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김보영 형제님(요약)

복음 : 부자와 나사로

박이레 2023. 11. 19. 15:33

< 복음 : 부자와 나사로 > 23년 11월 19일 일요일(요약2) / 김보영 형제님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20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21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26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찌니라
30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눅16:19-31, 개역한글)

여기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부자입니다. 그는 매우 큰 부와 권세를 지닌것 같습니다. 자색옷을 입었다는 것은 큰 권세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했습니다. 그는 영적인 것에 관심없고 하루 하루를 즐겁게 사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세상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삶입니다. 그런가하면 나사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병들었기에 거지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잔치하는 집의 대문에 앉아서 그 잔치하고 남은 찌꺼기라도 얻어먹을까 해서 누워 있습니다.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는 말씀을 볼 때에 그는 자기 몸을 방어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큰 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부자와 달리 이 거지에게는 한가지 소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병들어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을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갑니다. 그는 살아 생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씀에서 보게 됩니다.

이제 거지가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가 죽게 될 떄에 천사에게 들려 아브라함의 품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의 죽은 육체는 대충 거적같은 것에 말려서 치워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육체는 거지 나사로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죽음은 아브라함의 품에 가는 통로일 뿐입니다.
부자도 죽었습니다. 그의 장사는 매우 호와롭고 많은 사람들이 조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꽃 가운데 떨어졌습니다. 그는 음부에 떨어졌습니다. 음부는 지옥과 차별이 있는 곳입니다만, 음부조차도 고통이 있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죄를 지으면 재판을 받게 됩니다. 재판을 받는 동안 구치소에서 머뭅니다. 형이 결정되면 감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지금 천국에 있는것이 아니라 음부에 머무는데 이 음부도 두가지 장소가 있는 것입니다. 한곳은 불꽃 가운데 머무는 것이고, 아브라함의 품에서 평안이 안식하는 장소가 있는 것입니다.

부자는 불꽃 가운데서 아브라함의 품에서 편히 쉬는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부자는 고통 중에서도 나사로를 시켜서 물 한방울을 찍어서 내 목을 서늘하게 해달라고 구합니다. 나사로를 쉽게 종처럼 부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요청은 거절당합니다. 서로가 있는 곳을 마음대로 오갈수 없는 곳임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눅16:25, 개역한글)

이 말씀을 잘못 읽으면 세상에서 좋은 것을 받으면 죽어서 고통을 받는 것으로 이해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나사로가 내세에 위로를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죽어서 고통을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또 구합니다. 나사로를 다시 살려서 부자의 형제들이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도록 증거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거절당합니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눅16:31, 개역한글)

이 세상에 성도들이 있습니다. 성도는 중보자로서 두가지 임무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의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기이한 빛을 선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도 복음을 교제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에도 부자와 나사로같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부자같이 세상적인 환락과 쾌락에 젖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증거해야 되는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모든 인생의 죄를 단번에 깨끗하게 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믿는 자를 의롭게 하셨다는 사실을 전해야 하는 임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기억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개역한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개역한글)

하나님께서는 그 아드님을 십자가의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전해야 합니다. 이를 전하지 않는다면 믿지 않는 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믿는자로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