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 진리된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를 믿으라 > 대전중구 / 기드온 쿠 형제님
이 시간에 복음 말씀을 듣기 위해서 참석하신 모든 분들께 따뜻한 환영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복음은 참으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나이가 어린 분이든지,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든지, 또 남녀노소 누구나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 한국에 오기 전에 2주 전의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의 모임에 어린 소녀가 제가 한 카드를 적어서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준 그 카드를 읽게 될 때 저는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카드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기드온 삼촌 안녕하세요. 와우- 삼촌 목소리가 너무 커요. 사랑합니다. 리나.' 이렇게 마셨습니다. 그가 제 목소리를 좋아한 것에 감사합니다. 여러분도 제 목소리를 잘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저희 모임에 이제 임신 중에 있는 어떤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저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드온 형제님 당신이 말씀을 전할 때마다 제 뱃속에 있는 아기가 제 배를 차곤 합니다." 마이크가 켜져 있지도 않는데도 제 목소리가 커서 저는 꺼져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28절 읽겠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7-28).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참으로 여러분이 이 자리에 나와서 복음을 듣게 된 것에 기쁘게 생각합니다. 왜 저희가 여러분들을 초청해서 이렇게 복음 말씀을 듣게 하고 그것을 들을 때에 기뻐하고 있습니까? 왜냐하면 이 복음이 좋은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좋은 소식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소식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게 좋은 소식이 아니었던 것을 우리는 또한 확인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때때로 좋은 소식이 그냥 거짓된 소식이었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좋은 소식이라고 할 때에 우리는 참으로 그것이 좋은 소식이며 그것이 사실임을 믿을 수 있습니다. 제가 왜 성경을 믿게 됐습니까? 왜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알고 있습니까?
제가 이것에 대해서 많은 것을 말씀드릴 수 있지만 몇 가지만 언급을 하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손에 들고 있는 이 책은 참으로 놀라운 책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 성경책은 역사상 인류가 가진 가장 오래된 책입니다. 그리고 또한 세상에서 가장 여러 군데서, 여러 민족이 읽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또한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인류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책이기도 합니다. 수천 년 동안 그려왔습니다. 많은 성경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 성경을 공격하기 위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수백 년 수천 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여전히 이 성경은 확고하게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 성경을 믿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 성경을 면밀하게 조사하고 비판했는데도 그 지위를 놓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성경을 어떻게 하면 흠집을 내려고 노력하였지만 다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성경에 하나의 결점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책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측면에서 한 가지를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어느 이 성경에 한 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기록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만약에 제가 제 자신에 대해서 책을 쓴다면, 요즘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서전을 그렇게 많이 씁니다. 제가 그 책을 저에 대해서 자서전을 쓴다면, 내가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를 쭉 쓸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잘생겼는지도 쓸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친절한 사람이었는지도 쓸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책을 사시겠습니까? 사람들이 이 사람은 자기 잘난 척만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자기에 대해서 쓴다면 그 책을 우리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동기 자체가 의심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 대해서 어떤 한 책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분에 대해서 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증거입니다. 참으로 이 그분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그분이 오실 것을 미리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만난 사람들은 그분의 생애와 그분의 죽음에 대해서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승천하시고 난 후에 그분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에 대해서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또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에 이 통역하는 형제와 또 제가 이 컵에 대해서 한번 글을 쓴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꽃이 이렇게 있네요."라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컵 위에 뚜껑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그리고 뚜껑에 대해서 말해줄 것입니다. 그리고 다 쓰고 나서 "그 안에 물이 담겨 있었는데 그걸 쓰는 것을 까먹었네요."라고 또한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이렇게 대화를 하면서 제대로 이것에 대해서 적고 있는지를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쓸 것입니다. 만약에 제가 이 컵에 대해서 쓴다면 이 이제 컵에 어떻게 생겼는지를 모양을 묘사를 할 것입니다. 근데 이 컵은 조금 다른 모양으로, 뭐 김치처럼 생겼다라고 쓸 수도 있습니다. 뭔가 잘못 쓴 것입니다. 잘못된 그런 묘사를 그 책에다가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전화를 해서 확인해 보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가 서로 맞게 쓰고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입니다. 동일하게 똑같은 사실을 말하고 있는지를 확인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글은 쓰지 않는다 할지라도 서로 일관되게 써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에 66권이라는 많은 책이 있지만 그 저자들이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책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이 66권의 책이 40여 명의 저자들에 의해서 기록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물론 전화도 없는 것이죠. 또한 메신저나 어떤 이메일도 주고받을 수도 없습니다. 이제 그 저자들이 서로 자기가 잘 쓰고 있는지 검토하고 의논할 그런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저자들은, 어떤 저자는 수천 년 전에 있었던 저자들도 있습니다. 이 성경을 기록한 저자 중에 한 명인 모세는 주님께 오시기 전에 2천 년 전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모세가 이 성경에 처음 5권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이 성경에 많은 부분을 기록한 다윗은 모세가 죽은 지 또한 몇천 년이 지난 다음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한 성경을 기록한 다른 선지자들이 이사야 같은 선지자들은 다윗이 죽은 뒤 또 한참 뒤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신약 성경을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이 저자들은 모세, 다윗, 또한 이사야 같은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 이 사도바울은 성경의 많은 부분을 기록하였지만 그는 처음에 그리스도인들을 싫어하였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는 바울과 친구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를 이제 깨달으실 것입니다. 모세는 다윗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내가 다윗은 이사야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스가랴도 이사야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마태도 그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바울도 그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이 성경책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것입니다. 여기에 그 결정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처음부터 마지막 책까지 쭉 읽어보신다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읽어보신다면, '어? 이건 한 사람이 다 기록한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동일한 주제를 일관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기록에 그런 필체는 다르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다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사용하는 모든 주제가 조화롭게 일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른 직업을 가진 그러한 다른 저자들이 기록을 하였지만 그들이 기록한 기록물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일관되게, 조화롭게, 성경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길 원하신다는 것이 여기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와 같이 일관되게 그것을 말해줄 수 있습니까? 왜냐하면 이 성경의 저자들이 그들이 펜을 들어서 기록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영감'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을 자신들이 영감을 소유해가지고 썼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귀신 들린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영감을 받았다는 것은 그것과 다릅니다. 그것은 이 성경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영감으로 기록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록을 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완전히 잘 의식하고, 자각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그들 자신입니다. 귀신들린 사람들과 다릅니다. 그들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필체를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기록물을 보면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 성경을 기록한 그것을 보면은 그 한 문장 한 단어 하나하나가 하나님께서 영광 영광을 받아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사람에 의해서 쓰여졌지만,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기록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마치 하나님 자신이 그분께서 직접 쓰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가 이것을 잘 몰랐는데요. 그건 좋은 사실입니다."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지자들, 모세가 말한 것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는 모세가 말하기를 만약에 그가 말한 것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 선지자라고 모세가 미리 말해두었습니다. 만약에 어떤 선지자가 하나님께 받았다라고 우리에게 말을 해준다면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져야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예언이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에 많은 부분이 그런 예언을 담고 있는 그런 부분입니다. 만약에 성경의 그 많은 예언 중에 하나라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이 성경은 거짓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경이 사실임을, 그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이 성경에 나와 있는 모든 예언은, 참으로 그래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800년 전에 그리스도께서 나시기 전에 예언이 있었습니다. 그건 이사야라는 선지자가 이렇게 예언한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예언하였고 그분이 죽을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때 당시에 그 선지자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구세주가 죽다니? 그들에게 있어서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건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800년 전에 기록한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죽을 것을 기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죽으실 것인지도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어디서 죽을 것인지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그분이 배반을 당해 죽을 것임을 또한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어떻게 그분이 장사될 것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또한 그분이 창에 찔릴 것도 예언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오직 로마 군인들만 그 창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이 로마 제국이 십자가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이미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할 때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 아니다라면 이 예언서는 그냥 버려도 상관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그와 같이 죽으신 것입니다. 그 성경에서 예언한 대로 그대로 죽으신 것입니다. 예언하기를 "그분께서는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얻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부활도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처럼 사흘 만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것을 더 여러 가지 예를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이렇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에 여러 종교가 있지만 그중에 어떤 한 곳도 부활에 대해서 말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이 실제로 성취된 것을 말하는 게 유일하게 이 성경의 그리스도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기독교가 정말 사실인지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정말 그리스도가 살아났는지 그 증거를 찾아야 된다." 그런데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신 것을 증거할 그 증거물을 찾을 수 있습니까? 어느 누구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제가 몇 가지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여러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분을 따라갔습니다. 왜냐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메시아이고 그들의 구세주인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이스라엘에 있어서 첫 번째로 오신 구원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메시아라고 하는 거짓 메시아들이 그 앞서서 많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와가지고 '내가 메시아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서 전쟁에서 이겨주겠다.'라고 말합니다. '나를 따르라. 이제 로마 제국과 싸우자! 그리스인들과 싸우자!' 많은 자기가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와가지고는 이제 그 민족을 위해서 싸우고 그들을 구원하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안하게도 그들을 그렇게 메시아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은 모두 다 죽었습니다.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살아있을 때는 영웅처럼 보였지만 죽고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싸움에서 이겼지만 결국에 감옥에서 그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 메시아를 따르는 사람들은 이제 실망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끝났습니다. 그들은 그 메시아라고 말했던 그 사람이 실제로 메시아가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많은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왔다가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그 유대인들이 그렇게 멍청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냥 멍청하게 어떤 사람을 쫓아간 것이 아닙니다. 메시아는 반드시 자기가 메시아인 것을 증거해야 됩니다. 만약에 메시아가 아닌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면 바로 버리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메시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그분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며칠 전의 일입니다. 그들은 조금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합니다. 만약에 당신이 메시아라면은 모든 세상 앞에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더욱 그들을 당하게 만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로서 이 민족을 로마 제국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 날이 다가오자,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중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이렇게 되었구나. 우리가 그전에 메시아가 아니었는데 따르던 그런 사람들과 같이 끝났구나. 메시아가 어떻게 범죄자같이 그렇게 수치스러운 십자가의 죽음을 죽을 수 있겠는가?'라고 실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겠노라."라고 떠났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희망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제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사흘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때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본 것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갑자기 그분을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도 그들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냥 영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진짜로 발견한 것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죽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제자들은 그 이후로 평생토록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됩니다. 이것은 우리 성경이 얼마나 사실인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까? 이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유대인들은 그렇게 멍청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만약에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거짓인 것이 드러난다면 바로 그를 버리고 돌아갑니다. 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이제는 예수님을 증거하고 전할 뿐만 아니라 그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그분을 증거하고 죽었습니다. 만약에 어떤 유대인이 메시아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고 한다면 그 메시아는 참된 메시아인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메시아임을 그들은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실제로 본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 것을 보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확신을 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모두 순교자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그들은 죽습니다. 그분을 위해서 핍박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이시고 그분은 지금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무덤을 어느 누구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유명한 사람들의 무덤이 항상 이 땅에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은 어느 누구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주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은 능력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죽은 사람을 믿으라고 말씀드리고 있는게 아닙니다. 그 무덤 속에 누워 있는 사람을 믿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에서 살아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을 믿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지금 하늘에 계십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바로 이분을 믿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죄를 위해서 죽으신 그분입니다. 그것이 바로 히브리서 9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때때로 어떤 설교자들이 이 말씀을 잘못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적용을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정확한 의미를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이것이 모든 사람이 다 죽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씀은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한 번 죽어야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구절이 말하고 있는 바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것이 말하고 있는 것은 '어떤 한 사람도 한 번 이상 죽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히브리서 이것의 문맥에 말하고 있는 것이 바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직 한 번만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단 한 번만 죽는 것이 영원히 우리에게 필요를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이 창조의 원리입니다. 이 죄와 죽음의 원리입니다. 한 번 죽는 것입니다. 한 번 이상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은 굉장히 엄중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음이라는 그 문을 통과하고 나면 다시 살아 이 땅으로 올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여러 가지 잘못을 하지만 그런 것들을 고칠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죽음이라는 경계선을 통과하고 나면 그것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두 번 죽을 수 없습니다. 물론 여기에 몇 가지 예외가 성경에 기록된 인물이 있습니다. 나사로와 같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느 누구도 두 번 죽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한 번 이상 죽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죽고 난 이후에는 이제 너무 늦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 이 시간을 하나의 선처럼 흘러가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방향을 바꿔서 다시 시간을 거슬러 돌아올 수 없습니다. 때때로 공상과학 영화에서는 이제 시간 여행을 하는 것이 나옵니다. 그것은 단지 그냥 공상과학 영화입니다. 시간은 직선과 같아서 한 방향으로만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우주의 법칙입니다. 이번 많은 과학자들이 다른 것을 증명해 내려고 노력하지만 이것이 사실인 것입니다. 어떤 종교는 이렇게 가르치곤 합니다. '한 번 죽고 나서 다른 생애로 환생한다. 여러분이 살아있을 때 아주 좋은 사람으로 잘 살게 된다면 다음 생애에서는 아마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대통령이 되고 나면 나쁜 일을 하게 되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만일 나쁜 일을 하게 된다면, 그리고 죽게 된다면, 여러분이 다른 생으로 태어납니다. 나쁘게 하면 돼지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제 돌아가는 윤회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시간은 직선처럼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다. 죽음 후에는 우리는 우리의 창조주를 만나야 된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형벌의 아주 두려운 점은 거기에 후회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 때 이 사람은 그 후회하는 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회라는 것은 '내가 좀 더 더 잘했어야 잘했어야 되는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윤회가 사실이라면, 그리고 이 땅에서 나쁘게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리고 강도짓을 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돼지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돼지로서 내가 지난 생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만약에 그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두려운 형벌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벌에서 가장 두려운 부분은 과거를 우리가 계속 기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돼지로 태어났을 때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형벌이 아닙니다. 기억하지 못한다면, 어떤 것도 형벌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다른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신다면, 여러분과 저의 죄 가운데서 죽으신다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신 그 기회를 놓쳐버린다면 그리고 여러분이 이제 죽고 나서 이제 영원한 순간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여러분 여전히 이 땅에서의 생애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과 같이 이 복음집회에 참석한 그 시간을 기억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을 여러분에게 베푸시고 다시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주셨는데 말입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집회가 끝나고 구원받지 못한 채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리고 나서 죽어서 여러분 지옥에 있을 때에, 또한 불못이라는 끔찍한 장소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그 고통 가운데서, 그 형벌 가운데서 고통은 단지 그 고통과 슬픔뿐은 아닙니다. 그 지옥에서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여러분이 받는 형벌은 바로 살아있을 때를 기억하면서 그것을 후회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었는데, 단순히 그분을 나의 구주로 영접할 수 있었는데, 그걸 못했다.'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구원이 나에게 값없이 주어져 있었는데, 그것을 단지 손을 내밀어 잡기만 하면 됐었는데, 그런데 여러분은 그냥 나가버린 것입니다. 그 구조 없이 이 장소를 떠난 것입니다. 참으로 지옥에서 가장 큰 고통은 내가 그 기회를 놓쳐버린 것에 대한 후회인 것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구원을 놓친다면, 그리고 이 죽음이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나(?)라고 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단지 심판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를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샌프란시스코에 한번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여러분이 샌프란시스코의 그 항구에 서서 건너편을 바라보면 자그마한 한 섬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중에 어떤 분들은 아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거기에 이제 바위라고 불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 장소의 이름은 '알카스트라'라는 곳입니다. 이곳은 아주 흉악한 죄인들을 가두는 감옥입니다. 최악의 범죄자들이 거기에 갇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알 카스트라는 감옥에 아주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제 국립공원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그래서 거기 방문해서 이렇게 둘러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둘러보면은 그 감옥이 생각하고 온 것처럼 그렇게 끔찍한 환경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감옥에 방문하게 되면, 심지어 그 감옥 방에 창문도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창문을 통해서 그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보다 더 좋은 환경에 그 죄수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거기에 그 알카스트라 감옥에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그 감옥에 갇힌 죄수들의 삶에 있어서 고통스러운 것이 그 감옥 안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그 창을 통해서 금문교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그 도시 경관을 보게 됩니다. 그 다리를 건너가는 차들과 그리고 그들의 일상생활, 그들이 하고 있는 일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그 감옥에 갇힌 죄수들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거기 있을 수 있었는데' 너무나 가깝게 그들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더 나은 결정을 했다면, 내가 지금 저 자리에 있는 것인데' 너무나 가깝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여기 갇혀 있습니다. 그것이 알카스트라에 갇힌 죄수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동일하게 성경에는 그와 같이 지옥에 간 한 부자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살아있을 때 아주 풍요로운 삶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그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지 않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누가는 기록하기를 그는 지옥에 가게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많은 고통 가운데서 나사로를 통해서 그의 혀를 시원하게 할 한 방울의 물을 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에 더해서 그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의 과거의 삶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형제들이 살아있는 그 형제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족들이 살아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 중 누구도 자기가 지금 떨어진 이 장소에 오지 않기를 바라게 됩니다. 후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한 번 죽은 후에 그리고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그 경계선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리스도가 없다면, 여러분에게 이것은 여러분이 절대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바로 다음 구절에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단번에' 많은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셨다.
이 땅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다른 모든 종교는 자신의 죄의식을 고치기 위해서 계속적으로 뭔가 반복해서 해야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말레이시아에서 왔습니다. 거기는 많은 이방 종교가 있는 나라입니다. 저의 할머니는 이제 불교를 믿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교에서는 계속적으로 제단에 뭔가를 바쳐야 했습니다. 매일매일 그렇게 해야 됐습니다. 매달 그렇게 했습니다. 때때로 그들은 왜 이것을 해야 되는지도 모르면서 계속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희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그리스도인들은 아주 좋구나." "왜 그래요?"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이렇게 제단에 할 필요가 없지 않니?" 할머니도 매일 그렇게 해야 되는 것에 대해서 지쳐버린 것입니다. 참으로 사람이 그렇게 매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너무나 수고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전통이기 때문에, 미신적인 것 때문에, 할머니는 계속해서 하고 또 하고 그렇게 계속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면 그리스도께서 한 번, 우리가 필요한 바로 그것을 바로 그것을 다 한 번에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할머니가 제 말을 잘 들으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참으로 한 사람에게 있어서 그의 사랑하는 가족이, 부모님이, 자녀가, 또 친구가 그리스도 없이 영혼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보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그 영혼의 순간으로 들어간다면 그것만큼 부모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부모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영혼의 순간으로 들어간다면 그것만큼 자신의 자녀를 슬프게 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 영혼의 그 기간에 참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구원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너무나 크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 자신 그분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이시지만 그분은 온전하신 분이십니다.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또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원해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기를 원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여러분을 위해서 죽으실 수 없습니다. 저도, 또 다른 분이 여러분을 위해서 죽으실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우주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대신 죽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이유입니다. 참으로 그분은 너무나 은혜로운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한 번 이상 죽으실 필요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단 한 번의 죽음이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그분의 단 한 번의 죽음이 모든 사람의 구원을 사기에 합당한 값을 치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모두 죄인입니다. 우리는 다 잘못을 범했습니다. 어떨 때는 또 조금 하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많이 잘못을 합니다. 정직하게 우리는 모두 죄인인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것은 죄의 대가가 비싸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죄에 대해서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가볍게 생각합니다. 거짓말을 하고 그냥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쁜 말을 하면서 그런 것들이 아무 문제가 아닌 듯이 말을 하고 다닙니다. 많은 잘못된 일을 범하면서 이것이 나에게 어떠한 문제를 해를 끼치지 않을 걸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 죄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직 한 죄라도, 오직 작은 죄 하나라도, 그 사람의 영혼을 지옥으로 던져 넣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가 단 하나의 죄를 짓고 그들은 쫓겨나게 됩니다. 이 중에 어느 누구도 그 사람들처럼 나는 내 인생에서 단 하나의 죄만 지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만약에 제가 제 인생 가운데서 잘못한 일을 하나하나 다 적기 시작한다면, 이 한 벽이 충분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다른 벽에도 또 쓴다고 해도 충분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천장에 계속 쓴다고 해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기 이 바닥에 다 쓴다고 해도 공간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러한 많은 죄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대가를 지불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영원토록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 죄의 대가는 불못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제가 거기서 지내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죄의 대가를 대신 지불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대신 보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죽으시고 그분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그 값을 치르시는 것이 우리 모두의 죄의 대가를 치르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이 믿으신다면, 내가 그분을 믿는다면, 내 모든 죄는 사함을 얻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죄를 위해서 어느 누구도 대신 그 값을 치르실 수 있는 분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모든 사람 중에 가장 뛰어나신 그분만이, 우리의 죄값을 치르실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번 죽으신 이유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였습니다.
제가 한 가지 예를 말씀을 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한국에 오기 직전에 이렇게 머리를 이발을 하였습니다. 많이 머리가 빠졌습니다. 저는 이제 매달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게 됩니다. 제가 그 이발소에 가서 이발을 할 때에 이제 깎인 머리가 이제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이발이 다 끝난 다음에 저는 무엇을 합니까? 저는 그 이제 값을 치릅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만약에 "제가 돈을 안 가져갔는데요." 말하고 그 땅에 떨어진 잘린 머리카락을 다시 주어 담습니다. "제가 값을 지불할 돈이 없으니 이 머리카락을 대신 드리겠습니다." 머리카락을 뭐 한단 말입니까? 그런데 이건 가치 있지 않습니까? 이건 제 일부입니다. 여기 값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발사는 "그거 필요 없고 돈을 주시오."라고 할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무엇입니까? 저는 다른 필요 없는, 가치가 없는 화폐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합당한 그 가치가 있는 화폐는 돈입니다. 제 머리카락에 가치가 있으니까, 물론 저에게는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기르느라 한 달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돈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머리카락이 가치가 있는 겁니다.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틀린 그런 가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래서 웃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그렇게 어리석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죄의 용서함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 하나님에게 "제가 얼마나 선한 일을 했는지 한번 보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제가 얼마나 진심으로 하고 있는지 한번 보십시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진실된지를 보이기 위해서 내 몸을 상하게 하면서, 그렇게 고행을 하면서 "하나님, 제가 얼마나 진지한지 한번 보십시오."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 수십억의 돈을 기부하면서 "제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지 보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틀린 화폐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있는 그 값을 치르는 유일한 그 가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구원을 위해서 용납하시는, 받으시는, 유일한 값입니다. 하나님의 시야에서 그분께서 받으시는 유일한 값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인 것입니다. 저처럼 하지 않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으로 값을 치르려고 하지 않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을 여러분의 주와 구주로 믿는 그 믿음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죽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마음으로 참 나는 죄인이었고, 바로 그 죄인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것을 믿으신다면 여러분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 진리를 믿으신다면, 여러분은 이제 하늘나라로 가시는 것입니다. 구원이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나와서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돈이나 다른 대가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선한 행위나 기도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구원은 온전히 값없이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네가 구원을 얻으리라."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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