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싱 모임 수양회/2017년 여름 수양회

< 사무엘의 성장 >

박이레 2021. 7. 21. 00:50

2017년 7월 26일 수요일_<뉴욕 플러싱 수양회>

강사 : 한봉래 형제님

< 사무엘의 성장 >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4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5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가로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6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7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8 여호와께서 세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9 이에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1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2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13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15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16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가로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17 가로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18 사무엘이 세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19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20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21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
(삼상3:1-21, 개역한글)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 쳤더니 (삼상4:1, 개역한글)

사무엘상 3장은 사무엘이 어떻게 성장해가는가 하는 과정을 기록해 가고 있습니다. 모임에서 어린영혼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하나님이 세우신 일을 감당하는데까지 자라나갑니다. 그 과정이 3장에 압축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 가는가하는 네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잘 아시는대로 사무엘은 전환기의 사람입니다. 그는 마지막 사사입니다. 그리고 첫번째 선지자이고 킹 메이커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가나안땅을 정복했을때 모세가 세운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이 통치합니다.
지금 사무엘서를 보면 제사장이 타락해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나오는데 그가 하나님께 징계받는 과정이 나옵니다. 그와 그 아들 둘이 한날에 동시에 죽습니다.

제사장이 타락하는 이유는 그 제사장 직분이 혈통으로 이어져 가기 때문입니다.
아론의 후손들이 제사장이 됩니다. 저희들이 아는대로, 혈통에 의한것은 그 다음세대가 영적인것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저희들의 한국의 역사에서 잘 알수 있습니다만, 조선시대, 고려시대 개국하고 그 아들들이 왕이 됩니다. 그래서 훌륭한 왕도 나오지만 이상한 왕들도 나옵니다. 혈통이 영적인것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제사장이 혈통으로 이어져갔을때 생긴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세웁니다. 선지자는 혈통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불러서 말씀하시고 그리고 선지자가 그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신선한 말씀이 백성들에게 가감없이 전달되는 선지자를 일으키십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이 실패한 제사장 밑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그는 나쁜 조건 밑에서 자라납니다. 그가 어릴적부터 뵙는 엘리 제사장은 영적인 눈이 어두운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납니다. 우리가 우리 주위의 영적인 환경에서 변명할수 없습니다. 우리 주위의 영적인 상황이 나쁘다 해도 내가 하나님의 합당한 영적인 사람으로 자랄수 있습니다. 그 증거가 사무엘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실패를 보겠습니다.
그 첫번째, 2장을 보시겠습니다.

13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이러하니 곧 아무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14 그것으로 남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취하되 실로에서 무릇 그곳에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뿐 아니라
(삼상2:13-14, 개역한글)

제사장이 하는 대표적인 사역이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가져오는 짐승을 피를 붓고 그 고기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 드리는 일입니다. 제사장의 사역에서 실패합니다. 우리로 치면 예배가 엉터리인것입니다.
예배시간에 간구하기도 합니다. 이런것입니다.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삼상2:22, 개역한글)

두번째 제사장의 거룩에서 실패합니다.
그가 일에서 실패하고 그 자신이 거룩하지 못합니다.

24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25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삼상2:24-25, 개역한글)

세번째, 권위에서 실패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합당하게 징계하지 못하고 아들도 아버지의 말에 합당하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권위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실패는 세가지 측면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첫째 제사장의 사역에서 실패하고 제사장의 거룩이 지켜지지 않고 제사장의 권위가 무너져 있습니다.
이것을 배경으로 사무엘이 자라납니다.

사무엘이 성장해 과정을 네가지로 볼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일로 시작합니다. (1-10절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법을 배웁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거룩을 배웁니다. (11-14절)

세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하는 것을 배웁니다.(15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줄을 알았더라.>

네번째로, 그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인정받습니다.

처음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것을 보겠습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을때 사무엘은 엘리가 부른줄 알고 엘리에게로 갑니다. 하나님이 네번 말씀하십니다. 네번째는 "사무엘아 사무엘아"두번 부르십니다. 저희들이 성경에서 이름이 두번 불릴때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두번 부르십니다. 사무엘은 맨 먼저 이 음성이 사람의 소리인지 하나님의 소리인지 구분해 내는 방법을 배웁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사람의 말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인것을 구분해 냅니다.

신약으로 가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를 보면 아주 감동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았습니다. 이유는 사도바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전한것입니다. 사람이 전한것입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그 말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 더 보겠습니다. 베레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때,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들을 이스라엘 백성을 만드실때 의도하셨던 사람이 신사적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상과 모양은 무엇일까요?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것이 첫번째, 천지를 말씀으로 지으십니다. 그 다음 아담이 각종 짐승의 이름을 짖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속한 첫번째것이 말을 할줄 아는 것입니다. 짐승들의 경우 자기들의 신호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짐승은 책을 쓰지 않습니다. 책은 사람에게만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사람에게만 있는것이 결혼하는것입니다. 짐승은 결혼하지 않고 짝짖습니다. 후손을 남길뿐입니다. 그래서 첫번째 결혼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이 두가지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사람은 말할줄 알고 결혼합니다.

사람이 말을 한다는것은 중요합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의 속을 알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끼리도 대화가 잘 되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것은 사람이 하나님과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사람이 그것을 듣는것입니다. 들은 사람이 또한 하나님께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특징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기본특징을 상실한 것입니다. 또 하나 어떤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이 창조한 모습에서 이탈해 있는것입니다.

베레아 사람들이 신사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의도한,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때 마음에 품었던 것을 이들이 합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했을때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아멘하고 믿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동사가 수동태로 되어있습니다. 권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데살로니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베레아는 좀 다릅니다. 사도바울이 동일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자리에서 믿지 않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이 말이 성경과 일치하는가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습니다. 믿는다는 동사가 능동태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결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신사적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의도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면 듣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지 기준이 있습니다. 성경과 맞으면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말인지, 하나님의 말씀인지 분별해 냅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들이 신사적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의도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무엘도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사람의 음성인지를 분별해 내는것을 제일먼저 배웁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받는지 보겠습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와같은 마음자세를 가진 사람이 분별할수 있습니다. 이와같은 표현이 구약성경에서 여러번 나옵니다. 대표적인 세사람만 골라보겠습니다.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아들 이삭을 내가 지시하는 산에 가서 번제로 드리라> 그때에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또 이와같은 표현이 어제 보았던 모세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출애굽에 사용하시기 위해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떨기나무 가운데 불꽃으로 그의 주의를 끕니다. 그것을 보고 그가 오자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이렇게 말합니다.<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말씀하옵소서> 또 하나는 이사야서 6장에 나옵니다. 웃시아 왕이 죽던해에, 웃시아는 이스라엘을 강대국으로 만든 왕입니다. 그가 교만해져서 제사장 일을 하려다가 문둥병이 걸려 죽습니다. 이사야가 고민중에 성전에 들어갑니다. 그때 주님의 영광을 봅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영광이라고 요한복음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그때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 말을 사무엘이 하는데 이 말은 첫째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여기서 말씀하시는지 아는사람이, 순종하는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 나는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셔도 순종해야 하리라고 아는 사람이 하는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사랑하는 이삭을 기꺼이 죽여야 합니다. 모세는 자기가 도망나온 애굽 왕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가 하기 부담스러운 일을 맡아야 합니다. 이사야는 그가 평생 사역해도 그 열매가 없을것입니다. <너느 백성에게 가서 전해라 너희가 들어도 듣지 못하며 보아도 보지 못하리라> 이사야는 평생동안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사야 53장을 구원의 증거로 잡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자기 평생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것을 알면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그와같은 관계로 서있는 사람들이 하는말입니다.
<주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 말씀하옵소서>

저희는 하나님의 음성인지 무엇으로 구분합니까?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첫번째는, 여러가지 부가 설명이 필요합니다만, 하나님은 성경으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때에 그 성경의 문맥속에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뜻들을 이해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음성으로 들을수 있습니다.

제가 약간 간증을 하겠습니다. 제가 마포모임을 개척하기전에 제가 한달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눈의 망막이 얇아 찢어졌기 때문에 수술을 해서 입원해 있었습니다.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모임도 가지 못하고 성경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거기 있으면서 제가 생각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구원받고 구원받은 후 저의 영적인 삶을 인도해 오셨는가를 쭉,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이 저의 인생의 중간결산이었습니다.

저는 아주 단순하게 복음을 들었습니다. 모임에서 들은것이 아니고 선교단체에서 들었습니다. 간단하게 죄인이고,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거리가 생겼는데 예수님께서 다리를 놓으셨고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단순한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후, 처음 구원간증을 하고 그 다음 구원간증을 계속해나가면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셨는가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인생을 생각해 볼때 내가 복음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 복음을 설명해 낼수 있고 내 인생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시간동안 제가 구원받고서도 10년을 교파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많이 괴로워 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없는 것들을 들여왔기 때문입니다. 신학을 하지 않으면 강대상에 설수 없고 어떤 사람이 장로인데 일년 결산하기 위해서투표해서 결산을 통과시키는것을 보면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모습인가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제가 나가던 교회가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장로교입니다. 그리고 보수적이라고 하는 총회장도 하신 분이 목사로 있는 교회에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에 공허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것을 버리고 "주님 저에게 교회를 보여 주십시오" 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모임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임에서 모임생활을 한 후에 저는 이렇게 결론지었습니다. '나는 교회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구원받은 후에도 교회에 다니지 않고, 또 교파를 다니고 그리고 율법에 다시 종노릇 하고 또 어떤 제도에 다시 종노릇해서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모임가운데로 인도하셨다. 이것이 제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그 결론에 의거해서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퇴원해서 건강한 모습으로 활동할수 있다면 제가 이 두가지를 전파하겠습니다. 제 생애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개척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떠한 큰 단어보다도 큰 문맥속에서 하나님이 어떠한 사람을 왜 그 시점까지 인도하셨는가, 그 다음 스탭이 무엇인가를 성경을 통해 분별하고 알아내고 순종해 나가는 것입니다. 첫번째, 성경을 통해서 압니다.

두번째, 다른 그리스도인의 말을 통해서 압니다.
내가 성경을 읽을뿐 아니라 강단을 통해서 말씀이 전파됩니다. 다른 형제님이 말씀을 교제합니다. 그때 그 말씀이 나의 마음을 내가 깨닫지 못했던 것을 나의 삶의 어떤 방향을 지시할수 있습니다. 다른 그리스도인의 말씀을 통해서 혹은 다른 그리스도인과의 상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세번째, 하나님이 내 양심을 통해서 말하십니다.
구원받을때 우리에게 생긴 선한 양심이 있습니다. 깨우쳐진 말씀으로 깨끗하게 된 양심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네번째,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것이면 하나님이 문을 여십니다. 문이 닫힌다해도 그는 실망하지 않고 열때까지 기다립니다. 우리는 이렇게 네가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습니다.

그다음 사무엘은 두번째, 거룩을 배웁니다.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이후에 하나님이 엘리 제사장의 집을 심판할것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실수 없습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 더 많이 요구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삼상2:30, 개역한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소홀히 하실것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을 하나님이 존중히 여기실것입니다. 이 원리를 사무엘이 배웁니다.
엘리 제사장 집에 대한 심판을 그가 받는것은, 그리고 엘리 제사장의 집이 심판을 받을때 언약궤를 빼앗깁니다. 그리고 두 아들 홉니와 비느아스가 죽고 그 소식을 듣고 엘리 제사장도 죽고 며느리도 죽습니다. 그리고 아주 비극적인 말을 합니다.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라고 합니다.

언약궤를 빼앗기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고 하는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게 이보다 비극적인 일은 없습니다. 이와같은 비극이 일어났을때 30절의 말씀은 이 일은 배후에서 하나님이 허락해서 일어난 일이라는것을 인식시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되었을때 이스라엘은 이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렸다' '우리는 이제 끝이다'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포로로 가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나님은 다니엘을 세우십니다. 그들이 포로로 끌려간 나라의 총리가 다니엘입니다. 유대인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왕궁에는 다니엘이 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는, 그들이 그발 강가에서 집단적으로 촌락을 이루어 살고 있을때 그들 가운데 에스겔 선지자를 일으키십니다.

마찬가지로 언약궤가 빼앗기게 된 이 비극적인 사건을 말씀해 주시면서 사무엘의 마음속에 준비시킵니다. <거룩하라>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으면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면 댓가를 받게 됩니다.

엘리 제사장의 경우에, 육신적인것이 영적인 것에 들어오면 안됩니다. 아들이 잘못하면 혈연관계라 해도 제사장 직분에서 폐위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아들이라도 놔둡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징계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사무엘이 봅니다.

세번째,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엘리 제사장집에 내리겠다고 한 심판의 세세한 내용을 자기 아버지같은, 자기가 계속 존중해 온 이분에게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사람은 사람의 낯을 보지 않고 전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그랬습니다.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면책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도행전 20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거리낌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 너희에게 전했다" "이제 나는 너희들의 피에 대해서 깨끗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로 치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이스라엘 가운데 인정되기 시작합니다.
일꾼은 혜성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일꾼은 우리 가운데서 그 성장과정을 우리가 다 보면서 인정하게 되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세웠는가를 우리가 다 알면서 하나님이 세웠기 때문에 그를 인정하는 과정을 다 밟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일어난 과정을 잠깐만 보겠습니다.
첫번째, 사무엘은 하나님께 드려집니다.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어머니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 (삼상2:18, 개역한글)

두번째, 여호와를 섬기는 것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한나를 권고하사 그로 잉태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삼상2:21, 개역한글)

세번째, 이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살펴본대로 3장 10절에서 드디어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것을 배웁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사야 55장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말은 반드시 그 뜻한바를 이루리라> 그것을 보고, 그것을 통해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면 이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신뢰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지기에 사람들은 사무엘을 신뢰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인정되기 시작합니다. 저희들 가운데 그 다음세대의 일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어떻게 일어납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사람의 음성과 구분해내는 법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에 대해서 그 마음에 진지하게 느끼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낯을 보지않고 하나님앞에서 교제하는 법을 배워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고 이와같은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사람들과 성도들에게 인정받고 사역을 시작하게 될것입니다.

이런일들이 저희들 가운데 일어나서 계속해서 말씀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교회가 주님 오실때까지 이땅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