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래 형제님/교회

< 12. 제사장 >

박이레 2021. 7. 20. 23:47

2020년 1월 31일 금요일 / 한봉래 형제님

< 12. 제사장 >

노만 크로포트 형제님의 주님의 이름으로 모임이라는 책에 제 10과 제사장직과 관련해서 교제하겠습니다.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2:5).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1: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출19:6).

제사장이라고 하는 단어가 들어간 구절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맨 먼저 베드로전서 2장 5절을 보면 "너희도" 되어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1장 1절을 보면 사도 베드로가 누구에게 편지를 썼냐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그 다음에 2절, "에게 편지하노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를 받는 성도들은 그 당시 핍박 때문에 흩어져서 여러지역에서 모임생활을 하고 있는 그런 성도들에게 쓴 편지 입니다. 그리고 2장 5절로 오겠습니다. "너희도"라고 했습니다. "너희도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제사장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5절에는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9절에 보면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구원받은 성도에게 "너희들이 제사장이다." 그런데 두 종류 제사장을 말했습니다. 거룩한 제사장이고 왕같은 제사장이다. 저희들이 잘 아는대로 구약에서는 왕과 제사장이 중복되지 않습니다. 왕이 제사장을 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징계하셨습니다. 웃시아 왕이 그랬습니다. 웃시아 왕이 자기가 제사를 드리려고 했을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징계하셨습니다. 그가 문둥병에 걸립니다. 그래서 구약의 왕은 제사장 아닙니다. 제사장은 왕 아닙니다. 그런데 신약에 오면 우리는 왕이면서 제사장입니다. 이것이 베드로 사도가 말한 건데요. 그 다음에 요한계시록을 보시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을 보시면, 요한계시록은 사도요한이 있었던 때지요. 사도요한이 있었던 때가 1장입니다. 그리고 2-3장이 교회시대 입니다. 그리고 4장부터는 미래에 해당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2-3장을 사는거죠. 그런데 요한계시록 1장은 그리스도인으로치자면 과거입니다. 이미 일어난 사건입니다. 일어난 사건이 무엇이냐면, 1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1:6).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그렇게 저희들이 제사장이 된거죠. 예수님이 우리를 제사장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제사장이 어떤 제사장이냐면 베드로전서는 두가지로 말합니다. 거룩한 제사장이고 왕같은 제사장이다. 그 다음 출애굽기를 보시겠습니다. 출애굽기니까 이것은 이스라엘을 가르키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되도록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가 되지 못합니다. 실패 합니다. 이것을 배경으로 놓고 먼저 저희들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제사장으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지역 모임에서 모든 성도들은 제사장 기능을 해야 한다. 이것이 주제입니다. 지역모임은 사람이 주인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인이셔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인인 것을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 그 중에 하나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주님이 하늘에 올라 가시고 대신 이 땅에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따를때, 성령에 복종할때, 그때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주님이 주인인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에 대해서는 몇가지를 다뤘었죠. 예를들면 성령님이 주신 은사대로 섬길때에, 이 교회가 사람들의 교회가 아니고 주님의 교회다. 그 다음에 성령님이 세우시는 사람이 장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계속 저희들이 다뤄온 내용입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그 교회는 주님이 주님인 교회가 된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로 마지막으로 다루는 내용인데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성령님께서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 기능을 할때, 그때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주님 교회가 된다. 이것이 오늘 다루게 되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다시 베드로전서 2장으로 가서 말씀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5절을 보시면 모든 구원받은 성도가 제사장이다라고 하는, 이것을 흔히 말할때에 만인 제사장 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진리가 분명하게 밝혀지고 드러나게 된것은 루터에 의해서 입니다.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할때 이 구절을 들고 교황체제를 반대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제사장이다. 사도 베드로가 그렇게 말했다. 모두가 제사장이지 특정한 사람이 제사장이 되는것이 아니다." 이와같은것을 루터가 종교개혁의 원칙으로 삼아서 개신교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지금현재, 기독교라고 불리우는 것이 루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안타까운것은 개신교, 기독교를 보면 또 성직자 제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신자들이 제사장이 아니고 목사님이 제사장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잘 아는 성경 단어를 찾아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6절을 보시죠. 교회가 막 시작됬을때 일곱개의 교회가 교회사 전체를 말해주고 있다면 사도들이 떠나고 나서 첫번째 교회가 에베소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6절을 보시면,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계2:6).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2:15).

사도들이 떠나고나서 교회에 벌어진 일이 무엇이냐면 니골라당의 행위가 나타납니다. 니골라당이 뭐냐하면 성직자 제도 입니다. 니골라라고 하는 단어의 뜻이 '백성 위에 있는 자'라고 하는 뜻입니다. 백성을 지배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초기부터 어떤 일들이 벌어지냐면 특별한 계급의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분들을 저희들이 성직자라고 부릅니다. 신부건, 목사건, 어떤 이름으로 불리우건 일반 성도보다 위에 있는 사람, 이것이 니골라당입니다. 처음에는 그와같은 행위가 있었고, 그리고 '니골라당의 교훈'은 이게 아예 교리적으로 평신도와 성직자를 구분하는 교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이죠. 그래가지고 쭈욱 내려오다가 루터에 의해서 이와같은 것은 비성경적이다. 모든 구원받은 사람이 제사장이다. 성경은 그렇게 말한다. 그렇게 해놓고 다시 개신교, 기독교가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문제고요.

다시 베드로전서 2장을 보시겠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으로 기능해야 한다. 이게 성경적인 교회고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이고, 그때만이 그 교회는 주님이 주인인 교회를 이룬다. 저희들이 그렇게 생각할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무엇인가, 2장 5절에 보면 제사장을 말할때에 첫번째는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제사장은 주로 예배를 드린다는 뜻입니다. 모든성도가 하나님앞에서 신약적으로 표현하면 예배를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신교에는 예배가 없습니다. 그들은 예배를 뭐라고 생각하냐면 설교를 듣는것을 예배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설교를 듣는것은 예배가 아니지요. 그것은 말씀을 주님에게서 배우는 거죠. 그래서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는것, 그런 예배가 없는거죠. 이 예배가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그다음 9절에 있는 "왕같은 제사장" 두번째, 이 기능은 뭐냐면 구원받은 성도가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왕같은 제사장의 기능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가 이 두가지 기능을 해야 합니다. 모임에 구원받아 들어왔으면 직접 예배드려야 합니다. 간접적으로 드리면 안되고 직접 예배 드리고 세상에 나가서 직접 복음을 증거하는 제사장이 된다. 이것이 신약에 있는 제사장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이와같은 기능을 할때, 그와같은 지역모임은 성경적인 교회를 이루게 된다.

그 다음에 여기서 하나 더 보겠습니다. 많은 형제님들이 이렇게 가르쳐 왔습니다. 거룩한 제사장이 먼저 언급되었고 왕같은 제사장이 다음에 언급되었다. 그래서 성경이 언급한 순서에도 의미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 주님을 섬기는 일(봉사)하는 일, 예를들면 전도 하거나 말씀을 나누거나, 심방을 하거나 여러가지 교회의 봉사의 일을 하거나 이와같은 것이 왕같은 제사장의 행위 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먼저 드리고 봉사는 두번째다. 이것이 우선순위가 뒤바뀌면 안된다. 이것이 저희들이 많이 가르침을 받은 내용 입니다. 당연하거죠. 예배가 가장 먼저고, 예배를 무시고 예배를 안드리면서 어떤일을 열심히 하는것, 이것을 합당하지 않다. 성경적이지 않다, 이렇게 배우고 실행해 왔습니다. 여기서 하나만 더 나가보겠습니다. 예배후에 봉사하지만 모든 봉사는 예배드리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저희들이 예배드릴때는 굉장히 신경을 씁니다. 예배가 합당한 내용으로 예배를 드리는지, 예배 드릴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잘 받아서 예배 드리는지, 신경을 씁니다. 그런데 예배가 마치고나면 그 다음부터는 자기가 갑니다. 예배드릴때는 어떻게든지 하나님이 주인이셔야 한다는 의식이 있는데 봉사 할때는 자기가 봉사 합니다. 말씀도 자기가 준비해온대로 막 하고, 그 다음에 봉사할때는 자기가 잘할수 있는것, 생각한 것, 막 하고 이렇게 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모든 봉사는 예배의 태도로 해야한다. 이것이 순서가 갖고있는 의미 입니다. 그래서 모든 봉사도, 말씀을 나누는 것도 교회에서 어떤 청소를 하는것도 또 누구를 심방하는 것도 예배 하듯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아가도록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하고, 이런게 분명히 있어야 제사장들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5절에 "거룩한 제사장", 그리고 9절에 "왕같은 제사장" 이 영적인 순서에 대해서... 그 다음에 두번째로 제사장은 뭐하는 사람이냐? 누가 제사장이냐, 하는것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에덴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죄가 일어나지 않을때는 하나님과 아담과 하와가 교제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범죄 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어 버렸죠.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이제 범죄후에 하나님과 죄인이 교제하려면 반드시 제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입히시면서 문제가 해결 되었죠. 그때 그 가죽이 무슨 짐승의 가죽인가는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지만, 예를들면 하나님께서 양을 죽이시고 양의 피로 아담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대속해 주시고 그리고 양의 가죽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그 후에 나오는 사람들은 전부 하나님께 나갈때마다 피를 가지고 나와야 압니다. 짐승의 피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 나간사람, 죄인인데 하나님께 나간사람, 가인과 아벨입니다. 아벨은 양을 가지고 나갑니다. 가인은 곡식을 가지고 나갑니다. 가인의 제사를 안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갈때 죄가 일어난 후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갈때에 반드시 무엇인가 제물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특별히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그 다음에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어떤 짐승의 피를 가지고 가야 했습니다. 이 짐승을 가지고 가는 사람을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각 개인들이 갑니다. 가인과 아벨은 각각 갑니다. 그 다음에 성경이 기록한 것을 보면 노아가 있습니다. 노아가 홍수 심판 후에 새로운 세상에서 그가 하나님 앞에 나가야 됩니다. 그그때그가 제사를 드립니다. 짐승을 가지고 갑니다. 그래서 노아가 가는데 이때보면, 노아때 부터는 자기가 하나님께 가기 위해서 스스로 짐승을 준비하는 것 보다도 노아에게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있었고 아들 세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드립니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가정의 대표자로서 가장이 가정의 구성원을 대표해서 갔다. 이 가장이 제사장입니다. 이와같은 예는 욥기에 보면 분명히 나옵니다. 욥은 가족 행사를 한 후에 혹시 아들들이 범죄했을까봐 두려워서 그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이때 이 욥이 제사장 기능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어디서 분명해지냐면 유월절에 분명해 집니다. 유월절, 그날 하나님께서 피를 바르지 않은 집의 장자들을 다 죽이는 날. 이때 양을 어떻게 하느냐면 한마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이 가족들이 그 가운데 들어갑니다. 그래서 가족을 위해서 양을 한마리를 잡습니다. 각 개인 개인을 위해서 가족의 숫자만큼 양을 잡지않고 한 가정의 양 한마리 입니다. 그러면 양을 대신잡는 사람, 온 가족을 대표해서 양을 대신잡는 사람, 그리고 그 양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는 사람, 이것이 제사장입니다. 자 그 다음에 이스라엘이, 원래 다 제사장이 되어야 하는데, 이스라엘이 금송아지 섬기고 이렇게 해서 실패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체가 죄인이 되어서 .다른 이스라엘 지파를 위해서 대신가는 사람, 레위지파, 아론지파, 이것이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한 민족을 위한 양, 대속죄, 이것이 제사장입니다. 그 다음 우리 주님은 제사장이시죠. 그런데 우리 주님은 온세상을 위한 제사장이십니다. 제사장은 뭐냐? 죄인이 하나님께 나가기 위해서, 죄인과 하나님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느냐? 이 죄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만나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물을 가지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가지고 오지만 구약에서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짐승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는 사람, 이게 제사장 입니다. 그 다음에 제사장의 기능 두번째 입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민6:23-26).

제사장의 첫번째 기능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앞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곳에,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 나가는 사람입니다. 두번째 입니다. 하나님을 높인 다음에 하나님과 교제한 후에, 하나님의 영광을 본 후에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축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본 후에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해주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서 실패한 예가 있고요. 침례요한의 아버지가 사가랴 입니다. 그런데 그가 제비를 뽑았습니다. 제비를 뽑아서 자기가 당첨이 됬습니다. 뭐에 당첨이 됬냐면 그가 대속죄일,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지성소까지 들어가는 하나님의 임재앞에 들어가는 그 일로 뽑입니다. 그가 아론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아론의 후손들이 많다보니까, 제비를 뽑아서 그 중에 한사람이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곳에 갑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이스라엘을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올해에도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 그 증거가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갔다가 살아 나온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제사장이 가지고 간 예물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나와서 백성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가랴가 들어갔습니다. 제비를 뽑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사가랴가 와라. 하신거죠. 사가랴가 올해는 내 앞에 와라. 그래서 사가랴가 갔습니다. 갔더니, 놀랍게도 가브리엘이라고 하는 천사를 만나게 됩니다. 가브리엘은 누구냐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천사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는 천사 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이 언급된 천사가 세명입니다. 가브리엘, 미가엘, 그리고 루시퍼 세명입니다. 미가엘이 천사장으로 되어 있고요.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임재앞에, 하나님이 계신 곳에 늘 있는 천사 입니다. 그리고 루시퍼는 사단이 된 거죠. 이 가브리엘 천사라고 하는 것은 항상 하나님이 계신, 가브리엘 천사가 있는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천사가 말합니다. 사가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네 기도를 응답하셨다." 사가랴는 제사장으로서 이스라엘 레위지파 제사장으로 결혼을 했습니다. 아내 이름이 엘리사벳이죠. 그런데 둘이 결혼했지만, 오랫동안 자녀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두사람은 기도 합니다. "하나님 저희들에게 자녀를 주십시요." 오랫동안 했습니다. 나이가 많았으니까 결혼을 만약 20대에 했다면, 지금 나이가 60-70대 됬다면, 40-50년을 기도했는데 자녀가 안생겼습니다. 그래서 사가랴는 아마 포기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주시려나 보다. 이제는 늙었으니까, 주실수도 없고 주셔도 난처하고 그렇게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자기 하나님 앞에 갔을때 가브리엘 천사가 "네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셨다. 하나님이 너에게 아들을 주실 것이다." 그런데 이게 보통 아들을 준게 아닙니다. 침례요한 입니다. 그리스도 앞에 가서 그리스도의 도착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리는 사람입니다. 침례요한을 주님은 이렇게 평가 하셨습니다. "여자가 낳은자 중에 이보다 위대한 자가 없다." 위대한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그때 사가랴가 어떻게해야 했을까요? "놀라우신 주님,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의 아들을 주신 주님." 감사하고 찬양하고 영광돌려야 되죠. 그런데 사가랴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나이가 늙었는데 어찌 그런일이 생기겠습니까?" 믿지 못합니다. 뭘 못믿었냐? 가브리엘 천사의 책망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능치 못할일이 있겠느냐?" 그래서 사가랴가 의심한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입니다. 지금 제사장이 그러면 안되죠. 하나님 앞에 오는, 하나님이 누군지,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 분인지, 죄를 용납하실수 없는분이, 그래서 반드시 피를 가지고 왔는데, 이 하나님의 성품중에 하나가 전지전능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가랴가 불신합니다. 그랬을때 가브리엘이 이렇게 하지요. "아이를 낳을때까지 벙어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사가랴가 하나님의 임재앞에 왔다가 나오면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속죄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다른 제사장, 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가서 백성을 축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다. 다음 일년도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실 것이다."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합니다. 그래서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제사장입니다. 사가랴만 제사장이 아니고 우리가 제사장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계신곳에 옵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이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는 일을 합니다. 성도들에게는 말씀을 교제하고 믿지않는 사람에게는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위해서 섬기고, 축복을 나누는 사람이 된거죠. 그런데 사가랴가 믿지 못했을때 그 놀라운 간증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모임에 와서 예배드릴때에 이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여기 하나님이 실제로 임재해 계시고 그 영광스러운 분이 그분이를 우리를 인도하시며 축복하실 것이라고 하는 우리가 비록 연약할찌라도 우리에게 어떤 능력이 없을찌라도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며 교회에 관한 약속들을 이루실 것이다. 이런것 없이 우리는 수도 얼마 안되고 은사도 없고 재정도 없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교회에 관한 약속을들을 믿지 못하면 벙어리가 되는 거죠.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축복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보겠습니다. 제사장은 뭐냐? 하나님 계신곳에 담대히 나갈수 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조건이 있습니다. 그는 양의 피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로치면 예수 그리스도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갔다온 다음에 이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이 이 죽어가는 세상에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제사장이고요. 그래서 모든 성도가 지역모임안에 있는 모든 구원받은 성도는 직접 하나님의 영광앞에 나와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물론 형제님들은 입술을 열고 자매님들은 잠잠하게 예배를 들리는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몇몇 특정한 사람이 하면 안됩니다. 그 모임의 성숙한 사람, 나이가 많으신 사람, 또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아는 사람만 기도하고 나머지 갓 구원받았거나 아직 잘 모르거나 그런 사람은 감사 안되는것, 그럼 안되는 겁니다. 오히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유창한 예배보다 갓 구원받은 성도가 더듬더듬, 그러나 자기에게 놀랍게 은혜가 됬던것을 감사할때 굉장한 감사가 전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을 얼마나 잘 하느냐, 성경을 얼마나 암송해서 말하느냐, 물론 그렇게 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에게 경험된, 내가 알고 있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정직하게 꾸미지 않고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예배드리는것이 중요하다. 이런것들을 저희희들이 생각해 볼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마찮가지죠. 복음을 증거하거나 말씀을 가르칠때에도 얼마나 잘 하느냐가 중요한것이 아니고, 얼마나 그가 이 말씀을 진지하게 생각했고, 자기에게 그것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가를 전달하는 태도, 이런 태도가 중요하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모든 구원받은 성도가 예배를 드리는 제사장을 해야 하는데 이것을 막는것이 무엇이냐, 했을때에 아까 말씀드린대로 니골라당입니다. 성직자입니다. 교회를 특별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으로 교회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끌고가는것은 특별한 사람들 몇몇이서 끌고가고 나머지 성도들은, 평신도들은-말도 안되는 표현이지만-그냥 시키는대로 따라가고 와같은것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깨어서 하나님 경험하고 일주일 내내 하나님과 교제 하다가 주일이 되면 만찬상 앞에서 자기가 그동안 일주일간 경험한 주님, 그 주님을 와서 말씀드리고 감사드리는 예배가 있어야 한다. 이럴때 만인 제사장이라고 하는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그리고 루터가 겨우 회복시켰던, 그런데도 도로 돌아가버린 이와같은 진리가 저희들 가운데 시행 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 하나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는것이 안되는 것처럼, 저희들이 또 하나 주의할 것은 어떤일은 영적인 일이고 어떤일은 세속적인 일이다라고 구분하는 것도 안됩니다. 교회와서 섬기는 것은 영적인 것이고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세속적이다라고 구분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저희들은 성직자를 두지는 않는데 이런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골3:22).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종들아"라고 했습니다. 조금 다르지만 우리로 적용을 하자면 직장인들입니다. 직장인이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겠지요. 그것보다 조건이 더 나쁜 로마시대의 종들입니다. "종들아" 그 다음에 쭉 얘기하고, 23절 "주께 하듯하라" 24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시대의 종들이 가서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해야 됩니다. 음식도 만들어서 주인 갔다드려야하고, 그 다음에 주인집 밭에가서 일도해야 하고 주인집 재산 관리도 해야 하고 이런일을 해야 합니다. 이런일을 해야하는 종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주님을 섬기느니라." 주님을 섬기기 때문에 주님에게 하듯해야 한다. 사람을 섬기는것 아니다. 그 주인을 사람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리고 그 주인을 섬기는 것 가지고 23절, 상을 주님께 받는다. 너희들이 월급받는것이 아니고 그것을 일해서 먹고 사는것이 아니고, 그런것도 있지만 주님으로부터 직접 상을 받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그리스도인이 나가서 직장일을 할때에 그것은 영적인 일입니다. 직장일은 세속적인 일이고 교회와서 예배드리고 하는것만 영적인 일이다. 이렇게 구분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첫번째로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면 안됩니다. 이것은 저희들이 어느정도 되어 있는것 같고요. 두번째, 내가하는 모든일이 영적인 것이다.

다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아까 베드로전서 2장 5절에서 거룩한 제사장이 먼저 입니다. 그리고 2장 9절, 왕같은 제사장이 다음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예배가 가장 중요하고 예배를 드린후에 봉사하기 시작합니다. 매주일 첫날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월요일부터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냥 순서적일 뿐만 아니라 주일에 예배드렸던 그 태도로 일주일 내내 사는 것입니다. 이 둘이 구분되어서는 안됩니다. 예배때에 주님을 의식했듯이 우리가 학교나 직장이나 또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주님을 의식하고 주님의 인도를 받으려고 하고 또 말씀에 맞게 하려고 애쓰고 이런 것들이 우리의 전 삶에 함께 녹아있어야 한다. 이 둘을 너무 구분하면 안됩니다. 물론 약간의 긴장도나, 이런 차이가 떨어지겠지만 우리의 최종목표는 이 두개가 같은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모임에서 저처럼 풀타임 일하는 사람이나, 아니면 갓 구원 받아서 직장일을 하는 사람이나 똑같이 주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누구는 주님을 전문적으로 섬기는 사람이고 나는 주님을 절반만 섬기는 사람이 아니고 우리는 다 함께 주님을 동일하게 섬기는 형제 자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이런 면에서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도 성경을 보는 것처럼 영적인 것이고 또 모임에서 말씀을 듣는 것이나 학교에서 학생들과, 친구들과 노는것이 같은 차원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한 사람에게 있어서 모순없이 잘 실행될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 입니다. 각 개인들이 그렇게 해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원리는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제사장이라고 했으니까 제사를 드리는 건데요. 신약성경으로 와서 신약성경에서 제사장이 드리는 제사, 제사를 신약 성도들에게 적용하는 구절, 세 구절이 있습니다. 세구절을 찾아보겠습니다. 첫번째는 로마서 12장 1절입니다. "너희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 두번째, 세번째로 히브리서 13장에서 15절 16절에 "이와같은 제사는 입술의 열매니라" 세군데에 성도들에게 제사드리라는 표현이 세군데에 나옵니다. 이 세군데 표현을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제사장이라고 하는 그리고 제사장인 우리가 해야한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로마서 12장 1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여기 보시면 "형제들아"라고 되어있기 때문에 모든 성도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라는것은 "형제 자매들아" 다 포함시켜서 하는 말입니다.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니까 사도바울은 모든 성도에게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제사를 드리십시요 한거죠. 그러면 이제 제사가 무엇이냐 하는거죠. 구약에서는 제사장들이 양을 가지고 양을 죽이고 그 피를 그 단에 뿌리고 그 다음에 가지고 성소에 가고.. 이런것들은 구약의 제사장들이 다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다 그림자고 우리는 그럼 어떻게 하는거냐 하는거죠. 첫번째 보겠습니다. 제사를 드리라는 것인데 어떻게 하는거냐면 구약 제사장은 양을 드렸습니다. 구약에 있는 제사장들은 각종 짐승을 드립니다. 양도 드릴때가 있고 어떤때는 소를 드릴때도 있고 어떤때는 가난한 성도의 경우는 비둘기도 드리고 또 어떤 경우는 짐승이 아니고 곡식도 드렸습니다. 다양한 어떤 것들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있는 우리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몸을 드리라" 우리는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을 드린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거죠. 몸에 대해서 몇가지 보겠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6:14).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3).

여기 몸을 드리라는 표현에 대해서 설명해 놨습니다. 12절에서 보면 '몸' 했는데요. 우리 육체지요. 예를들면 머리, 손, 발, 우리 육체를 13절, "너희 지체를" 그래서 몸을 이루고 있는 각 지체를, 손, 발 이런것들을 말한 겁니다. 그 "지체를 죄에게 드리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며" 이것을 두고 잠깐 보겠습니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3:13-18).

여기 모든 사람이 죄인인것을 설명하는데, 비유를 어떻게 썼냐면 인체를 들어서 썼습니다. 13절에 보면 "목구멍"이라고 했습니다. 몸의 일부를 말한거죠. 14절 입, 15절 발, 18절 눈, 다 몸을, 몸의 일부를 가리켜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을 드리라는 것은 우리의 손 발 눈 코 이렇게 몸을 이루는 여러 기관들을 과거에는 죄에게 드렸습니다. 그 기관들을 이용해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러지말고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저희들이 맨날 한건데요. 이렇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과거에는 우리의 귀를 가지고 노래를 듣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것이죠. 클래식 듣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뽕짝을 듣기도 하고 여러가지 음악을 듣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가스펠송을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귀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듣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들으라고 하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이것이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귀를 사용해서 내가 원하는대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을 위하여 귀를 씁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맨날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 듣는데 썼는데 그리고 뭐에다가 안쓰냐면, 교회 집회와서 말씀 듣는데는 안씁니다. 말씀을 드는데 피곤하냐, 졸리냐, 재미없냐, 맨날 그랬었죠. 이것이 구원받기 전에 우리들이 한거죠. 그런데 구원받은 후에는 우리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귀를 주셨는데, 이제 새로롭게 주셨는데 이 귀를 어디다 쓸까요?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남의 이야기도 하고 정치 이야기도 하고 이제는 성경 이야기, 영적인 소리, 주님을 높이는데, 예배드리는데, 누가 어떻게 예배를 드렸는데 참 감사가 되었다. 그 예배가 참 합당하다. 이런데 우리의 귀를 써야 합니다. 또 발, 마찮가지 입니다. 예전에는 자기가 원하는대로 돌아 다닙니다. 친구 만나고 싶으면 가고 자기가 원하는대로 가지요. 그런데 이제는 물어보지요. 주님 제가 어디를 갈까요? 주님 제가 어디를 가기를 원하십니까? 이것이 '몸을 제사로 드리라' 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제사장들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짐승들을 드렸는데 신약의 제사장인 우리에게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십시요." 그래서 이것이 제사장이 해야 할 것입니다. 제사장이 제일먼저 해야 할것, 가장 기본적인 것, 예배때에, 교회 집회때에 오는거죠. 발을 그리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발 주신것, 그리로 가라. 내가 있는 곳으로 와라." 모세가 올때에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주님이 계신 곳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귀를 어디다 쓰느냐? 주님 말씀을 듣는데 쓰는 것입니다. 입을 어디다 쓰느냐? 주님을 찬양하는데 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로마서 12장으로 가시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 구약은 늘 죽은것을, 죽여서 드렸습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살아 있습니다. 살아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있는 입을, 살아있는 귀를, 살아있는 몸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도록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차이가 뭐가 있느냐면, 우리가 아직 이 땅에서 살고있기 때문에 주님께 드린다고 해놓고 이제 느슨해집니다. 참 구원받을때는 감사하고 이런것이 넘쳤는데, 세상에 살다 보니까, 그러면 안되지만 감사는 점점 줄어들고 세상은 점점 좋아보이거나 세상일을 해야 할 필요는 많아 지고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한번 도전받고., 다시 확인하고,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가, 점검하고 이런 일들이 필요한것이 산제사 입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 보겠습니다.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것이 영적인 것이다. 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구체적인 신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쓰는것이 영적인 것이지, 영적인 것이 다른 신령한 것이 아니고 이런것이 영적이다라는 것이죠. "영적 예배니라" 우리나라 성경에는 그렇게 되어 있고요. 영어로는 reasonable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번역하면 "이것이 합당한 예배니라."라고 번역할수 있겠습니다. 또 다른성경을 또 보면 영적인 예배니라가 아니라 이것이 '지성적인 예배니라' 이런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은 성도가 자기가 스스로 판단해 볼때 양심적으로 구원받후에 성경을 근거로 평가해 볼때, 이것이 마땅한 예배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같은 예배를, 누가 그렇게 강요하니까, 교회가 생길때부터 그렇게 예배 드려왔으니까, 혹은 구원받은 후에 나에게 복음을 전해준 분들이, 그것이 예배라고 하니까 그렇게 하는것이 아니고 내가 선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평가해 볼때, 이게 맞는 예배다라고 개인적인 확신 가운데 드리는것, 이것이 영적이다. 이런뜻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8:1-5).

이것이 고린도 교회에게 사도바울이 마게도냐 교회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마게도냐 교회라고 하는데요.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는 빌립보 교회입니다.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이런 교회들입니다. 여기서 복음을 전하고 사도바울이 핍박을 받아서 밑으로 내려간거죠. 그래서 고린도로 간건데, 그리스는 두개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위가 마게도냐고 아래가 아가야 입니다. 그런데 북쪽지방에 있는 교회들에게 어떤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수 있는가? 하면 저희들도 그렇게 할수 있을까 싶습니다. 2절에 보면 그 교회는 환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이 있었습니다. 핍박을 받고, 아마 직장에서 쫓겨나고, 그 사회에서 매장되고 이와같은 핍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극한가난, 그리고 그들은 매우가난했습니다. 핍박을 받고 가난한 성도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했냐면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냐? 이 사람들에게 무슨일이 벌어졌을까? 그 다음에 4절을 보면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사도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주기 위해서 이방인 교회의 성도들에게 부탁했습니다. "헌금을 좀 모아 주십시요. 제가 받아서 가져가 그것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마게도냐 교회에,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에 방문한 것입니다. 방문 했더니 "이거 가져가십시요." 하고 헌금을 내 놓았습니다. 사도바울이 보니까, 이 성도들이 가난한 성도들이예요. 극한 가난입니다. 그런데 헌금이 너무 많은 거예여. 그래서 사도바울이 "안가져가겠습니다. 못가져 갑니다. 너무 많습니다." 그랬더니 4절에 그들이 "제발 가져가주십시요."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런일이 벌어지는가? 비결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5절에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드리고" 이것이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린사람들만이 자신의 생애를, 자신의 눈과 귀와 입을, 하나님이 쓰십시요. 나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만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만 듣겠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데만 가겠습니다. 라고 자신을 드린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들인 것입니다. 이와같은 일을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 몸을 산제사로 드리라." 그 다음에 두번째로 가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13:16).

여기도 신약성경인데 제사라는 단어가 쓰입니다. 15절에는 "찬미의 제사" 16절에서는 "이같은 제사" 그래서 제사라는 개념이 두번 더 나옵니다. 우리가 제사장이기 때문에 이같은 제사를 모든 성도들이 특별한 사람만 드리는것이 아니고 모든 지체들이 이와같은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몸을 드리고, 두번째 히브리서 13장 15절은 "입술의 열매니라." 찬미의 제사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이것이 예배인데, 떡과 잔을 놓고 우리가 언제 찬양할 것인가? 항상 찬양할수 있지만 교회적으로 가장 하나님을 찬양할수 있는 합당한 기회, 떡과 잔을 놓고 주님을 기억할때, 그때 이제 주님을 찬양하는거죠. 그런데 여기서 보면 열매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입술의 열매다" 열매라고 하는것은 어떻게 거두는 거냐면, 씨를 뿌리고 싹이나고 꽃이 피고 그리고나서 나오는 것이 열매 입니다. 그래서 예배때 감사는 그냥 가져오면 안되고 심고 가꾸고 거두어서 가져와야 합니다. 다시 예를 들어보면요. 일주일동안 주님 안에서 살아갑니다. 성도로서 살아갈때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의 어떤 말씀이 떠오르고 또 그 말씀을 내가 잘 묵상하고 그리고 그 말씀이 내 삶에서 어떤 영향과 결과를 가져오고 그리고나서 그 열매들 중에 좋은것을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가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리고 주님이 일주일동안 내 삶 속에서 인도하셨던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확정하고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와서 하나님께 찬양으로 드린다. 이것이 입술의 열매 입니다. 그 제사를 드려야 한다. 그 다음에 16절 입니다.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말라" "나눠주기" 이것이 헌금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세상은 그렇게 갈것입니다. 양극화가 됩니다. 부자는 한 없이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계속해서 가난해 질 것입니다. 그래서 빈부격차는 커집니다. 그러나 교회만은, 서로 평균케 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주 부자도 없고, 아주 가난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눠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많은 물질을 주신것은 내가 능력이 있어서 그렇게 벌었고 내가 번것, 내가 쓰는데.. 이것은 세상 이야기고요. 주님께서 많이 주신것은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필요를 채울뿐만 아니라 다른사람의 필요를 채우는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성경이 뭐라고 부르느냐? 예배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사다. 제사장의 제사다. 신약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선을 행함과" 선을 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개념이 잡혀야 하기 때문에 좀 살펴보겠습니다. 에베소서 2장으로 가겠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8-10).

"하나님의 은혜" "사람의 믿음" 이 두가지가 구원을 만듭니다.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은, 이것은 구원을 가리켜야 합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연결시키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도 우리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믿음 자체도 주님의 선물이라는 것에 동의 합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것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고 사람은 그 은혜를 믿습니다. 그때에 구원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면 조금 곤란해 집니다. 그래서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9절, 구원은 우리가 행해서 얻은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구원하신 이유가 무엇이냐면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함입니다. 아무도 자랑하지 못합니다. 나 구원받았다고 자랑하는것은 다 원리에 어긋낸것입니다. "나는 구원받았는데 너는 못받았잖아." 이것은 다 틀린 말입니다. 그 다음에 10절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우리는 교회 입니다. 에베소서의 주제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우리는 이렇게 자랑할수 없는 구원을 은혜로 받은 자들은, 그의 만드신 바라.' 이것은 번역을 이렇게 해보겠습니다. "만드신 바"는 이렇습니다. "그의 걸작품이라."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것인데요. 하나님이 많이 만드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만드셨는데요. 공룡도 만들고 우주도 만들고, 여러가지 것들을 만드셨는데요. 세밀하게 만드시고 크게 만드시고 그런데 하나님이 만드신 최고의 걸작품이 교회 입니다. "우리는 그의 걸작품이다." 그런데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일을 위해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왜 만들었느냐? 선한일을 위해서 입니다. 다시요, 선행으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으면 선행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순서를 바꿔 놓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선행으로 구원받으려고 하면 곤란해 집니다. 그 다음 두번째, 구원받은 후에 선행을 안하려고 하면 그것도 곤란해 집니다. 구원받았으니 되었다. 안됩니다. 구원은 선한일을 위해서 입니다. 구원받으면 반드시 선한일이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 다음에 선한일이 무엇인가? 우리는 딱 생각하면 가난 사람 도와주고, 병든 사람 뭘 해주고.. 이런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이 선한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하나님이 다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내가 "이게 선하지, 이게 선한거야." 하고 행하면 안됩니다. 선한일을 해야지요. 이 선한일은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가운데서 행하려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가장 선한일, 지역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전에' 언제요?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준비해 두셨던 교회 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우리가 그 교회 가운데서 교회의 한 지체로 교회의 평안과 교회적인 인도를 받아 행하는, 교회를 세우는 일들을 선하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오겠습니다. 히브리서 13장, 우리가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짐승을 드렸는데요. 신약의 제사장은 자기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두번째, 예배를 드립니다. 세번째, 히브리서 13장 16절을 보겠습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13:16).

"선을 행함과" 여기서는 여러가지 선이 있지만 여기서는 예배드린 후에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가르치고 구도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에 필요한 여러가지 봉사를 하고 이게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물질을 여러 필요한 사람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내어주는 것입니다. 주님일을 위해서, 혹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나눠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기뻐하는 제사다. 이것이 신약에 있는 제사입니다.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제사장입니다. 우리 모두, 특정한 사람이 제사장 아닙니다. 모두 제사장입니다. 구원받으면 제사장입니다. 제사장들이 하는것이 무엇이냐? 우리 순서로 보면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 다음 두번째, 모임을 세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 다른사람들의 영적, 물질적, 필요를 채우는 것입니다. 그 다음 세번째,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자기가 서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서 있지 않는데 이런일을 할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서 12장 1절입니다. 자기를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내 몸을 내 손과 발과 내 모든 지체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위하여 사용한다. 내것 아니다. 그 다음에, 다시 한가지 또 말씀드리면 이제 구체적으로 모임 생활을 할때, 제사장으로서 성도로서 모임 생활을 할때, 첫번째로 예배고요. 두번째 기도집회가 있습니다. 기도집회때에 기도를 해야 합니다. 형제님들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들 수준에서는 말씀 끝나고나서 형제님들 중에 한분이 기도해 주십시요 하면 기도를 얼른해야 하는데, 기도가 잘 안나오죠. 그래서 굉장히 분위기가 어색해 질때가 있습니다. 하여간 기도에 대해서 몇가지 노만 크로포트 형제님이 제안 하셨습니다. 공적인 기도를 하는 사람은, 첫번째 입니다. 개인적으로 골방에서 하나님과 기도하고 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한 사람이 공적으로도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적인 기도만 하고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기도가 부족하면 이게 안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적인 기도를 형제들이 해야 하니까, 형제들은 꼭 집회오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오셔야 합니다. 이것을 얼마나 잘 할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와같은 연습과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곧 후에 집회가 있을텐데 이 집회가 주님 뜻대로, 또 합당한 집회가 되도록, 또 우리가 영적인 유익을 얻도록, 또 집회에서 어떤일이 벌어졌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영광을 얻으시도록, 이런 기도를 하고와서 집회를 하고 그 다음에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두번째로 노만 크로포트 형제님이 강조하는 기도는 짧아야 한다. 길게하지 말라. 예배때의 감사도 그렇습니다. 대표기도이기 때문에 다른 성도님들이 들으면서 따라갑니다. 그 생각을 따라가는데 이게 너무 길게되면 못따라가는 것이죠. 그러면 기도는 기도대로 나가고 나는 다른생각을 하거나 그렇게 되면 어려운 것이죠. 그래서 기도는 가능한한 짧게하고 많은 분들이 하고 그래서 많은 분들이 다양한 기도제목을 감당해줘야 한다. 교회의 기도집회에서 그와같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기도할때, 저 개인적으로는 뉴욕플러싱 모임의 정나라 형제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형제님이 플러싱 수양회를 할때보면 혼자 사회를 다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사회를 보기가 참 어렵고 함께 짐질 사람이 마땅치 않으니까 형제님 혼자 하시는거죠. 그런데 성도집회때는 한시간 하는데, 수양회때는 여러 집회가 있는데 거의 혼자 사회를 보고, 그리고 형제님 이제 기도를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혼자 기도할수가 없으니까, 다른 형제님께 기도 부탁도 하시고 그렇지만 많은 기도를 본인이 합니다. 말씀 끝나고나서 형제님이 기도하시는데, 기도를 잘 하세요. 제사 볼때는, 앞에 나왔던 말씀을 요약하면서 그러나 그대로 그 내용을 반추하지는 않고 요약하면서 어떤 한 포인트를 잡아서 받았던 감동과 연결시켜서 기도하는것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이것도 아마 은사적인 측면이 있으니까 그렇게 하시겠지요. 하여간 저희들도 이렇게 기도하고 그 다음에 또 하나 생각되는게 집회에서 어떤 주제의 말씀이 나갔지요. 그러면 정나라 형제님 간증인데요. 서양모임에서 쓰고 있는 빌리버스 힌북(Believers Hymn Book), 서양모임의 찬송가는 어떤 주제의 말씀을 전해도 그 주제에 합당한 찬송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을 딱 들으면서 어떤 찬송을 고릅니다. 그리고 그 주제와 찬송과 그리고 마치는 기도가 어울러져서 집회가 끝나고나면 성도님들의 마음에 많은 감동과 여운과 이런것들이 남는거죠. 그래서 아직은 저희들에게 여러가지로 좀 부족함이 있지만 주님께서 계속 저희들을 선히 인도하셔서 그와같이 합당한 집회가 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사장이 누군가? 뭘 하는가? 그리고 신약의 제사장이 해야 될 일 세가지를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와같은 성경적인 가르침이 구체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모임, 그 모임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함께 기도하고 또 내가 감당해야 될 부분을 감당하고 또 다른사람들이 그와같은 일을 감당하도록 서로 격려해주고, 이와같은 모임이 될수 있기를 원하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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