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2015년 플러싱수양회(요약)

< 뉴욕 플러싱 모임 여름 수양회 21 >

박이레 2022. 7. 13. 23:23

2015년 9월 9일 수요일        강사 : 정형모 형제님

 

< 뉴욕 플러싱 모임 여름 수양회 21 >

 

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6:1-4, 개역한글)

 

저희들이 에베소서에서 저희들이 얼마나 부유하며, 우리들의 위치와 신분이 어떠한지 보았습니다.
이처럼 고고한 위치와 신분을가진자들로써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보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연합과 순결, 조화를 이루며 행해야 할것을 보았습니다.

 

조화롭게 행한다는것은 참으로 놀라운 예술입니다. 사단은 이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제 앞으로 가면 승리 가운데 행하는것을 보게 될것입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가 하나님과 걷기를 방해하고 우리 마음을 산란하게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 문제를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조화롭게 산다는것, 그것은 부모와 자식, 부부관계, 상사와 종이 조화롭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화를 잃어버리면 우리의 영력과 힘을 낭비하게 됩니다.
조화롭게 사는것은 우리에게 행복과 힘, 비전을 안겨줍니다. 조화롭지 못하다면 우리의 삶에서 열매를 맺을수 없습니다.

 

이제 먼저 부모와 자녀사이를 말합니다.

 

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엡6:1-2, 개역한글)

 

자녀는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부모의 뜻에 따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모가 잘못됬는데도 따르는가?" 라고 말합니다.
부모는 때로는 잘못될수 있습니다.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부모는 부모로써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떠나갈때까지, 아이가 주님안에서 독립할수 있도록 아이들을 맡을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부모가 이 권위를 남용하거나 오인한다면 이 일을 하나님앞에서 추궁을 받게 될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순종하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왜인가요?
부모는 자녀보다 오래 살았기에 많은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녀보다 더 현명한 처사를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부모들은 자녀들을 가르칠때 자기 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 주안에서 순종하라 > 이것을 부모는 자녀에게 가르쳐야 하며 자녀들은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가정안의 배움 입니다.

 

또한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할뿐 아니라 <공경>해야 합니다. 이는부모에게 영광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이를 자녀들은 마땅히 해야 합니다.

 

십계명 중에 하나님께 관련된 첫 4계명이 있고 인간과 관련된 6계명이 있습니다.
그 중 인간에 관련된 첫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라> 입니다.

 

물론, 율법은 우리가 죄인임을 꺠닫게 하기 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여전히 우리에게 적용됩니다.

 

율법으로는 구원받을수 없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주님을 따라갈때에 이러한 율법에 순종하게 됨을 우리는 압니다.

 

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할까요? 부모에게 순종하면 그 본인이 잘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6:3, 개역한글)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윗은 오랜기간 도망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왕국은 절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님을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다윗의 권위가 이토록 견고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다닐때 그는 군장들만 거느린 것이 아니라 가족들까지 다 거닐고 다녔습니다.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그러던 중 다윗은 사울을 두번이나 죽일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였기에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것이 합당합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잘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기 위해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고자 합니까?

 

자녀들이 이러하다면 부모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6:4, 개역한글)

 

부모가 가진 권위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이 부분에서 부모는 주님앞에 가서 반드시 직고해야 할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자녀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은 자녀들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부모의 권위를 남용할수 있습니다. 이로인해 자녀의 마음이 상하는 것입니다. 이는 조화롭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인간관계에 대해서 무시하고 사는 시대입니다.
물질주의가 너무나 강한 시대이기에 물질이 아닌 인격과 인간관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사단이 이 시대를 통해서 우리마음을 파괴시키고 얼마나 우리를 실의에 빠지게 하는지요.
바로 이러한 일들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 조화롭게 살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 믿지않는자와 멍에를 매지 말라 >는 말씀은 단순히 결혼에 관한것만 말이 아닙니다.
이는 조화롭게 살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이와같은것이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서 원하신 소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은 온세계에서 하나님을 드러내고 조화롭게 사는 종족이 되어야 했습니다. 영적인 선진국이 되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에 이스라엘은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교회에 이러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한다는것은 주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전시사역입니다. 항상 가르쳐야 하는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누워있지만 않고 몸을 조금 움직이게 되면 어떻습니까? 엄마의 눈은 항상 그 아이를 쫓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같이 많은 관심과 수고와 노력과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 모든것은 자식들의 마음에 남는것이며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잠언 31장 마지막을 보면 현명한 여인에 대해서 나옵니다. 마지막 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자식들이 일어나 사례하고> 어릴적 자녀는 부모의 말을 싫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성한 이후에 일어나서 감사하고 사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게 될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것은 바로 조화입니다.
조화가 있을때 사단은 우리에게 다가올수 없게 됩니다.
조화롭다는것은 우리가 주님앞에서 충성되다는 뜻입니다.

 

이제 주인과 종의 관계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7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9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줄 너희가 앎이니라
(엡6:5-9, 개역한글)

 

종들이 주인을 향해 가져야 하는 마음이 어떤마음이어야 할까요? 현대에는 노예제도가 없어졌지만 과거 19세기까지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미국은 노예제도 때문에 남북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노예는 없지만 직장에서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구분됩니다.

 

우리는 직장 삶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려움을 당할수 있습니다.
과거 노예제도가 있을때 노예의 마음을 우리가 상상할수 있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 (엡6:5, 개역한글)

 

기준은 항상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 하듯 하여야 합니다.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엡6:6, 개역한글)

 

이 세상에 얼마나많은 눈가림이 있습니까? 일하는것 같이 하지만 사실 딴짓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을 눈가림만으로 섬길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최근 방위산업에서 군부의 장교급들이 이적행위를 했습니다. 이는 이적행위 수준이 아니라 나라를 파는것이고 국민을 파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직장에서 일할때 먼저 주님을 위해서 일한다는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용주를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때 마치 주께하듯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직장안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정치를 볼때에 너무나 어렵고 마음이 힘든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주님께 도우심을 구하지 않으면 살수 없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주께 하듯하라 고하시는 것입니다.
당장은 우리가 불이익을 당하는 것 같아도 긴 세월을 보면 이러한 방법으로 주님께서 우리를 보전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러한 관계는 위대하고 고고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관계에서 우리가 그를 사람에게 하듯하지 않고 주님께 하는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성공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상전들에게 이와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줄 너희가 앎이니라 (엡6:9, 개역한글)

 

이것은 언제나 웃사람이 마음에 두어야 할 문제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많은 사람을 부러워 합니다. 나이만큼의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우리가 책임져야 할 책임이 늘어나는것을 느끼게 될것입니다.

 

상전이 권위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후린다면 그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가서 답변해야 할것입니다.
자녀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에게 순종하는것은 합당 합니다.
또한 종들이 상전에게 순종하는것 또한 합당 합니다. 이는 주님 앞에서 답변할것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조화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네번째로 걸어가는 방법, 승리에 대해서 살피고자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참으로 부유한 자입니다. 우리가 부유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때에 우리의 처신이 달라집니다.

 

여기에 아주 좋은차와 아주 낡은차가 있습니다. 하나는 100불도 안되는 차이고 하나는 어마어마한 가격의 차입니다. 그리고 이 차들을 운전하는 두 운전사가 있습니다.
비싼차의 주인은 운전을 아주 조심스럽게 합니다. 운전하다가 차를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부유하다는것을 안다면 우리의 처신이 달라지게 될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주님의 마음을 읽었다면 실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의 성도님들은 어떻습니까?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주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만일 이것을 생각한다면 우리 처신 하나 하나를 상당히 신경쓰고 살것입니다.

 

우리의 신분이 너무나 고고하기에 우리는 우리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승리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6:10-13, 개역한글)

 

지금까지 우리는 걷는것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이제 여기서는 서는것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받는것을 다 준비하시고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전쟁하기 위해서 서야 합니다. 그리고 전쟁에 이기고 난 후에도 서야 합니다.

 

전쟁의 기본자세는 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승리한 후에 주저 않겠습니까? 서야 합니다.
한봉래 형제님께서 이 전쟁은 장기전에라고 하셨지요. 맞습니다. 장기전입니다.

 

우리는 전쟁에서 서고 또다시 밀려오는 전쟁에 대해서 대비해야 합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엡6:14, 개역한글)

 

이 허리띠는 진리의 허리띠 입니다.
우리가 힘든일을 하게되면 보통 중요한 띠를 착용합니다. 이 띠는 중추를 잡아줌으로 힘을쓰고 집중할수 있게 합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여행을 할때 힘을 내기위해 띠를 띠고 여행합니다.
이는 여행할때도 마찮가지지만 전쟁할때는 더욱 더 띠는 띠어야 합니다.
이 띠는 무엇입니까? 진리입니다.

 

사단은 진리가 아닌 거짓을 가지고 들어옵니다.
사람들은 사실이 아닌것을 사실처럼 표방합니다, 이 위선은 거짓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믿고 말할때에 사단이 우리를 공격하지 못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거짓말 하고 때때로 덮고 넘어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때에 사단이 거짓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로 띠를 매야 합니다.
우리는 '예'면 '예'라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진리를 생활가운데서 행하고 있어야 합니다.

 

< 의의 흉배를 붙이고 >

 

흉배라는것은 우리 몸의 가장 중요한 장기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바로 심장과 폐부입니다. 이 가슴을 보호하는 흉배를 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의로 보십니다. 우리가 의롭지 않음에도 우리의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도 신분에 맞게 의롭게 사는가요?
여기서 말하는 것은 우리 삶속에서의 의 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불의와 적당히 손을잡고 살고 있나요? 이때에 사단은 우리 가운데 역사하게 됩니다.

 

불의 가운데 사단이 역사하면서 주님과의 관계가 이상야릇하게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교제하게 될때에 불의가 금방 드러납니다.
우리는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불의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께서 의를 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엡6:15, 개역한글)

 

로마군인의 신발 바닥에는 가시 같은것이 달려 있었습니다. 현대에는 운동선수들의 신발에 그와같은 것이 있는데요. 이것은 추친력을 일으켜 줍니다.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으로부터 시작됬지만 모든 세상에 전파되어야 합니다. 바로 추진력이 있습니다. 이 복음은 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이복음은 평안의 복음입니다.

 

주님의 복음은 평안의 복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짐진자들에게 쉼을 주십니다.

 

< 평안의 복음에 예비한 것으로 >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구원에 대해서 예비하고 생각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의 질문에 답변해 줄만한 준비가 항상 되어 있나요?
복음에 예비되어 있는 성도에게 사단은 가까이 다가오지 못합니다.

 

사단이 기회를 보기 쉬운 성도가 복음에 관심이 없는 성도입니다. 이는 사단이 정말로 환영하는 성도입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엡6:16, 개역한글)

 

믿음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금보다도 귀한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방패라고 합니다. 
화전은 불화살인데요. 이 불화살은 단순한 상처가 아닌 화상과 불이 붙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단의 간계를 알아야 합니다. 그에게는 화전이라는 무기가 있습니다. 사단은 이 화전이 우리의 심령속에 꽃히게 합니다.

 

우리는 방패를 들어 이 화전을 막아야 합니다. 더이상 불이 번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여러가지 실의와 절망이 찾아올수 있습니다. 사단이 화전을 쏘고 있는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방패로 막지 못한다면 우리 마음에 꽃힌 화전은 점점 크게 불타오르게 됩니다.

 

사단의 화전에는 실의와 의심이 있습니다. '정말 주님이 계시나?' '내가 가는길이 정말 주님께서 돌보시는 길인가?'  이러한 생각을 사단이 심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교제할때에 우리는 주님과 집중하고 몰두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사단은 우리 마음을 산만하게 하여 세상도 섬기고 주님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마음이요 부정직한 마음입니다. 거짓입니다. 우리 마음을 둔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단이 또 우리마음속에 주는것은 게으름입니다. 또한 불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불협화음을 만드려고 합니다. 이러한 화전들을 사단은 계속 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이때는 저렇고 저때는 이렇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단이 화전을 쏘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는 막아야 합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엡6:17, 개역한글)

 

지식은 합당합니다. 그러나 지식으로 인해서 우리 마음이 교만하여 지는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 교만이 우리를 멸망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의 지식을 받아야 합니다.

 

< 너희가 은혜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안에서 자라가라 >

 

우리가 알아야 하는 수많은 지식이 있습니다. 그 지식이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역사하면서 우리에게 강력한 힘을 안겨다 줍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께 순종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 지식의 투구를 써야 합니다. 곧, 구원의 투구입니다.

 

우리 마음에 사단의 화전이 들어왔을때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 모든 유혹들을 이길수 있습니다.
이 지식들은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 우리가 계속해서 일어나게 합니다. 우리는 이 지식,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합니다.

 

< 성령의 검 >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어 우리의 마음과 뼈와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시며 영과혼을 구분한다 >

 

무엇이 정말로 영적인지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공격형 무기입니다. 지금까지는 모두 수비형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공격할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대적하게 될때에 그는 돌 5개를 가져갔습니다. 그 중에서 단 한개를 썼습니다.
모세오경 중에서 우리 주님은 사단의 시험에 단 하나의 말씀만 가지고 사단을 물리치셨습니다.

 

오늘 아침 받은 말씀이 곧 사단을 이길수 있는 말씀입니다.

 

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엡6:18-19, 개역한글)

 

사도는 에너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이야기 했습니다. 이것은 사단의 공격을 막아줍니다. 그리고 이것을 더 효과적으로 막아주는것은 바로 에너지 입니다.

 

이 에너지는 바로 기도와 간구 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자입니다. 사단보다도 연약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강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전신갑주를 입고 무시로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들과 교회 초기에는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였습니다.
우리는 보이지않는 원수의 공격을 막고 승리 가운데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연합과 순결, 조화 가운데 걸어야 하며 승리가운데 걸어야 합니다.
또한 이 전쟁에서 승리가운데 걸어갈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승리함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승리함으로 이 가정이 보전 됩니다.
그러므로 사도께서 말씀하신 부유함을 즐기고 주님께 감사하고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할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을 붙들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계속해서 걸어나갈수 있게 힘을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