하게 하시는 그것에 대해서 이해하고 또한 사용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여러가지 다른 영역에 있어서 이 깨끗하게 됨을 계속해서 관심을 두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시편 26편을 보겠습니다. 특별한 시편 26편은 성전뜰에 있는 바다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치도 아니하리이다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단에 두루 다니며 감사의 소리를 들리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이르리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저희 손에 악특함이 있고 그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구속하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내 발이 평탄한데 섰사오니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시 26:1-12).
6절부터 8절까지를 다시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무죄함으로 손을 씻고 주의 단에 두루 다니며 감사의 소리를 들리고 주의 기이한 모든일을 이르리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 우리는 8절에서 그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떠한 일을 계속적으로 행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는 여기에서 그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것을, 주의 집에 거하는것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6절에서 정결함 가운데 손을 씻는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커다란 대야에서 손을 씻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절에 '그 단에 다가서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6절에 두개의 놋으로 된 기구를 보게 됩니다. 첫번째로 그 '바다'이며 두번째로 '단'입니다. 그리고 2절에 그가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것을 주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그의 눈'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절에서는 '그의 목소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6절에서는 '그의 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절에서는 '그의 발'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상세하게 이 여러부분을 말하고 있는것은 이 정결함이라는 주제의 아주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첫번째로 마음속의 정결함이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 눈에서도 정결함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인터넷 습관에 대해서 한번 질문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대해서 질문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이 더러움이 만연한 이 세상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더러움을 이 주머니 안에 담고 다닐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도 그렇게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잘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컴퓨터 안에 그 음란물이 담겨 있습니다. 아마도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서 이번주에 혹시 그런 음란물을 보신적이 있습니까? 이 모든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고 우리의 생각을 더럽히는 것들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이 집회에 나와서 우리의 마음을 다시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사회는 참으로 더럽힘을 조장하는 사회인 것입니다. 이 시편 기자는 단지 그의 마음과 그의 눈이 정결할 것을 말할 뿐 아니라 그의 입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말하는 것에 있어서도 정결함이 필요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입으로 더러운 말, 그리고 진실되지 않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기자는 발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발로 더러운 장소에 가는것을 또한 조심해야 될 것입니다. 신자들도 그런 더러운 장소에 몰래 가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모임에 나와 웃으면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으며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습관은 분명히 하나님을 격동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기억해야 하는것은 이 하나님의 집이 거룩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역모임은 그와같이 이 땅에서 가장 거룩한 곳입니다. 이 시편 26편에서 기자는 그 손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10절에서 그 손에 뇌물이 있는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기자가 말하기를 "그와같은 사람들과 내가 함께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업에 있어서도 직장에 있어서도 그는 정결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그리스도인들도 사업상에 있어서 깨끗치 않은 그런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신자들 몰래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것은 이 모든것을 주님의 눈이 시험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시편기자는 그 주님께 "내 마음을 살피소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오전집회에 나와서 우리의 마음을 그와같이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내 발에 대해서 살펴야 될 것입니다. 비밀히, 더럽혀지는 것에 같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다른사람 모르게 나를 더럽히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6절에서 손을 씻고 나서 그리고 7절에서 그는 감사의 소리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특별히 형제님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우리가 예배시간에 감사의 소리를 내기전에 우리는 먼저 우리의 손을 깨끗히 씻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시편기자는 그가 함께하고 있는 동료들이 누구인지를 계속해서 주의깊게 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4절에서 이 기자가 함께 어울리지 않고자 하는 사람의 두부류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번째가 허망한 사람이고 두번째가 거짓말하는 간사한 자입니다. 그리고 5절에서 계속해서 "행악자의 집회에 함께하지 아니하며 악한자와 같이 앉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되는 또 다른 영역입니다. 우리가 같이하게 되는 동료들이 누구인지를 우리는 주의깊게 살펴야 합니다. 여기있는 모든 신자분들에게 이것과 관련해서 한가지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정결하지 않은 그 불경건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하는 동료들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들과 친구가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정결함, 깨끗함이라는 주제는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다 지켜져야 하는 원칙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큰 기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어떻게 정결함을 계속 유지할것인지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신약성경의 하나님께서도 구약의 하나님만큼 동일하게 거룩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주제는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물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담겨있는것은 물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흥미롭게 살펴보고자 하는 주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시간에 이 뜰에 있는 번제단이라는 기구를 살펴 보았습니다. 이 기구도 역시 그 더럽혀진 것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번제단에 있는 액체는 물이 아니었습니다. 그 번제단 안에 있는 액체는 피였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성전의 뜰에 있는 두가지 기구 중 하나는 피를 담고 있고 하나는 물을 담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이중으로 깨끗하게 하는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9장에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때 하신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십자가에 달려 있을때, 병사가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을때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바로 주 예수님으로부터 이 이중으로 깨끗케하는 피와 물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 피는 우리의 죄로 말미암은 정죄를 깨끗케 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물은 죄로 인해서 더렵혀지는 것을 해결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요한이 보낸 서신서에서 두가지 구절을 살펴 보겠습니다. 요한일서 1장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를 씻나니"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5장에서 주님께서 다른 깨끗하게 하시는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내가 이미 이른 말로 깨끗하여 졌나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들의 삶 가운데서 깨끗하게 하는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께로부터 배우고 주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완전히 변화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그들의 생각을 변화시켰고 주님의 말씀이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동일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의 깨끗하게 하는 피를 경험 하였습니다. 내 자신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때에 그분의 피가 나의 모든 정죄를, 나의 모든 죄의 형벌을 깨끗하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깨끗하게 함을 받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 깨끗하게 함은 온전한 것이고 완성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이 때때로 다시한번 깨끗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완전히 틀린 기도입니다. 우리는 다시한번 주님의 피로 깨끗하게 함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는 영원토록 우리를 정결케하는 그런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을때에, 제가 믿을때에 주님의 보배로운 피는 우리죄를 영원토록 깨끗하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아야 됬었던 영원한 형벌에서부터 우리는 완전히 깨끗하게 된 것입니다. 그 깨끗하게 함은 다시 반복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매일 가운데서 다시한번 반복해야 하는 깨끗함이 있습니다. 그 깨끗하게 함은 주님의 피로 되는것이 아닙니다. 그 깨끗하게 함은 주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 깨끗하게 함은 죄의 형벌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는것은 죄에 더럽혀지는, 그 오염으로부터 깨끗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말씀집회를 갖는 이유인 것입니다. 제가 이미 말씀드린대로 우리는 우리를 아주 오염시키는 사회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이 사회 가운데서 계속 생활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데서, 그리고 보는것에서, 계속적으로 오염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집회에 나오게 될때 하나님의 말씀이 펴집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설명됩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취하여 내 삶 가운데 적용 시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나의 생각이 나의 자세가 나의 행동이 깨끗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고대 성전의 번제단으로 깨끗하게 한 것처럼, 또 바다로 깨끗하게 한 것처럼 우리는 이 두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번제단에 대해서 지난시간에 본 것처럼 이것은 주님의 사역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살펴볼 이 기구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커다란 기구는 이안에 깨끗하게 하는 물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말씀드리는 것은 이 큰책이 바로 이 바다와 같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태도를 깨끗하게 하는 그 말씀을 담고 있는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 대해서 더욱 이해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사역의 그 가치를 이해하고 감사할때 그것은 번제단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 그 가치를 이해하게 될때 우리는 그 바다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방금전에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는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주님께서는 이제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 기도 중에 간구한 것은 이것입니다. 아버지께 기도 드리시기를 제자들을 아버지의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써 거룩케 된 삶을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귀를 기울여야 할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 우리의 시야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그런 세상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얕은 지식을 말하고 있는 세상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세상 가운데서 영적인 것을 깊게 생각하는 능력을 쉽게 잃어버리곤 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금방 말씀드린 것처럼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제가 이것을 말씀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이 스크린, 모니터 스크린, 텔레비전 스크린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스크린은 간단하게 여러가지 것들을 쉽게 많이 보여 줍니다. 그래서 그것을 손가락으로 좌우로 이동하면서 아주 쉽게 여러가지 것들을 보곤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그런 것처럼 표면적으로만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주 얕은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깊이 들어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적용하여 우리를 변화시키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실제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이 가운데 있는 성도님들 중에 아주 낙심된 상황 가운데 계신분이 계십니까? 여기 계신 젊은 성도님들 중 가운데 영적으로 내가 많이 침체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제가 이분께 이렇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그런분이 지난 6개월을 되돌아 보았을때 여러분은 혹시 성경에 대해서 경홀히 여기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또 다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인터넷에서 다른것들을 찾아보는데 시간을 보냈습니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그냥 말도 안되는 문자를 보내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까? 그렇게 살고나서 이렇게 연약한 그리스도인이 됬다는 데에서 놀랄만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을 강하게 하는것은 오직 이 성경책이고 그리스도인을 깨끗하게 하는것도 이 성경책인 것입니다. 이 옛날의 성전의 제사장들은 이 커다란 바다에 대해서 계속해서 주의깊게 생활하고 다루었습니다.
제가 이 특별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만약에 어떤 제사장이 "난 그런 깨끗게 하는것에 관심이 없어. 전혀 상관하지 않아." 라고 하면서 그리고 그냥 계속해서 더러운 손발을 가지고 행하고 다녔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겠습니까? 그 손을 보고 "그다지 더럽지 않은데 뭐."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귀찮게 저기가서 내가 손을 씻을 필요는 없어."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무슨일이 일어날지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가 만약 그런 상태에서 이 번제단과 성소에 나오게 된다면 그는 하나님께 침을 받아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바다'를 무시 한다면 그 결과는 치명적으로 죽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도 똑같다는것을 말씀 드립니다. 만약에 그리스도인이 이 성경을 읽지않고 무시 한다면 그 결과는 반드시 치명적으로 죽는 것입니다. 제가 다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집회에 오시기 전에 이 성경을 읽으셨습니까? 제가 또한 학생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학교에 가기전에 성경을 먼저 읽습니까? 우리가 기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그냥 지나쳐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 '바다'를 그냥 지나쳐 가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기억하셔야 되는것은 이 말씀을 경홀히 여긴다면 그 결과는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우리가 쓰러지는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무시한다면 우리의 삶에서 모든 것들, 여러가지 것들을 다 죽이는 것입니다. 내 기쁨을 먼저 죽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내가 유용하게 사용될 것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나의 정결함을 죽이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자면 믿는자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이 커다란 기구가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아주 간단하고 빠르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다음주에 보게될 성전안에 있는 기구들은 많은 것들이 금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난 시간에 보았던 것과 오늘, 그 두개의 그릇은, 번제단, 그리고 이 바다는 놋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성전안에 은으로도 만들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 놋은 아주 강력한 물질입니다. 이것은 금과 은보다도 더 단단한 물질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바다가 놋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것은 계속적으로 지속되는 물질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책은 영원토록 있는 책입니다. 이 성경은 계속적으로 사람들에게 도전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성경은 계속적으로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수세기에 거쳐서 계속적으로 있습니다. 이책이 지금까지 있다는것에 참으로 감사가 됩니다. 첫번째, 이 바다를 사용했던 제사장들이 나중에 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세대의 제사장들이 또 새로운 바다를 만든것이 아니고 그들은 동일한 것을 사용하고 그들은 또 죽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세대의 제사장들이 나타났고 그들은 동일한 기구를 사용하고 그들은 죽었지만 여전히 이 기구는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구는 수세기에 거쳐 계속 남아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이 성경책과 같습니다. 수천년 전에 신자들이 이 책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죽었지만 이 책은 계속해서 남아 있는 것입니다. 700년 전에도 이 책을 가지고 믿는 자들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새로운 성경책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500년 전에도 이 책을 가지고 신자들이 살았습니다. 300년 전에도 마찮가지 입니다. 100년 전도 마찮가지입니다. 하지만 2016년, 이 순간에도 이것은 항상 우리에게 신선한 것이며 항상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바다는 놋으로 만들어져 있고 계속적으로 있는 물질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와같은 것입니다.
제가 또 이것과 관련해서 다른 주제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모양이 원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보다시피 이것은 둥글게 모양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기를 이것은 "부어만든 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 바다의 표면을 자세히 보면, 이것이 어디부터 시작되어 어디로 끝난것인지 찾아볼 수 없을것입니다. 이 원은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의 말씀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은 없어질찌라도 주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하며 하늘에 보관되어 있다"고 말씀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의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들은 모두 썩어져가고 있는 세상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큰 그릇이 말하고 있는것은, 그 동그란 모양이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번째로 이 그릇의 용량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아주 흥미로운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이천밧을 담는 용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부분에서는 삼천밧을 담을만한 용량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가득 채웠을때는 삼천밧의 용량이 되는 것이고 흔히 일상적으로 사용할때는 이천밧의 물을 담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아주 큰 용량의 물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어만든 바다라고 불린 이유입니다. 이것은 마치 그 큰 물을 담고있는 대양과 비유되는 표현 입니다. 이것은 8만 리터정도 되는 용량의 물인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제사장들이 있던지간에 그들이 사용하기에 충분한 물을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내가 지금 손을 씻어야 하는데 물이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는 도구를 주셨을때 그것을 풍부하게 주셨습니다. 참으로 많은 양을 공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떨어질 염려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제사장들이 매일 사용하기에 충분한 양을 공급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참으로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이 성경책이 담고 있는 그 용량을 생각할때 참으로 감사가 됩니다. 친애하는 신자 여러분 이 성경책은 여러분들 모두를 위해서 충분한 것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의 젊은 성도님들을 위해서 충분 합니다. 또한 나이많은 성도님들을 위해서도 충분한 것입니다. 그리고 막 결혼한 성도님들을 위해서도 충분한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독신으로 살고 계시는 성도님들을 위해서도 충분한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님을 위해서도 충분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실직상태에 있는 성도님을 위해서도 충분한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매일 매일의 모든 삶 가운데서 충분한 말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성경책에서 우리의 모든 행복한 삶에 관한 말씀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슬픈 생활 가운데 있을 때에도 그에 관한 말씀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장례식과 관련된 그 말씀도 여기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결혼식과 관련된 말씀도 여기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적으로 말씀드리는것은, 이 성경은 참으로 너무나 큰 용량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다 말씀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삶의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알고있는 것은 이것 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있던지 간에 바로 이 성경책 안에는 여러분의 그 필요를 채우는 그 말씀이 정확하게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그릇은 커다란 저수지 입니다. 영원토록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주는 그런 공급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섯번째로 이 커다란 기구의 이동을 어떻게 하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커다란 그릇을 지탱하고 있는것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열두개의 소 입니다. 이 커다란 그릇을 보게 될때, 이것은 단지 바닥에 놓여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제 그 안으로 방향을 향하는 열두마리의 소에 의해서 받쳐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겠습니다.이것은 5규빗의 높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경이 10규빗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위로는 30규빗이 됩니다. 5규빗, 그리고 직경 10규빗, 둘레는 30규빗 입니다. 제가 이 치수에 대해서 계산 하겠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서 간단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 5,10, 30 입니다. 지탱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잠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기 아주 중요한 내용을 담고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주 실제적인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여기가 2m 깊이 인데요. 만약에 이 소의 크기가 2m 높이가 된다고 합시다. 그래서 이 기구의 상단은 바닥부터 4m 높이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제사장이 그 높이에 가서 손을 씻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됬을까요? 그것에 대한 대답은, 제사장은 그 위로 올라가서 손을 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주의깊게 살펴 본다면 제사장이 이 그릇으로부터 손을 씻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 안에서 손을 씻었다고 되어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 커다란 저장소로부터 물을받아서 그들은 손을 씻었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에서 이것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그 대답을 듣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그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요, 저는 그것이 합당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 고대전승은 이렇습니다. 이 그릇안에 담겨있는 그 물이 어떤 통로를 통해서 소의 입을 통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제사장들이 이 그릇 위로 올라가서 손을 씻은것이 아니고 이제 소의 입으로 통해서 나오는 그 물을 받아서 손을 씻은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밑에 있는 소들은 장식용이 아닙니다. 이 소들은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각각의 소는 그릇에 담겨있는 물이 나오게 되는 그 통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우리가 잠시 좋은 교훈을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제사장이 손을 씻을때 그 그릇 안에 있는 전체 물을 사용한 것이 아니고 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사용해 손을 씻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또 그만한 양의 물을 사용해서 손을 씻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 와서 또 더 많은 양을 사용해서 손을 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도 동일한 것입니다. 저는 매일매일 그날 이 성경 전체를 다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날 이 성경전체를 다 읽을 수 없습니다. 하루에 그걸 다 못읽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것은 무엇입니까? 이 성경에서 어느 한 일부를 취해서 읽게 됩니다. 제가 한장을 읽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한 시편을 읽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구절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취해서 내 손을 씻고 그리고 내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그렇지만 이 하나님의 말씀, 이 바다에 담긴물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배우는 중요한 교훈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이 '이 일을 다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별히 젊은 신자들이 그렇습니다. '내가 어떻게 그 성경 전체를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크지 않은가? 내 손은 너무나 작고, 내 생각은 너무나 제한적인데' 하지만 그것이 이 성경을 사용하는 방법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한번에 그 성경 전체를 다 이해하도록 의도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하루하루가 가면서 우리는 그 커다란 그릇에서 나오는 그 작은양의 물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제사장이 이 바다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면 그는 익사하고 말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한번에 너무 많이해서 거기서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그리고 낙심해 버리고, 이것은 올바르게 하고 있는것이 아닙니다. 그 문제는 이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성경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마치 제사장들과 같이 그들이 커다란 그릇을 가지고 있는것과 같이 우리는 커다란 성경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항상 이용할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은 풍부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취할것은 매일매일 우리가 필요한 양을 꺼내서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과 관련해서 다른 주제를 잠깐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열두개의 소가 상징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성경을 통해서 이 소들은 수고하는, 그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소는 종과 같은 동물입니다. 그래서 이 열두개의 소는 그래서 열두개의 종을 말하고 있습니다. 열두개의 종, 열두개의 소가 그릇으로부터 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진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와서 사람들에게 공급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이것이 우리가 이러한 말씀집회를 하고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형제들이 말씀을 사용해서 성도들에게 공급하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신선케 하고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역모임 안에 바로 이와같이 소와같은 일을 하는 성도들이 있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디모데전서 5장에서 이 소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 그 표현을 보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5장에서 장로들이 이 교훈과 가르침에 있어서 수고하는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마포모임 안에 성경을 잘 다룰 수 있는 형제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거대한 저장소에서 이제 형제들이 우리가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 그릇을 지탱하고 있는 이 소들에 대해서 충분히 말씀드렸다고 생각이 됩니다.
제가 아주 어려운 결정을 지금 내려야 겠는데요,(말씀을 마감할 9시가 다 되어서) 이 큰 그릇과 관련해서 가치있는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커다란 바다 옆에는 10개의 작은 물두멍이 또한 있었습니다. 다섯개는 한쪽 편에 있었고 또 다섯개는 다른 편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소 위에 놓인것이 아니고 바퀴달린 수레위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각각은 80리터 정도되는 물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카트 같은데 위에 있어서 필요한 곳에 가지고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도 아주 흥미로운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바다에 대해서는 그 제사장들이 자신을 씻는데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작은 열개의 물두멍은 자기 자신을 씻는데 사용되는것이 아니고 희생제물을 씻는데 사용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번제단에 놓여지기 전에 그 희생제물들은 항상 깨끗하게 씻어져야 했습니다. 단지 제사장만이 깨끗하게 씻을뿐만 아니었습니다. 앞에 드리는것도 깨끗하게 되어야 했습니다. 경배 드리는것이, 경배 자체가 물로 깨끗하게 되었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진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자신에 대해서 적용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예배드리는 데에도 또한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데 있어서 아주 안전한 규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릴때에 우리는 항상 성경의 언어를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한가지 예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수년전 다른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만찬예배 였습니다. 어떤 한 형제가 일어나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많은 좋은 것들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감사기도 중간에 이와같은 말을 언급 하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의 품을 떠났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오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아버지의 품을 한시라도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구유에 누이셨을때에도,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순간에도 그분께서는 항상 아버지 품속에 계셨던 분이신 것입니다. 제가 형제님들에게도 이런 말씀을 드리고 또 제 자신에게도 돌아보게 되는 그러한 것입니다. 만약에 그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손을 씻고 또한 그의 감사 기도도 하나님의 말씀앞에 비추어 보았다면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여기에 모인 형제님들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너무 비판적으로 하고자 하는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실수하는것은 너무나 쉽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긴장하고 또 여러 압박 가운데서 잠깐 말실수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말 한 단어를 잘못 말했다고 해서 그 형제에게 너무 심하게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제가 이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심혈을 기울여서 우리가 드리는 그 감사 기도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도록 노력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다시한번 반복해서 말씀 드립니다. 단지 그 제사장 자신이 깨끗해질뿐 아니라, 이것은 이 커다란 그릇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드리는 그 감사의 예물들이 이 작은 물두멍으로서 깨끗하게 되어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가지를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커다란 그릇과 관련되서 어떠한 타협이 있습니다. 이 그릇과 관련되서 아주 슬픈일이 있었습니다. 이 그릇이 만들어진 수백년 후에 그 예루살렘 보좌에 악한 왕이 앉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주 악한일을 하였는데요. 이 큰 그릇에서 이 열두개의 소를 떼어 내었습니다. 이 그릇을 바닥에 놓은 것입니다.
"아하스왕이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두며"(왕하 16:17).
아주 슬픈날이었습니다. 그는 이 놋그릇을 바닥에 둔 것입니다. 그런데 슬픈것은 오늘날에도 이와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 악한 왕처럼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제 밑으로 내려두는 것입니다. 그 권위를 이제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 영광을 이제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보배로운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셔서 그런일을 하지 않도록 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제가 이 마포모임에 특별히 이와같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또한 다른모임에서 오신 분들께 이와같은 말씀을 드립니다. 항상 지역모임 안에서 이 커다란 그릇이, 이 하나님의 말씀이 높은 자리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한번 그 성전을 방문하게 된 그 방문객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이 성전에 들어오면서 두개의 커다란 구조물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첫번째는 그 놋 번제단이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가 놋으로 부어만든 바다입니다. 우리 모임의 집회 가운데 오는 방문객이 이 두가지를 보고 놀라야 할 것입니다. 그 방문객은 우리 신자들이 이 두개의 대상에 대해서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첫번째가 주님의 죽으심입니다. 그것이 번제단입니다. 두번째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이 놋으로 부어만든 바다입니다. 그리고 또한 열왕기하 25장에서 다시한번 이와같이 슬픈일이 있었던 것을 보게됩니다.
"갈대아 사람이 또 여호와의 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전의 놋바다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가고"(왕하 25:13).
이번에 이 열왕기하 25장에서는 이스라엘 왕이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적이 와서 이 놋 바다에 행한것을 보게 됩니다. 이 악한 왕은 이 놋바다를 바닥에 내려 놓았습니다. 이것은 현대의 거짓교사들이 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낮추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대적이 하고 있는 일은 이것을 단지 바닥에 내려 놓는것이 아니라 그것을 깨서 부셔버려서 파괴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아름다운 큰 놋그릇이 깨져 고철로 된것은 슬픈 일입니다. 이것은 마음을 찟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을 찟는 일이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하나님의 대적들이 있습니다. 무신론자들 입니다. 회의론자들 입니다. 그리고 현대주의자들 입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이 성경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보존하시고 온전하게, 함께 열납되어 있는 길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66권으로 된 책을 주셨습니다. 참으로 더럽히는 세상 가운데서 우리는 성경을 깨끗히 보존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이 성경 말씀을, 참으로 제사장들이 그 물을 사용했던 것처럼 우리가 이 말씀을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때에 제 친구가 선물로 성경책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앞표지에 전달하는 메세지를 써서 주었습니다. 그 메세지는 이것 이었습니다. '이 책은 너를 죄로부터 지켜줄 것이다. 그리고 죄가 이 책으로부터 도망갈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진리인 말씀입니다. 제가 이 책을 삶 가운데서 계속 가까이 하고 있다면 죄는 도망 갈 것입니다. 제가 죄를 가깝게 한다면 제삶에서 이 성경은 멀어질것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다섯개의 단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0이라는 숫자가 성경에서 완성의 숫자가 아닙니까? 그래서 10번입니다. 이 그릇과 관련된 대조입니다. 이 성경의 마지막 책은 요한계시록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하늘에 대해서 보게 됩니다. 하늘에는 물이 있는 바다가 없습니다. 거기는 물론, 바다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것을 말하기를 유리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유리바다에서는 씻지 않는 것입니다. 유리바다는 그 표면에 어떠한 물결이나 파도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놀라운 미래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우리 손과 우리 발을 다시 씻을 필요가 없는 그날이 올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늘나라의 황금 해변길에 안전하게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더이상 더렵혀질 위험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놋바다의 물로 씻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유리바다 옆에 참으로 놀랍고 영광스럽게 서있을 것입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것을 합당하게 사용 한다면 이 더러움으로 가득한 세상 가운데서 우리를 깨끗하게 보존하실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그런데 아직 마치는 것은 아닙니다. 곧 마치겠습니다. 제가 이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바다에는 특별하게 표면에 예쁘게 새긴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어만든 것을 또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주 특별한 과정을 거쳐서 이 놋바다는 부어 만들어졌기 때문니다. 그래서 '부어만든 바다'라고 이름붙여진 이유 입니다. 제가 이것을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이것은 다음시간이 있기 때문에 다음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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