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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죄인을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요약)

박이레 2024. 4. 7. 12:03

< 복음 : 죄인을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 > 24년 4월 6일 토요일(요약) / 이명인 형제님  

오늘은 죄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하셨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살피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1:31, 개역한글)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지으신 것을 기록하는데, 여섯째날 짐승들과 사람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날은 그냥 좋았다고 하시는데 이날은 '심히 좋았다'고 하십니다. 이유는 이날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특별하게, 다른 짐승들과 다르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창2:4, 개역한글)

사람에 대해서 좀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고 계십니다. "대략 이러하니라" 요점 정리가 아니라 그 출처를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창2:5, 개역한글)

이때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6일동안 창조하시는 것을 설명하고 계십니다. 그 전에는 경작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5일은 사람이 없었고 6일째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데 사람에게 온통 신경을 쓰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온통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하십니다.
사람에게도 행복한 날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 중에 심히 좋았던 날이 언제인가요? 제 인생에서 큰딸, 둘째딸을 낳았을때 심히 좋았습니다. 사람마다 다 차이가 있지만 그 자녀를 낳았을때 심히 좋지 않았나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사람을 창조하니 심히 좋았다. 하나님의 태초부터의 시간을 사람이 있는 때와 사람이 없는 때로 나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알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람이 자녀를 낳을 때에, 자녀를 배속에 잉태하고 있을 때는 아들인지 딸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세 전부터 알고 계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은 세상을 사람을 창조하기 전의 시대와 창조한 이후의 시대로 나누십니다. 하나님은 온 만물 가운데 경배와 찬양과 높임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피조물이 창조된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의 기쁨이 사람에게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2:7, 개역한글)

'생기'는 히브리어로서는 생기, 호흡, 영혼으로도 해석이 됩니다. 사람의 육체는 흙으로부터 왔지만 영혼은 하나님이 넣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짐승과 사람은 다릅니다. 진화이론이 잘못된 것이 다른 것이 이것입니다. 사람은 인종 문과 세대를 막론하고 전부 자신의 신을 섬깁니다. 뭔가 영적인 것을 추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왜냐하면 그 영혼의 출처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어요."라고 말합니다. 혹은 "천국에 계세요."라고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 영혼의 출처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짐승은 이것을 모릅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알려고 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려고 합니다. 어떤 짐승이 이러한 짐승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혼을 사람에게 넣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존귀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도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7, 개역한글)

하나님은 조물주이시고 사람은 피조물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자기 생각대로 드렸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리대로 드렸을때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선악을 아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명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때 자유와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2:2, 개역한글)

6일동안 천지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것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일곱째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우리가 토요일이라고 하는 그 날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범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범죄한 이후에 안식일에 안식하지 못하십니다. 주님께서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안식일에 일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는데 왜 하나님은 안식일에 안식하지 않으시는지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성경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질문입니다.

너는 육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 칠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 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출23:12, 개역한글)

우리는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7번째날에 쉬라고 했는지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이런 법이 없다면 주인은 종을 쉬게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것이 아니다." 법으로 공휴일이 없으면 주인은 종을 쉬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안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범죄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사람이 태어나면 죽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이지 않습니까? 진시황제도 죽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쉬지 않고 무엇을 하시는지 보겠습니다. 오늘 주제가 '죄인을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양을 잃어버리면 양이 목자를 찾는것이 아니라 목자가 양을 찾습니다. 자식을 잃어버리면 자식이 부모를 찾는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찾습니다. 사람이 범죄 했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모든 피조물 중에 사람을 그렇게 끔찍히 생각하셨는데요.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3:7, 개역한글)

죄를 범하니 자기가 범죄한 것이 부끄러워서 가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찾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3:9, 개역한글)

자식을 찾는 부모처럼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찾도록 찾으시는 분입니다. 그때 아담은 어디 있었죠?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3:10,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데 숨어 있습니다. 이것이 죄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다가오시면 거절합니다. 부르시는데 듣고싶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저희집은 가난했습니다. 아버지가 빚을 많이 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군대를 빨리 갔습니다. 자식에게 좋은것을 사주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제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더 아픈 것입니다. 내 말을 들으러 나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나오셨으니 참 잘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아담은 숨어있습니다. 그는 왜 숨었을까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하는 실과를 따 먹었습니다. 이것이 원죄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죄입니다. 그러나 이 죄만 있지 않습니다.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형제를 향해서 노하는 죄, 시기하는 죄, 저주하는 죄는 살인하는 죄와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가인이 그랬습니다. 아담이 이것을 안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부끄러워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죄는 용납하실 수 없지만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 (욥25:5-6, 개역한글)

옛날에는 달을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과학이 발달해서 직접 달에 가보니 사람이 살수없는 곳임을 알았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달이라도 명량치 못하고" 자기 빛이 없고 삭막합니다. 사람의 눈에는 밤의 달이 빛나보이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전혀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보면 깨끗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옷을 해 입혀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해 주신 세가지를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의식주를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3:21, 개역한글)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것이 원어로 보면 복수입니다. 이 가죽옷을 두사람에게 지어 입히려면 최소한 두마리의 양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아담의 자녀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만큼 많은 수의 양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벨이 목축을 한 이유입니다.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창9:3-4, 개역한글)

피는 생명이기 때문에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정결한 짐승의 고기를 먹을 수 있는데 그 피를 쏟고 그 고기를 먹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히2:14, 개역한글)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과 같은 피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또한 자신을 먹는다고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시대 이후에 사람에게 짐승을 먹으라고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을 통해서 정결한 짐승의 고기만 먹는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지만 아무 종교나 믿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그 피는 땅에 흘려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님을 먹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노아 홍수 이후에 정결한 짐승을 먹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직 흠없고 정결한 분만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혈육을 입고 오신 예수님입니다.
주님께서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눅24:39, 개역한글)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피를 말씀하지 않습니다.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땅에 오셨을 때는 혈육에 대해서 말씀하셨지만 부활하신 이후에는 피를 말씀하지 않고 살과 뼈를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에서 그 피를 다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 첫번째는 의복, 두번째는 먹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집입니다.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십 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출12:5-7, 개역한글)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12:13, 개역한글)

출애굽할때 달력이 바뀌어집니다. 출애굽하는 달을 1월로 바꾸십니다. 이때는 1월 14일 해질때입니다. 처음 흠없는 양을 준비합니다. 유월절 해 질때 양을 잡습니다. 피를 받고, 예수님의 피는 십자가에 흘려진 피며 받아진 피입니다. 그리고 믿는것은 그 피를 문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뿌리는 것입니다. 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대신 피값을 치루신 나의 구원자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저를 피값으로 사셨으니 저의 주인이십니다, 주여 말슴하옵소서. 이날이 이집트로부터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 날입니다. 그럼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그 피 흘린 양의 고기를 집안에서 먹는 것입니다. 이 양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피가 없다면 이미 심판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가 있다면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지옥가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확신하죠? 최종 심판장이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것을 창조하신 분이고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법칙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지옥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 양을 1월 14일 해질때가지 바라보고 있습니다. 집에서 키운 사랑스러운 새끼양입니다. 그런데 그양을 죽여야 합니다. 그 양은 점도없고 흠도 없습니다. 이분이 하나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의 모형입니다.
이분의 피가 땅에 다 흘려졌습니다. 이분의 피가 아담으로부터 주님 오시기까지 모든 죄를 다 구속하실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죄를 가리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피를 보고 그 죄를 영원히 기억치 않는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아담, 하와가 범죄한 이후에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내쫓으시고 다시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려고 화염검과 천사들로 지키게 하셨습니다. 성막을 짓게 하시고 또한 성소와 지성소는 함부로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지성소는 대제사장도 일년에 한차례 들어갈수 있었습니다. 지성소는 금단의 구역입니다. 들어가면 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기 떄문입니다. 그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죄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구약에 드리는 제사는 계속해서 드려야 했습니다. 한번의 제사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계속해서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계속해서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19:34, 개역한글)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히9:12, 개역한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개역한글)

영접하는 자, 이는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주님을 영접했던 것처럼, 베다니 마리아가 주님을 집으로 영접했던 것처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고기를 먹는 것처럼, 우리가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어떤 짐승이 계속 죽어야 합니다. 그 짐승이 죽었기 때문에 우리의 생명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단번에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받아들이면, 마음에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가정의 구성원이 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러시아 성경은 다른뜻으로 복용한다는 뜻도 됩니다. 우리가 약을 복용합니다. 우리가 약을 처방받으면 무슨 약인지 잘 모르고 먹습니다. 나을것을 믿고 먹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알지 못하고 복용, 영접하는 것입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3:17,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그 아들을 주셨습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자가 없습니다.

솔로몬의 재판 앞에 두 창기가 왔습니다. 서로 한 아들을 자기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때 솔로몬은 아들을 반으로 쪼개서 나누라고 합니다. 진짜 어머니는 죽이지 말고 저 여인에게 주라고 하고 거짓어머니는 나누라고 합니다. 솔로몬은 산 아들을 진짜 어머니에게 줍니다. 솔로몬은 어머니의 사랑을 알았습니다. 이 사랑이, 이 지혜가 어디서 왔을까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때 하나님은 아들의 기도를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이 이 길밖에 없기 때문에 아들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영접하는 것입니다. 복용하는 것입니다. 본인이 제조회사가 아니지만 약사, 의사의 말을 순종하고 복용하였을때 낫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