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데이빗 길리란드 형제님

< 솔로몬 성전 1. 성전 개요 >

박이레 2021. 7. 23. 21:43

< 솔로몬 성전 1. 성전 개요 > 데이빗 길리란드 형제님

 

이번 말씀의 주제는 솔로몬 성전입니다. 우리는 단계별로 이 놀라운 건축물에 대해서 또한 부분적으로도 살펴 보겠습니다. 그리고 열왕기상과 역대하에서 이 구조물에 대해서 많은 부분 하나님의 말씀이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이 주제에 대해서 전체적인 개요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사백 팔십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년 시브월 곧 이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솔로몬왕이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한 전은 장이 육십 규빗이요 광이 이십 규빗이요 고가 삼십 규빗이며"(왕상 6:1-2).

 

"제 사년 시브월에 여호와의 전 기초를 쌓았고 제 십일년 불월 곧 팔월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전이 다 필역되었으니 솔로몬이 전을 건축한 동안이 칠년이었더라"(왕상 6:37-38).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솔로몬이 왕위에 나아간지 사년 이월 초이일에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대하 3:1-2).

 

우리가 나중에 신약성경에서 잘 아는 몇구절을 읽겠지만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구절에 있어서는 지금 읽은 구절로 충분할 것입니다. 우리가 솔로몬 성전에 대해서 보게 될때 첫번째로 놀라게 되는것은 성경에서 얼마나 많은 분량에 거쳐서 이 성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느냐 입니다. 이 역대상,하 두권의 책은 우리가 성경을 연구함에 있어서 종종 무시하게 되는, 쉽게 읽지 않는 그런 책입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된 피지 성경을 보면 이 역대 상하가 구약 성경의 마지막 책입니다. 그래서 이 역대 상하는 구약성경을 전체로 요약해 주는 책입니다. 역대상의 맨 첫번째로 나오는 사람은 아담 입니다. 그래서 역대상, 그 첫번째는 구약성경의 맨 첫번째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대하 맨 마지막 부분을 보면 우리는 이스라엘이 포로되어 끌려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처음과 끝의 그 중간 부분에서는 솔로몬의 성전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많은 부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역대상의 마지막 8개 장은 이 성전을 건축함에 있어서 준비하는 과정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역대하에 처음 7개의 장은 이 성전을 건축 하는데 어떻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역대서의 가장 중앙 부분에, 또한 많은 부분에 거쳐서 이 솔로몬 성전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 솔로몬 성전이라는 주제는 구약성경의 가장 중심인, 핵심인 주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성전을 연구함에 있어서 두개의 중요한 주제를 함께 보게 됩니다.

첫번째, 주제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오셨는가 입니다.

두번째, 중요한 주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가깝게 다가가게 되었는가 입니다. 그래서 첫번째,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먼저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두번째가 우리가 이제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가 되었는가 입니다.

이 성전이 솔로몬의 통치기간 중에 세워졌다는 것은 또한 주목할만한 사실입니다. 솔로몬의 통치기간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출애굽과 동시에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는 성경의 관점에서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것으로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출애굽은 기원전 1500년에 일어난 일입니다. 여러분이 정확하게 알고자 한다면, 기원전 1446년 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포로가 된것은 기원전 500년전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두사건 사이에 약 천년간의 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이 출애굽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솔로몬의 시대까지 흥황하다가 이제 점점 쇠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솔로몬의 통치 기간에 절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기원전 약 1000년에 통치하게 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출애굽과 포로 기간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게 된 것입니다. 솔로몬 시대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는 점점 발전해 갑니다. 이것이 바로 솔로몬이 성전을 세우게 된 이유입니다. 

성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게 되는 장소입니다. 솔로몬은 자기가 통치하는 나라가 강력한 나라이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임재해서 나타나는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성전은 솔로몬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백성들과 함께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의 소망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이 성전은 솔로몬의 지혜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의 소원과 그의 지혜 입니다. 그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어서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장소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한 부유한 사람입니다. 솔로몬은 금과 은을 아주 많은 양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소유를 이 성전을 건축하는데 사용된 것입니다. 이 모든것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임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말해 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솔로몬의 예배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솔로몬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를 마련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곳은 솔로몬이 간증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솔로몬은 이 성전이 전세계를 향한 간증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남방여왕이 성전을 보러 찾아온 일은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것은 솔로몬의  자원함을 잘 나타내주는 그러한 성전입니다. 다윗은 그가 죽기전에 솔로몬에게 자원하여 하나님을 섬길것을 당부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것은  솔로몬이 하나님을 얼마나 기이하게 여기고 있었는지를 나타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전이 다 지어졌을때, 하나님께서 그 성전 가운데 임재 하셨하셨을때 그 영광을 보고 솔로몬은 놀라게 됩니다. 하늘의 하늘이라도 거하게 못하게 하는 그분인데 그분께서 이 성전에 임하신다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도 적용해 볼수가 있습니다. 우리 역시 건축자입니다. 비록, 물질적인 성전을 건축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는 영적인 건축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임을 만들어가고 있는 건축가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임을 건축해 나갈때 우리의 지혜를 나타내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의 예배를 나타내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의 간증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의 자원함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임의 교제 가운데 함께 하신다는것을 바라볼때에 우리는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주제가 성경 전체에 거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10개의 다른 성전이 언급된 것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 솔로몬의 성전은 이 언급된 것 중 첫번째 성전입니다. 이것은 이 성전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열개의 성전에 대해서 잠깐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이 열개의 성전을 다섯개 다섯개, 두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 다섯개는 물질적인 성전입니다. 그리고 다섯개는 상징적인 성전입니다. 물질적인 성전 다섯개 중, 첫번째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입니다. 솔로몬의 이름은 '평강'이라는 뜻입니다. 평강의 사람으로써 그는 하나님이 임재하는 그 장소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의 통치시대는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가장 절정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낮은 시대에 지어진 성전이 있습니다. 그것은 스룹바벨의 성전 입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에스라서를 읽어볼때 찾게 됩니다. 이 두번째 성전은 아주 부유한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성전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의 절정에서 만들어진 성전도 아닙니다. 그 역사가 아주 어두웠을때에 그때 만들어진 성전인 것입니다. 에스라서를 보면 단지 5만명의 사람이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되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루살렘에 오자마자 처음으로 하게 된 것이 이 성전을 다시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임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실인 것입니다. 이 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그분의 백성들 사이에서, 바로 주님의 임재가 그 모임을 보존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많은 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힘의 비결이 아닙니다. 우리는 때때로 훌륭한 은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아주 유용한 것이지만, 하지만 주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힘은 바로 그분의 임재 입니다.

그리고 세번째의 성전이 헤롯성전입니다. 이것이 헤롯성전이라고 불리우는 몇개의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셨을때, 그 당시 헤롯이 통치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헤롯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러명의 왕들이 있지만,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것은 헤롯대왕입니다. 그는 이제까지 있었던 성전보다 가장 크게 그 성전을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성전에 대해서 이 차트에서 보게 됩니다. 이 작은 사이즈가 솔로몬 성전 입니다. 그리고 스룹바벨 성전도 솔로몬 성전과 비슷한 크기였습니다. 그런데 헤롯왕은 이 성전을 이렇게 아주 크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금방 표시한 이 부분을 나중에 가까이 오셔서 보게 된다면 이 부분만이 성전인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작은 공간이 솔로몬 성전 영역이었습니다. 이 주위에 다른 넓은 영역은 헤롯이 더 크게 만든 지역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성전이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때에 가신 성전 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성전에 대해서 "내 아버지 집"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첫번째, 솔로몬 성전은 바벨론에 의해서 무너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헤롯성전은 주후 약 70년때에 로마군대에 의해서 무너지게 됩니다. 그리고 네번째 성전이 예언서에서 예언되어 있는 성전입니다. 이것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성전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오늘날 예루살렘을 보게 된다면, 이 네번째 성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 네번째 성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불법의 사람이 이 성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또한 다니엘서에서 적그리스도의 우상이 성전 자리에 서게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네번째 성전은 믿지않는 유대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게 되는 성전 입니다. 적그리스도 성전이 주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실때에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다섯번째 성전이 있습니다. 이것은 에스겔의 성전입니다. 이 에스겔서의 마지막 9장에서 이 성전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이 성전은 주님의 천년왕국 통치기간에 만들어질 것입니다. 여기 다섯개의 성전의 크기가 비교 되었는데요. 첫번째가 솔로몬 성전 입니다. 스룹바벨 성전이 비슷한 크기 입니다. 그리고 훨씬 더 큰 헤롯성전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세번째 성전 입니다. 그리고 저는 적그리스도의 성전이 이 헤롯성전과 비슷한 크기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네번째 성전입니다. 그리고 이 다섯번째 성전,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이 성전이 만들어질때 가장 큰 성전이 될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주님께서 통치하시는 때 입니다. 열개의 성전 중에서 이제까지 다섯개, 물질적인 성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성전 연구에서 더욱 중요하고 더욱 우리의 흥미를 끄는것은 이 상징적인 성전 입니다. 그리고 이 첫번째가 아주 흥미를 끌고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설명하기 전에 간단한 배경설명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세개의 장소가 하나님의 집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을 보게 됩니다. 솔로몬 성전에서 말씀을 보게 될때 '하나님의 집'이라고 언급되는 것을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표현이 구약성경에서 처음 사용된 곳은 솔로몬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28장에서 처음 언급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장에서 아주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던 것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족장 야곱이 꿈을 꾸게 됩니다. 그 꿈에서 사닥다리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꿈에서 깨에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여기는 하나님의 집이로다." 여기는 어떤 건축물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그냥 밖에 정원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냥 야외에 있었던 것입니다. 몇개의 나무와 몇개의 돌만이 그냥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장소를 가리켜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그 장소를 그와같이 이름 붙였던 것은 하나님께서 거기 임재 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집이라고 처음 언급된 장소는 바로 벧엘 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하나님의 집으로 언급된 곳은 여기 보시다시피 성막입니다. 여러분은 출애굽기에서 이 성막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가 솔로몬의 성전입니다. 이 세개의 장소가 각각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리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장소가 하나님의 임재가 이땅 가운데 있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기술적인 용어로 연결된다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핫스팟이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 세 장소가 하나님께서 사람과 연결되기 위해서 특별히 사용하셨던 핫스팟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 생각할때에 우리가 구분해서 생각해야 되는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디에나 편재 하시다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그분의 무소부재하심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말의 뜻은 하나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또 다르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장소에 거하신다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 일이 이 세 특별한 장소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현 시대에 대해서도 또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것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모임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서 모임에 모일 필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집에도 거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직장 가운데서도 임재해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특별한 장소에 모여서 그분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여러분은 그래서 이 집회에 모일때에 더욱 특별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모임생활을 하면서 집중적으로 누리기를 바라는 그러한 경험 입니다. 이 세개의 특별한 장소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기를 즐거워 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벧엘에서는 족장들에게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성막에서는 광야를 통과해 가는 순례자들에게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왕족들에게 가깝게 나아 오셨습니다. 솔로몬은 왕같은 제사장의 상징입니다. 이 세개의 장소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가까이 오신다는 것을 기뻐한다는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은 "지금 우리에게 성전과 같은 구조물이 없다는 것은 유감입니다." 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성막과 같은 구조물이 없는 것은 유감 입니다." "이 벧엘과 같은 특별한 장소가 없으니 참 안타깝군요." 하지만 신약성경은 이 세개의 장소보다 더 나은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2:18-21).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서 직접 언급하신 아주 흥미로운 그 선언을 듣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자기육체를 가리켜 성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헤롯성전을 가리켜 주님께서 말한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기자신을 가리켜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이 주님자신을 가리킨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이 14절 말씀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거하시매"라는 헬라어 원어를 살펴보면 아주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거하시매"라는 원어 단어는 '장막을 치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성막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에서 우리는 주님 자신이 또한 성막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성막으로 오셨으매" 요한복음 2장에서는 주님의 육체가 성전인 것을 보았습니다. 1장은 또한 성막인 것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마지막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요 1:50-51).

 

바로 이 구절에서 주님께서는 창세기 28장의 그 일을 언급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벧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 일어난 일을 언급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그 사닥다리가 바로 자신인 것을 말씀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장에서 자신이 벧엘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또한 자신은 성막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2장에서 자신이 성전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전은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땅 가운데 있을때에 하나님의 임재가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나타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벧엘에서 나타났습니다. 또한 성막에서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성전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그 임재가 나타난 것입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방식으로 성육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과 그 전보다 훨씬 더 가깝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의 건축물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주님의 몸을 통해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솔로몬 성전에 어떤 한 악한 사람이 망치와 연장을 가지고 그 성전을 무너뜨리려고 시도했던 사실을 압니다. 또한 주님께서 이땅 가운데에 계실때에 그 성전을 무너뜨리려고 했던 악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몸에 사람들은 상처를 냈던 것입니다. 주님의 몸에 손과 발에 못을 박았고 가시 면류관을 씌웠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성전이 사람에 의해서 그렇게 더럽혀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흘째 되던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을 영광의 몸으로 부활 시키셨습니다.

 

저는 이 상징적인 성전의 두번째 내용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이것이 성전이라는 단어를 상징적으로 사용하는 두번째 내용입니다. 이것은 첫번째와 같이 주 예수님의 육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지역모임을 가리기고 있는 상징 입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에서 이것을 읽게될때 아주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고린도 도시는 그때 당시에 아주 다양한 신들의 신전들이 있었던 곳입니다. 사도바울이 주후 51년도에 거리의 중앙로를 걷게 될때 양옆으로 많은 신전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상들을 위한 신전이었습니다. 또한 비도덕적인것을 행하는 그러한 신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복음을 전했고, 그런데 18개월 후 그 고린도 지역을 떠날때에 예전에 있던 그 신전들과는 전혀 다른 성전이 세워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대리석이나 돌로 만들어진 그러한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믿는자들로 구성된 성전이었습니다.

마치 성전을 짓기 위해서 돌들이 여러군데에서 가져와서 세워지는 것처럼, 이것이 바로 지역모임이 형성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믿는자 각각이 그 돌과 같습니다. 산돌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가깝게 모여 건축물을 만들어 가고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연합된 한 사람들을 구성하게 됩니다. 이 지역에 이 독특한 지역모임이라는 성전이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 성경은 성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장소에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시는 것이고 그리고 그 주위의 사람들을 위하여 중보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 보면 사도바울은 이것에 대해서 아주 흥미로운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고전 14:24-25).

 

사도바울은 그 지역모임에 방문하게 된 사람들이 그 모임으로 말미암아 받게되는 감명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방문객들이 알게되는 것은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가운데 계시다" 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모임이라는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곳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곳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입니다.

 

이제 세번째 그 상징적인 의미를 살펴 보겠습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8-20).

 

여기서 사도바울은 이 성전이라는 단어를 세번째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지역모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이 지역모임은 여러명의 신자들이 모여서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각각의 신자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각각의 믿는 자들이 바로 성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각각의 믿는자들 안에 거룩하신 성령님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내 삶을 통해서 그 거룩함이 나타내 보여져야 하는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이 고린도전서 6장의 문맥입니다. 사도바울은 여기서 실제적인 거룩한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는자들에게 그 음행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는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에서 그 음행이 흔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 시대가 동일한 현상을 가지고 있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것은 이러한 음행들이 우리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과 전혀 맞지않는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을 통해서 네번째 상징적인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1-22).

 

에베소서 2장에서는 아주 큰 무언가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각각의 믿는 자를 얘길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지역모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경륜적인 교회에 대해서 거룩한 성전이라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경륜적인 교회라고 말씀드린 이유는 이것입니다. 오순절부터 주님께서 다시 강림하시기까지의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고 있는 용어입니다. 그것이 지금 하나님께서 만들어가고 있는 성전 입니다. 솔로몬 성전은 그 길이가 30미터정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폭은15미터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만들고 있는 이 성전은 전세계적인 것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7년 정도에 거쳐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이 성전은 이천년동안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성전은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임하실, 같이 거하실 성전인 것입니다. 때가되자 솔로몬의 성전은 어느순간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가장 큰 성전을 만들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전의 터에 대해서 우리는 20절에 읽게 됩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이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경륜적인 이 교회의 이 터는 구약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도시대부터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믿게 될때, 여러분은 산돌로써 이 큰 성전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록에 있는 성전에 대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겠습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계 11:19).

 

여기에 상징적으로 성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아주 흥미로운 부분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육체를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고, 지역모임도 아니며, 믿는 각 신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경륜적인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천상적인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전이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하늘을 상징적으로 말하는 단어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에 실제로, 어떤 문자적으로 성전이 있다는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손으로 만든 성전에 거하시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것입니다. 성전이라는것은 하나님께서 임재하는 것이 나타내어지는  장소라는것을 우리는 계속보게 됩니다. 참으로 하늘만큼 하나님의 임재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장소는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 하늘을 가리키면서 성경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언급하는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제가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에 거쳐서 몇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도요한은 이제 하늘의 열린문을 통해서 들려 올려가게 됩니다. 그가 하늘에 올라가서 맨 처음 보게 되는것은 4장 2절의 보좌입니다. 솔로몬 성전에서 이 언약궤는 마치 하나님의 보좌와 같습니다. 히브리 언어에서 이 '성전'이라는 단어는 '궁전'이라는 단어와 유사합니다. 성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궁전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땅의 왕들을 위한 궁전이 아닙니다. 이 궁전은 전 우주를 초월하시는 왕을 위한 궁전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영광의 구름 가운데 내려오셔서 이 언약궤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언약궤가 보좌가 됩니다. 나중에 자세히 살펴 보겠지만 우리는 솔로몬 성전에서 그룹들이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계 4:8).

 

이 그룹은 천사인 존재들 입니다. 그리고 여기 하늘에 생물이 또한 있습니다. 솔로몬 성전에서는 물을 담는 바다라는 기구가 있었습니다. 이 바다라는 것은 나중에 보다 자세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6절을 또 보시겠습니다.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계 4:6).

 

이 하늘의 유리바다가 또한 상응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성전에는 금으로 된 열개의 등잔이 있었습니다.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계 4:5).

 

이 땅에있는 솔로몬의 성전은 하늘에 계신 장소를 마치 모형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그런 구조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제 마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항상 사람들과 거하시기를 원했다는것을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이 성경 전체에 걸친 이야기를 이렇게 개관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성경은 에덴동산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성경 끝에 가면 영원에 관한 이야기로 계속 진행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거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는 에덴동산의 방문자로서 방문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이 날이 서늘할때에 하나님을 만났다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임재를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에 항상 그때 오시는 하나님과 함께 임재를 누렸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것이 그들의 하루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침일찍 일어납니다. 그들은 해야 할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일하는 가운데, 계속 기대하는 것은, 날이 서늘한 가운데 그 날이 마치기전에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 동산 가운데 거니실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에덴 동산에서 있었던 가장 좋은때 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강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나무들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아니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그 서늘할때에 방문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우리는 또한 이어서 어떤 슬픈 이야기가 전개되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하였을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동산에서 내어 쫒으십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더이상 누릴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4장에서 아담의 아들 가인이 하나님을 떠나 멀리 가게 되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죄가 사람들에게 가져온 나쁜 결과 중의 하나는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사람들이 더이상 누릴 수 없게 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 것이 사람의 존재의 이유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유명한 사람이 되도록 그 목적으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유한 사람이 되라고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권력자가 되라고 만드신 것이 아니십니다. 사람을 만드신 이유는 그 하나님의 임재를 영원토록 누리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아담은 하나님의 임재의 가치를 그가 마땅히 해야하는 정도로 가치를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에덴동산으로부터 영원까지 빠르게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시록 21장 3절과 4절에서 영원의 상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4).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장 위대한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목적을 이루시기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제 장막으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에서 하나님의 하신 이 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다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여기에 어두움이 없습니다. 여기에 아픈것이 없습니다. 여기에 죄가 없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를 영원토록 즐겁게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에덴동산에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이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긴 역사의 시간동안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기 원한다는 것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 긴 역사의 시간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역사를 단계적으로 계속 이루어가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성경전체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성경 부분 부분을 그냥 떨어진 이야기로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전체적인 이야기를 놓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성경을 연구하는 모든 분들께 당부를 드리는 것은 이 큰 그림을 계속 마음에 담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사람들이 잃어버리게 된 시점부터, 영원의 하나님의 임재를 사람이 영원토록 누리게 된 그 사이 사이를 여러분에게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몇가지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 드린바가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어떻게 다 서로가 연결되는지를 보여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그 마음은 사람들 자신이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첫번째의 단계가 벧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임재를 족장 야곱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창세기를 넘어서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이 성막에 있게 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리게 된 놀라운 특권이었습니다. 여기 어떤 텐트가 하나님의 성막이라고 불렸고 그 위대한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사람들과 함께 임재해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더이상 장막에 거하지 않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집 가운데 거하게 되었을때 하나님께서는 이제 성전에 거하십니다.이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더이상 장막에 거하지 않고 집에 거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또한 성전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더 큰 한 걸음을 걸으십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과 관련된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아마도 사백만 정도 되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성전에서는 이천만명 정도 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나라 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텐트도 아니고 집도 아니고 이제 육신으로 거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육신으로 사람들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들어볼 수 있는 이전에와 전혀 다른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제 한사람의 임재가 아닙니다. 몇만이나 몇백만 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임재가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구세주로서 임재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배고프시고 피곤하시고 눈물을 흘리시는 육신으로 오신 것입니다. 참으로 이 하나님의 임재가 사람들의 연약한 필요를 채우시기 위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상의 것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다락방에 12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서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의 임재가 그 다락방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급한 바람과 같은 소리가 들리게 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임재가 바로 이 세상 가운데 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주 폭풍과 같은 그 은혜를 가지고 온 하나님의 임재 였습니다. 하나님 자신인 그 성령님께서 120명 되는 사람들 각자의 마음속에 임재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날이 오순절 입니다. 바로 그날이 교회가 탄생된 날입니다.

이것은 벧엘보다 더 큰 날입니다. 그리고 그 성막보다도 더 큰 것입니다. 그 솔로몬의 성전보다도 더 큰 것입니다. 이것은 바위나 딱딱한 돌로 만들어진 성전이 더이상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의 임재가 그 사람들 가운데 임한 것입니다.

첫번째, 하나님의 아들 자신으로 말미암은 임재 였습니다. 두번째, 오순절날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임재 입니다. 여러분은 이 마포에 주님의 임재에 대해서 물어볼 것입니다. 이제 이 모임에 대해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지역모임에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지역교회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여러분은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두세사람이 내이름으로 모인곳에 나도 그들중에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제가 이제 말씀드리고자 하는것은 이것입니다. 지역모임의 중요성입니다. 여러분은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그 역사의 흐름을 보았습니다. 성막과 성전을 지나 이 갈보리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을 통해서 영원까지 가는 나이를 보았습니다. 바로 그 지역모임은 그 역사흐름의 가장 중심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 이것을 말씀드리고 결론을 내겠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이 지역모임에 대해서 그 가치를 잘 모르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역모임이라는 것이 단순히 사교적인 모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냥 사회적인 모임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지역모임이 바로 하나님의 그 영원을 향한 계획선 상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제가 드린 여러가지 말씀들이 이것을 여러분에게 잘 설명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어서 되는 내일부터의 집회를 통해서 솔로몬 성전이 이 지역모임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전에 있던것이 나중에  올것에 대한 준비이고 또한 상징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가지 모두가 영원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곧 하나님의 임재를 참으로 환희 가운데서 누리며 기뻐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바로 그 목적 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이것을 도와주셔서 우리가 더욱 이해할 수 있기를, 잘 알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오늘 제가 말씀드린 것이  너무 복잡한것이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아주 작은 시작을 한 것 뿐입니다. 이것은 아주 작은 신학적인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이제부터 아주 실제적인 것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내일 잘 준비하시고 오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