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로렌스 퍼킨스 형제님(요약)

04. 고난을 통해서 영광 받으심

박이레 2022. 7. 14. 15:15

2015년 6월 18일 목요일       강사 : 로렌스 퍼킨스 형제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다시 여러분들을 뵙게되어 반갑게 생각합니다.
참으로 주님의 백성들과 함께 있는 것은 기쁜일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가운데 함께 계십니다

 

어느날 우리는 곧 주님앞으로 다 모이게 될것입니다. 그날은 오늘밤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되는 겁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가 서로 교제 할수 있다는 것은 기쁜일입니다.

 

참으로 놀라운것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교제하시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1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요11:1-4, 개역한글)

 

흥미로운것은 나사로의 이름이 뜻이 '하나님은 나를 돕는자'라는 뜻입니다.
그런 나사로가 어주 어려운 일을 겪고 있습니다. 11장 1절에서 사용된 '병든자'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다른뜻으로도 사용됩니다. 기본적으로 이뜻은 '능력이 없는 자'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동일한 단어가 로마서 5장 6절에서 사용됩니다.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

 

나사로는 자신의 병을 고칠 능력이 없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나사로와 같은 상황에 처해보신적이 있습니까?

 

아주 연약하여 그 누구도 나를 도와줄수 없는 상황 말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고 우리는 연약하여 그 상황에서 빠져나갈수 없는 상황에 빠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전 수년전에 이러한 상황을 당한적이 있습니다.

 

저는 아무일도 해결할수 없는 상황가운데 있었습니다. 그가운데서 저는 요한복음 11장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은 읽으며 마치 내가 나사로와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의 형제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게 전갈을 보내 나사로가 병든사실을 알리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잘한일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해결할 힘이 없을때는 주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돕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연약함을 통하여 어떠한 일을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사로가 병들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잠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두셨습니다.
주님은 병든것을 낫게 하는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사로와 다른사람들에게 이제까지 드러낸 방법이 아닌 다른방법으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려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주님은 우리에게 어려움을 허락하실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놀라운 방식으로 주님을 드러내시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주님은 우리의 인생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구원받을때도 우리는 이러한 방식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으로는 할수 없는 방법으로 주님의 피로 값없이 구원받았습니다.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12:7-10, 개역한글)

 

사도바울에게는 우리가 정확히 알지 못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 문제를 고쳐주시기를 주님께 간구했으나 주님은 사도바울의 기도를 거절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사도바울이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도바울에게 아주 많은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로인해 사도바울은 자고할수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것들을 계시해 주십니다. 우리는 이로 교만해져서 '내가 알고 있는것을 보라'고 자고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에게 사단의 가시를 주사 자고하지 않게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사도바울에게 있는 가시는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9절에 보면 <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 사도바울은 일상생활에서 만족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아주 효과적으로 우리의 약함 가운데서 나타나여 집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여러분이 자동차를 아주 빠르게 달리게 하는 발명품을 개발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은 광고회사를 통해서 이 발명품을 효과적으로 광고 하고자 할것입니다. 광고회사는 아주 좋은 광고방법을 알려줄것입니다.

 

그 광고는 람보르기니 같은 좋은 스포츠카에 연료를 넣는 것입니다. 람보르기니가 아주 빠른속도로 나아간다면 사람들은 차를보고 아주 멋진차다! 라고 말할것입니다. 다시 이 연료를 폐차직전의 차에 넣습니다. 털털거리며 나타난 차는 연료를 넣고 시동을 걸자, 매우 부드럽고 빠른속도로 나아갑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뭐라 말하겠습니까?

 

'아주 멋진 제품이다! 아주 훌륭한 연료이다' 라고 할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아주 낡은 차와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힘으로는 할수 없는 것들을 하게 하십니다.

 

<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

 

여러분은 우리의 약한것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잘 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힘이 없는 것을 싫어합니다.
우리는 다른사람에게 의존하기를 싫어하지만, 주님은 이땅에 오셨을때 온전히 하나님께 의존하셨습니다.

 

주님은 "내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연약가운데 자라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분명하게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연약한 사람을 사용하여 놀랍도록 사용하시는 것을 자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게 하사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힘이 없을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하게 항상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상태가 아닌 그리스도 안의 관계로 인한 사랑을 하십니다.

 

하지만 사단은 우리가 아무것도 할수 없음에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6절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6절에 기록된 것처럼 주님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고 그곳에 계속 거하십니다.
주님은 뭔가를 할수 있었지만 계속 그곳에 계신것입니다.
주님은 왜 나사로를 돕지 않으셨을까요? 나사로를 사랑하지 않으셔서 그런것입니까? 주님께서는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주님은 더욱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계속해서 신뢰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지고 계신 계획을 신뢰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금당장 일을 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더큰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요11:14-15, 개역한글)

 

우리는 나사로가 아플뿐만 아니라 그가 죽었다는것을 알게 됩니다. 상황이 더 악화된 것입니다.
제가 이자리에서 상황이 좋든, 나쁜사람이든 간에 주님께서는 여러분 모두를 도우실수 있습니다. 다만 이순간 그냥 두고보실 뿐입니다.

 

10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그자리에 있지 않은것을 내가 기뻐한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면서 기뻐하시는 것일까요? 이유는 그들의 믿음이 더 성장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나사로가 아플때 그 병을 고칠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럼 나사로가 죽었을때에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운 상황일때에 돕지 않으실때가 있습니다. 이유는 우리의 믿음을 더 성장시키기 위함이십니다.

 

이제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한국에서 장사를 어떻게 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스라엘인들은 나흘동안 그 시체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나사로의 시체는 썩고 있었습니다.

 

제가 고국에서 한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4-5일동안 시체를 집에두고 시체썩는냄새가 나면 시체를 땅에 뭍습니다. 
지금의 나사로의 상황은 사람이 어찌할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 처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돕지 아니하므로 저도 주님을 섬기지 않겠습니다' 하고 떠날수도 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요11:32, 개역한글)

 

이제 주님께서 마침내 나사로가 뭍힌곳에 오셨을때 마르다와 마리아는 동일한 말을 하게 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여러분은 마르다와 마리아가 실망했을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성경에서는 이에대해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만 저라면 아마 실망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고치실수 있으셨으나 고치지 않으셨습니다.
한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하여 실망해 본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지 않으신적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제가 질문해 보겠습니다. 누가 하나님이십니까? 여러분입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하시는데 대한 권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높은 산 위에서 주님을 신뢰할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깊은 골짜기에서 주님을 신뢰하는것은 다른문제 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주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를 아끼신다는것을 의심했습니까?
여러분께서는 주님께서 우리를 아끼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를 아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가장 큰 실패요, 사단이 정말 원하는 바입니다.
주님께서는 참으로 우리를 아끼지 않는 분이십니까?

 

33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34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11:33-35, 개역한글)

 

33절에 사용된 단어들은 아주 강한 심정을 나타내는 단어들입니다.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주님께서는 참으로 우리를 아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상황가운데서 어떠한 일에 처해있든지 주님께서는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베드로는 이것에 대해서 기록하였습니다.
주님께 중요한 것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우리가 히브리서 4방 16절에 보면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율하시는 분임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무능력을 주님께서는 체율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아버지가 어린자녀가 연약한 가운데 있을때에 아버지는 그 자녀를 아끼고 돌봅니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행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나사로를 살리실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주변사람들은 모릅니다.
우리들이 모를지라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이끌지를 다 알고 계십니다.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요11:38-39, 개역한글)

 

여러분은 이시대에 유대인들이 어떻게 장사지내어지는지 알고 계실것입니다.
시체를 굴에 넣고 동그란 돌을 굴려 무덤입구를 막습니다.

 

나사로의 시체는 굴 안에 들어가 있고 그 입구가 돌로 막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무덤앞에 오셨습니다.
주변사람들은 그때에 무슨일인가 일어날것이라고 생각 했을것입니다.

 

주님께서 무덤문을 옮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말에 주변사람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을것입니다.
마르다는 주님의 말을 좋은생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체썩는 냄새가 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오직 주님만이 하실수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일을 하실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여 주님의 능력을 제한할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가운데서 이처럼 하나님께서 옮기고자 하는 돌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신뢰한다면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혹은, 이런일은 할 필요가 없어서 하고자 하지 않는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요11:40, 개역한글)

 

이말씀은 수년전에 제가 어려움 가운데 있을때 주님께서 주신 큰 격려와 위로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우리는 4절에서 예수님께서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일 것이라고 말씀하신바가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무능력가운데 하나님은 역사하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바라십니다.
이 40절 말씀이 마치 저에게 말씀하신것처럼 들렸습니다.

 

<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

 

그때의 내 상황은 그어떤 희망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분명히 길을 열어주실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후 어떤일이 있었을까요?
사실 그후로 수개월동안 어떤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를 인도하시고 이와같은 일을 해결하셨는지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놀랍게 풀어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주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게 하셨습니다.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요11:41-44, 개역한글)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해 돌을 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어떻게 하실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도하시고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자리에 나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까
아마 그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딴짓을 하거나 관심이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자 어떠한 일이 일어났나요? 나사로가 무덤속에서 수의를 입고 똑바로 서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라고 말씀 하십니다.
사람들은 그 돌을 굴려 옮길수 있습니다. 또한 나사로에게 있던 베옷을 벗겨 다니게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수는 없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죽은자를 살리실수 있다면, 우리의 삶가운데서 이와같은 동일한 일을 하실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보다 어려운일이 우리의 상황가운데서 있을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이 만물을 붙들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만물을 어느순간 없앨수 있으시며,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하실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님이 우리가 믿는 주님이며, 구세주이시지 않습니까.

 

이와같은일이 우리주님에게 불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주님께서 요한복음 11장에서 하신일에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하게 주님께서 어떠한 일을 할수 있는지 알수 있습니다.
나사로의 연약함 가운데서 하신 일처럼,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일도 하실수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공식을 볼수 있습니다.
연약함에 믿음이 더해진다면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실수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의 무능력은 우리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단은 이것이 우리에게 큰 문제인 것처럼 제시하고 우리를 포기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저는 이 모임에 처음 참석할때 저의 상황은 좋았다 나빴다 했습니다.
제가 처음 모임에 들어왔을때 모임의 성도님들은 마치 천사처럼 보였고, 저는 그분들과 같이 잘할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분들만큼 잘할수 없으니 그냥 포기해버리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왜 그때 그러한 생각을 했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잘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포기하지 않으신 사실에 감사드립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요11:4, 개역한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요11:40, 개역한글)

 

저는 오늘밤에 우리가 읽은 말씀이 단순히 저의 지식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우리의 능력으로 하실수 없는것을 저와 우리에게 힘주시고 행하신다는것을 알고 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