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읽기 : 고린도전서 15장 20-34절 > 24년 3월 2일 토요일(요약)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침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침례를 받느뇨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고전15:20-34, 개역한글)
한봉래 형제님 사회 : 개요를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사도바울은 이렇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핵심적인 복음의 내용이었다.(1-2절)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핵심적인 증거로 제시합니다. 첫째, 성경입니다. 두번째, 목격자들을 통해서 입증합니다. 세번째,(29절) 주님의 부활은 경건한 성도들의 확신으로 입증할 수 있다, 입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입증된다. (35절) 또 창조의 상황에서 부활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25절부터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긍정적인 결과입니다. 또 29절부터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면 생기는 결과를 말하고 있습니다.
20절부터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지민 형제님 : 고린도 성도들은 주님의 부활을 믿지만 성도들의 부활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바울 형제님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리고 첫 열매가 되셨다고 합니다. 이는 초실절의 곡물의 첫 한단입니다. 초실절에 많은 곡식들을 위하여 첫 열매를 드렸듯이 주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부활이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현재완료형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살아계심을 볼수 있습니다.
한봉래 형제님 : 초실절은 그 다음에 이르는 대량의 추수를 예언하는 것입니다. 교제 감사드립니다.
김회상 형제님 : 고린도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지만 사람의 부활은 어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이 주님께서 특별하시기 때문에 부활하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도는 주님께서 사람으로 부활하셨음을 말씀합니다. (20-21절)
이기범 형제님 : 20절이 "그러나"로 시작됩니다. 이는 12절에 나오는 어떤 이들에 대한 대답입니다. 이 "그러나"는 "이제 그러나"로 볼수 있습니다. 헬라어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12-19절까지의 잘못된 교리의 결과 7가지에 대해서 설명했다면 이에 대해서 "그러나"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증명되었고, 그 증명된 사실을 바탕으로 20절 이하에서 영적인 논리가 전개 됍니다.
21절과 22절은 "왜냐하면"으로 시작합니다. 21-22절은 아담과 그리스도가 나옵니다.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이를 두번째 사람으로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가지고 계심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사람의 대표적인 둘입니다. 헬라어 성경을 보면 아담 앞에 관사가 있고 그리스도 앞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아담', '그 그리스도'입니다. 이는 또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아담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죽고, 그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삶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속한 자들은 신자들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강성찬 형제님 : 첫 열매는 그와같은 대량의 수확이 있을 것에 대한 보증입니다. 그리고 같은 성격의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계속해서 주님의 부활과 그분을 믿는 자들의 부활의 성격이 같은 성경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봉래 형제님 사회 : 첫 열매에 대해서는 보증, 샘플의 의미가 있다고 저희들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잠깐 적용해보면,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이 에베네도가 아시아의 첫 열매라고 말합니다. 스데바나가 아가야의 첫 열매라고 말합니다. 혹시 성도님들 가운데 어떤 지역에 교회가 세워지고 그 가운데 복음이 전해져 처음으로 구원받은 첫 열매이실수 있습니다. 저희 모두가 지역 모임 가운데서 첫 열매가 되기를 원합니다.
계속 나가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부활하셨는데 성도는 부활하지 않을수 있다는 문제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셔서가 아니라 사람으로 부활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동일한 생명을 누린다는 것이 놓쳐졌을때 이러한 오해가 있을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라이 삶을 얻으리라"(22절) 여기서 모든 사람은 믿는 사람만을 포함합니다. 사도바울은 여기서 믿는 자들의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23절에서 부활도 순서가 있습니다. 이 순서에 대해서도 묵상하신대로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회상 형제님 : 사도는 성도의 부활의 확실성에서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3절부터는 성도들의 부활이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조예현 형제님 질문 : 24절부터 "그 후에는"이라고 나오고 그 때가 나중이라고 말씀하는데 그 때가 언제인제 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회상 형제님 : 23절부터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부활과 관련해서 말씀하는데 순서대로 하십니다. 그 가운데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는데요.
먼저는 첫열매 그리스도이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께 붙은 자고, 그 후에는 나중입니다. '나중' 이를 헬라어 원어로 해석하면 완성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이 없으면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획이 완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성찬 형제님 : 몸의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여러가지 계획을 망가뜨리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교리 전체를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사단은 이렇게 교묘하게 공격합니다.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획이 완성되는 것이 시간적으로 나열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성도의 부활이 얼마나 중요한가, 전체 교리를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기범 형제님 : 20-22절까지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중간에 여러가지가 생략되어 있지만, 그리스도의 부활, 그 다음에 강림, 말씀해주신 나중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따라서 그 이후에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오늘 현재 저희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그리스도의 부활과 강림 사이에 있습니다. 이 강림은 공중 강림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열매, 그리스도께 붙은 자의 부활, 나중, 목적이 이루어지는 때 세때가 나와 있고 저희는 첫번째와 두번째 사이가 있습니다.
23절과 관련된 배경을 생각해보면 데살로니가 전서와 고린도전서의 시간차를 생각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가 4-5년 전에 먼저 쓰였고, 고린도전서는 데살로니가에서 써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정보는 고린도교회에 전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의 몸의 부활이 없는 거짓 교리가 들어와서 사도는 다시 교정하고 있습니다. 첫 열매와 강림과 나중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부정과거형)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현재형) (고전15:24, 개역한글)
멸하신다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24,26절의 멸함, 멸망은 힘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한봉래 형제님 사회 : 부활을 사용해서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계획을 말하고 있는데요. 여기 순서라는 단어가 군사용어입니다. 왕이 먼저 나오시고, 첫열매가 주님이 먼저 부활하시고, 그리고 교회가 부활하고 세번째로 나오는 나중은 불신자를 가르킵니다. 부활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15:20, 개역한글)
주님께서 죽은자 가운데 계셨지만 나머지 죽은 자 가운데서 주님만 사신 것입니다. 그리고 21절에서 어떤 자들이 부활하는지 순서를 말합니다. 주님 먼저 부활하시고, 주님 강림하실때 그에게 붙은 자는 교회입니다. 24절 나중, 나라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이고 그 나라 왕은 주님이십니다. 천년왕국입니다. 주님께서 천년동안 통치하십니다. 천년왕국 통치에 들어가기 직전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습니다. 교회의 부활, 환난시대에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에 있는 성도들은 언제 부활하느냐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립니다. 교회가 부활할때 구약의 성도들도 같이 부활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어린양의 혼인잔치 때에 참석해야 합니다. 구약 성도의 부활은 휴거와 천년 왕국 들어가기 사이에 들어가게 됩니다.
견해가 다 다른데요, 어떻게 믿고 있나요?
김회상 형제님 : 저는 다니엘서 12장 2절 말씀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이 구절을 근거로 천년왕국 직전에 구약의 믿는 자들이 부활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2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단12:1-2, 개역한글)
한봉래 형제님 사회 : 이렇게 믿는 분들이 다수인것 같습니다. 그러면 질문이 나옵니다. 그러면 혼인잔치는 어떻게 되느냐? 들러리는 어떻게 되느냐가 되는데 이는 저희들이 살펴볼 필요가 있을것 같습니다.
부활을 가지고 하나님의 전체 경륜을 살피고 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시고, 교회가 부활하고, 천년왕국 직전에 구약 성도들이 부활하고, 백보좌 심판 전에 불신자들이 부활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살필수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주장하는 그리스도는 부활하지만 교회는 부활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취하려면,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때 무덤에서 자던 성도들이 일어나 사람들에게 증거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그들이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희들이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을 가지고 이해해야 합니다.
이어서 24-25절을 묵상하셨거나 질문 있으시면 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회상 형제님 :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고전15:26, 개역한글)
사망이 없는 상태에서 그 나라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망에 대해서 원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입장에서 하나님 입장에서 사망은 원수인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사망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저희들은 죽음, 사망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망을 미워해야 합니다. 사망으로 인해서 고통과 절망이 있습니다. 저희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사망을 미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그 사망을 이길 수 없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망을 이길수 있습니다.
강성찬 형제님 : 그 사망조차도 주님께서 멸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부활이 필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죽어서 몸과 영혼이 분리된 상태가 되어 있다면 계속 사망이 득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로 사망을 이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최종적인 승리를 취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하는 것이 사망을 이겼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한신영 형제님 질문 : 28절 말씀에 질문이 있습니다. 어쩐지 하나님 아래 복종하는 주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지 않은 주님을 생각하게 되는데 어떻게 받으면 좋을까요?
한봉래 형제님 :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고전11:3, 개역한글)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항상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입니다. 주님과 하나님은 항상 하나이십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입니다. 아버지를 위해서 자신을 낮추셨죠. 그럼에도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저희가 잘못 오해하는 것이 복종하는 것이 열등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실 때에 동등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어느 한쪽을 열등하게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신분적인 차이가 아니라 기능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께 독립된 권위를 모두 없애고 주님은 나라와 권세를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역에 대해서 아버지 하나님보다 낮다든지 열등한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일하시는 측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님을 높이시는 것이 영원한 나라에서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고전15:28, 개역한글)
강성찬 형제님 :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것을 통치하고 계시고 그 계획을 결국 이루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만유 가운데 완성된 그 날에는 사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부활해서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제일 하나님을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죽음이니다. 죽음을 보고서 어떻게 하나님이 있단 말인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죽음을 폐하시고 만유 가운데 하나님이 계심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이기범 형제님 : "만물을 저의 발 아래 두셨다"(27절) 이는 시편 8편을 인용한 것입니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시8:6, 개역한글)
성도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에게 부활의 전제가 흔들리게 되는 것을 보입니다. 잘못된 교리로 대표되는 것이 동시에 신성과 인성이 있는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을 부인한다면 주님의 인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프로그램 전체를 흔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27-28절을 분리해서 본다면, 시편 8편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보입니다. 아담은 실패 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실제 시편 8편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봅니다.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고전15:28, 개역한글)
부정한 것이 하나님 앞에 더이상 들어오지 못합니다. 사람에게 두신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활의 전제를 저희가 배울 수 있습니다.
한봉래 형제님 사회 : 29-30절로 넘어가겠습니다. 죽은자들을 위하여 침례를 받는다, 이것이 어떤 뜻인지? 그리고 29절은 30절과 같은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죽은자들을 위하여 침례를 받는것과 사도들이 위험을 무릎쓰는 것이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31절에서 "날마다 죽노라"라고 합니다. 이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또 사도바울이 그리스도인을 자랑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도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회상 형제님 : 12-19절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어떤 결과가 있을지 7가지 말했습니다.
이제 29-32절까지는 성도들이 다시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설명합니다. 29절 죽은 자들을 위하여 침례를 받는다고 했을때 여기 계신 형제님들과 견해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 교제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주님의 부활 성도들의 부활과 관련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침례를 받는다고 하는 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이 없다면 침례받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한봉래 형제님 : 확실히 다른 견해네요.
이기범 형제님 : 저도 그 견해인데요...
한봉래 형제님 : 배반감..
이기범 형제님 :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침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침례를 받느뇨 (고전15:29, 개역한글)
"위하여" 이를 누구를 위한다고 저희가 생각하지만 위한다는 것은 다실 대신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저희도 주님의 부활, 그 이후의 성도들의 부활을 얘기하는 자들입니다. 저희도 그들을 대신해서 몸의 부활이 있다는 것을, 앞선 잠든 성도들을 대신해서 이를 증거하며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침례를 받느뇨"(29절) 뉴베리 형제님은 이를 "어찌하여 '또한' 저희를 대신하여" 라고 번역합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앞선 세대들과 같이 대신하여 침례를 받습니다.
김회상 형제님 : 저는 이 죽은 자들이 실제로 죽은 자로 보지 않습니다.
강성찬 형제님 : 우선 명백하게 아닌것을 말씀드리면, 믿지 않고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안타깝게 여기며 가족들이 그를 위해서 대신 침례를 받는다고 그 죽은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을 위하여"
"침례의 의미가 무엇인가? 그것은 죽음(개념)을 위한 것이다."-롬6장의 의미. 그렇게 해석을 하시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죽은 자들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 복수 명사로 되어 있습니다. 또 뒤에 "저희를"도 복수 명사로 되어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개념보다도 실제로 죽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위하여"라고 되어 있는데, "그들의 자리에서", 침례를 받는 것은 자기의 신앙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입니다. 침례받고 얼마 안가서 핍박받고 죽는 것입니다. 침례는 죽을것을 알고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그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다, 부활이 사실임을 강하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한봉래 형제님 : 약간 한걸음만 진전해보면 교회의 간증입니다. 어떤 성도가 주님을 증거하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간증의 불빛이 하나 꺼진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 구원받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을, 교회를 동일하게 증거합니다. 그리고 그 증거의 대가는 죽음입니다.
스데반의 죽음이 그렇습니다. 나중에 사도바울이 구원받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이 그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이제 사도바울이 내가 스데반을 죽게 했는데 스데반의 자리에 서서 주님을 증거하리라 하는 것들..
또 유대인들이 예수 글스도를 메시아로 받지 않고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방인들이 이어서 받는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사도들은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목숨을 아까워하는 것은 본능입니다. 그런데 그 본능을 이깁니다. 그곳에 가면 죽는데 기꺼이 그곳에 갑니다.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기꺼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32-34절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예현 형제님 : 주님께서 속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어떻게 아는것이 중요한 것임을 말씀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미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향한 지식이 어떠한지를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하나님의 어떠함을 발견하고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함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봉래 형제님 : 속지말라고 했을때, 저희들이 성경을 이해할 때 단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어, 더 나아가 헬라어도 보게 됩니다. "속지말라"는 현재형,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속는다는 것은 현재형이기에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쭉 가다가 넘어집니다. 또 수동태로 되어 있다는 것은 공적인 집회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적인 곳에서 우리의 의문을 풀어야 합니다. 사적으로 와서 공적으로 와서 가르치는 말씀과 자꾸 다른것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혹 듣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멈추라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실제로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고린도교회에서 왜 이런일이 생겼는가? 그들이 잘못된 가르침,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과 사적인 교제 가운데서 속았기 때문입니다.
김회상 형제님 : 방금 말씀하신 시제와 교제드리면, "깨어" 이는 부정과거형입니다. 단번에 일어나는 것, 장면입니다. 또한 속지말라, 죄를 짓지말라, 현재형입니다. 그 잘못된 교리에 넘어가지 말고 악한 것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부정하기 때문에 악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33-34절에서 저희들의 삶을 교정하는 일들이 나옵니다. 잘못된 교리가 미래적인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의 현재의 삶을 교정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강성찬 형제님 : 15장은 몸의 부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활은 심판과 상급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꼭 몸의 부활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 부활의 교리를 잘 지키고 있을 때에 미래를 바라보고 상급을 바라보고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기범 형제님 : 34절 "깨어"라고 합니다. 중독으로부터 깨어라는 의미입니다. 두번째는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이는 진짜로 부끄럽게 생각하라는 의미입니다. 굉장히 부끄러워 해라는 것입니다. 중독된 잘못된 교리에서 깨어서 정말로 부끄러워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34절은 정말로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 :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15:22, 개역한글)
저희는 주님 안에서 새 신분을 얻었습니다. 저희가 속지 않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분별하고 서 있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생각보다 대학에 많은 이단이 있고 그것을 저에게 말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의 신분이 무엇이고 무엇이 합당한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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