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 밝히 보게 하시는 예수님 > 24.1.21.일요일(요약1) / 전의석 형제님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 예수께서 마음 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3 저희를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 밖에 저희에게 없더라
15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16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 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
21 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막8:11-21, 개역한글)
저희들이 2-3일에 거쳐서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말씀은 어떤 배경이 있느냐하면 4천명을 먹이신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시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제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그 후에 반응이 나오는데요.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힐난했고, 시험했고, 표적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 책망을 받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시험하는 가운데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4천명을 먹이시는 것으로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믿지 않고 표적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러분에게 충분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계속 증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깊이 탄식하십니다. 그리고 이미 많은 표적을 보이셨기에 더이상 표적을 주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미 주신 말씀으로 충분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엉뚱한 결론을 내립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은 것이었는데 제자들끼리 서로 의논합니다. 제일 좋은 것은 예수님께 질문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제자들끼리 의논하다가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떡이 한개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다섯개로 5천명을 먹이셨습니다. 단순히 산수로 계산하면 떡 하나로 천명을 먹이실 수 있는 분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하시고 저 소망의 나라로 옮기실 분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는 주님께서 해결하실 수 없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현실적인 직장의 문제, 진로의 문제, 자녀들의 문제, 생활속의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주님께서 해결하실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더 큰 문제를 해결해 주실수 있다고 믿으면서 우리의 생활의 작은문제를 해결해 줄수 있다는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이 작은 믿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
(막8:17-18, 개역한글)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여러분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이 둔하고 딱딱하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드러내셔도 여러분의 마음대로 해석하게 되는 것입니다. 잘못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 (막8:18, 개역한글)
여러분은 여러분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셔야 합니다. 귀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해야만 제자들이 하는 동일한 잘못을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틀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었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보았습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이후에 배에서 내렸는데 벳세다에서 사람들이 소경을 데리고 왔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일을 기억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소경에게 하신 일을 보시기 바랍니다.
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소경 하나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23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우러러보며 가로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가라사대 마을에도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막8:22-26, 개역한글)
사람들은 바리새인의 표적과 같은 표적을 또 구하는 가운데 소경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소경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마을에서 표적을 행하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이 사람의 손을 붙드시고 이 사람을 마을 밖으로 나가십니다. 세상 가운데서는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서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집단적인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예수님께 인도되어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8장에서 소경이 낫는 것을 보게 되는데요. 7장에서는 귀가 안들리는 것을 예수님께서 낫게 해 주십니다. 사람들은 각자 다양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고치시는 방법이 다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다양한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이 소경된 사람은 날때부터 소경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점차적으로 시력을 회복합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을 차차 시력을 회복시키시고 만물을 밝히 보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소개받고 주님을 보게 됩니다. 주님을 보고 어떠한 분이라는 것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완벽하게 이해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된다면 주님앞에 다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여러분을 치유하시며, 주님만이 밝히보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치유받은 자에게 다시 마을에 돌아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다시 세상 가운데로 가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나음을 입은 자는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8:34-38, 개역한글)
"아무든지" 이것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있고,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강제로 하지 않으십니다. 자발적인 믿음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첫번째로 필요합니다. 진천 수련원으로 가는 길에 호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물위에 방갈로가 있습니다. 그 방갈로를 보니까 저 안에서 따뜻하게 낚시도 하면서 쉬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은 연약이 있습니다. 쉬고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십니다. 자기의 편안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두번째는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라 자기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만 들수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 그 누구도 들수 없습니다. 자기 십자가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욕심들입니다. 이것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을 위한 것으로 여러분의 시간을 다 소진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명을 잃게 될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살아야 겠습니까? 예수님을 위해서 살기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여러분들을 부르시기를 원하실까요?
1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막9:1-2, 개역한글)
변화산 사건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현되셔서 이제 엘리야와 모세와 함께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하늘에서 있을 일의 빙산의 일각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과의 영원한 통치 가운데 여러분이 함께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을 만난다면 밝히 보는 가운데 예수님과 함께 할 것입니다. 또한 하늘에서 변형된 예수님을 보고 영광 가운데 함께 할 것입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가 이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떡을 가져오지 않은 것에 대한 걱정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히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의 문제는 예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밝히 보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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