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집회/마포모임 학생캠프(요약)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박이레 2023. 1. 6. 20:16

<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 2023년 1월 6일 금요일 (요약) /강성찬 형제님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전1:18, 개역한글)

지혜자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상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와 지식이 많으면 기쁨이 있을거 같은데 왜 지혜가 많으면 번뇌가 많고 지식이 많으면 근심을 더하는 것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집의 둘째 아이가 그 아이는 어렸을때부터 별 걱정없는 해피보이입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면서 이런 말을 저에게 했습니다. "아빠, 어렸을때는 모든것이 다 즐거웠는데 지금은 왜 그런지 복잡해요." 아마도 여러분도 중학교에 올라오면서 동일한 경험을 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많은것을 알게 되고 더 지혜가 커졌는데도 불구하고 더 사는것이 복잡해 진 것입니다. 제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구글포도에 업로드가 됩니다. 그러면 오늘같은날, 10년전의 오늘, 5년전의 오늘 사진이 뜹니다. 그 과거 사진을 보면 해맑게 웃는데, 점점 자랄수록 무뚝뚝해지는 표정으로 사진이 찍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하는 말입니다. "복세편살"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입니다.
그러나 정말 감사하게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그게 다가 아닙니다. 지혜가 지식이 많아져서 근심이 않아지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지혜자는 해 아래에서의 일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해 아래서는 인생이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늘 시민으로서 하늘에 속한 것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혀 다른 지혜와 지식에 대한 태도를 갖게 됩니다.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3:10-12,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10절에 "알려하려" 계속해서 알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부활과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합니다. 그는 구원받은지 30년이 되었는데도 이 말씀을 합니다. 그보다 더 주님을 잘 아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그리스도를 알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그의 인생 가운데서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알면 알 수록 그에게 더욱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와같은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있습니까? 많은 학생들이 구원받은지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와 함께 충분히 오랫동안 개인적으로 교제를 나누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학교에서 1년동안 한 반을 지냅니다. 그런데 같은 반인데도 이름만 알고 잘 알지 모르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이 주님에 대해서도 그렇게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짧게 의무적으로 잠깐 성경을 읽고 지식적으로 알고 헤어져 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그 이름 외에 아는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도 그와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오늘 많이 교제가 되었지만 사마리아 여인에 대해서 교제드려 보겠습니다.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요4:7, 개역한글)

예수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면서 대화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특징적인 것 중에 하나가 대화가 길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와같이 하시는 이유는 그 여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물과 그것을 주는분을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긴 대화 끝에 이 여인은 주님에 대해서 알고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주님과의 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께서 물을 좀 달라고 하셨을때, 그냥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면 그 여인은 주님에 대해서 '그냥 나한테 물을 달라고 하는 사람, 나에게 뭔갈 요구하는 사람' 이것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짧게 성경을 보고 피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성경을 나에게 이거해라, 저거해라라고 요구하는 도덕적인 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재미없고 흥미가 없고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조금 더 시간을 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성경이 나에게 뭔가를 하라고 요구할때에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여기서 좀더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이 유대인인데 왜 나에게 말을 걸까?' 유대인은 사마리아인과 말을 걸지 않는데 왜 말을 걸까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좀더 관심을 가진다면 성경에서 요구하는 것이 단지 세상에서 요구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단지 여인이 구하게 하도록 물을 달라고 하신 것입니다. 먼저 주려고 물을 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여인이 하나님의 선물을 알아서 주님께 나아와 구하도록 지금 대화를 이끌어가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구하기 위해서 말씀하셨다고 할때에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구하는것은 쉬운것 아닌가?' 하지만 구하려면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그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하는 것은 그냥 마음으로 바라는 것과는 다릅니다. 구하는 것은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하는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 나와서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럴때에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그것을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 여러분의 기도가 합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께서는 이 사마리아 여인을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인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12절) 주님과 대화를 이어갈때에 우리는 주님이 더 큰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야곱은 자손에게 많은 축복을 준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3-14, 개역한글)

주님께서는 더 놀라운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이고 내적인 것이고 그것은 누구에게나 약속하고 있는 그러한 더 큰 선물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나와서 주님을 알게 될때에 그분이 크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주님이 ~~보다 큰 이라고 언급된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여러분이 주님에 대해서 이렇게 알게 되었을때, 주님과의 교제를 나눌때에 주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주님을 더욱 큰 이로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축복을 계속적으로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16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요4:16-19, 개역한글)

우리가 주님과 교제를 계속 이어나갈수록 주님께서 나를 알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성경을 연구해서 주님을 알아갈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알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 자신도 나를 잘 모릅니다. 이 여인도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대단히 쉽게 합리화 합니다. 절반의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이 말로 자기 자신을 가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놀라운 점은 자기 합리화로 감추어진 그 벽을 뚫고 들어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과의 교제 가운데서 주님께서 정말로 나를 아시는것을 깨닫고 엎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교제 가운데서 그분께서 큰이며 나를 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4:23-24, 개역한글)

우리는 주님과의 교제를 지속해서 나갈때에 그 정점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을 통해서 아버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여기서는 그 하나님 아버지는 예배하는 자를 찾는분입니다. 우리와 같은 미천한 인생을 불러서 그와같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분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놀라운 기쁨을 가져다 주는 아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둘째 아이가 이상한 말을 또 했습니다. 작년에 구원받고 모임에 더해져서 예배 시간에 감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매 주일마다 감사를 준비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왜 모임에 청년 형제님들이 없는지 알겠다. 힘드니까 다 도망가버린 거다." 이것은 두가지가 잘못되었습니다만, 사실 감사 준비를 하는 것은 많은 수고가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문제 첫번째는 이것이 형제만 하는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매님들도 준비해야 하고 말씀으로 아버지께 나아와야 하는 것입닌다. 자매님들이 입술을 열어서 감사하지는 않지만 많은 영적인 수고가 필요합니다. 두번째 잘못된 것은 예배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놀라운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특권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도망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놀라운 교제의 결과인 것입니다.

39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요4:39-42, 개역한글)

사마리아인들도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처음에는 여인이 전하는 말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왔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것입니다. "친히 듣고" 참으로 주님께 직접적으로 말씀을 듣는 것, 개인적인 교제 가운데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것은 굉장히 큰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주님과의 교제 가운데 주님을 알아가는 것은 여러분에게 큰 기쁨을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