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1일 화요일 강사 : 로렌스 퍼킨스 형제님
안녕하신가요 저와 제 아내는 오늘밤 함께하게 되어 참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시카고근처 뉴 레녹스라는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시카고에 대해서 들어보신적이 있나요? 저는 처음 한국방문을 했는데 참즐겁게 생각합니다.
특별히 한국의 성도님들을 만나는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장성한 세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그리고 큰 개를 기르는데 그 개는 얼마전에 죽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아서 25살이 될때까지 복음을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저는 구원받기 전까지 음악을 했으며, 술을 마시고 마약에도 손을 댔습니다.
저는 제 마음에 항상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제가 무얼 추구하든지간에 그 공허함은 계속됬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저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 자매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녀는 나이가 많은 과부였습니다.
그분의 집을 고치는 일을 받았습니다. 그 여자분은 주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여자분에게 하나님께서 저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제가 일이 끝나자 저를 부억으로 불러 먹을것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복음을 들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 복음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녀에게 선불교를 전했습니다. 그녀는 그것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녀는 다시 저를 불러 일을 시켰고, 일이끝나면 부억으로 불러 먹을것을 주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저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매우 친절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거절하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하고 초청하시고 계십니다.
때때로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거절당할때 우리는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자분은 낙심치않고 저에게 성경을 읽을것을 권하셨습니다.
저는 싫다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자분이 여전히 친절하게 대했기 때문에 저는 그친절을 받아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집으로 와서 처음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성경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읽기 시작한것입니다. 저는 성경이 필요한것이라는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단이 저를 소경으로 만든것입니다. 지금도 사단은 세상사람들을 소경으로 만듭니다.
제 공허함은 항상 있었습니다. 제가 성경을 읽기 시작하자, 그 공허함은 더욱 의문이 되었습니다.
제가 로마서를 읽자, 하나님앞에서 우리죄를 숨길수 없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생각하기를 제 삶의 방식을 바꿔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고 보고계시다면 나의 나쁜습관들을 버리고 변화되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힘으로는 저를 낫게 하지 못하고 더욱 나쁘게 했습니다. 저는 변화하고 싶었지만 변할수 없었습니다.
은혜롭게도 하나님께서 이런 저의 절실한 필요를 통해서 예수님을 찾게 하셨습니다.
그 늙은 여자분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추구하는 선불교를 통해서 당신의 신에게 가까워 졌나요?"
저는 더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늙은 여자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이 나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심을 알려주셨습니다
어느날 집안에 저혼자 있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저의 죄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늪에 빠졌는데 저의 힘으로는 절대 빠져 나올수 없는 절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운데서 더이상 나자신을 신뢰하지않고 하나님을 보게 만드신 것입니다.
<회개하라>
저는 말씀대로 제 자신을 신뢰하는것을 멈췄습니다. 저 자신에게는 희망이 없다는것을 깨닳은것입니다.
제 자신의 힘으로는 제 죄를 없이할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제가 깨닳은것은 더많은 술이나, 밴드나, 파티가 저에게 필요치 않고 저의 죄를 없애줄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닳은 것입니다.
저는 익사하기 직전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주님께 저를 구원해 달라고 외쳤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상황을 경험해 보신적이 있나요?
여러분의 인생가운데서 여러분이 잃어버린자인것과 여러분이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다는것을 깨닳은적이 있나요?
이런 나를 위해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것을 믿나요?
그때당시 저는 주님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를 신뢰하지 않고 주님을 신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구원받고나서 외적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변화는 제 영혼이 하늘나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닳은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것은 예수님께서 저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가지고 가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마약을 끊고 술을 끊어서가 아닙니다. 제가 하늘나라에 갈수 있는 이유는 저의 죄가 사해졌기 때문입니다.
저의 죄가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때 사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후로 저는 주님을 40년넘게 알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을뿐 아니라 살아나신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누구보다도 저의 좋은 친구분인 것입니다.
언젠가 주님을 눈으로 보게 될것입니다.
저는 그분을 눈으로 본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얼굴과 얼굴을 맛대고 보게 될것입니다. 여러분은은 그날을 고대하고 있나요?
사도바울은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질문을 주님께 한적이 있나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지고 계신 계획이 무엇인지 궁금해 한적이 있습니까.
5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히10:5-9, 개역한글)
주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41 저희를 떠나 돌 던질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눅22:41-42, 개역한글)
여기에 또한 목적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우선순위가 나타나 있는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하시는데 본이 되신 분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본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사도바울이 구원받았을때 그가 처음으로 물었던 것은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나이까" 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나요?
단지 우리의 인생가운데서 다른것을 소중히 여기나요. 주님께서는 주님의 작은것에 충성된자에게 더큰것을 맡긴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능력만큼의 일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처음에는 아주 큰것을 행할 능력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것을 보이셨을때 주님께 큰힘을 구하던지, 이일을 감당할수 없다고 포기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것을 선택해야 겠습니까?
이일을 행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것을 기억해야 할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우리에게 그무엇보다도 큰 만족을 가져다 줄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을 추구하나요? 우리자신의 것을 추구함으로 우리가 만족을 누리지 못하는것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나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것 외에는 다른 어떤것도 중요한것이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수 있나요?
이중에 어떤 분들은 구체적인 상황가운데서 어떻게 할것을 뭍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수 있는 5가지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먼저,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하는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1-2, 개역한글)
여기에 그 첫번째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제 인생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있는데 모순적이게도 우리의 삶가운데 주님을 의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 말씀을 보고 무서운 말씀으로 보고 있을수 있습니다. '거룩산 산제사로 드리라'라는것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어떤분들은 이구절을 자기몸을 헤치는것으로 오해하시는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단어는 우리몸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주님께 순종하는것을 말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짐승들을 제사로 드렸습니다.
우리를 산제사로 드리라는것은 주님께서 사용하시기 합당한 몸으로 우리의 삶을 드리라는 뜻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기에 합당하시나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하실 권리가 없나요?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심으로 우리에게 권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큰 자비하심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나요?
우리는 지옥에 가야 마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천국에 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평화는 세상이 줄수없는 평화입니다.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
이세상도 우리를 주관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질문은 우리가 누구에게 순종할까 하는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주님께 드리겠습니까.
우리가 알듯이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순종한 본은 주님의 삶에서 볼수 있습니다.
또한 사도바울의 생애가운에서도 볼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본을 닮아야 합니다.
조지뮬러라는 분을 하시나요? 그분은 영국에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한 종이었습니다.
이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 문제의 99%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자기뜻을 행하려 한다는 것이다 >
우리는 대게 주님의 뜻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을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하는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까? 예, 이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일을 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일을 행하는것이 가장 큰 최선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일을 행하는것이 가장큰 만족을 우리에게 줍니다.
이스라엘은 광야를 통과할때에 가장 충분한것으로 하나님의 것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평함으로 광야에서 엎드려 졌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주님의 뜻을 알았을때 기꺼이 주님의 뜻을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능력을 뭍는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의지를 뭍는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을 정말로 사랑하느냐는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모든것을 주셨다는것을 알때 우리가 못할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각 인생에 대해서 목적이 있으십니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구하는것 이상의 일을 능히 하실 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나요?
우리가 삶에서 어떠한 것을 구할때 주님께서는 그것을 바로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걸음 델때마다 그것을 조금씩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어떠한 길을 가지전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고자 하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핸들을 꼐속 붙잡고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고 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야 말로 최고의 운전사이십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주인의 자리를 내어드리고 그것을 지켜보는것만큼 신이나는것은 없는것입니다.
저는 주님께 주권을 내어드리기 위해서 많이 실패한 사람입니다.
저는 구원받을 당시 하나님께서 저를 설교자로 세우실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늘 이자리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데 여러가지 시험이 있습니다.
저는 39세가 될때까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전에도 결혼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제게 아내를 허락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랜세월동안 저를 위해서 아내를 예비하신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최선을 것을 항상 주십니다.
기다린다는것은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저는 잘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신뢰하기를 바라십니다.
이제 두번째 원리를 보겠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119:105, 개역한글)
한국에서도 사람들은 캠핑을 가나요?
제가 아직 젊은시절이었을때 저와 제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와같은 캠핑을 자주 갔습니다.
어느날 자정즈음에 깨게 되었습니다. 손전등을 찾을수 없어 어둠가운데 걷게 되었습니다.
움푹패인땅을 찾을수 없어 저는 넘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어두운 세상을 가는 우리들에게 빛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캠프에서 손전등이 빛이 되듯이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빛이 되어주시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때에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 아닌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침례받는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말하고 있나요? 이는 분명히 성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지 않은 여자와 결혼하는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궁금해 하고 있나요?
성경에서는 분명하게 믿는여자와 결혼하는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성경 어느구절에서 이렇게 말하는지 못찾겠습니다. 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동일한 원리들로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일 길을 걷다가 돈이 많이 든 지갑을 주웠습니다.
어떻게 하는것이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지갑에서 돈을 꺼내 지갑을 버리시겠습니까.
이는 세상의 많은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길잃은 당나귀를 발견하면 당나귀를 보호하며 주인을 찾아주라고 되어있습니다.
이를 지갑을 주운것에 적용할수 있지 않나요?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어려분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시나요?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계속해서 연속적으로 성경을 읽기를 권합니다.
읽은만큼 책갈피를 두고 게속해서 읽어가는 것입니다. 이는 중요한 것입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세가지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그 뜻을 보이셨습니다.
저는 구원받은지 4년이나 지난후에 구원의 영원한 안전성에대해서 알았습니다.
이때는 제가 모임가운데로 들어왔을때 입니다.
모임의 형제님들은 구원의 안정성에 대해 여러가지 책을 주고 이야기를 전해주셨습니다.
그전에는 저는 구원을 잃어버릴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감사하게도 구원이 나의 행위에 달린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로 완전하게 하신것을 성경에 기록하신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사단은 계속해서 우리가 평안과 진리가운데 거하지 못하도록 송사합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꿀만한 능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말씀은 참으로 능력이 있습니다.
저의 두번째 중요한 갈림길은 결혼이었습니다.
아마도 저의 아내는 이것을 자세하게 말하지 않기를 바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이 말씀을 통해서 이 자매가 제가 결혼하기 원하는 자매라는것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저는 이를 하나님의 뜻인것을 확실하게 분별하였으나 저의 아내는 이것을 오랫동안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세번째로 중요한 인도하심은, 제가 천거받는 교사가 된 것입니다.
그당시 저는 학교 교사였습니다. 그당시 저는 독신 형제로써 여러가지 일에 바빴습니다.
저는 많은 형제님들로 부터 하나님께서 저를 사역자로 쓰시려고 준비하신다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제가 어떻게 이권고를 확신할수 있을까요?
저에게는 아주좋은 직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금식 수개월에 걸쳐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러한 일을 하기를 원한다는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성경을 매일 읽어야 합니다.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약1:5-6, 개역한글)
물론 야고보서의 문맥은 환란을 통과하기 위한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입니다.
이 환란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그리스도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간혹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것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치 않으신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말씀에는 구하라고 하십니다. 후하게 주시며, 꾸짓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주십니다.
우리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기 어려울때 주님께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주실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빛이 부족할때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더큰 빛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가 더큰 영적인 빛을 얻고자 할때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빛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인생가운데서 자백하지 않은 죄들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구하기전에 이 죄를 자백해야 한다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삶 가운데 있는 죄들을 우리가 하나님께 자백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우리가 무슨잘못을 하면 우리는 그 잘못을 한 사람에게 찾아가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제 인생의 많은경우에서 저와 제 아내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많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할때에 야고보서 1장 5-6절 말씀을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언제가 됬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게서 당장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제 인생에서 제가 원하는 것은 제가 생각했던것보다 나중에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기다리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결심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또한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네번째 원리는 빌립보서 2장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2:13, 개역한글)
이 구절처럼 하나님은 우리안에 자기의 뜻을 두시고 행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소원을 우리가운데 두신다는것입니다. 어떤분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남아프리카 정글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소원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사람은 정글에 가는것을 아주 두려워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는것은 그사람이 정글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는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게하는 지표가 될것입니다.
우리의 소원과 하나님의 뜻이 맞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하고자 하는 소원이 있을때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보다 앞서나가지 않고 주님을 뒤따라 가는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2km 뒤쳐져 있다 하더라도 주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앞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주님보다 앞서서 나가지 않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내 자신이 어떠한일을 행하는데 있어서 정말 소원을 가지고 계신가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떠한 사람과 결혼하기를 원하는데 우리에게는 그것에대한 소원이 없을수 있습니다.
이제 다섯번재 원리를 살펴보시겠습니다.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행17:1, 개역한글)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 내려고 찾았으나 (행17:5, 개역한글)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행17:10, 개역한글)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
(행17:13-15, 개역한글)
우리는 여기서 어떠한 환경이 사도바울을 이도시에 떠나 다른도시로 가게 하는것을 보게됩니다.
주님께서는 이와같이 어떤상황을 주님의 뜻을 인도하는데 사용하십니다.
예를 들어 한 형제님이 한국에 저를 초청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저는 이 초청에 대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저에게 한국에 가고자하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면 이와같은 환경을 막는 환경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소원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환경이 우리를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막는다면 주님께서 막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일을 소망할때에 주님께 먼저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그 상황에 밀어서 하게 하실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게서 문을 닫으셨다면 창문을 통해서 그것을 넘어가려 하지 말라"
우리가 무엇을 하고자하는 소원이 있을때 하나님께서 이것을 막으신다면 우리는 억지로 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저는 토론토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만, 천거되었을때에 미국으로 넘어가서 일하고자 하였습니다.
저는 교사로서의 직업도 내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저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주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어떤분들은 이와같은 때에 불법적인 방법으로 입국하는 것이 어떻겠나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셨다면 우리는 그에 순종해야 합니다.
당시의 저는 왜 하나님께서 막으셨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수년이 지나 저는 하나님께서 그 지역으로 가는것을 막으신것에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또한 어떤일을 할때에 그 마음에 평안이 없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다섯가지 지표를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히 여기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가 구하는것입니다.
4. 어떤 일을 하는데 소원이 있는가 확인하는 것입니다.
5. 상황이 이를 허락하는지 확인해 보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사도바울의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나이까" 하는 물음이 우리가운데도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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