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요한계시록 2장 15-17절(요약)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계2:15-17, 개역한글)
- 김태우 형제님 사회 : 15절부터는 니골라당의 교훈에 대해서 나옵니다. 그리고 내입의 검들과 흰돌에 대해서도 나옵니다. 형제님들께서 이러한 단어들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고 교제 나누셨으면 좋겠습니다.
- 김대현 형제님 : 지난 시간에 이어서 버가모 교회를 통해서 저희들에게 하시는 교훈을 교제하고자 합니다. 버가모 교회에는 칭찬도 있고 책망도 있습니다.
15절에 니골라당의 교훈이 나옵니다. 니골라당의 교훈은 에베소 교회에도 나온 것입니다. 니골라당의 교훈은 발람의 교훈으로서 우상숭배의 교훈을 의미합니다. 진리가 훼손될때 그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관대하게 허락한다면 세상과의 분별이 의미가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대로 실행하지 못할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심판하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어서 회개하기를 촉구하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계2:16, 개역한글)
"내 입의 검으로" 이 말씀은 요한복음 1장 1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 검은 말씀이기도 하지만 또한 징계로도 보입니다.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살후2:8, 개역한글)
"이기는 그에게" 이는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또한 "감추었던 만나"는 영생의 구원으로 보입니다. "흰 돌" "새 이름" 하나님과의 관계는 1:1의 관계이며 구원은 각각 개별적인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버가모 교회는 혼탁한 세상과 결합한 지역교회에 대한 말씀으로 보이며 이에 대해서 각 지역교회가 교훈을 삼아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버가모 교회는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주님게서 가지신 날선 검으로 싸우실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로마에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부터 순교하던 성도들은 우상숭배도 하면서 주님도 섬겼습니다. 이처럼 혼합되었습니다. 니골라당의 교훈을 발람의 교훈을 지키지는 자들과 같은 것으로 보는것이 옳아 보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위험한 가르침을 과거에서는 발람의 교훈에서 예를 들고 현재는 니골라당의 교훈으로 책망하십니다. 니골라당의 대표적인 것은 성직자 제도를 세우는 것입니다. 목사와 같은 각종 직책을 세우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주님이 주시는 은사로서 지역모임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때에 니골라당과 다름없는 것입니다. 어떤 특정한 직책을 가진 사람이 교회를 세운다고 생각하는 것이 니골라당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에서 돌이기는 자에게는 감추었던 만나와 흰돌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이 만나가 무엇인지는 알수 없습니다. 세상에 미혹되지 않고 주님을 섬긴다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것을 주시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흰돌이 나오는데요. 세상의 것을 거절하고 주님만을 바라본 성도들을 주님께서는 흰돌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새 이름이 있습니다. 새 이름은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보시는지에 대한 평가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칭찬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같은 삶이 주님을 얼마나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 전의석 형제님 : 버가모라는 뜻이 지난주에 교제한 것처럼 '이중결혼'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곧 마음이 두가지입니다. 세상과도 결합되어 있고, 주님과도 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시대적으로 보면 정치적으로 교회를 인정하는 시대입니다.
14절에 보면 첫번째가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두번째는 행음하게 합니다. 이것이 발람의 교훈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도 똑같은데, 순서가 반대입니다. 이를 볼 때에 우리가 각각의 연약한 부분이 다릅니다.
버가모에게는 우상의 제물이 더 연약한 부분이었고요, 두아디라는 행음하는 것이 더 연약한 부분이었습니다.
성도님들마다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각자가 연약한 부분이 다 다릅니다. 사단은 그 연약한 부분을 잘 파고듭니다. 우리는 지혜롭게 그것을 말씀으로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인정하고 주님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계2:16, 개역한글)
"네게"가 있고 "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네게라고 할때, 사자라고 되어 있으니까 천사겠지만, 어떠한 한 부류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잘못된 한 행위를 하는 것이 교회안에 드러나게 된다면 그것은 완력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도려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도 그럴 것이며, 모임 가운데서도 그 죄가 드러난다면 깨끗하게 도려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회개하라는 것은 그들을 용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회개는 이러한 사람들을 내어 쫓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에 대해서는 윤철 형제님과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추었던 만나는 세상이 줄수 없는 만나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이것은 주님만을 따라갈 때 그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만나라고 생각됩니다. 이 만나를 언약궤 안에 있는 만나로 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흰돌을 생각해 볼때에 그 흰돌은 다른 사람은 모르고 그 사람만 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 사람에게 주시는 주님의 특별한 인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이에 대해서 격려로 약속하고 계십니다.
앞에 있는 세 교회는 구약적인 측면에서의 축복을 말합니다. 생명나무의 과실과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것, 그리고 만나가 있습니다.
- 최재홍 형제님 : 15절에 발람의 교훈을 허용한 버가모 교회를 주님께서 책망하십니다. 발람의 교훈은 사회적으로 여러가지를 그들과 타협하면 좋게 지낼수 있다는 교훈으로 보여집니다. 당시에 우상에 바쳐진 제물을 같이 먹는 모임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사회에 많이 있었는데 거짓 교사들이 버가모 교회에도 주님을 섬기면서도 이러한 것들을 즐길 수 있다고 여러가지로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니골라당이 나오는데요. 평신도의 지위를 빼앗아서 강력한 권위의 갖는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직자 제도를 말하고는 합니다.
이에 대해서 회개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버가모 교회가 거짓 교사들을 용납한 것에 대해서 태도를 바꿔야 함을 말씀합니다. 더 나가서는 그들을 출교시킬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기에 버가모 교회에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있을지라도 그들이 회개하기를 촉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버가모에 있는 거짓 교사들은 입으로는 주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실상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모습들을 볼 때에 모임의 영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잘못된 영접을 하게 될 때에 저희 모임 안에서도 이러한 어려움이 동일하게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15절 니골라당의 교훈에 대해서 교제하기를 원합니다. 발람, 니골라의 뜻의 의미가 백성을 삼킨다고 하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이것이 발람의 교훈을 니골라당이라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백성을 삼킨다는 의미에서 같은 뜻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니골라당에 대해서 아마도 초대교회 당시 국교화 되기 전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을 흔히들 교부라고 부릅니다. 그들 중 한명이 니골라당에 대해서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없지만 니골라가 가지고 있는 문자적인 의미가 니골라당이 생겨난 배경이라고 흔히들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직자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합니다. 카톨릭이 교권을 가지고 엄청난 사람들을 죽입니다. 그 죽인 사람들의 수가 억단위가 넘습니다. 지금 현재에도 성직자 제도가 있습니다. 카톨릭은 가톨릭대로, 교파 교회는 교파 교회대로 성도들 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 문자적으로 백성을 삼킨다는 의미가 교회사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누가 어떤 일을 해도 동일한 형제 자매로서 낮추고 그 이상을 바라지 않는것은 주님앞에 참으로 귀한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14절에 발람의 교훈을 말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게하고 행음하게 하였습니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성별될 것을 주님께서 요구하고 계십니다. 성별의 가치를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수호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서 세상과 단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발람의 교훈은 세상의 것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니골라당의 교훈은 여러 형제님들이 말해주신 것처럼 성직자와 평신도가 나뉘어져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저희들에게 여러 은사를 주셔서 교사, 목자로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이것은 몇몇 사람들에게만 머물르는 것이 아닙니다. 성직자와 평신도가 나뉘어져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니골라당의 교훈은 평신도는 말씀을 듣고 잊고 집에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구원받을 때 은사를 주셨고 그 은사가 개발되어 다른 성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서로 상호간에 도움과 유익을 끼치면서 모임이 성장해가는 것입니다.
특정한 몇몇 사람에게만 은사의 개념을 한정하는 것은 성경 어디에서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또한 니골라당의 교훈은 주님이 머리되심의 진리를 어긋내는 것입니다.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계2:6, 개역한글)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당의 행위가 언급되고, 버가모 교회는 니골라당의 교훈이라고 합니다. 니골라당의 행위가 정착이 되면 그것이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안에 잘못된 교리를 전하는 자가 들어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계2:16, 개역한글)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2:5, 개역한글)
회개하지 않으면 즉각적으로 주님께서 임하셔서 싸우실 것을 말씀합니다. 기본적으로는 회개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와같은 잘못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즉각적으로 심판하실 수 있지만 먼저 회개를 요구하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또한 만나와 흰돌이 있습니다. 만나는 우리 주님대 대한 교훈, 주님의 아름다우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추었던 만나는 하나님만이 아신 주님에 대한 것입니다.
흰돌이라는 것은 1등한 선수에게 주는 메달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명예로운 것입니다. 혹은 귀인들이 자신의 어떤 행사에 초청할때 흰돌에 초대받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서 주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에 그러한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받는 귀한 초청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의 초청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17절에서 감추었던 만나를 볼 때에 구약의 만나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 만나는 모형이었습니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요6:49-51, 개역한글)
이 감추었던 만나는 믿음의 성도들에게 주시는 영생이라고 말씀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성도는 영생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가 죽어서 주님앞에 간다해도 우리는 죽어도 사는 자들입니다.
버가모 성도들이 진정 주님을 믿고 구원받았다면 영생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만나를 주시겠다는 의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믿은 후에 말씀 안에서 마땅히 살아야 하는 것처럼 버가모 교회의 성도들이 말씀 안에, 진리 안에 살아야 함을 일깨우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 김대현 형제님 : 17절에 새 이름이 나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새 이름을 주었다는 것은 우리가 거듭남으로 새로운 생명이 되었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곧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능한 인격을 생각하게 됩니다.
'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 > 요한계시록 성경읽기(요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읽기 : 요한계시록 2장 22-25절 (1) | 2023.10.22 |
---|---|
성경읽기 : 요한계시록 2장 18-21절 (1) | 2023.10.15 |
성경읽기 : 요한계시록 2장 12-14절 (0) | 2023.10.01 |
성경읽기 : 요한계시록 2장 4-7절 (1) | 2023.09.10 |
성경읽기 : 요한계시록 1장 16-20절 (1) | 2023.0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