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 : 시편 23편 / 24년 9월 31일 일요일(요약2) / 전의석 형제님
시편 23편은 앞의 22편과 24편을 같이 묵상하게 되면 저희들에게 더 의미가 있습니다. 22편을 보면 주님의 구속사역을 볼수 있습니다. 24편을 생각하면 영광의 왕으로 계신 우리 주님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23편은 지금 저희를 인도하시는, 지금 저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보게 됩니다.
23편은 저희의 어떤 상황과도 잘 어울립니다. 23편은 결혼식에서도, 장례식에서도 교제가 됩니다. 혹은 식당에 가도 이러한 말씀들이 걸려져 있습니다. 믿는 그리스도인의 집에 가도 이 말씀이 걸려져 있습니다.
시편 23편이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힘이 되고 용기를 주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3천년 전에 지어진 다윗의 시편이 지금을 사는 저희들에게 큰 힘을 주는 시편입니다.
저는 22편의 몇절을 읽고 23편과 연관해서 교제드리고 싶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시22:1, 개역한글)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시22:11-19, 개역한글)
와서 그 공의를 장차 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시22:31, 개역한글)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 달리셨을때 일곱 말씀을 하셨습니다. 22편 1절은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말씀을 하셨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구약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셨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다윗은 천년뒤에 있을 주님의 사역에 대해서 잘 예표하며 이 시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이러한 의문을 갖게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역은 고난이 먼저입니다. 11-18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채찍질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나아가시면서 죽임을 당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순서로 하면 먼저 이부분이 나오고 1절이 나와야 할것 같은데 다윗은 먼저 하나님이 주님을 버리는 것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시편은 주님의 사역을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이 주님을 버리시는 것을 먼저 언급하고 잇는 이유는, 주님의 초점이 육신의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시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입니다.
두 성경이 서로를 보완하면서 이 하나님의 사역이 완벽함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주님의 고난을 더 생각하고 그것을 강조합니다. 몇년전에 주님의 고난이라는 영화가 나왔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주님의 고난에 대해서 더 많은 비중을 두고 강조점을 둡니다. 그러나 주님의 입장에서는 육신의 고난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이 더 강조점이 있습니다. 왜 버림을 당하셨습니까? 저희들의 죄 때문입니다. 그 죄를 말끔히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만족을 주시고, 저희들이 하나님 앞에 나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서 버림을 당하신 것입니다.
2-3절처럼 주님을 도울자가 없었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도우시는 분이셨습니다. 38년된 병자를 고치셨으며, 귀신들린 아이를 낫게 하셨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할수 있거든 아이를 구해달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부모에게 믿는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달라고 했고 주님께서는 그 아이의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나아가셨습니다.
22편의 이런 구속 사역을 생각해 보게 되고, 23편은 목자되신 주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23편의 마지막은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것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짓는 것을 솔로몬에게 맡기셨고, 다윗은 성전을 짓는 재료를 준비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기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할 소망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는 땅에 있는 성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하나님의 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구절을 생각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저희는 부족함이 없고 영원한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돈이 많고 많은 축복을 받았기에 여호와가 내 목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나 슬픔이나, 고통의 시간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고통의 시간이 있지만 주님께서 저희 목자이시기에 저희에게 감히 부족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24편은 이제 영광의 왕 되신 주님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는 저희들의 미래를 말하고 있습니다. 22편은 십자가를 23편은 주님과의 동행에 대해서, 24편에서는 영원한 영광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22편은 성막으로 하면 희생의 놋제단을, 23편은 진설병 떡상이 있는 성소를 말하며, 24편은 지성소를 나타내는 주님의 영광을 말하고 있습니다.
23편 1절에서는 특별히 "나의 목자"라고 말합니다. 이 '나의'는 대단히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그 목자, 한 목자 아니라 나의 목자라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그리고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역 앞에서 모든 제자들이 다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주님은 홀로 십자가의 길을 갑니다. 주님께서 목자이신데 저희는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 아마 일반적인 목자라면 그 목자는 양들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양들을 다 찾아가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요10:14, 개역한글)
주님께서 하신 일을 통해서 저희는 감히 "주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라고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내 양을 알고" 주님께서 내 양을 안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소유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저희는 주님의 피로 사신 양입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23:2, 개역한글)
세상의 것은 저희에게 영원한 쉼을 주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진정으로 쉴만한 곳으로 인도하는 분이라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23:3, 개역한글)
3절에서는 영혼을 소생하는 일을 하시는데요. 다윗은 이 시를 쓰면서 과거의 일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밧세바와의 범죄와 압살롬을 피해 도망하는 일이나, 인구조사를 했을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심판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회개했을때 다윗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다윗에게 합당한 회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다윗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이 일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를 의의길로 인도하십니다.
저희가 회개하고, 자복하고 앞에 나갔을 때에 용서해 주시는 분입니다. 저희들의 마음과 생각은 참으로 부패하고 거짓되고 더러운 것입니다. 그같은 것을 벗어버릴 것이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을 이같이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겟세마네에서 심히 고민하신 것을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저희들의 자복과 회개를 주님께서는 용서하시지만 그와 별개로 주님의 사역에는 고민하는 일이 있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23:4, 개역한글)
다윗이 골리앗과 싸운곳은 엘라 골짜기였습니다. 그는 주님과 함께 함을 느끼며 물맷돌을 들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골짜기는 통과하는 곳입니다. 때때로 저희의 삶에 골짜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골짜기에 머물게 하는것이 주님의 뜻이 아니고 쉴만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주님의 뜻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골짜기를 통과하면 푸른초장이 있을 것입니다. 그 골짜기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특별히 가기 힘든 푸른초창과 쉼이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 다 되어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23편의 시작은 푸른 초장입니다. 그리고 끝은 여호와의 집입니다. 인도함으로 시작해서 거함으로 끝납니다. 저희들에게는 이러한 소망과 약속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하시고 이러한 약속을 기억한다면 한주동안 위로해 주실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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