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4일 월요일_<뉴욕플러싱 수양회>
강사 : 한봉래 형제님
< 한알의 밀 >
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짜온대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요12:20-26, 개역한글)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요12:32-33, 개역한글)
요한복음 12장은 흔히 말하는 고난주간입니다. 주님께서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박히신다면 그 주간에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고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오시고 예루살렘 성에 매일 오셨다가 가십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는것이 두번의 사건이 참으로 특이합니다. 첫번째는 주님께서 나귀를 빌려 입성하십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입성하신 것입니다. 제자들도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주님께서 다락방을 빌리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최후의 유월절을 잡수시고 만찬예배를 제정하십니다. 이것이 이 고난주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고나서, 헬라인 몇사람이-이스라엘 하나님을 믿기로 개종한 외국인- 예루살렘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 면담 신청합니다.
그것을 빌립에게 신청합니다. 아마도 그렇게 한 이유가 그의 이름 때문일 것입니다. 빌립의 이름이 헬라식 이름입니다. 헬라의 유명한 왕이 알렉산더인데 그 왕의 아버지 이름이 빌립이었습니다. 그래서 헬라인들이 어떻게 줄을 달아서 열두제자 중 빌립에게 접촉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한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빌립은 이와같은 부탁을 받고 주님께 말씀드려야 하는데 주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실지 추측하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거절하실지, 그런말을 전하느냐 하실지 알수 없어서, 이런부분에 관해서 분별력이 있는 제자와 의논합니다. 그가 안드레 입니다.
열두제자를 보면, 안드레는 열두제자 중 항상 전도자 입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안드레가 구원받습니다. 주님께서 제일먼저 부른제자가 사도요한과 안드레 입니다. 침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양이로다>라고 말합니다. 또 그다음날도 말합니다. 그랬을때 침례요한의 두 제자가 침례요한이 '나를 따르지 말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로 알아듣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랐을때 예수님께서 뒤를 돌아보시고 물으십니다. <너희가 무엇을 구하느냐> 그들이 대답합니다. "주님 어디계시오니까" 그리고 그날 주님 계신곳에 가서 이야기하고 구원받습니다. 그 구원받은 시간이 열시입니다.
그 두제자가 사도요한과 안드레입니다.
최초로 주님을 만나 구원받은 사람이 사도요한, 안드레입니다. 그리고 안드레가 구원받고 제일먼저 한것이 베드로를 불러온것입니다. 안드레는 전도자입니다.
안드레를 통해서 두번째로 알수있는 사건은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주님께 수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 왔는데 날은 저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사람들을 각각 보내자고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너희가 먹을것을 주어라"고 하십니다.
그때 두 제자가 등장합니다. 그 중 하나가 빌립입니다. 빌립은 계산합니다.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계산해보니 한사람씩 조금만 먹게 할찌라도 이백데나리온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 무리 가운데 먹을것을 가진 한소년을 찾아내 주님께 데려온 사람이 안드레 입니다.
안드레는 항상 믿지않는 사람들,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 중의 누군가를 접촉해 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빌립은 이 헬라인들,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 주님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주님의 태도가 어떠한 것일지에 대해서 전도쪽 은사가 있는 안드레에게 물어봅니다. 안드레는 주님이 긍정적으로 대답하실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두사람이 예수님께 갑니다.
그리고 말씀드립니다. "헬라인 몇사람이 주님을 뵙고자 하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않으면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요한은 이렇게 줄을 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방금전에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산나라고 부르며 주님을 환호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깔고 온 성이 예수님을 긍정적으로 맞이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음성과 환호가 곧,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말로 변할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주님을 보려고 하는 헬라인들에게 대답하십니다. 주님이 죽을것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한알의 밀' 이야기를 하신 것입니다.
한알의 밀에 대해서 잠시 설명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의 밀은 주님입니다. 주님이 죽지 않으면, 십자가를 지고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는 대속의 죽음을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지않고 하늘로 올라가시면 하늘은 주님을 받을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죽지않는다 할찌라도 하늘은 주님을 환영할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원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성경을 찾겠습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행3:21, 개역한글)
하늘이 우리 주님을 영접하고 환영하고 주님이 계신것을 기뻐하는것을 마땅하게 여깁니다.
한알의 밀이 죽지 않는다 해도 주님께서 이땅에서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 해도 주님은 하늘에 올라가셔서 영원한 영광속에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사람의 죄가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두번째로 말씀하십니다.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주님께서 만일 십자가에서 죽으시면 그 죽음은 죄없는 유일하신분이 죽으시는 것입니다.
모든사람이 죄인이므로 자기 죄로 죽는것입니다. 그래서 각 사람은 자기죄로 죽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죽을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죄가 없습니다. 주님이 죽으면 자기 죄로 죽는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죄를 범한적이 없고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죽습니다. 왜요? 온세상 죄를 지고 대신 죽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세상 죄를 대신 담당하시는 죽음을 죽는다면 이제 많은 열매가 나올것입니다
첫번째 열매는 교회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피흘리신 죽음은 나의 죄를 위한것으로 믿고 죄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앞으로 오는 많은 교회의 성도들이 그 열매입니다.
교회에 대해서 성경은 두가지로 말합니다. 먼저 히브리서 2장 10절을 찾아보겠습니다.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2:10, 개역한글)
<많은 아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교회에 속한 성도들입니다. 그들이 영광에 들어가게 될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만들어내는 결과들입니다.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로마서 8장 29절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29, 개역한글)
그들은 예수님과 동일한 생명, 동일한 아버지에게서 나와서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그 형제중의 맏아들이 되시는 것입니다.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셨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많은 사람들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영광 가운데 주님을 닮았기에 주님과 같이 영광에 두시고자 하는것이 창세전 아버지의 계획이었습니다.
이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시는 것입니다. 그 첫번째 열매가 교회 입니다.
두번째 열매는 이스라엘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실때 환호하고 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받기 전에 자기들의 죄가 먼저 처리되야 함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 사실을 지적하실때 아브라함의 후손이기에 자동적으로 보호받는것이 아니고,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말하지 말고, 하나님께서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후손을 만들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죄인인것을 알고 그 죄문제를 해결해야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을 지적할때 그들은 예수님을 죽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피는 훗날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오게 할것입니다. 이제 교회가 시작되고 그 교회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것을 이스라엘이 시기하여, 그 놀라운 복을 이방인이 받는것을 시기하여 회개하여 이스라엘이 돌아올 날이 올것입니다. 그들이 돌아올수 있도록 그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주님의 십자가 입니다.
그들이 이사야 53장을 외칠것입니다. 이사야 53장은 주님이 지상재림하실때에 회개하는 이스라엘인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들은 십자가를 보고 그렇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오는 이스라엘은 이제 고백할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찔리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었다" 이렇게 애통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돌아오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한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세번째, 천년왕국때 입니다. 지금은 이방인이 예수님을 뵙고자 했습니다. 이 일이 천년왕국때 일어날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슥8:23, 개역한글)
이것이 천년왕국에 대한 예언입니다. 지금 헬라인이 제자들에게 주님을 뵙고자 했던 이 요청을 천년왕국때에 이방인들이 이렇게 할것입니다. 그 근거를 마련하는 죽음입니다. 그래서 많은 열매가 맺힐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교회를 탄생시킬것입니다. 많은 아들들이 영광에 들어가며 주님을 닮은 아들들이 나올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이스라엘이 회개하며 이사야 53장을 외칠것입니다. 그리고 천년왕국의 이방인들이 주님을 뵙고자 할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죽음을, 헬라인들이 주님을 뵙고자 했을때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이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을 스스로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요12:32, 개역한글)
주님은 자신의 죽음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주님은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을 <땅에서 들린다>라고 표현하십니다. 성도님들이 잘 아시는대로 이스라엘은 죄인을 죽일때에 돌려 쳐서 죽입니다. 스데반이 그랬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땅위에서 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땅에서 죽지않고 땅에서 들려 죽습니다. 십자가에서 들려 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죽음을 <땅에서 들린다> 라고 표현하고 계십니다. 이 표현을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 세번 쓰십니다.
첫번째로, 요한복음 3장에서 쓰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두번째로, 요한복음 8장에서 믿지 않는 유대인들과 논쟁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든 후에야 내가 그인줄 알리라> 세번째, 요한복음 12장에서 <내가 땅에서 들리면>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세 각도에서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들려서 죽는것은 요한복음 3장에서 보면, 주님께서 땅에서 들리시는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죽어갈때 그들을 구원하셨던 하나님의 계획과 방법으로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입니다.
첫번째, 십자가는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입니다.
두번째, 사람들이 예수님을 땅에서 들리게 할것입니다. 죄를 시인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예수님의 빛되신을 싫어하는 어두움이 그 빛을 끄려고 할것입니다. 사람들의 죄악이 주님의 십자가를 만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며 그 계획을 이룬다는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악한 의도를 가지고 할것입니다.
그 다음 요한복음 12장에서 <내가 땅에서 들리면> 주님께서 주권적으로 스스로 죽으십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계획하신 많은 열매를 맺고자 하는 이 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주님께서 스스로 죽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주님의 십자가에 사람들이 나아옵니다.
첫번째 나오는 사람들은, 구도자들이 나아옵니다.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싶은 사람들이 주님의 십자가로 나아옵니다. 거기에 용서가 있기 때문이며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앞에서 자기의 죄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올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없이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복원되지 않습니다.
두번째, 교회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주님앞에 모일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입니다.
주님의 임재앞에, 이름앞에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일것입니다. 거기서 주님께 예배드릴것입니다.
주님께서 <모든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였을때 거기 구도자들이 있고 거기 교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구원 받고도, 죄 용서를 경험하고도 주님의 이름앞에 오지 않는다면, 그분의 놀라운 은혜를 찬양하지 않는다면,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의 아버지의 계획과 주님의 목표를 좌절시키는 행동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마땅히 교회에 속해서 만찬상 앞에서 주님을 예배드리는 것이 합당한 일입니다.<내게로 이끌겠노라>
세번째 사람이 있습니다. 구원을 위하여 주님께 오지도 않고 구원받은 후에 주님께 오지 않는 사람은 세번째 주님앞에 갈것입니다. 백보좌 심판대입니다.
불신자들이 주님앞에 올날이 있습니다. 재판장으로 세우신 주님께서 이제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셨습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실때 사람들은 환호하지만 주님은 십자가를 보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이 주님에 대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중 이방인 몇명이 주님을 뵙고자 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대답하고 계십니다. "나는 너희들을 위해서 죽고 있다" "너희들이 나를 보고자 하는 것 이상으로 내가 너희들의 영혼을 위하여 이제 십자가를 질것이다."
저희들은 이와같은 주님의 죽으심을 스스로 설명하는 이 말씀 앞에서 저희들 가운데 구원을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엎드림이 있기를 원합니다.
또한 구원받은 저희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모임에서 주님을 경배드리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받은 성도들 사이의 교제와 섬김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알고, 주님의 계획이었는가를 생각하고 더욱 이 일에 헌신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저희 모두의 심령을 축복해주시기를 원합니다.
'플러싱 모임 수양회 > 2017년 여름 수양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무엘의 성장 > (0) | 2021.07.21 |
---|---|
< 하나님의 임재 > (0) | 2021.07.21 |
< 사도행전04_그리스도인의 샘플 > (0) | 2021.07.21 |
< 사도행전03_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 > (0) | 2021.07.21 |
< 사도행전02_믿음의 삶과 사단의 공격 > (0) | 2021.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