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기드온 쿠 형제님

여호와의 일곱절기 2 :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박이레 2024. 9. 19. 22:42

< 여호와의 일곱절기 2 :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 기드온 쿠 형제님

이번 시간에 아마도 어려움은 저보다도 여러분에게 있을 것 같습니다. 이같이 많은 음식을 먹은 후에 오후 2시 40분은 아마도 우리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의 도전은 이제 여러분은 계속해서 이제 정신이 번쩍 들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잠이 드신다면 이것은 저의 잘못입니다. 여러분이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레위기 23장을 보겠습니다. 1절부터 8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 달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그 첫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며 너희는 칠일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제 칠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니라"(레 23:1-8).

고린도전서 5장을 보겠습니다. 5장 6절부터 8절까지를 읽도록 하겠습니다.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전 5:6-8).

주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앞에 형제님께서 제가 정해진 시간보다 더 많이 교제할 수 있다고 허락을 해 주셨습니다. 만약 말레이시아에서 이렇게 된다면 말레이시아 형제님들은 저에게 그런 허가증을 준다는 것이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제가 약속을 드리는 것은 비록 5분 정도 더 초과될 수 있겠지만 되도록이면 정해진 시간 안에 교제를 마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절기에 대해서 전체적인 개관을 먼저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각 구절의 상세한 내용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번 시간에 상고해 볼 것은 앞에 세개의 절기입니다. 주님 뜻이면 내일 집회 시간에는 오순절부터 그다음 세개의 절기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짧은 시간 동안에 이 각각의 절기에 대해서 그냥 표면적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것들이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이 절기에 대해서 묵상하는 데 자극이 되기를 바라면서 교제를 드리겠습니다.
제가 앞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이 여호와의 절기는 아주 중요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특별히 젊은 성도님들에게 여러분들이 이 예언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면 특별히 두 개의 중요한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2024년 오늘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그 예언은 이미 성취되었다." 하지만 이 레위기 23장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여전히 미래 측면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이 예언은 이미 과거의 일이지만, 그런데 우리가 어떤 예언의 말씀에 대해서 이 말씀은 이제 성취되었고 그리고 또한 이 예언의 말씀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라고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이게 한국어로 어떻게 표현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영어에서 '이 성경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이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관점에서 어떤 예언은 과거에 있었던 일이고 어떤 예언은 또 미래에 있을 것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특별히 우리의 시점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이 예언의 말씀에 대해서 '종말론'이라고 말하기 위한 그런 영어적 표현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에스크콜로지' 이 '종말론'이라는 그 표현은 헬라어 '에스카톤'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에스카톤이라는 것은 '마지막 때'라는 헬라어 단어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입장에서 아직 미래의 것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그 예언의 말씀에 대해서는 종말론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앞에 4개의 절기와 관련된 예언은 우리 시점에서는 이미 과거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입장에서 나머지 3개의 절기와 관련된 것은 이제 미래의 것, 그래서 이제 종말론이 표현하고 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하지만 내 이 말씀이 이제 사람들이 예언을 연구할 때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그런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레위기 23장, 24장, 25장, 이 장이야말로 참으로 그 종말론을 말하고 있는 그런 부분들입니다. 우리는 레위기 25장에서 여기에 안식년과 풍년에 대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레위기 24장에서는 마지막에 보면 아주 흥미로운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4장 10절에 보면 어떤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나오는데 그 아들은 애굽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주의 깊은 성경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왜 이와 같은 일이 갑자기 정말 엉뚱한 장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일까? 라고 의문을 품어야 됩니다. 제가 이렇게 제안해 보겠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 마지막 때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면, 이 인류에서 누가 가장 하나님의 이름을 해방한 사람입니까? 그것은 거짓 선지자, 그 불법의 사람입니다. 비록 여기에 불법의 사람이라고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 장면을 보면서 그 마지막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내기 25장에서는 단지 안식년이 아니라 희년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매 50년마다 이러한 모임이 있게 됩니다. 이것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드리지 않겠지만 이것은 또한 천년 왕국의 그 놀라운 축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26장에 가서 보게 될 때에, "형제님 레위기는 너무나 어려운 책이에요."라고 많이들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 레위기를 읽을 때에는 앞에 몇 장을 읽고 이제 이거 못 읽겠다 하고 덮어버립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난 후에 다시 한 번 이 책을 보고자 해도 역시 마찬가지로 어렵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또 한 달 뒤에 이 책을 보고자 했을 때 앞에 읽은 것을 다 잊어버리고 또 보게 됩니다. 그리고 너무 그 구체적인 상세한 것에 주목하다가 전체적인 내용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여기 식사 시간에 어떤 형제님이 왜 소제에 이 히드니(?)와 화목제에 왜 콩팥을 하나님께 드리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이 제사에 나와 있는 여러 가지 상세한 것들이 참 우리 마음을 너무나 어렵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레위기를 보다가 레위기 26장까지 자세히 그렇게 보는 사람이 드뭅니다. 그래서 우리가 26장을 간다 할지라도 그전에 멈춰버리고 또 전체적인 내용을 잃어버리고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레위기 26장에서 마지막 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루실 때에 특별히 5개의 단계로 나누어서 경영하십니다. 그 다섯 단계를 거쳐 나가면서 하나님께서는 더욱더욱 이스라엘에게 엄한 형벌을 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불순종하였고 내가 너를 징계한다. 네가 이번에도 순종하지 않는다면 7배나 더 엄한 형벌을 내리겠다. 그런데 이번에도 네가 불순종한다면은 나는 그거보다 더 7배나 강한 형벌을 내리겠다. 만약에 그들이 일곱 번의 강한, 더 그보다 더 중한, 그보다 더 7배 중한 형벌이 된다고 할 때 마지막엔 얼마나 강한 형벌이 되겠습니까? 이 26장에 나와 있는 그 다섯 번째 그렇게 가장 강한 형벌은, 그리고 그 마지막에 그 가장 강한 형벌은, 마지막 때에 계시록에 나타난 그 환난의 형벌과 비슷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그 다섯 단계에 걸친 그 역사 가운데, 그들이 이제 하나님의 그 심판을 받게 될 때 그것은 바로 7년 환난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환난에 대한 말씀이 이미 레위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환난에 대해서는 다니엘서에만 있지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레위기의 마지막 장에도 이와 같이 마지막 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이것에 대해서 이제 알아차리셨길 바랍니다.

이제 레위기 23장에 처음 몇 구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특별히 그 앞의 구절을 살펴보기 전에 23장 38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 예물 외에, 너희의 모든 낙헌 예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레 23:38).

37절도 한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그리고 나서 38절에 그는 "이것 외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주 토요일에 안식일을 지킨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스라엘에 방문해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그들은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눈이 먼 상태 가운데서 아주 종교적인 행위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제 예루살렘을 방문했다고 칩시다. 여러분이 이제 호텔에서 묵게 되겠죠. 그리고 이제 안식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이제 호텔 방으로 올라가고자 할 때, 이제 1층 로비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2개의 종류의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하나는 유대인 전용 엘리베이터고 앤젤 엘리베이터 또 하나는 이방인용 엘리베이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제 이방인이죠. 그래서 이방인용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이제 이방인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면 여러분이 가고자 하는 층의 버튼을 누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20층에 묵는다면은 20층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그리고 그 엘리베이터는 20층까지 쭉 올라갑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유대인이라면 유대인 엘리베이터를 타야겠죠. 그 유대인 엘리베이터는 이방인용 엘리베이터와 다릅니다. 왜냐면 안식일에 그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은 일이라고 관주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 20층을 누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서 그냥 가만히 서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는 1층에 서고, 그리고 2층에 가서 또 멈춥니다. 그리고 3층에 올라가서 또 멈춥니다. 20층에 올라갈 때까지 계속 각 층마다 멈춰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1층부터 20층 올라가는 데 15분이 걸립니다. 그들이 그 안식을 즐기는 것을 이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눈이 먼 상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이란 아주 거룩한 날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정말로 안식일, 참된 안식일, 참된 쉼을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히브리서 5장에 가서 그 기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봅니다. "믿는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구약에서 그 안식일에 쉬는 것은 이제 종교적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안식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사역 위에서만 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안식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그 영적인 힘에 대해서 성경은 뭐라고 말하고 있었습니까? 그냥 우리에게 있어서 찻잔을 놓고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게 쉬는 것입니까? 우리에게 있어서 쉬는 것이란 어떤 휴가를 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고 있는 쉬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가 앞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성경적인 안식이란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그의 영혼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에 맡기는 것,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안식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이고 영적인 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모두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에서 안식하는 것이 참된 안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토요일에 그 안식일을 종교적으로 지키지 않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도 토요일날 안식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안식일을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것은 모세의 언약입니다. 사도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그 안식일과 절기들과 그런 거 다 지나갔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그것을 누립니다.
이제 레위기 23장에서 그 안식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3장에서 계속 나와 있듯이, 우리가 금방 읽은 것처럼 그 여호와의 안식일 외의 것을 말하고 있는 부분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여호와의 일곱 절기는, 이 안식일은 여호와의 일곱 절기와 별도의 것입니다. 매주에 쉬는 안식일은 여호와의 일곱 절기와 별도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렇게 좋은 질문을 할수 있습니다. "왜 그런데 그 매주에 쉬는 안식일이 레위기 23장의 앞부분에 먼저 따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까?" 바로 23장 3절에 이렇게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레 23:3).

여러분을 잠깐 더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이제 아이들에게 이런 그림을 주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어떤 패턴을 그려놓고 그 점을 찍어놓고 아이들이 그대로 따라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그런 방식으로 여기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2절에서 이 자세한 것을 살펴보십시오. 2절 마지막 부분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그런데 4절에 그와 비슷한 말씀이 또 한 번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자질은 이러하니라" 그래서 2절에서 이것이 여호와의 절기다. 4절에 또 여호와의 절기다. 그리고 이것을 마치 가로처럼 양 옆으로 해서 중간에 3절에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구조가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쉴 안식일 매주의 안식일은 여호와의 일곱절기와 다르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게 여호와의 절기다 말씀하시고, 그렇다면 여호와의 절기가 그다음에 이어져서 나와야 되는데,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이렇게 나와야 되는데,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고 "이것이 나의 여호와의 절기다" 그런데 이것은 매주 안식일이다. 이것이 여호와의 절기다. 그리고 나서 유월절, 무교절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 매주의 안식일이 여호와의 절기다, 여호와의 절기다, 라는 그 두 개의 가로 사이에 먼저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이 성경 본문이 특별히 이렇게 흥미롭게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는 바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한국어 성경도 이렇게 그런 부분이 반영되어 있어서 번역됐길 바랍니다. 번역이 약간 조금씩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는데요. 영어 성경은 히브리어 원문의 그 단어 배열의 순서와 일치합니다. 한국어도 그렇게 되길 바라는데요.
그래서 사실 우리는 오늘날 아주 특권을 누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단지 여러분은 그 성경 전체를 여러분의 손에 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여러 가지 아주 좋은 컴퓨터 기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오늘 들고 오지 않았는데 제가 말레이시아에서 쓰는 성경에는 여러 가지 이제 칼라펜으로 이렇게 칠해져 있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색깔을 자주 사용해 가지고 성경책에 기록을 합니다. 제 성경에 표시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그 이제 하이라이트 펜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어떤 중요한 본문을 보면 그 형광펜으로 칠하고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강조해야 되는 그런 구절이 만나면 우리는 밑줄을 쳐서 표시를 해놓습니다. 그런데 이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형광펜이 없죠.  칼라펜도 없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쉽게 여기 밑줄 치고 이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성령께서는 어떤 것을 강조할 때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하십니까? 어떤 특별한 구조를 사용해서 그 형광펜을 치듯이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금방 말씀드린 것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그 첫 번째로 "여호와의 절기는"이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너희가 공포하라" 세 번째로 "성회를 삼으라" 그리고 네 번째로 "이것이 여호와의 절기다" 한국어 순서는 약간 다르죠. 다시 4절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절기다" 이것은 2절에서 가장 마지막에 나온 단어가 4절에서는 가장 먼저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4절에서 "성회로 삼으라"가 우리말 성경과 다르게 원문에는 두 번째로 나와 있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나와 있는 것이 "공포하라" 그리고 "기한에 미쳐"가 마지막에 나옵니다. 한국어 성경은 이 순서가 다르기 때문에 간단하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2장에서는 1, 2, 3, 4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4절에 갖다 되면 그 단어의 순서가 반대로 돼 있습니다. 앞에 네 번째로 말한 게 첫 번째로 나오고, 이렇게 반대로 4, 3, 2, 1 순서로 돼 있습니다. 처음에는 1, 2, 3, 4로 단어를 언급하셨는데, 그런데 여호와의 절기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매주의 쉬는 안식일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4, 3, 2, 1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성령께서 뭘 강조하시는 것입니까? 이 3절이라는 구절을 이 좌우 대칭되는 표현을 사용해 가지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3절이 바로 매주에 쉬는 안식일입니다. 그것이 구약 시대에 사용되는 그 형광펜으로 강조하는 방법입니다. 아주 중요한 구절을 이제 이 단어의 구조를 사용해서 표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괄호를 실제 그린 것은 아니지만, 어떤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은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어떤 특별한 단어의 구조로서 이렇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1, 2, 3, 4를 말씀하시고 그리고 매주의 안식일입니다. 그리고 4, 3, 2, 1 이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내주의 안식일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이 매주의 안식일을 강조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이 가상의 형광펜을 사용해서 이것을 강조하십니까? 왜냐하면 분명히 이 매주의 안식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이 나의 절기다" 이것을 사용하셔서 안식일을 강조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여호와의 일곱 절기의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이 매주에 쉬는 안식일이기 때문입니다. 매주의 안식일은 매주마다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 여호와의 일곱 절기는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 일곱 절기가 매주의 안식일을 근거로, 기반으로 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매주의 안식일이 기초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여호와의 절기가 세워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일 먼저 하나님의 이 신성한 형광펜을 사용하셔서 1, 2, 3, 4! 4, 3, 2, 1! 매주 안식일을 강조하십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일곱 절기 중에 하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 일곱 절기의 기초입니다.

이제 3절에 보면 "이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이 여러분이 23장에 32절이 올 때까지 여러분은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속죄 일에 관련된 말씀입니다.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는 표현이 이 속죄일에 관련돼서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안식하는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안식일, 이것은 쉴 안식일, 히브리어로 문자적으로 그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안식일은 히브리어로 '샤바 샤바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속죄일에 다시 한 번 그 '샤바 샤바톤;이라고 쉴 안식일이 기록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매주에 쉬는 안식일이 기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또 이 속죄일도 그와 같은 안식일입니다. 이 일곱 절기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속죄일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쉬는, 쉬는 안식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이것을 한번 생각해 보도록 잠깐 맡겨놓겠습니다. 이 속죄일이 장래에 성취될 날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영적으로 그 속죄일이 완성된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바로 속죄하는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두 개의 날에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매주의 안식일에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그들는 가만히 있어야 됩니다. 그 엘리베이터 버튼도 누르면 안 됩니다. 불쌍한 유대인이죠. 토요일에 그들이 어떻게 쇼핑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아주 멀리 갈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또 하나의 쉴 안식일이 속죄일과 연관되어 말씀합니다. "어떤 일도 하지 말라" 그래서 우리는 이것들이 다른 절기와 다른 점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8절에, 그리고 또한 이것은 무교절입니다.

"그 첫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며"(레 23:7).

그래서 이 마지막에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때는 그들이 어떤 노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나무를 벤다든가, 어떤 사무실에 가서 일하던가, 어떤 공장에 가서 일하던가, 하지만 그들이 그 외에 다른 것은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집에서 요리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쇼핑도 할 수 있죠. 그래서 여호와의 다른 절기들에 있어서는 어떤 것은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매 주의 안식일과 속죄 일에만 32절에 또한, 3절에 보듯이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됐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 점이 이 매주의 안식일과 속죄일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안식하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과 제가 안식하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 영적인 쉼을 즐기고 있습니까? 오늘날은 참 쉬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디지털 기기들 자체가 우리가 쉬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여러분이 휴가를 가도 메신저가 계속 여러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한국 정부가 아주 효율적으로 일하는데요. 매 30분마다 제 핸드폰으로 경보 알람을 보냅니다. 통역하는 형제가 그 문자를 읽어주었는데 휴가철 물놀이 조심하라는 문자였습니다. 이런 모든 계속적으로 우리를 바쁘게 만드는 상황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이러한 권면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특별히 젊은 청년들에게 말씀입니다. 하루에 1시간, 2시간을 확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문을 잠그고 그리고 여러분과 그리고 성경만을 펴시고, 그리고 디지털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들이 여러분을 너무나 방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과 하나님만이 만나는 그 시간을 확보하십시오. 여러분과 성경만 읽는 그 시간을 확보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영적인 쉼의 가장 큰 조건이 될 것입니다.

첫 번째 절기는 유월절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출애굽기 12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자세한 것을 말씀드리지 않겠지만, 여기서 "정월 14일 저녁은 유월절이다. 여호와의 유월절이다." 말씀합니다. 여기서 특별히 여호와의 유월절이다. 여러분 복음서에 가서 보게 될 때에, 특별히 요한복음을 보게 될 때, 우리는 거기서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라고 언급되지 않은 것을 발견합니다. 이 사도는 종종 "유대인의 유월절"이라라고 기록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사람들이 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모두 이상한 것들을 그들이 도입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주의 만찬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진해 모임에서 고린도전서 11장을 상고할 때에 고린도 교회들이 그 만찬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주의 만찬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여호와의 유월절이라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것을 엄격하게 그 날을 지키셨는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주님을 먼저 죽이고자 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절벽 밑으로 떨어뜨리고자 하였을 때, 그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돌을 쳐서 죽이고자 했을 때에도, 주님께서 그 돌에 맞아 죽을 뻔하였지만, 그 절벽에서 떨어져 죽이려고 하였지만, 그래서 그 예언이 성취가 안 될 뻔 같았지만, 그런데 요한은 이것을 정확하게 기록합니다. 이제 요한복음 19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십니다. "그 찌른 자도 볼 것이요" 그 예언의 말씀이 정확히 성취된 것을 기록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죽으심은 반드시 로마 병정에 의해서 십자가 형으로 죽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때뿐만 아니라 그분의 죽으심의 방법도 예언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그분의 죽으심의 그 시간은 놀랍게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어느 때에, 어느 분에 죽을지를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우리 주님께서 자주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라는 말씀을 기록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3장에서 "주께서 그때가 이루신 줄을 아시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그때를 예비하셨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그분이 그 옷을 내려놓으시고, 여러분께서는 다시 그 옷을 입으신 것을 알아차리십니까? 주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전에 그분은 먼저 윗옷을 내려놓으십니다. 주님께서 그분께서 언제 그 겉옷을 다시 입으셨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나는 내 목숨을 내려놓을 권세도 있고 다시 취할 권세도 있다."고 말씀하신 때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상징적으로 그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자신의 겉옷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전에 내려놓으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주님의 목숨을 내려놓으시는 것처럼 스스로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후에 그 겉옷을 다시 취하십니다. 그것은 다시 상징적으로 이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부활을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다시 그 목숨을 취할 권세도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가르치십니다. 주님께서는 그 겸손의 행동으로서, 주님께서는 홀로 이제 죽으시기 위해 나가셨습니다. 내 형제들의 발을 씻기시기 위해서, 저는 이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형제들의 발을 씻기는 것, 저는 이렇게 자문하게 됩니다. 내가 저들을 위해서 죽을, 그 자원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에 요한은 기록하기를 "때가 이른 줄 아시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분의 시간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분께서 십자가로 가시고, 그 성경이 얼마나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그분께서는 이제 9시에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 십자가에 9시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후 3시에 그분께서는 마지막 숨을 내십니다. 그 오전 9시는 성전에서 아침 희생 제사가 드려지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오후 3시는 오후에 성전에서 예물이 들려지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이 두 번, 이 제사가 성전에서 드려지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시고, 그리고 두 번째 시간에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의탁드리나이다."라고 이제 마지막 소리를 내셨습니다. 이것은 그 성전의 희생 제사에 대해서 꼬집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단에서 짐승으로 희생 제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십자가에서 그의 실체인 그리스도께서 희생 제사를 들으셨습니다. 이제 유대인들은 그 유월절을 지키느니라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 다하지만 그들이 깨닫지 못한 건 참으로 그 유월절의 실체가 지금 성취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종교로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그 그림자가 말하고 있는 원형이 실제로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14일날 유월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15일부터 무교절의 첫날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이제 다른 성경의 부분을 보게 될 때에 이 세 번에 걸쳐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의 그 절기에 올라가게 됐습니다. 그것은 이게 무교절이고 그리고 오순절이고, 그리고 초막절에 올라가게 됍니다. 바로 이 세 절기에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됩니다. 이 1년에 3번에 걸쳐 올라갑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놀라운 지혜로 이것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이제 교양 악단을 운영하고 있다면, 우리 이 교양 악단에서 중요한 것은 그 전체 악단을 이끄는 그 박자키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 다른 것들은 이제 그것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이제 사용되는 다른 이제 보조적인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교양악을 보게 될 때 여러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중요한 악장이 있는 것입니다. 그 중요한 악장이 연주되기 전에는 이제 다른 이제 보조적인 곡들이 연주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왜냐하면 제일 최고의 그 곡을 맨 마지막에 두고 사람들로 하여금 기다리게 합니다. 만약에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베토벤 교향곡 9장을 맨 앞에 둔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악장 연주가 끝난 후에, 그다음에 이제 강 형제나 기드온 형제님이 나와서 연주하는 것, 그것은 이제 별로 관심 없어 할 것입니다. 그냥 다 제일 중요한 것만 듣고 집으로 가버리겠죠. 그래서 항상 이제 아마추어들이 연주하는 것을 먼저 하고 그리고 최고의 악단이 이제 마지막에 연주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여호와의 절기에 관련돼서도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것 같은데 말이죠. 이제 하나님께서 세 번에 걸쳐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오게 하십니다. 예를 들어서 이제 유월절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때 와라, 이렇게 하실 것 같은데요. 그게 아니고 무교절에 오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무교절을 지키기 위해서는 유월절에 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거기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절개 중간에 오순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한 하나님께서 속죄일에 모두가 다 오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초막절에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먼저 속죄일에 와서 쭉 있다가 초막절까지 지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세 번에 걸쳐 예루살렘에 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첫 번째가 무교절입니다. 그리고 7일 동안 그 무교절을 지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동안 집에서, 또한 지역에서 그 누룩을 발견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 집에 곳곳에 그 누룩이 있으면 발견해서 다 치워버립니다. 그래서 이 유교절과 무교절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무교절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때는 그것은 또한 성경에서 유교절을 의미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이제 실제적으로 이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도바울은 어떻게 말했습니까? 고린도전서 5장에서 "유월절 양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희생 제사가 되셨느니라" 이제 여기에 사용된 그 문법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유월절 양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여기서 문자적으로 "그리스도, 우리의 유월절 양의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우리가 어떻게 지키는 것입니까? "이 절기를 지키되" 여기에 이 절기는 어떤 절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의 유월절 양,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고, 이걸 먼저 말했고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자.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이 절기가 유월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하지만 그렇게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유월절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다"라고 우리는 이미 그건 지나간 일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기 23장을 참조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곱 절기에 대해서 이해한 다음에 우리가 사도바울의 글을 보면, 그래서 사도바울이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그 14일은 이미 지나갔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이제 과거의 일이고, 이제 명절을 지키자고 말할 때는, 14일이 지나갔다면 이제는 무슨 절기입니까? 이것은 무교절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에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그래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인 교인들에게 정결하고 순전한 삶을 살아야 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있는 그 악독한 것을, 죄악을 정죄하고 그것을 돌이켜야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죽으셨습니다. 이제 유월절 양은 우리가 이미 지킨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지켜야 되는 절기는 7일 간의 무교절 절기입니다. 영적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우리 가운데 누룩을 둘 수가 있겠습니까? 유대인들은 이 무교절의 7일 동안 결코 그 집에 누룩을 두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그 아비의 아내와 동침한 한 형제를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죄였습니다. 이것은 평가하기도 어려운 그러한 나쁜 죄입니다. 이방인조차 그렇게 하지 않는 죄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누룩을 너희 가운데 지금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누룩을 넣은 빵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자기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와 같은 악을 여러분 가운데 둔다면, 여러분은 자기가 아주 지혜롭고 현명하다라고 자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 명절을 지키자"라고 말합니다. 이 여호의 절기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5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것의 영적인 의미는 아직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영적으로 우리가 오늘날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금 무교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거룩한 삶을 사는 절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그럼 초실절, 그다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은 이미 있었던 것 아닙니까? 라고 말씀할 겁니다. 맞습니다.
제가 특별히 젊은 분들에게 이러한 퀴즈 질문을 하겠습니다. 저는 때때로 이제 초콜릿을 주머니에 넣어놓고 상품으로 주는데요. 잘 맞추면 이렇게 던져줍니다. 여와의 절기, 일곱 절기 중에 7일 동안 그것을 즐기는 절기가 어떤 게 있습니까? 여기에 이제 무교절이 있었죠 그것은 7일 동안 지키는 절기입니다. 7일 동안 그 누룩을 없이 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 세개의 방문하는 절기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7일 동안 즐기는 절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지막에 있는 절기입니다. 그것은 바로 초막절입니다. 그것은 또한 7일 동안 그들은 경축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최고의 절정의 순간은 8일 째에 있습니다. 왜 이 특별히 2개의 절기가 7일을 언급하고 있습니까? 여러분께 말씀드린 대로 이 절기는 정확하게 그 날에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유월절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고, 그리고 초실절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십니다. 오순절에 정확하게 성령께서 강림하십니다. 그런데 이 무교절에서 7일 동안 지키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히 '언제부터'라고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리고 부활하신 다음에, 정확히 역사적으로 어떤 사건이 이 무교절과 연관되는지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무교절의 7일은 어떤 특별한 역사적인 날과 상관없이 지켜지도록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입니다. 이 7일이라는 이 기간은 특별히 어떤 기간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기간의 성격은 무엇입니까? 그 기간의 성격은 바로 고린도전서 5장에서 말하는 바로 그 내용입니다. 그것은 "거룩함과 순전함"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이 여호와의 두 개의 절기만 7일 동안 지켜지게 되는데요. 이 7일에 해당하는 것이 미래에 어떤 사건과 연결되는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것이 중요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그 기간에 어떤 성격을 가지고 지켜지는지 그것에 관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첫 번째 4개의 절기는 은혜의 시대 때 다 성취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후에 우리는 이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무교절의 칠일이라는 것은 그 은혜의 시대에, 그 그리스도에 속한 자들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그 은혜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죄에 대해서 그 양심의 인식하는, 그래서 거룩하고 순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초막절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은 미래의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다른 한 세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7일이라는 것은 또한 그 세대의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어떤 장막을 치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은 광야에서 그들이 살았던 것을 생각나게 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어떻게 애굽에서 하나님이 구원해내셨는지를 상기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장막에서 텐트를 치고 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기억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우리에게 안식을 주셨는지를 상기해 주는 것입니다. 이제 그 천년 왕국이 오게 됩니다. 그 천년 왕국의 성격은 무엇입니까? 그 천년 왕국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들이 안식한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떠한 종의 굴레에서 구속하셨는지를 기억하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개의 절기에 그 7일에 해당하는 정확한 역사적인 해당하는 사건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7일은 그것이 상징하고 있는 기간의 성격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약속한 대로 이제 5분만 더 사용하겠습니다. 우리가 2시 45분에 시작했죠. 지금 3시 45분입니다. 제가 5분, 10분 더 사용하고 이제 마치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이 다시 저를 초청하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제 초실절인데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이 목요일에 죽으셨는지, 금요일에 죽으셨는지, 토요일에 죽으셨는지, 많은 논쟁이 있는데요. 한국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것을 문제라고까지는 언급하지 않고 이제 형제님들에 따라서 다른 이제 관점이 있다라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금요일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이제 전통적인 것이죠. 그리고 저는 성경이 그것을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의 아버지는 목요일에 죽으셨다라고 믿는 분이었습니다. 참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아주 어렵게 만드는 주제였습니다. 아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아버지는 이제 암에 걸리셔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폐암이셨는데 이제 소천하시기 한두 달 전의 일입니다. 그분께서 이제 만찬에 참여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때도 여전히 아버지는 말씀을 전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이 특별한 아침에 그분은 마지막 힘을 짜내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하신 것이 그리스도께서 목요일날 죽으셨다라고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성경을 사용해서 40분 동안 그리스도께서 목요일에 죽으셨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노력하셨습니다. 이것은 제가 이제 기억하는 그분의 마지막 그 강대상에서의 말씀 교제였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저는 그분의 마지막 말씀을 동의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또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수요일에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게 어디서 나온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목요일에 죽으셨다는 것은 어떤 이제 근거가 좀 있긴 합니다만, 수요일 날 돌아가셨다는 것은 제가 처음 듣는 것입니다. 저는 금요일이라 믿고 있고 또한 그 유월절에 죽으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기술적인 문제고 그래서 이것을 다 말씀드린다면 아주 지루할 것입니다. 하지만 물론 우리는 이제 이 성경에 대해서 그런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됩니다.
이 초실절은 "안식 후 다음 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 나와 있는 그 안식일이 어떤 안식일을 말하는 것인지가 이제 논쟁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제가 이 안식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 자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다면 여러분이 아주 지루해 하실 텐데요. 제가 여러 가지 또 이 안식일, 또 아무 일도 하지 안식일, 노동하지 않는 안식일, 여러 가지 것들을 말씀해 주셨는데 이런 이유를 제가 자세하게 말씀드린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안식 후 다음 날을 이 '무교절의 안식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이 무교절을 비롯해서 그것이 안식일이라고 언급된 부분은 없습니다. 제가 앞에 말씀드린 대로 이 매주의 안식일, 그리고 속죄일, 이 두 개만 '쉴 안식일'이라고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다른 절기에 대해서는 그냥 단지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매주 안식일과 속죄일 안식일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라고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무교절은 아무 노동도 하지 않는 날입니다. 이것은 완벽한 그 안식일은 아닙니다. 어떤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날입니다. 이것은 매주의 안식일과 다릅니다. 그때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무교절이 안식일이라고 불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안식일이라고 언급이 된다면, 그것은 반드시 매주의 안식일이 돼야 됩니다. 그래서 안식일 다음 날은 항상 일요일이 돼야 됩니다. 이것은 반드시 일요일이고,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일 아침에 부활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그리스도께서 목요일에 죽으셨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때도 역시 그리스도께서 주일 아침에 부활하셔야만 하는데요. 그래서 주님께서 목요일날 죽으셨다면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기술적으로 그분께서는 이제 나흘째 되는 날 살아나신 것이 됩니다. 하지만 금요일에 죽으셨다면 그래서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해서 그분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이 됩니다.
그리고 어떤 현명하신 분들은 저한테 와서 이렇게 질문을 하실 텐데요. 그것에 대한 답변도 제가 먼저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나가 사흘 낮 사흘 밤을 그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인자도 그와 같이 사흘을 그 땅속에 있으리라" 그래서 주님께서 금요일에 죽으시고 일요일에 부활하셨다면 그것은 단지 2박 3일입니다. 이것은 이제 우리가 보통 여행 패키지에 그렇게 하는 것이죠. 그냥 2박 3일입니다. 그래서 목요일에 죽으셔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여기 날짜가 부족하지 않느냐? 그래서 주님께서 목요일에 죽으셨다. 그런데 목요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3박 4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흘 3일, 3일 밤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정확히 3일 낮, 3일 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인자가 3일 밤, 3일 낮을, 땅 깊은 곳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의미는 무엇입니까? 마지막으로 결론은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에스더서에 가게 될 때에, 왜 또 에스더서를 말씀하시지? 이제 그 유대인들을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가서 왕에게 말해줘라.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짧게 줄여서 에스더는 이렇게 그 응답을 하게 됩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를 위하여 기도해 주기를 3일 밤, 3일 낮을 기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에스더서 8장 9절인데요. 그렇게 말했고, 그리고 기록하기를 이제 3일째 되는 날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에스더가 그녀가 말한 대로 그 왕 앞에 나아갔다면, 만약에 이제 3일 기도하고, 3일 낮, 3일 밤을 기도했다면, 나흘째 가야 되는데 3일째 그가 왕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유대인들이 3일 밤이라고 하는 표현은, 유대인들은 그것을 문자적으로 다 채우는 그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주어진 목적을 다 이루는 그 기간을 말합니다. 에스더가 사람들에게 3일 낮, 3일 밤을 기도해 달라고 했을 때 그것은 이 기도에 대한 목적을 다 이루는 기간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3일째 되는 날, 3일이 다 지나고서가 아니고, 그 3일째 되는 날 그는 왕 앞에 나갑니다. 요나는 3일 낮, 3일 밤을 큰 물고기 속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 물고기 뱃속에 있어야 되는 그 목적을 다 이루는 기간을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냥 그 목적을 다 지나고, 더 넘어서도 아니고, 적어서도 아닙니다. 그 요나가 그 뱃속에서 다 완성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 목적은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그가 그림자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인자가 3일 밤, 3일 낮을 땅 속에 있어야 된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리고 그 3일 낮, 3일 밤도 그리스도께서 이루셔야 되는 그 목적을 이루는 기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분명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째 부활하셨느니라." 그리고 베드로도 사도행전 10장에서 이렇게 설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사" 그래서 우리는 어떤 밤이 몇 번 지나가야 되는지를 그것을 살필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3일째 되는 날인지, 4일째 되는 날인지 그것을 염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께서 금요일에 죽으셨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이제 가톨릭이 말하고 있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금요일에 대해서 이제 좋은 금요일이다, 성 금요일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불행히도 그 말이 제가 말하는 것과 일치하는데요. 왜냐하면 실제로 주님께서 죽으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많은 형제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첫 열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 첫 열매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시고, 이제 다시 죽지 않는 첫 번째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나사로도 부활했습니다. 하지만 나사로는 다시 죽지 않았습니까? 복음서에서 임시적으로 부활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사 다시 죽음으로 들어가지 않는 첫 번째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사망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그 무덤을 이기시고, 그래서 그분께서는 장자시고 죽은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분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도 이제 부활의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제 곧 이 부활의 날, 우리는 그분과 같은 부활의 몸을 입을 것입니다.

제가 많은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지만 이제 4시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더 이상하다면 아주 너무 지칠 것 같아서 여기서 마치고자 합니다. 이제 이번 시간에 교제된 것으로 일단은 충분하리라 믿습니다. 주님의 뜻이면 내일 집회 시간에 오순절과 나머지 3개의 집회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께서 경청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외국 형제님 > 기드온 쿠 형제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속죄  (2) 2024.10.17
여호와의 일곱절기 3 : 오순절 -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2) 2024.09.25
여호와의 일곱 절기 1 : 개요  (3) 2024.09.12
찬송  (3) 2024.08.31
주의 만찬  (0) 2024.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