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의 일곱절기 3 : 오순절 -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 기드온 쿠 형제님
여러분 모두 안녕하십니까? 다시 한 번 제가 이 자리에서 말씀을 교제할 수 있게 돼서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말씀을 먼저 교제하기에 앞서서 특별히 이곳의 성도님들께서 저희의 보여주신 그 따뜻한 호의와 접대에 대해서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곳에 형제님들이 친절하시게도 제가 아주 오늘 높은 산에 올라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마치 오늘 제가 시내산에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올 때 이것보다 더 높은 산에 저를 데리고 가겠다는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하지만 이것보다 오늘보다 더 높은 산에 올라간다면 저는 말씀 집회 도중에 쓰러지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이 보여주신 사랑과 친절에 대해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다시 레위기 23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23장 15절부터 끝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만든 떡 두개를 가져다가 흔들찌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일곱과 젊은 수소 하나와 수양 둘을 드리되 이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와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를 삼을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또 수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년 된 어린 수양 둘을 화목제 희생으로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 첫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인즉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찌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찌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이 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너희는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구일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찌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십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일 동안 지킬 것이라 첫날에는 성회가 있을찌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며 칠일 동안에 너희는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 것이요 제 팔일에도 너희에게 성회가 될것이며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찌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니라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삼고 번제와 소제와 희생과 전제를 각각 그 날에 여호와께 화제로 드릴찌니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 예물 외에, 너희의 모든 낙헌 예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 팔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너희는 매년에 칠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찌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찌니라 너희는 칠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찌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모세가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레 23:15-44).
오늘 우리가 고려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 또 관련 있는 다른 부분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여호와의 절기가 세 가지, 그리고 한 가지, 그리고 세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 번째 세개의 절기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오늘 시간에는 나머지 4개의 절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앞에 3개 절기 후에 이제 하나의 절기는 오순절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과 동떨어져서 뚝 떨어져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펴볼 때에 이것은 초실절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 세개의 절기를 또한 살펴볼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고 그 세개의 절기는 우선적으로 이스라엘과 관련된 절기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세개는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고, 그리고 가운데 있는 하나의 절기는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개의 절기는 이스라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또한 이 7개의 절기를 처음 4개와 나머지 3개로 나눠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앞에 4개의 절기는 봄에 있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3개의 절기는 가을의 절기입니다.
이 절기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경작과 농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유월절과 그리고 무교절 초실절은 보리 추수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은 밀을 수확하는 절기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계의 절기는 모든 열매들을 거두어드리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부분들을 알고 이제 구약에 이 절기를 말하고 있는 부분들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언제 나오미 룻이 돌아옵니까? 나오미아 룻이 이스라엘로 돌아오던 시기가 보리를 추수하던 때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유월절 때에 다시 돌아왔음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이 또한 여호수아의 이 기억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길갈에 오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제 그들은 만나를 이제 마지막으로 먹었습니다. 그들은 첫째 달에 14일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 새로운 곡식을 먹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서 5장을 보겠습니다. 10절과 그리고 12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 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 소산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니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수 5:10-12).
그래서 여러분께서는 이 절기에 대해서 관련된 그 농작기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길갈에 그대는 유월절을 지켰고 그리고 그다음 날에 이제 볶은 곡식을 그 땅 소산을 먹게 됩니다. 그래서 그 땅 소산을 먹은 날은 그들이 무교절을 지키는 절기였습니다. 그들은 그 땅에서 난 곡식을 가지고 이제 그 절기를 지킨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고 있는 복입니다. 그런데 또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때가 그 초실전의 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만약 안식일 다음 날이라고 되어 있으면 그것은 이제 분명하게 초실절일 텐데요. 그런데 여기서 12절에 그다음 날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개의 날은 우리 주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이와 같이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여러분이 이 구절이 정확히 뭘 말하고 있는지를 한번 상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그 농업에 대해서 좀 알게 될 때에 우리는 그들의 절기에 대해서, 그리고 또한 예언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모든 성경 학도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 세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서 여러 세대로 나누어서 경영하십니다. 이 세대는 무엇입니까? 이 세대라는 것은 하나님이 인류를 경영하시는 그 역사 가운데 어떤 특정한 기간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특별한 기간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다루십니다.
예를 들어서 '율법의 시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때는 모세가 또한 그 이스라엘의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경영하실 때에 율법을 가지고 그들을 다루시니라. 하지만 이 시대는 더 이상 율법의 시대가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이제 다른 역사를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시대가 '은혜의 시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은혜는 모든 열방에게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미치는 그러한 은혜의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단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이 세상을 경영하시지 않습니다. 로마서 9장, 10장에서 사도바울은 이 이스라엘이 일시적으로 제쳐짐을 당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하나님을 대표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것은 다른 세대와 아주 다른 독특한 세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루신 방식과 다릅니다. 그 구약의 율법이 더 이상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율법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고 보배로운 그런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율법이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동물로 희생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 중요하게 우리가 알고 있어야 되는 사실입니다. 여기 이것은 옆에 놔두고 무시할 그런 주제가 아닙니다.
제가 말레이시아에서는 이제 주일학교를 할 때, 주일 학교 선생님들이 이것을 가르칩니다. 그때 이제 어린 학생들 이제 유아반도 따로 있지만, 그때 이제 주일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첫 번째 것이 이것입니다. 예전에는 이제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십계명을 외우라라고 시켰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일학교 선생님에게, "왜 아이들에게 십계명을 외우라고 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저 자신도 십계명을 못 외우는데 말입니다." 십계명이라는 것은 물론 그것이 중요한 원리를 담고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깜짝 놀랄 만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여러분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이것은 뭔가요?' '살인하지 말라 이건 뭔가요?' 사실 우리가 지키고 있는 그 말씀은 서신서에 그러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는 것을 우리가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서신서에서는 이 살인이 단지 육체적으로 죽이는 것만을 살인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다른 형제를 미워한다면 그것은 살인하는 것라고 신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기준이 우리에게 훨씬 더 높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서신서를 보고 이 그리스도인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학교 선생님은 처음에는 이것에 대해서 "그래도 해야 될 것 같은데.."라고 합니다. 그러면 복음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구약에서도 또 이런 것들을 말하고 있는데" 하지만 아이들에게 이 십계명을 외워라라고 요구하지 않길 바랍니다. 물론 이러한 구별의 내용이 아이들에게 잘 가르쳐줘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조차도 이것이 좀 혼란되고 혼동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중요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닙니다. 또 어떤 가르침은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신하였다라고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더 이상 회복할 수 없고 교회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그런 존재다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또한 그 세대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부족한 지식 가운데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일시적으로 잠시 제쳐두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절기에 대해서 살펴보게 될 때, 그러한 사실들이 여기 담겨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교회가 휴거된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시 사용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참 이상한 그 총리를 자신의 지도자로 삼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 총리가 아마도 제3차 세계대전을 벌일 것 같은 그런 생각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이스라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미래에 그 이스라엘은 영광스러운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대에 대한 가르침을 잘 이해한다면, 우리가 여호와의 절기에 첫 번째 세 가지가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고 말하는 거에 있어서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오순절 절기도 교회에 있어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3개가 이스라엘과 관련됐다고 말씀드린 것처럼 그것은 장래에 성취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세대에 대해서 여러분이 잘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오순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오순절이라는 것은 이제 '펜티코스트'라고 영어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이제 라틴어에서 온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제 실제 성경에 사용되고 있는 오순절에 해당하는 단어는 '여러 주의 절기'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원어에서는 '샤부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단어의 뜻은 '칠'이라는 것의 복수, '칠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이 절기는 7일이 7번 된 후에 지키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7일을 어떻게 7번 계수하는지를 듣게 됩니다. 이것은 일주를 7번 반복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7일을 7번 계수하는 것을 초실절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 저기는 초실절과 연관되어 있고 그것은 안식 후 다음 날부터 세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초실절부터 그들은 7번의 안식일을 계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이 바로 '샤부시'라고 하는 오순절이 되는 것입니다. 이 초실절에 우리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우리가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바로 그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가셨습니다. 그것이 안식 후 다음 날이고 바로 일요일입니다. 그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 초실절부터 49일을 계수하게 됩니다. 그런데 단지 49일이라는 그 날짜 안에 날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7개의 안식일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그 초실절이 언제인지를 모른다면, 여러분께서는 그 '샤부시'라는 절기를 언제 지켜야 되는지 모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여러 주를 계수하는 그 첫 번째 날이 초실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초실절이 언제인지를 알아야 됩니다. 그 초실절부터 계수하지 않는다면 결코 맞는 정확한 오순절 날을 찾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초 시점부터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도행전 2장입니다. 이거는 1절과 4절을 읽겠습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1-4).
우리는 2장 1절에서 오순절 날이 완전히 이미 이르렀다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이 누가가 "오순절 날에 이미 이르렀다"라고 말한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문자적으로 '오순절 날이 성취되었다'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있었던 그 오순절이 이제 신약에 와서 성취되었다라고 누가는 문자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2장에 나와 있는 오순절 날 일어난 사건들은 그 오순절의 성취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2장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그 교회가 형성된 것을 보게 됩니다. 바로 이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성령의 강림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이 형성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한 번 기본적인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참 이 젊은 성도님들께서 이것에 대해서 잘 알고 계셔야 되고, 여러분이 꿈꿀 때에도 머릿속에서 생각이 나야 되는 그러한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기본이 되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고린도전서 12장을 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성전을 펴면서 더욱 정신이 맑아지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3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여기서 사도바울이 말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다 한 몸으로 침례를 받았다.' 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상관없이 말입니다. 이것은 단 한 번의 그리고 영원한 효과를 가진 사건입니다. 이것은 다시 반복되는 사건이 아닙니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오해하고, 구원을 받은 다음에 그리고 성령 침례를 받아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용어 사용이 아닙니다. 성령 침례는 오직 사도행전 2장에 한 번만 역사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언제 구원받든지 간에 다시 그 순간에 이 성령 침례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순절파에서 이것은 흔히 주장하는 것인데 그것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이렇게 성경적인 표현으로 이야기해 줍니다. "우리가 믿을 때에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그리고 또한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받는다"라고 말씀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성령 침례와 관련돼서는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서 단 한 번만 사도행전 2장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단 한 번에 그리고 또 영원한 효과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성령 침례도 단 한 번에 그리고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어려운 점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것이 어떻게 과학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성령 침례가 먼저 일어나버린 것일까? 그런데 성경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모두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몸이 되었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께서 사도행전 2장에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잘 배워야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건은 구약의 오순절에 대한 성취였습니다.
그 오순절이라는 '오순'이라는 뜻은 50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나서, 주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의 사건은 우리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열흘 뒤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사건은 초실절을 말하고 있는 그 부활로부터 정확히 50일 후에 일어난 오순절 사건입니다. 40일 동안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주님께서 많은 진리에 대해서 그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예루살렘에 머물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이것을 기다리라." 그리고 승천하신 후 10일 후에, 이제 그분의 부활 후에 50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오순절이 성취되었습니다. 이 50일이 다 이루어졌고 오순절 날이 성취되었습니다.
이 초실절이 항상 이제 일요일이었고, 이것은 제가 믿는 바인데요. 왜냐하면 안식 후 다음 날이 초실절인데 그것은 항상 이제 일요일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항상 일요일이 돼야 됩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부터 이제 50일을 세게 됩니다. 그래서 종이를 꺼내서 한번 여러분이 이것을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만약에 수요일에 초실절이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수요일이라면 그 50일 안에 7개의 안식일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초실절 후에 7개의 안식일이 지난 다음에 오순절을 지키게 되려면, 그 초실절은 반드시 일요일이 아니고서는 7개의 안식일이 그 안에 들어가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집에 가서 종이를 꺼내놓고 이런 수학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초실전은 항상 일요일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계산을 했을 때, 초실절이 일요일이고, 안식일이 지난 후 그다음 날은 다시 일요일입니다. 사도행전 2장은 비록 그날이 일요일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렇게 계산을 해보신다면 다시 그 오순절이 일요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셨고 그리고 성령께서 일요일에 강림하셨습니다. 한 분은 올라가셨고 그리고 다른 분은 내려오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항상 이 땅에 계셨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놀라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쉐키나 글로리' 하나님의 영광을, 그 쉐키나 구름을 그들의 지성소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 성소에서 그 영광이 떠났습니다. 하지만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분께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후에 그분은 다시 하늘로 가십니다. "오, 하나님이 다시 하늘로 가버리셨네."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 가운데서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이제 하나님의 아들께서 하늘로 돌아가셨지만, 이제 하나님께서는 다시 성령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계속해서 우리와 함께 이 땅에 성령께서 계십니다. 그래서 항상 그 상위의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어느 시대보다 가장 가깝게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그 영광의 구름이 그 쉐키나가 지성소에 있었지만 이스라엘 민족들이 그들이 직접 그걸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 가운데 오셨을 때는 그들은 그들의 눈으로 주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참 우리 주님을 그들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은 그들의 대단한 특권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시대에, 구약의 어떤 이스라엘 백성들보다도 더 놀라운 특권을, 주님은 그들의 눈으로 본 사람들보다 더 놀라운 특권을 이 시대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고 계십니다. 그들은 그들의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눈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령을 모시고 있습니다. 참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우리 안에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이보다 더 우리와 가까이 계셨던 적이 없습니다. 지성소부터, 그리고 그 이스라엘의 거리에 계셨고, 그리고 이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여러분은 이스라엘보다 우리가 더 놀라운 특권을 가지고 계신 것을 동의하십니까? 주님을 직접 본 사람들보다 더 놀라운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계십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오순절이 성취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서 굉장히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다른 7개의 절기에서 독특하게 따로 떨어져 있습니다. 아주 유일합니다. 이것은 앞에 세개의 절기와도 떨어져 있고, 뒤에 절기와도 떨어져 있습니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신부는 이 우주에서 다른 어떤 존재보다 하나님께 가까운 존재입니다.
우리가 오순절에 상세한 것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안식일을 7번 계수하고 그리고 그다음 날 50일을 채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레위기 23장 16절을 보게 될 때, 마지막 부분에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새 소제'라는 것은 아주 유일한 그런 특별한 제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새 소제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떡 2개를 에바 10분의 2로 만들게 됩니다.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굽게 됩니다. 이것은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오순절에도 그들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우리가 앞에서 그 초실절에 그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말하는 그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첫 열매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이 '첫 열매'라는 것은 앞에 '초실절'에서 사용된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내가 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첫 열매이시고 이것도 우리들도 첫 열매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많은 형제 중에 첫 열매요, 첫 장자"라는 말씀을 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고 그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도바울은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와 같은 똑같은 부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분께서 첫 열매이시고 우리도 첫 열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초실절에 첫 열매가 있었고 또한 오순절에 첫 열매가 있는 이 아름다운 그림을 보게 됩니다. 제가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 초실절을 제대로 계수하지 않는다면 오순절을 정확히 지킬 수 없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50일을 계수하는 것은 초실절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 초실절에 그게 없었다면 오순절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교회도 없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사도행전 2장도 없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그 오순절의 성취되는 그 가운데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첫 열매라고 불리는 두 떡 덩어리가 굉장히 특별한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이것은 소제에 '누룩이 섞인' 첫 번째로 성경에서 언급된 부분입니다. 우리는 레위기 2장에서 소제가 언급되는데 거기는 누룩을 넣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레위기 23장에서 이 새 소제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 새 소제는 바로 누룩을 넣어서 굽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두 개의 누룩을 넣은 구운 빵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항상 누룩을 대하게 될 때에 이것은 '죄'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누룩이라는 것은 떡이 구워지기 전에 그가 활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빵을 오분에서 구울 때에 누룩은 다 죽어버려서 더 이상 발효를 할 수가 없습니다. 누룩은 비록 그 빵을 부드럽게 하지만, 그 오븐에서 구운 빵을 꺼내 냈을 때에 그 빵이 점점 그 누룩의 발효 효과로 빵이 커지는 것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 오븐에 그 빵을 넣고 구울 때에 누룩의 활동은 완전히 정지됩니다. 그래서 이 두 떡 덩어리는 누룩을 넣었지만 그들은 '구운 떡'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이 교회에 대해서 잘 보여주고 있는 상징입니까? 우리는 진해에서 마태복음 18장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18장 20절, 19절을 다루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지역 교회가 처음으로 언급된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지역 교회가 처음으로 언급되는 부분의 배경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실패에 그 기록이 있는 곳에서 이 지역교회의 첫 번째 언급을 봅니다. 어떤 형제가 다른 형제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범죄한 형제는 증인들의 말도 듣지 않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가 언급되는 바로 그 부분이 이 문제가 있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누룩이 들어간 두 덩어리에 떡은 이 교회 안에 불완전한 요소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신자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들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두 덩어리 떡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이 이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서 말할 때에 그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을 언급합니다. 그래서 그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에 가로막는 벽이 무너졌다라고 그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새 소제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이 세 소제는 단수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2개의 떡 덩어리가 사용되는데 단수라고 말합니다. 마치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인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 성경에는 단지 두 종류의 사람만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련돼서, 이 성경의 표현과 관련돼서는 단지 두 종류의 사람만 이 땅에 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입니다. 여기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이 오순절 이후로 이 두 개의 다른 사람들이 한 사람이, 한 소제가 된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나라는 제쳐졌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 모든 다른 민족 간의 차이를 없앴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몸이 된 것입니다. 유대인이든, 헬라이든 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두 덩어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우리는 오분의 그 구워진 누룩이 있었던 떡덩어리와 같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합니다. 하지만 그 5분의 열이 그 누룩을 완전히 무효화시킨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정죄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물론 그 누룩과 같은 배경에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사람들은 다 그들이 십자가형을 받아야 되지만, 하지만 이제 이때 그 누룩이 그 오분 안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누룩이 작동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래도 우리가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데요." 이건 항상 우리를 좌절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우리의 신분과 관련돼서는, 로마서 6장에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죄가 더 이상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시선에서 그렇습니다. 이 죄가 더 이상 우리를 정죄하는 그 권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육체로 말미암아 말입니다. 우리는 여러 죄를 짓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실패합니다. 우리는 이런 연약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실행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입니다. 하지만 신분과 관련돼서는, 이제 그 누룩은 구워졌고 이제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떡 덩어리에 구워진 떡이 이제 하나님께 새 소제로 드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새 소제는 "여호와께 드리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 17절 마지막 부분에서는 "첫 열매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레위기 2장에서 그 소제는 단에 드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내용들은 우리에게 이것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이 오븐에 구워진 이 떡은 제단에 드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소제 두 떡 덩어리는 다시 한 번 우리를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떠한 것을 제단에 부어든지 이것은 항상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떡 덩어리는 우리를 상징하는 것이고, 이것은 첫 요제로 하나님께 드려야 됩니다. 이것은 제단에서 불살라지는 소제가 아닙니다. 이 한국어 성경에서는 어떻게 돼 있는지 모르겠지만, 18절에는 이제 영어 성경으로 약간 오해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18절에 이 떡과 함께 1년 된 흠 없는 어린 양 일곱을 드리라라고 돼 있습니다.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일곱과 젊은 수소 하나와 수양 둘을 드리되 이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와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를 삼을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레 23:18).
그래서 이제 "이 떡과 함께"라고 우리 말 성경에도 되어 있는데, 이제 원문에 따르면, "떡 외에"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것입니다. "이 떡 외에 어린 양은 재단에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떡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고, 그리고 다른 어린양 일곱들, 다른 재물들은 제단에 드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나온 새 소제는 제단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것에 대해서 충분히 말씀을 드렸는데요. 아직 나팔절을 시작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좀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에 잘 마치도록 최선을 다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성경 본문을 읽을 때에 조금 이상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우리는 주의 깊게 살펴봐야 됩니다. 왜냐하면 22절이 이 문맥과 맞지 않게 엉뚱하게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절기와 관련되어 있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동떨어진 장소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성경 기자가 이것을 어디다 둘지 몰라서 그냥 아예 여기다 넣자 하고 넣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성령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여기에 22절이 여기 들어간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여기에는 이 땅의 추수기를 말합니다. 그것이 보리 추수건, 밀 추수건 말입니다. 그리고 이 곡식들이 바닥에 떨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 땅의 주인은 그 떨어진 것을 다 주어서는 안 됩니다. 땅에 떨어진 단 하나의 그 곡식 알갱이도 다 주어가지고 깨끗하게 가져가선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에 떨어진다면 더 이상 그가 주어선 안 됩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 그리고 객들이 그것을 주어가지고 먹을 수 있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이 왜 여기 기록되어 있습니까? 이것은 우리에게 누구를 상기시켜주고 있습니까? 제가 이 질문을 드리겠는데요. 이것을 본문을 보게 될 때 여러분은 누구를 생각하게 됩니까? 여기에 어떤 밭에 가서 이 땅에 떨어져 있는 이삭들을 주은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 여기 젊은 성도님들께서 한번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말레이시아에서 제가 이러한 질문을 한다면요. 모든 사람들이 다 고개를 숙이고 성경만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 저를 지금 쳐다보고 있습니다. 아주 용감한 분들입니다. 제가 한 분을 지적해서 말씀해 달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이것은 그 보아스 밭의 룻을 연상시키지 않습니까? 그리고 보아스의 그 젊은 그 하인들이 이 룻이 줍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룻은 이방인입니다. 그는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그 여인으로 계속 줍게 만듭니다. 그리고 심지어 보아스는 그를 초청해서 함께 식사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룻기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바는 무엇입니까? 특별히 여기에 있는 젊은 자매님들을 실망시키지 않길 원하는데요. 참 그 룻기는 로맨스가 담겨 있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아주 로맨틱하게 어떤 한 남자가 그녀를 잘 돌봐줍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결혼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더라고 끝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 룻기는 이러한 사랑 이야기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그 룻기는 이 세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새와 다윗의 이름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룻과 보아스는 다윗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이방인들을 어떻게 다루실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주권적인 은혜 가운데서 이 이방 여인을 이제 다윗의 계보 안에 두셨고 그리고 마침내 그리스도의 그 계보 안에 두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그 이방인을 위한 자리도 마련해 놓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레위기 23장 22절이 또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그러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역사 가운데 이방인을 위해서 자리를 만들어 놓고 계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내용이 그리고 적당하게, 적절하게 오순절과 아름답게 관련되어 있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바로 그날 이방인들이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하자면 룻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는 그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 안에 더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보아스의 밭에서 그 이삭을 줍도록 허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통치의 그 영역 안에 그 자리에 우리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 자체가 처음에는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하지만 영적으로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이 문맥과 연결되어 있는 구절입니다. 바로 오순절에 이방인들이 이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22절에 흥미로운 또 한 가지는 이것입니다. 제가 앞에서 이 절기가 4개와 3개로 나눠진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또한 3개, 1개, 3개로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4개, 3개로도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4개의 절기가 이미 성취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나머지 3개는 마지막 대 종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장래에 일어날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자리에 있습니까? 우리가 8월 5일, 2024년, 지금 말입니다. 이제 오순절 이후 이제 2천년이 넘게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순간에 지금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 초실절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그 오순절도 성취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7개의 절기 가운데 우리는 어느 자리에 잡고 있는 것입니까? 바로 이 가난한 자와 이방인으로서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22절은 우리가 시간상으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왔습니다. 룻과 같이 말입니다. 바로 이 구절이 앞에 4개의 절기와 뒤에 3개의 절기를 나누는 그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여기에 그 분할선을 넣으셨습니까? 왜냐하면 앞에 4개의 절기와 그리고 뒤에 3개의 절기에 그 사이에 2천 년이라는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천년을 더 머무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첫 번째 4개와 뒤의 3개에는 분명히 이런 간격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 간격이 자주 나오게 되는데요. 이것은 흥미롭게 연구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어떤 구절과 그다음 구절이 바로 연결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200년이 될 수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민수기서를 보게 될 때에 또한 그런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이제 가데스 바네아에서 그다음 구절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때 그들이 가지 않았고 그때는 이제 다시 그들이 돌이켜서 다시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주십니다. 그리고 그 다음 장에 가게 될 때에, 38년이 지나버립니다. 성경을 읽다가 2장 다음에 바로 다음 장이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두 개의 장 사이에 38년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기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38년 기간 동안 성령께서는 아주 적은 기록만 남겨놓으십니다. 그들이 그 기간 동안 무엇을 하였는지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그 하나님의 백성들의 그러한 기간은 하나님께서 언급할 가치도 없다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이러한 중요한 그런 간격은 다니엘에서 9장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이제 예루살렘과 여러 가지 것들이 나오는데 갑자기 이제 환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어떤 한 구절을 읽고 그다음 구절이 바로 연이어서 일어난다고 쉽게 생각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 성경에 나와 있는 각 구절 사이에 그 시간 간격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됩니다. 그리고 23장 22절, 바로 이 구절이 이 장애 시간 분할 간격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이제 다음에 그 예언되어 있는 사건은 무엇입니까? 여러분께서는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휴거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맞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기다려야 할 유일한 그 말씀되어 있는 미래의 사건입니다. 여기 더 다른 것은 없습니다. 어떤 다른 사람들이 이 예언이 성취돼야 돼, 저게 성취되어야 된다고 말할지라도 우리는 그것만 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이런 것들을 좀 봐라고 말합니다. 터키에 일어나 그 지진을 한번 보라고 말합니다. 그 전쟁의 소문들, 이 땅에 있는 그런 재앙들을 한번 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께서 마태복음 24장을 읽어보신 적 있습니까? 거기에 많은 전쟁과 전쟁의 소문들과 기근과 지진들이 나옵니다. 그거 뭐야? 지금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이 그거다! 하지만 친애하는 여러분, 그것은 거기에 기록된 사건들이 아닙니다.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오직 기대해야 되는 기다려야 되는 미래의 사건은, 우리 주님께서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시는 공중에서 임하시는 그 주님의 강림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휴거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언제 오십니까? 이제 중동 지역을 한번 보십시오. 러시아를 한번 보십시오.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을 보십시오. 그리고 중국과 소련을 보십시오. 이 나라가 모두 혼란 가운데 있습니다. 매일 아침 뉴스를 볼 때마다 우리는 이것을 발견합니다.
제가 어떤 다른 잠깐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 어머니가 이것을 알려주셨는데요. 어머니가 항상 그 뉴스를 읽어보십니다. 오래된 세대분이시라 이런 디지털 기기로 뉴스를 보는 것이 아니라 종이신문을 보십니다. 제가 아침마다 식사를 하는데, 저는 그 아침 식사를 하는 걸 좋아합니다. 제가 사무실에 가서 그 바쁘게 일하기 전에 이제 잠깐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식탁에 앉아서 아침 식사를 조용하게 하고 있는데, 그런데 그리고 새가 옆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아주 아름다운 아침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신문을 들고 들어오시더니, 그리고 식탁으로 다가와서 그리고 그 신문을 펼쳐 보이십니다. 그리고 던지십니다. "오늘 뭐가 일어났는지 알아? 아주 세상이 아주 끔찍하다! 정부가 얼마나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항상 아침마다 뉴스를 요약해서 알려줍니다. 그리고 저의 조용한 아침은 사라지고 맙니다. 저는 그냥 아침을 빨리 먹어버리고 그리고 이제 일하러 갑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곧 오실 것 같아! 세상이 점점 악해져가고 있어. 주님께서 곧 오실 것 같아." 제가 얼마나 많이 이제 정정해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그것을 거절하시고 계속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말씀이 녹음돼서 어머니께 전달이 안 됐으면 좋겠는데요. "어머니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주님께서는 언제든지 오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2차 대전 때 유대인들이 그렇게 많이 죽을 때, 그때가 바로 마지막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이제 주님께서 오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2차 대전이 끝난 1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직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이 우리 주님이 오시는 때를 이 세상이 일어나고 있는 일에 근거해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만약에 이 지구상에 갑자기 완전히 일시적으로 평화롭게 된다면, 그때 아무도 이제 주님은 오실 거야라는 그런 말을 안 할 겁니다. 그런 갑자기 전쟁이 일어나고 그때 주님께서 오신다고 사람들이 말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알려주는 이 땅에 어떤 사건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실망이 되는 말씀일지 모르겠지만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사건들은 환난 때 일이고 이 시대 일이 아닙니다. 그때 그 슬픔의 때, 그 전쟁과 전쟁의 소문들, 기근과 지진들, 그것은 환난 때 일어나는 것이고 이 시대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주님께서 언제든지 오시는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오시는 것을 나타내는 어떤 특별한 사건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 아닙니까? 언제라도 우리는 그분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됩니다. 심지어 이 땅이 완전히 평화롭게 조용하게 지나가고 있을때라도, 주님께서는 그때에도 언제든지 오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공중에서 그분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휴거를 레위기 23장에서 찾고 있지 않습니다. 23장에서는 휴거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구약 성도들이 알지 못하는 그러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사도바울이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전하노니"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그때는 죽음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내가 비밀을 말하노니" 그것은 구약의 성도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이제 너희들에게 알려준다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 그리고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도바울이 말해주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를 데리러 오시는 사건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 휴거의 진리는 구약 성도들이 알지 못했던, 오직 신약에서만 분명하게 제시된 진리입니다.
이제 빠르게 나팔절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우리가 나팔절이나 초막절이 아니고 왜 휴어에 대해서 이렇게 많이 말씀하였습니까?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나팔절이 그 휴거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 저자들이 이 나팔절을 휴거와 연관시킵니다. 휴거는 구약 성도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도 그 날짜가 휴거와 맞지가 않습니다.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앞에 4개의 절기는 문자적으로 정확한 그 날에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일관성을 따라서 나중에 나와 있는 그 세개의 절기도 정확하게 그 언급된 날짜에 해당하는 날의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래도 그 미래에 일어날 그 일은 7월의 첫째 날에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7월 10일에 속죄일이 일어나야 됩니다. 그리고 또한 초막절도 7월 15일에 정확하게 일어나야 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나팔절은 히브리 원어로 '러시 하샤나'라고 되어 있습니다. '러시'는 머리를 말합니다. 그리고 '하샤나'는 그 해를 말합니다. 그래서 '러시 하샤나'는 그 해에 시작되는 머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나팔절은 이스라엘에 있어서 새로운 해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나팔절을 즐길 때, 러시 하샤나라를 즐길 때, 그들은 이 새해가 된 것처럼 즐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것은 종교적인 새로운 해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종교적인 새로운 해는 유월절입니다. 그것은 '하샤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유월절이 있는 그 때는 종교적으로 새로 시작되는 해, 그 해의 시작을 말합니다. 그리고 나팔절은 그들의 민족적으로 새로 시작되는 해의 첫 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음력 설날이 이제 중국, 제가 지키는 설날과 같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면에서 우리가 새로운 해라고 간주하는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해 1월이, 이제 전체적으로,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해의 시작입니다. 그와 같은 달력을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들의 해의 시작, 그 새로운 시작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이 나팔을 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소파라고 하는 그 양의 뿔로 만든 나팔입니다. 그리고 이 나팔이 불려지게 될 때, 처음으로 양의 뿔이 언급된 아브라함과 이삭의 사건을 상기시켜줄 것입니다. 그때 이삭이 제단에 어떻게 드려졌는지 그들은 상기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수양의 뿔이 그 덤불에 걸려 있었고 그리고 그 양은 제단에 들여지게 됩니다. 그것은 이삭의 생명을 건지는 그 구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해의 시작이 달인 그 나팔절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환난의 마지막 때에 일어날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멸종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스라엘을 보게 될 때에 그들은 어느 나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근대사는 모든 전쟁마다 그들이 이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미국의 도움으로 이제 무적의 군대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이란과 싸운다고 해도 그들은 이란을 이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그 나라의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행동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 가운데서 환난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놀랍게도 그들의 이제 마지막 순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모든 각도에서 대적들이 이스라엘을 둘러싸게 될 것입니다. 이 온 세계가 이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 대적해서 모일 것입니다. 그때 모든 나라의 미사일은 예루살렘을 표적으로 삼고 있게 될 것입니다. 단지 이제 버튼만 누르면 그 고대 도시는 완전히 잿더미가 될 것입니다. 참 이스라엘의 군대 수보다 수천 배가 많은 군대가 그들의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이 모든 것이 다 끝났다라고 생각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누가는 그때 그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그 예루살렘이 망하게 되는 그 순간을 기록하게 됩니다. 누가가 기록한 그 하나님의 말씀은 "그때 너의 머리를 들라 구원이 너희에게 임하니라" 왜냐하면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4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4장에도 갑자기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그리고 그때 "인자의 징조가 보이리니" 이제 천사들과 함께 영광 중의 인자가 오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때가 나팔절입니다. 참으로 그들이 그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 나팔을 물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이 도움이 그들에게 다가온 순간, 그들이 대적들에 둘러싸여 있는 이 순간에, 그때 이제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이 불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모든 지평선에 울려 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임하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영광의 능력으로 임하신", 그리고 그분의 말씀으로 그분의 대적들을 다 멸하십니다. 여러분은 계시록 19장에서 그 입에 검으로 그들을 멸하신다라고 되어 있는 구절을 봅니다. 이제 문자적으로 입에서 어떤 칼이 나오는 그 장면은 참 이상한 장면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칼을 입에 물고 싸우신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검과 같이 아주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성도들과 함께 임하십니다. 그들은 우리입니다. 그리고 바로 우리가 그 나팔절에 함께 주님과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마지막 전투의 증인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수많은 대적들을 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다면 우리가 하늘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인가?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한국 형제님들이 "우리는 이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그 칼 한 번 휘두르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총 한 번 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늘에서 어떤 미사일도 하나가 발사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그 눈부신 영광과 함께 임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그 눈부신 영광을 비추실 때, 그분의 강력한 말씀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핵폭탄이 그들을 다 녹여버리듯이 그들을 녹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가 이것을 과장해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이것을 믿지 못한다면 여러분이 스가랴서 14장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때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그들의 눈이 녹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혀가 사라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이렇게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분의 그 능력을 거스려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한 근육이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것을 사용하지 않고, 말씀으로 이기십니다. 이제 이스라엘이 구속받습니다. 그 대적들이 사라집니다. 이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그리고 10일 후에는 속죄일입니다. 제가 이 속죄일에 대해 말씀드리기 전에 이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성전이 먼저 지어져야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입니다. 왜냐하면 그 예언이 그들이 거기에 다 모일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행렬은 이렇게 일어나게 되는 것이고, 그 앞에 10일 동안에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와 같이 모여서 이제 시작될 천년 왕국을 준비하게 됩니다. 제가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초막절은 모든 그 열매를 거둬들이는 그 수장절입니다. 이것은 마치 그 모두 하나님의 백성들을 거둬들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성전이 다시 지어집니다. 아주 빠르게 지어집니다. 요즘에는 이제 크레인도 사용해야 되고 이렇게 해야 되죠. 그리고 불도저도 있어야 되죠. 많은 장비들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제 의견에 동의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리스도께서 그냥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성전을 짓는다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유대인들이 동참될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또 물질들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이제 망치를 들고 이렇게 만든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수일 동안에 성전이 순식간에 만들어집니다. 스가라서 6장에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가지를 보라" "그가 여호와의 성전을 지으리라"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바로 그가 여호와의 성전을 지으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놀라운 능력을 사용하셔서, 유대인들을 참여시키고 성전을 수일 안에 완성시키시는 것입니다.
이제 마태복음 25장에 그걸 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에 열방들의 심판이 있습니다. 양과 염소의 심판입니다. 여기에 그 배경은 무엇입니까? 인자가 영광 중에 임하셔서 그분의 자기의 보좌에 앉았을 때에, 이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임하신 후엔 이제 불신자를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신자를 영접하십니다. 그리고 이 구원받은 자들이 모두 그 왕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구원받지 않은 자들이 던져져 영벌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이 첫째 날과 10일 사이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5장에 있는 그 심판은 1일부터 10일 사이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때 "인자가 그 자기의 보좌에 앉아"라고 돼 있습니다. 그래서 그 열방을 심판하시기 전에 반드시 성전이 먼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가라서 6장에서 그 동일한 분이 또한 "자기의 보좌에 앉아"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 심판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모든 구원받은 자들이 천년 왕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그전에 이스라엘은 나라적으로 그들이 다시 공식적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나라가 적으로 그 속죄일을 기념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유대인들, 모든 그 남은 자들이 성전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 앞에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여기에 언약궤는 어디 있습니까? 여기 언약궤가 속죄일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언약궤가 어디로 간 것입니까? 그때는 그 언약궤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자신이 그 언약궤의 실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숙제와 다르게, 그때는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그 언약궤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이 미래의 속죄일에는 이스라엘 나라 전체가 그리스도 앞에 서서, 그때는 언약궤가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거기서 뭘 말하게 됩니까? 그때는 이사야서 53장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그 회개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라고 생각하였도다." "하지만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으며" "우리는 각기 제 길로 간 사람들이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우리의 대가를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여기서 우리가 누구고 여기서 그가 누구입니까? 여러분들은 난데, 난데,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장으로 내가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문맥으로 보자면 거기 나와 있는 우리가 이방인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 그 유대인들이 이사야서 53장의 그 노래를 부르게 됩니까?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전에 유대인들은 이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미래의 속제일날, 그리스도 앞에서 그들은 이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그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왕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것이 초막절의 성취입니다. 여기에 이 초막절은 7일 동안 즐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천막을 치고 텐트 안에 거하게 됩니다. 그것은 이제 안식을 상징하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실제로 주시는 것은 영원한 안식입니다.
제가 마치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스가랴 마지막 부분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그 대제사장 옷이 언급이 됩니다. 그리고 그의 관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금으로 이렇게 표시가 있습니다.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것은 대제사장이 쓰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모든 자들이 그 여호와께의 성결이라는 그 패를 이마에 붙이고 나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스가랴서 마지막 장에서 그는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그날은, 그때 그 천년 왕국 시대로 우리가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그 방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 그릇이 있습니다. 거기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쓰여지게 됩니다. 아니, 뭐라고?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게 그 말이 그 집에 그냥 그릇에 적혀 있다고? 아니, 대제사장의 관에 그 이마에만 있어야 되는 그 글이 그냥 집에 그릇에 적혀 있다고? 왜냐하면 모든 땅에 이 완벽한 평화가 이루어져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곳에 이 거룩함이, 성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구원받지 않은 자는 천년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어느 곳에든지 그 성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김치를 담그는 그릇에도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돼 있습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콩국수를 어제 주셨죠. 그것은 아주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한국 성도님들은 그걸 다 먹지 않았더군요. 그리고 바로 그 그릇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쓰여질 것입니다. 참 그런 그릇은 그 지성소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그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의 모든 것에 다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렇게 쓰여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께서 집에 가신다면 민수기 28장, 29장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서 그 초막절에 그 각 날에에 드리는 희생 제물이 거기 나와 있는데요. 그것이 이 날이 지날수록 점점 그 양이 줄어듭니다. 이 밀레니엄 천년 왕국은 처음에는 완벽하게 시작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이제 아이들이 태어나게 됩니다. 그들은 자동적으로 거기서 태어났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천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게 되는데요. 그런데 이제 다시 태어난 세대들은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민수기 29장에 보면 드려지는 제물의 양이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천년 왕국은 처음 시작에는 그 그리스도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점점 해가 갈수록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고 점점 세상적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사단을 사단을 핑계하지만, 여기선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천년 왕국 기간 동안에 그 사단은 깊은 구덩이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사람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 사람이라는 것은 이러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에 그 그리스도와 마지막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백보좌 심판이 있게 됩니다. 어느 누구 생명책에 그 이름이 발견되지 못하는 자는 불못에 던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영원한 나라에 들어갑니다.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1시간 40분 정도 시간 동안에 2천 년이 넘는 기간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꽤 잘한 것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3천년, 4천년, 기간을 단지 1시간 49분 정도에 다 압축시켜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것에 대해서 졸지 않고 들어주셔서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께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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