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형제님/기드온 쿠 형제님

여호와의 일곱 절기 1 : 개요

박이레 2024. 9. 12. 14:14

< 여호와의 일곱절기 1 : 개요 > 기드온 쿠 형제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과 함께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돼서 저의 큰 특권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에 목포에 처음 방문하신 분들이 있다는 것을 제가 알았는데요. 제가 그분들보다 저는 여기 벌써 두 번째니까 훨씬 나은 거죠. 이 시간에 여러분을 다시 뵙게 돼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 미리 알려드린 바와 같이 이번 세 번의 집회에 걸쳐서 우리는 '여호와의 절기'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실 이 주제는 이제 8일 동안, 9일 동안 하는 수양회에서 다룰 만한 그렇게 넓은 주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세 번에 걸친 집회 가운데서 짧은 시간이지만 이것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것은 자세한 부분을 너무 기술적으로 다루지 않고 우리에게 필요한 교훈이 되는 주제에 대해서 다루고자 합니다.
레위기 23장입니다. 시간상 전체를 읽지는 않고 1절부터 4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레 23:1-4).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제 7개의 여호와의 절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위하여 지킬 것을 말씀하신 절기입니다. 이것은 특별한 날이고 또한 거룩한 날입니다. 그리고 이 여호와의 절기는 레위기의 마지막 부분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각 부분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레위기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러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레위기의 시작 부분에서는 이제 희생 제사를 가르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첫 번째로 1장에 번제가 나옵니다. 소제가 나오고 계속 그 다른 제사들이 언급됩니다. 그래서 레위기는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오고자 할 때에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나와야 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는 하나님 앞으로 나올 때는 무엇을 가지고 나와야 되는지가 첫 번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내 위기를 계속 읽어 나갈 때에 그 중간 부분은 이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누가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계속해서 정결하게 유지해야 되는 그 중요성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 더럽혀진, 정결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어떻게 그들이 정결케 되는지를 말씀을, 방법을 제공해 줍니다.
그리고 이제 레위기 마지막 부분에 오게 되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데요. 언제 하나님 앞으로 나올 것인가를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즐기시는 그 특별한 절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굉장히 단순하게 말씀을 드린 거지만, 이와 같이 나누어서 레위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무엇을 가지고, 누가 나오냐? 그리고 마지막에는 언제 나올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우리가 최고의 것을 가지고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이 책의 서두에서 말하는 바입니다. 여기 나와 있는 짐승들은 값비싼 짐승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경배드릴 때 이런 짐승들을 가지고 나올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마다 이 자리에 모일 때마다 우리가 양이나 수소나 다른 암송아지를 가지고 나온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또 이 모임에게 아주 많은 비용이 들게 하는 것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이 모든 것이 이제 필요 없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진 원리는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가 최고의 것을 가지고 나오기를 바랍니다. 이제 그것은 더 이상 짐승은 아닙니다마는,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여전히 최고의 것을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젊음이라는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우리의 시간에 제일 좋은 부분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그냥 단지 자기 전에 30분만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그때가 보통 사람들이 성경을 읽는 시간이죠. 이제 그들의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은 자신의 일을 위해서 다 사용해 버립니다. 그리고 단지 자기 전에 1시간 또는 단시간만 성경을 읽는 데 사용합니다. 물론 읽지 않은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이죠.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최고의 순간을 하나님께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항상 우리가 그냥 일상적으로 가볍게 하나님께 나오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냥 자기 자신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서 아무런 감각 없이 나오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부정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이 이렇게 기록한 것은 놀라운 것이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를 씻나니" 참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계속해서 영원토록 우리의 죄를 씻고 하나님 앞에 우리가 나올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우린 이것을 항상 주의 깊게 살펴야 됩니다. 나는 내 시간을, 오늘 하루를 어떻게 깨끗하게 보내었는가?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언제 나올지 그것에 대한 기록된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러한 나이들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주 바쁜 세상에 시간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그의 직장, 그들의 사업에 대해서, 그런 많은 일들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리고 주중에 집회로 모여야 되는 그 시간도 있고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실질적으로 이러한 권면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그 날들을 여러분께서 마음대로 빼앗아 사용하지 않길 바랍니다. 기도 집회의 날은 하나님께 속한 날이고 그분께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 집회의 날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께 드려야 됩니다. 우리는 이 주일 아침, 만찬 예배 시간에 대해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도, 많은 사람들이 그날은 와야 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물론 하나님께 속한 날입니다. 하지만 다른 날도, 복음 집회 날도, 다른 집회의 날도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날은 내 날이고 나에게 구하라." 이 일련의 많은 날들을 그들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7개의 절기는 이것은 내 날이다." 이것을 나에게 주어라. 우리의 주 중에 많은 시간들을 우리는 우리가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특정한 날들, 이것은 반드시 하나님께 드려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레위기 책의 마지막 부분에 그 특별한 시기를 말씀하신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됩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 여호와의 절기와 관련돼서 세 가지 성경의 책 부분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이 레위기 23장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16장에서 다시 한 번 이 절기가 언급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28장과 29장에서 다시 한 번 이 여호와의 절기가 언급된 것을 우리는 읽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각각의 부분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제가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레위기 23장에서는 그 하나님의 절기의 '날들'을 강조해서 말합니다. 그래서 그 7개의 절기가 우리를 위해서 열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1년 중에 어느 날인지가 특별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민수기 28장과 29장에 보면 거기서는 이런 특정한 어떤 날을 언급하기보다는 그날 드려야 되는 희생 제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민수기 장을 살펴보게 될 때에 그 날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수의 '희생 제사'가 드려야 되는지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신명기 16장을 가서 보게 될 때, 그때는 어떤 날들이 아니라, 또한 어떤 희생의 제사들이 아니라, 신명기 16장에서는 바로 어떤 '장소'에서 그것을 해야 되는지를 강조해서 말씀합니다. 그래서 신명기 16장에서는 이제 그 장소를 하나님이 특별히 언급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날들이 하나님께 속해 있는 날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제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 희생 제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장소가 하나님께 드려진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성경의 구분이 개요적으로 제가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를 말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여호와의 절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 이스라엘은 농사를 짓고 사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래서 이 절기는 이 농사를 짓는 그 시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절기와 관련돼서 무엇을 심는 그 식물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절기는 이스라엘의 그 한 해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첫 번째 달에 해야 되는 것들이 있고, 그리고 이제 그 초실절을 얻고 난 후에 50일 후에 오순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달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달에는 세 가지 절기가 또 있습니다. 그래서 첫째 달에 3개가 있고, 그리고 하나가 있고, 그리고 뛰어서 또 3개가 절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3개는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입니다. 그리고 가운데 떨어져 있는 그 절기는 오순절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와 있는 3개의 절기는 나팔절, 그리고 속죄일, 그리고 초막절입니다. 그리고 이 3개와 한개와 3개로 이루어져 있는 이 시점은 농사 짓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첫 번째 세 개의 절기는 보리를 추수하는 것과 관련돼 있습니다. 그리고 따로 떨어져 있는 중간에 1개의 절기는 밀을 추수하는 것과 관련돼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머지 3개의 절기는 그 해의 마지막 부분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 마지막 절기인 초막절은 이제 다 모이는 그런 절기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모두가 모이는, 모두 다 거둬들이는 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 사람들이 모일 뿐만 아니라 많은 열매들이 거기에 모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세 개는 보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있는 것은 밀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개는 그 열매를 거둬들이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그들의 추수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도 그들이 거둬들인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될 때에 그들은 이제 농부들이 됩니다. 그들은 농사짓는 사람들이 됩니다. 이것은 애굽에서 그들이 살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들은 애굽에서는 건축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그들은 노예였습니다. 물론 애굽에도 농사짓는 것이 있습니다. 애곱은 아주 비옥한 땅입니다. 왜냐하면 나일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나일강은 1년 내내 흐르는 강입니다. 그래서 애굽에는 기근이라는 게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강을 아주 풍요롭게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됐을 때, 거기는 물론 요단강이 흐릅니다. 그런데 사실 요단강은 이제 강이라고 부르기도 좀 어려운 그런 강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 오는 것에 의존해야 됩니다. 그들은 농사짓는 이제 사람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강이 아니라 비에 의존해야 됩니다. 우리는 예언에서 많이 이런 표현을 보게 됩니다. "이른비와 늦은비" 하나님께서는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충성되게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들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약속하십니다. 하지만 그들이 우상을 섬긴다면 그 비를 멈추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농사에 그 결실은 그들의 순종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절기는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결실케 하신 것을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이 일곱 절기 가운데 그들은 그들의 충성됨을 다시 기억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 결실케 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실하게 모든 것을 공급하십니다. 저는 단지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해서 우리의 은행 계좌에 많은 돈을 얻게 되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러한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나 복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상급은 그분과 더욱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해 주신다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깊은 확신이 그분의 가장 큰 보답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교제를 누리는 순간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된다면 반드시 우리는 그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질적으로 이 절기를 누린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것을 요시야 왕 때까지 그들은 누리지 못합니다. 그들의 왕이 유월절을 다시 부흥시키십니다. 참으로 그때, 그 역대기 기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무엘 이후로 이와 같이 이 절기를 지킨 적이 없었다." 그 솔로몬 왕 이후로, 그 첫 번째 이후로 이제까지 지킨 적이 없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 때부터 요시아 왕 때까지 그들은 그 절기를 지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여러분들은 이 성경에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속죄일을 지켰다는 그 기록을 보신 적 있습니까? 사무엘서에서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열왕기상, 열왕기하에서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역대기에서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왕이 이제 그 속죄일을 지키는데 이렇게 하자라고 누가 그랬습니까? 제가 아는 한 그 성경의 기록 가운데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속죄일을 제대로 한 번이라도 지킨 적이 있는가 의심하게 됩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이것을 기쁘게 즐기도록 주신 것인데, 그들의 역사 가운데서 단 한 번도 그것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입니다.

우리가 레위기 25장을 오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땅의 안식년을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것은 단지 이제 7일 만에 지키는 안식일이 아니라, 그 한 해를 그 땅이 쉬는, 7년 만에 그 땅에 파종하지 않는 해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7년째 되는 해에는 그 땅을 갈아서는 안 됩니다. 그냥 그 땅이 쉬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먹지 못하는 그 곡식을 얻지 못할 것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땅에서 너희를 위해서 곡식을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해에, 또 그다음 해에도, 그다음 다음 해에도 먹을 것을 내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하지만 그 땅의 안식년을 지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기록하기를 바로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되어 갔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식년을 70번이나 그들은 하지 않은 것입니다. 490년간이나 그 안식년을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70회나 걸쳐서 그들이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그 동일한 횟수만큼 바벨론에 포로되어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의 이 절기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안식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그 땅을 갈고, 일하고, 그 땅을 경작하고, 일하고, 그것만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실 1년 내내 일하지 않고 있는 것은 많은 믿음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이 안식년에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은 그냥 집에서 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 땅은 너희를 위해서 곡식을 낼 것이다. 단지 나만 믿어라.
그런데 여기에 이제 두 농부가 왔다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제 여기에 6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많은 열매를 맺도록 일합니다. 그리고 이제 7번째 해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어떠한 경작도 할 수 없는데, 어떡하지?' 그래서 그는 6년째에 이제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더 많이 밭을 갈고 일을 합니다. 그래서 그 6년째에 100%보다 더 많은 것을 낼 것을 기대하면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일을 하지 않아도 그 이후에 3년 동안 먹을 수 있는 곡식을 얻을 수 있도록 일합니다. 그런데 6년째 됐는데 날씨가 변했습니다. 그는 300%를 얻는 게 아니라 단지 50%만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아, 어떡하지?' 이렇게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그는 7년째 되는 해에 그 경쟁을 안 하고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와 자기 가족들을 위해서 이제 중요한 결정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아내와 그 아이들이 이제 그 해에 어떻게 살 것인지를 걱정합니다. 그 순간에 그는 하나님께 의지해야 되는 많은 큰 믿음이 요구되는 순간입니다. 7년째에 일하지 않을 것인가, 하지만 일을 할 것인가? 하지만 불행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그 7년째 일하러 나간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상사가 "12달 그냥 놀아라. 내가 그래도 월급을 주겠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아주 기쁘게 "아유, 좋습니다." 할 것입니다. 물론 이 땅에는 그런 생사는 없죠. 하지만 하늘에 그런 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그들이 계속해서 먹고 살 수 있도록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 중 누구도 그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제 2024년 올해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아주 많이 열심히 일을 합니다. 통역사 형제님이 한국 사람들이 세상에 어떤 사람들보다 가장 많은 시간 일한다고 해주었습니다. 저녁 9시까지 일을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먹을 것을 어떻게 구해야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은 단지 우리가 우리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우리가 먹고 사는 것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일하기 때문에 그렇게 초과하고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충분히 가지고 있는데도 충분한 것 이상으로 충분하도록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일합니다. 우리는 단지 편안한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고급지게 살려고 일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그 일에 파묻히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가운데 집회도 빠지고, 여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집회 빠지면서까지 일을 합니다. 여러분께서 그 순간에 상사에게 이렇게 말씀할 수 있겠습니까? 수요일 날 그때 말씀 읽기와 기도 집회가 있다면 "나는 그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집에 지금 이 시간에 가야 됩니다." 그 상사가 지금 이후에 어떤 일이 있다고 말할지라도 나는 그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지금 집에 가야 됩니다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해서 우리가 실제 삶에서 어떤 선을 긋는 것은 굉장히 많은 믿음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상사와 잘 지내려고 너무나 많이 노력합니다. 이제 우리의 그 목표를 위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내 자신의 힘만 가지고 그렇게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 내 자신의 힘으로만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속한 나를 나에게 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안식년을 그것은 내 것이니 나에게 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내가 너를 축복하겠다. 그리고 2024년 오늘도 주님께서는 그 나를 나에게 달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그분과 그분의 속한 그 날들을 방해하는 그 날들을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연말에 여러분이 얼마나 더 많은 보너스를 받을 것인지, 또는 이 일로 말미암아 내가 상사와 어떤 관계를 어렵게 만들 것인지, 그런 것에 개의치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시고 그분만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절기가 그 농사짓는 시기와 연관된 것은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기 위함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신뢰하고 있는지,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에게 신실하게 대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 절기의 목적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 7번째 되는 해에 안식하도록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리고 또한 그 안식일에 7번째 날에 왜 하나님께서는 쉬라고 그것을 거룩하게 구별하셨을까요?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가 쉬도록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휴가를 주고 계신다는 생각은 놀라운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 힘이라는 것은 특별히 성경에서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다음 시간에 그 의미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 쉰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시간에는 이렇게 간단히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 절기에서는 단지 사람만 그 쉰다는 그 유익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 이 절기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23장에서는 여러 번에 걸쳐서 "하나님께" "하나님께 향하여"라고 말하고 있는 그런 표현들이 사용이 됩니다. 6절에 보면은 "여호와의" "여호와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2절의 마지막 부분에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그리고 13절 중간에 "여호와께 드리어 화제를 삼아" 그리고 16절에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리고 17절 마지막 부분에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이것은 이 장의 마지막까지 계속해서 반복되는 표현입니다. "여호와께" 그래서 이 절기에서는 사람을 향하여는 그 쉬는 것이 주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또한 하나님께 향하여는 그분께 드리는 헌신이 드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 특별한 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옵니까? 우리는 어제 진해에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그 동기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특별히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만찬 예배에 그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오는 사람들의 동기를 말하고 있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일 아침에 나올 때 자기의 양심을 그냥 만족케 하기 위해서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주중에 집회는 다 빠졌기 때문에 주의 그러한 동기로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좋은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 나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두 번째 우리의 목표가 동기가 돼야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오늘 아침에 이 자리에 모였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 자리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온 것이 첫 번째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위해서 이 자리에 나옵니다. 우리의 경배는 그분을 향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속한 절기고 너희들이 이 자리에 나온 것은 나의 기쁨을 위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한 가지 면에서 이 절기를 즐깁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교제하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삼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그 시간을 찾지 못할 때에, 우리가 그분과 교제를 나누는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진다면,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우리와 함께 교제하는 것을 원하시고 다시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로 이끌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장막을 만들라. 내가 그곳에 너희와 함께 거하리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 이스라엘 백성들과 가까이 있고자 하시는 마음입니다. 이 장막은 그러한 하나님께서 가장 가깝게 이스라엘 백성들과 계시게 하는 그러한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즐거움을 위하여, 그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우리는 이곳에 가까이 오는 것입니다. 단지 또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것을 온전히 다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우리 가운데에 우리 서로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그래서 이 여호와의 절기에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그리고 또한 이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가운데서 즐거움을 누립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그 큰 무리가 그 절기에 보이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을 얼마나 큰 기쁨을 가지고 계시겠습니까? 그래서 이 절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1시가 다 되었는데요. 제가 5분만 더 사용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 이어서 교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이 절기가 이루어지는 그 부분을 레위기에 어느 부분에 기록되어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그 절기에 농사짓는 것과 관련된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절기의 목적에 대해서 사람들을 향하여, 또한 하나님을 향하여는 어떤 것인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절기가 예언적인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아마도 일주일 내내 말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레위기는 예언서가 아닌데라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예언들은 이사야서에 있지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요엘서라든지, 스가라서든지,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예언이 아닌가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레위기 23장이야말로 그 모든 예언서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되는 그런 부분입니다. 제가 간단하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각각의 절기는 그 한 해의 특정한 날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첫 번째 달의 14번째 일입니다. 그리고 무교절은 15일부터 7일 동안 즐기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초실절은 안식일 다음 날 지키는 절기입니다.
저는 kk 모임에서 이제 성경 공부 반에서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런데 주일학교 학생들은 주일학교 반으로 가고 이제 어른들이 남아서 저와 함께 성경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어른 성도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는 시간이 있는데요. 그중에 또 젊은 성도님들도 계시죠. 그리고 항상 그분들에게 이 절기는 어느 날인지 그들에게 질문하곤 합니다. 여러분에게 또한 이렇게 물는다면 아마 잘 대답하실 수 있겠습니다. 속죄일이 어느 달 며칠에 있습니까? 그 성경 학도라면은 반드시 이 절기의 그 날이 어느 날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정확하게 유월절 날에 죽으셨습니다. 첫 번째 달 14일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정확하게 초시절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에 성령께서 강림하십니다. 그것은 정확하게 오순절 날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러한 사건들이 정확하게 이 여호와의 절기에 맞춰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4개의 여호와의 절기가 이미 다 성취된 것을 보았습니다. 이 4개의 절기는 특별히 봄의 절기라고 불려집니다. 그리고 나머지 3개의 절기가 있는데 이것은 가을의 절기라고 불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세 개의 가을 절기가 아직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개의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예언에 따라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첫 번째 절기는 정확히 말씀하신 그 날에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 달 14일에 그 유월절날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바로 그 오순절 날, 그 날에 정확하게 강림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이 사건들이 정확히 그날에 이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정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냥 대충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러신 분이라면 나머지 3개의 절기도 정확하게 그렇게 이루어질 거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이 정확하게 이 세 개 날의 매칭돼서 이루어질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언을 공부할 때에, 그래서 우리는 그 나팔절이 일곱 번째 달 첫 번째 날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달 열흘째에 그 속죄일이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절기인 그 초막절이 일번째 달 15일에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미래의 그 날에 매칭돼서 이루어질 사건들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성경학자들에게 이 어려운 그런 주제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 예언에 대해서 연구를 한다면 반드시 이 날과 관련돼서 생각을 해봐야 됩니다. 저는 일곱 번째 날 그 첫째 일에,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강림하시는 날과 같은 것이라고 제안을 드립니다. 그때는 휴거가 아니고 이 땅에 강림하시는 날입니다. 그때 나팔이 불릴 것입니다. 이것은 데살로니가 전세 말하고 있는 그 휴거 때 불리는 나팔 소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계시록 19장에 나와 있는 나팔 소리입니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그분께서 오실 때 불리는 나팔 소리입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의 절멸할 위기 가운데 있는 시기입니다. 이 세상에 그들을 죽이고자 하는 대적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이제 나팔 소리가 불리는 나팔절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성도들을 위해서 이 땅에 강림하시는 날입니다. 그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검으로, 그 말씀으로 멸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10일 후에는 이제 속죄일이 이루어집니다. 이제 이스라엘 나라가 공식적으로 주님을 인정하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속죄함을 받는 것입니다. 스가랴 12장은 그들이 모두 애통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찌른 자를 볼 것이요" 이제 보좌의 왕으로 계신 그분을 이스라엘 나라가 영접하게 될 것이다. 그 이스라엘 나라적으로 그들은 회개하고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 역사 가운데 우리가 기록된 것을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속죄 일이 처음으로 마침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 앞으로 그들은 나오게 됩니다. 이제 15일, 이제 초막절의 날입니다. 5일 후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 천년 왕국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첫째 날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더 말씀을 드리면 내일 저녁에 말씀드릴 것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일주일 내내 말씀드릴 수 있는 그런 주제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세개의 절기, 나머지 절기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질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시간에 단지 이제 개요적으로 이렇게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서는 이 여호와의 일곱 절기를 연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주제인지를 아셨을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밀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루 빠르게 오시거나 하루 늦게 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 죽음에 가실 때에, 많은 경우에 사람들이 그분을 돌을 던져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복음서에서 주님께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었다."라고 여러 번 말씀하시는 것을 봅니다. 어느 누구도 그분의 죽음을 앞당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가 오자 어느 누구도 그분의 죽으심을 뒤로 늦출 수 없었습니다. 이 베드로조차도 그 십자가를 면케 해달라고 주님께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정밀하신 분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이것을 보았는데요. 한국에서 이 정밀하신 하나님을 따라 계속해서 그분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을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에서 성도님들이 정확하게 시간을 맞춰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어떤 분은 늦는 분도 있겠죠. 그런데 이제 말레이시아 성도님들보다 한국 성도님들이 더 정확하게 시간을 맞추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5분 늦게 오시는 분들은 꼭 5분 늦게 오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5분 늦게 오는 것을 아주 정확하게 맞추고 계십니다. 그렇게 5분 뒤에 오는 것을 조금 앞당긴다면 정확히 시간을 맞출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이 늦는다는 것은 어떤 일이 발생해서 늦는 게 아닙니다. 그 듣는 것은 그분의 태도입니다. 항상 똑같은 사람이 항상 그렇게 늦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확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백성들도 그와 같이 정확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늦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늦지 않길 바랍니다. 물론 어떤 특별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그런 교통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항상 5분 늦고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교통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정확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도 그와 같이 정확한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