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요한계시록 2장 18-21절(요약)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계2:18-21, 개역한글)
- 김윤철 형제님 사회 : 일곱교회 중의 네번째 교회인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서 교제할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 또한 오늘날 있는 지역교회의 어떠한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주님께서 쓰신 내용 중에 가장 긴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먼저 18-21절까지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주님께서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에 사용하신 동일한 표현을 두아디라 교회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계2:18, 개역한글)
"그 눈이 불꽃같고" 1장 14절에 나오는 표현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지상재림 하실 때에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 강력한 능력에 대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1장 15절에 나오는 표현과 같습니다. 빛나는 주석과 같은 단단한 발로 모든 발을 밟으실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앞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와 대조적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렸던 것과 반대로 두아디라 교회가 나중 행위가 처음것보다 많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사랑이 많은 교회였습니다.(19절)
그러나 20절에 보면 이세벨을 용납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많으면서 가르침이 틀린 교회라고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이 교회는 죄를 용납하고 있습니다. 이세벨의 잘못된 가르침은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한 것입니다. 이세벨은 구약의 아합왕의 아내로 간교하고 부도덕하고 우상숭배와 문란한 풍습을 도입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가 이를 용납하셨음을 염려하셨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를 통해서 교회는 죄를 용납할 수 있는 곳이 아님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죄를 묵인해서도 안됨을 생각해 봅니다.
- 최재홍 형제님 : 18절에 두아디라 교회가 나옵니다. 두아디라는 지역은 활발한 무역으로 유명했습니다. 또한 농경지가 많아서 농산물을 수출하여 부유했습니다. 또한 옷감 염색 기술이 뛰어났습니다.(사도행전 16장) 이 지역은 로마가 다스리고 있었기에 가이사 숭배가 있었고 여러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서머나 교회와 다른 점은 유대인들로 인해서 핍박을 받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두아디라는 무역으로 유명해서 여러 경제 조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조합에 가입해야만 경제 생활을 할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조합은 여러 우상신을 섬기고, 우상의 이름으로 봉헌하고 여러가지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이 두아디라에 교회가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경제 생활을 하기 위해서 조합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조합이 성도들이 가입하기에 합당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이 가운데서 성도들이 어떻게 성별되어야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부분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 김대현 형제님 : 두아디라 교회는 신앙의 열심과 세상에 대한 타협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칭찬과 책망이 동시에 있습니다.
18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옵니다. 이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눈이 불꽃같다는 것은 그 앞에 아무것도 숨길수 없는 통찰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석과 같은 발은 심판의 권세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주석은 다른 성경에서 청동, 황동으로 번역됩니다. 그것은 매우 단단한 것입니다. 황동을 닦으면 금처럼 빛이 납니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것보다 많도다 (계2:19, 개역한글)
그리고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칭찬입니다. 주님께서는 안다고 하시면서 칭찬을 합니다. 사업이라고 할때, 봉사라고 생각되어지고, 인내는 회개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두 행위에 대해서 칭찬하십니다.
그러나 20절에 책망할 일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앞에 교제했던 것처럼 이세벨에 대해서는 누구인지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 우상숭배와 음행을 도입했던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20-21절은 책망의 내용입니다.
- 전의석 형제님 : 두아디라는 사도행전에서 처음 언급됩니다. 두아디라 지역에서 자주 장사였던 루디아 자매입니다. 아마 루디아가 두아디라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 '여자 이세벨'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지역모임에서 자매님들에게 주신 합당한 자세가 있고 어떠한 위치 가운데 있어야 하는지 확신합니다. 이세벨이라고 할때 큰 교회인 카톨릭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은 끝나지 않는 미사를 계속해서 드립니다.
이것은 현 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18절에서 눈이 불꽃같다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외형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 속을 전부 알고 계십니다. 두번째로 빛나는 주석과 같다고 합니다. 이 주석은 빛날뿐만 아니라 단단합니다. 모든것을 심판하시는 단단한 발로 밟고 걸으시는 심판하시는 주님으로 이 교회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한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주님을 마리아의 아들로 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처음 시작이 있고 나중 행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시작과 끝과 과정 가운데서 여러 교회들에 문제가 있습니다. 저희가 이것을 주의하고 교정해야 할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가 열왕기를 공부하면서 이세벨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는 아합왕의 부인이고 구약에서 유일하게 화장을 한 여인입니다. 그는 외모와 외형적인 것들을 중시하고 꾸미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디모데서에서 나오는 염치와 정절로 자신을 꾸미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세벨이 권세를 잡은 것은 아합의 권위가 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세벨이 정치에 개입했고 바알숭배를 이스라엘에 도입했습니다.
형제가 합당하게 모임과 가정에서 그 권위를 세우지 못한다면 이세벨이 그러했던 것처럼 많은 잘못과 어려움이 모임과 가정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이를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오래 참으시며 저희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권하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두아디라 교회에 계시던 주님은 엄중하고 공정한 심판주로서 계시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것은 20절 말씀에서 이세벨의 용납한 것과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분명한 것은 처음부터 이세벨을 용납한 것이 아니고 성장하고 있는 교회라는 것을 19절 말씀을 통해서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 교회가 거짓 선지자 이세벨을 받아들이고 그같은 행위를 함으로 인해서 주님의 놀라운 심판을 받게 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이세벨이 어떠한 일을 하는지 자세히는 알수 없습니다. 다만 두아디라는 태양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 태양신을 섬기는 여 사제들이 음행하였는데 그들이 교회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그같은 일이 일어났는지 의문스럽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들이 말씀안에 있었다면 우상을 받아들였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들도 말씀 아닌 것들이 저희 가운데 침투하고 있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많은 형제님들이 두아디라의 교회가 중세의 카톨릭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교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가운데서 하나님의 진리를 어떻게 지켜 나갈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도전이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를 보면서 우리의 영적인 정결함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 하는것도 하나의 숙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김태우 형제님 : 두아디라 편지 앞서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면 두아디라 교회가 에베소 교회와 상반된 것을 보게 됩니다. 두아디라 지역에서 교회로 모인다고 하는 것 자체가 사업의 공통체가 있었고, 그 사업체 안에서 아폴로 신을 섬겼습니다. 그 사업 공동체에 들어가지 않고는 사업을 제대로 운영할수 없는 가운데 공동체에 들어가지 않고서 주님을 섬기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 가운데 분명히 서 있지 않으면 모임을 좀먹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모임 안에서 그 분별이 확고히 얼마나 잘 시행되는지를 보아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 둘씩 용납하다보면 이것이 저희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교회가 무너지게 됨을 생각하게 됩니다.
옛날의 한국 교회는 불신결혼을 하면 그것에 대해서 단호히 치리했지만 이제는 그것을 용납하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서 모임이 어려워지고 무너지게 만듬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가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조심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 카질라 형제님 : 이 교회는 주님께서 그들의 인내심을 인정하신 두번째 교회입니다. 첫번째 교회는 에베소 교회입니다. 인내는 믿는 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인내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3절에 주님의 인내에 대해서 적혀 있습니다.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히12:2-3, 개역한글)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참으셨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믿는 자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 점에 대해서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주신 권면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 인내할 수 없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인내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고난의 길, 부끄러움의 길과 불의의 길을 가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무엇이필요한지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믿음을 붙잡기를 바랍니다.
- 장승훈 형제님 :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는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서 나오기 바로 전에 '타락한 교회'라고 적혀 있습니다. 버가모 교회에 대해서는 타협하는 교회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서 먼저 칭찬하셨습니다. 이것이 교훈이 됩니다. 저희가 권면을 하게 될때 상대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점에 대해서도 언급해주고 따뜻한 마음으로 분명히 권면하는 것도 필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객관적인 책망을 하십니다. 그래서 객관적이라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다 자기 주관이 섞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평가는 다 객관적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일곱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실때에 교회의 규모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의 하신 말씀은 그 교회의 내용과 영적인 상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 모임의 규모는 주님을 섬김과는 상관이 없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1장에도 주님에 대해서 말씀하면서 불꽃같은 주님의 눈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사람의 죄악이 주님 앞에 숨길 곳이 없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주님께서는 모든것을 밝히 보시고 드러내는 분이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서 평가하실 때에 나중 행위가 처음보다 많다고 하십니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저희들의 처음 섬김보다 다른 성도를 위하여 말하고 나중 행위가 많아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20절에 책망할 것을 말하며 이세벨을 용납했다고 하십니다. 세상의 것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발람의 교훈입니다. 여기서도 그 문제가 문제가 됩니다. 실제로 이세벨이라는 여인이 그 교회에 존재했던 것인지, 어떤 여인이 있어서 그 모임에 있는 자들을 거짓 교리를 가르치고 행음하게 하였는지는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첫째는 이러한 여인이 어떻게 모임에 들어왔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성별의 문제가 참으로 중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성도라고 주장하는 자가 어떻게 살고있고 말과 행동이 어떻게 일치되는 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온전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문제있는 사람이 들어와서 교회를 어지럽힌다면 그것을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막는것이 인도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악한 자라도 주님께서는 회개할 기회를 반드시 주심을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그리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악한 사람을 교회가 용납할 수는 없습니다. 이와같은 면에서 두아디라 교회가 약했던 것 같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21절에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원어적으로 과거에서 현재까지 기회를 주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니하는도다" 이는 원어적으로 현재까지 지속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구약에서 선지서를 읽고 있는데요. 가장 어려운 것이 선지서입니다. 그런데 그 선지서에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을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 심판을 하시는데 충분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지만 때를 정하시고 참으시며 또한 말씀대로 반드시 심판하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를 생각할 때 과연 나는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주님 뜻에 벗어나서 회개할 것이 없는지, 아무 잘못없이 주님을 섬기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19절을 잠시 보고자 합니다. '사업'이라는 단어를 원어적으로 살펴보면, 행위와 일을 나타낼때에 사용되었습니다. 나중 행위할때, 그 행위와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 앞에 the라는 정관사가 붇어있습니다. 전부 "네 사업과 네 사랑과 네 믿음과 네 섬김과 네 인내"입니다.
이를 볼 때에 하나님께서 성도 안에서 성령님과 말씀으로 역사하실때 사랑과 믿음이 나타나게 되고 결과적으로 섬김이 나타나게 되고 결과적으로 인내가 나타게 됨을 생각하게 됩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롬5:5, 개역한글)
사랑은 성령님의 역사로 나타남을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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