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언 :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에게 주신 것 > 강성찬 형제님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3-6).
여기 우리가 읽은 이 부분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복을 얻었는지,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어떠한 복을 얻었는지를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굉장히 놀라운 것이라 우리가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까 생각하게 됩니다. 에베소서 후반부에 보면 이 4장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너희는 거짓말하지 말라" 또한 "도적질하지 말라" 그런 부분은 우리가 읽을 때에 참 우리에게 수준이 맞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제 그게 이제 우리 수준인데, 1장 이 부분에 보면 우리를 굉장히 놀라운 위치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참 하나님께서는 참 우리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모르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형편없는 자인지 알고 계시지만, 그래서 거짓말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이런 말씀을 하셔야 되지만 그런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를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영적인 실체이고 또한 이 말씀을 통해서 계속해서 여기에 우리의 시선을 두도록, 우리가 얼마나 높은 수준의 그런 영광을 누리고 있는 자들인지를 보고, 그리고 그러한 사실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기를 바라면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이제 세 가지를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데요. 우선 4절에 보면 이제 "택하셨다". 두 번째로는 5절에 보면은 이제 "기쁘다", 이제 하나님께서 이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6절에 보면은 이제 "사랑한다",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이제 사랑에 대해서 하나님이 또한 사랑하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살펴보게 될 때에 이 택하다, 기뻐하다, 사랑한다가 특별히 우리 주님과 관련돼서 사용된 그런 표현임을 보게 됩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하나님의 택하신 종' 이라는 표현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택하신 종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택하였다'라는 것은 특별히 하나님의 사역자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데 그것을 이루실 수 있는 사역자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계획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종, 이제 그게 택하였다라는 의미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가 또한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4절에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 우리를 택하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구속 사역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택하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여기서는 특별히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 교회로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특별히 이제 이 "사랑 안에서"라는 표현이 나오고요. 이것은 이제 신랑과 그 신부의 사랑을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것도 역시 에베소서 5장에 보면 그 교회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의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 동일한 표현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그 영원한 계획 가운데에 아들에게 그 신부를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우리를 택하시고 예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기에 일부로서 택함을 받은 그 존귀한 위치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5절에 이제 "기뻐하신다"라는 것입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이제 6절에 보면 이제 사랑에 대해서 나오는데요. 우리는 이 기뻐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 주님께 적용된 그 구절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고 나오실 때에 이제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우리 주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기뻐하시고 또한 사랑하시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라고 할 때는 그 주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들을 만족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택하신 종께서 이루시는 모든 일들을 만족하시고 그 완수하시는 일들에 대해서 기뻐하시는 것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동일한 기쁨을 우리에게도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5)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기쁨을 취하시냐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심으로써, 그 아들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시고 그 온전히 일을 완수하신 것처럼, 이제 우리도 순종하는 아들들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을 순종하고 그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 가운데서 이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이제 그것을 위해서 우리를 "예정하였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제 이 예정했다는 것은 그 원어에 보면 좀 더 강한 뜻으로 되어 있습니다. 미래에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다, 그렇게 묶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 아들의 형상을 닮고, 그래서 그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우리를 묶어둔 것입니다. 이게 또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입니다.
세 번째로 이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해서 부어주시는 그 놀라운 것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쁨에 대해서는 그 아들께서 이루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것을 말씀하였다면, 이 사랑이라는 것은 아버지께서 그 아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그런 놀라운 것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이제 우리에게도 거저주시는 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바" 왜냐하면 이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도 그 사랑을 거저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해서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그의 은혜를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가 아니고, 이제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제 은혜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면 그 은혜의 영광을 생각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가 사람의 생각으로, 이제 어떤 사람이 예를 들어서 가진 것이 없는 어떤 거지가 이제 부자에게 이제 먹을 것과 많은 돈을 받았습니다. 그런 은혜를 받은 것이죠. 그런데 그러면 이제 그 거지가 받은 놀라운 것에 대해서 이제 은혜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지만, 그가 누리고 있는 그런 은혜에 대해서 거기에 어떤 영광스러운 점이 있나? 이런 걸 생각하게 될 때에 좀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받은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받은 은혜는 이 영광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거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 거지가 먹는 음식과 돈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 거지 자체가 놀랍게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그 거지가 그 부자의 아들처럼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그 거지에게 그냥 거지가 받아야 되는 사랑을 준 것이 아니라 자기 아들에게 베풀어주는 사랑을 준 것입니다. 아들처럼 대우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은혜에 영광스러운 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이 영광스럽게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주시는 바" 거저주신다라고 우리 말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는데 사실 이게 약간 번역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영어 성경에는 흠정역 성경에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를 '열납'하시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를 마치 그 사랑하는 아들처럼 우리를 받아주시고,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런 한국어 성경이나 영어 성경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될 때에, 그런 원문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가 우리에게 더 전달된다고 생각이 됩니다. 영어 성경처럼 우리를 아들처럼 받아주시고, 또한 우리 한국어 성경처럼 그 사랑하시는 아들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이 놀라운 특권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또한 우리를 기뻐하시고, 또한 우리를 사랑하시고, 사랑하시는 아들처럼 대우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모두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게 된 그런 놀라운 은혜입니다.
우리는 비록 이 땅에서 연약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계속해서 기억하고, 우리가 바라보고, 우리의 마음속에 채워야 되는 내용들이 바로 이런 내용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자주 우리는 너무나 이 땅 가운데 일로 얽매어서 이것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우리에게 베푸신 일이 이것이고, 그리고 우리가 이것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한 주간도 더욱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우리의 마음을 두고 이번 한 주를 살아가길 바라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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