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7일 월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 뉴욕 플러싱 모임 여름수양회 19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딤전6:12, 개역한글)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딤전6:14-15,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참 아들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도록 이 서신을 주고 있습니다.
선한싸움의 방법이 11-12절에 나와 있습니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딤전6:11-12, 개역한글)
선한싸움은 하나님의 사람만 싸울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한사람은 세가지 방법으로 싸울수 있습니다.
1. 이것들을 피하고
2. 이것들을 좆으며
3. 이것들을 취하여
14-15절에서는 선한 싸움을 싸우는 동기가 나와 있습니다. 곧, 이것이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딤전6:15, 개역한글)
<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
사도바울은 선한싸움을 싸울 수 있는 힘을 이야기 해 줍니다. 선한싸움을 싸우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있으며 예수님의 재림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탁월하심을 알게 될것입니다.
<하나님은 복되시고>
하나님은 스스로 만족스로워 하시는 분이며 행복해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마음속에 불만이나 걱정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주관자 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걱정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괴로움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사람 중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과 합당한 관계를 맺는 사람입니다.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기에게 소망이 없고 하나님이 복된 분이라는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사람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수 있습니다.
<홀로 한분이신>
성경의 하나님이 참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외의 것들은 사람이 만든 우상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이 시작하신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 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만이 능력이 있고 전능하신분입니다. 하나님 외에 전능자가 없습니다.
욥에게 하나님께서 후반부에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것을 아느냐?" 이것은 욥이 친구들과 변론하다 도를 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욥은 천지만물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자세히 알지 못핮니다. 그저 부분적으로 알뿐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질문하십니다. <네가 이것들을 할수 있느냐?>
하나님만이 전지하시며 전능하십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 이십니다>
세상의 모든왕들이 위엄을 가지고 있지만 그같은 왕을 세우시고 폐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느부가넷살 왕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그는 신상의 금머리와 같은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만해지자 그는 짐승처럼 되어 쫓겨났습니다.
그가 쫓겨난 후에 다시 하늘을 들어 고개를 들고 하늘에서 세상만국을 통치하는 분이 있다는것을 시인했을때 그가 다시 왕으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쫓겨난 왕이 다시 왕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럴수 있습니까? 이를 통해 세상의 모든 왕은 오직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폐하심을 알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의 황제 앞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만일 그 복음이 기록되었다면 그 내용은 엄청난 것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믿음의 선한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잠깐 구약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게 행하라 >
창세기 16장에는 아브라함이 하갈을 취하여 아들을 낳는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낳지않고 입양한 사람 엘리에셀을 자신의 상속자로 추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몸에서 난 자>가 네 상속자라 될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종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6장에서 창세지 17장까지 걸리는 시간이 성경학자들을 13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침묵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17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00세가 되면 아들을 낳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라앞에 나타나신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라고 말씀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것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 외에는 전부 우상이며, 우리 하나님만이 능력이 있으시며 만왕의 왕이십니다.
이 세상과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믿고 따르기를 바랍니다.
제자들의 예를 한번 살피겠습니다.
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29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30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요14:28-31, 개역한글)
요한복음 14장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말씀하시고 방을 나오사 겟세마네 동산으로 걸어가시는 내용입니다.
주님께서는 열한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가시며 다시 올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주님보다 위대한 일을 할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제자들이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오른편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은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순종하는 제자들이 이룰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가고 온다" 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십니다. 왜인가요? 제자들이 자꾸 잊어먹기 때문입니다.
왜 잊어먹을까요. 이 말을 듣고싶지 않기 때문 입니다. 이 말은 제자들이 원하는 말이 아니며 난처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베푸셨다는 말을 듣기는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제 나를 따르라 나를 따라 싸우라는 말을 듣기를 싫어합니다. 이말이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간다'는 말을 제자들은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사실 놀라운 축복과 약속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가신다는것은 십자가를 지신다는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지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사 하늘에 계십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다시 오실것입니다. 살아계신 모습으로 세상의 모든 성도들이 하늘으로 끌어올려져 영광된 주님을 뵈올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일을 제자들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부르시는 것인데 우리는 이 부름을 나에게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것을 놓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오해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듣고자 하지 않고 잊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더면 기뻐하였으리라>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명령하시고 약속하신것들을 내 관점에서 희생이 되는 것만 생각하십니다.
그 일이 주님께 어떤 영광스러운 일이 되는가는 생각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주님께서 자기를 떠나는것으로만 생각지 말고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사역을 완수하신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십자가는 예수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요14:29, 개역한글)
십자가는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마태복음26장 2절에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사람들에게 넘기우고 죽을것이다"
주님은 자신의 죽음의 시기와 죽음의 방법을 미리 말하십니다. 이게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어떻게 언제 죽을것인지 말하는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가룟유다가 주님을 팔것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미리 말씀하신것은 제자들로 주님께서 하나님 임을 믿게 하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주님은 고난과 수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임을 스스로 입증하셨습니다.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요14:30, 개역한글)
< 이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것이 없으니 >
주님은 이렇게 말할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사단은 내게 상을 받을것이 없다'
주님은 인간이셨지만 한번도 죄를 지으신 적이 없습니다. 사단이 관계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은 여자의 후손 이십니다. 창세기에 이렇게 예언되어 있습니다.<여자의 후손이 뱀의머리를 밟을것이다. 뱀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것이다> 주님께서는 모든 예언대로 이를 이루셨습니다.
사단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닮으로 이겼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공격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인류의 죄를 위해서 대신 지신것입니다. 이는 사실 사단의 패배입니다.
이는 모세가 놋뱀을 든것처럼 주님께서 들리고 나면 모든사람이 주님의 자녀가 될수 있는 새롭고 산길을 여신 것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들은 담대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수 있습니다. 그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관점에서 주님께서 가신 길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요14:31, 개역한글)
< 오직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
주님은 십자가를 지실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로 몰고 죽였습니까?
여러가지로 말할수 있지만 참으로 영적인 의미로는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을 만들어 그들을 예수님에게 선물로, 신부로 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들은 죄를 짖고 사단에게 종노릇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부활하시고 구원의 사역을 이루시고 우리를 믿게 하셔서 예수님을 닮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 드려질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이와같은 것을 봐야 합니다.
1.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십니다.
2. 사단은 패배했습니다.
3.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세가지를 안다면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을 듣기를 싫어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안다면 믿음의 선할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싸움이라는 것은 부담스런 것입니다.
싸움이라는 것을 도전이고 갈등이요, 넘어질수도 있고 고난 당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싸움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8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삼하12:7-9,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죄를 어떤관점에서 다루시는가 보겠습니다.
죄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것입니다. 죄는 다른사람에게 해를 끼칠것입니다. 더군다나 죄는 "하나님께서 내게 충분히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죄를 하나님께서 지적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기름을 부었다.> 다윗에게 필요한 모든것을 주었습니다.
이것으로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취했습니다.
이는 다윗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능력 있으신 분이라고 믿지 않은것입니다.
우리는 유혹을 느낄때마다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충분하지 않은 분이신가요? 하나님께서 내게 부족하신 분이신가요?
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엡1:19-22,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세가지 입니다.
1.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2. 기업의 풍성입니다.
3.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이는 교회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부르심인지 알기를 원함입니다.
또한 우리같은 죄인을, 지금도 여전히 연약한 사람을 하나님이 말하시는 그 영광스러운 수준으로, 그리스도를 닮고 그 신부가 되게하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 생애 속에서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죽게하시고 다시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하늘로 올리셨고, 모든 이름위에 높이시고 이 온 만물을 통치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하나님의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고있습니다. 우리가 이 싸움을 두려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도바울은 이 능력을 어떻게 썼는지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살전1:5,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할때 하나님의 능력이 사용되어 자기를 장악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말로 복음을 전하지만 이 복음이 말로만 역사되는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일하사 복음의 확신속에서 일하게 하시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탄생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계신 성도님들 중 말씀을 듣는 중에 어떤 성경구절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혹은 질문을 받았을때 어떤 성경구절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성령님께서 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힙입어서 하는것입니다.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후4:7-8, 개역한글)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을 살때 많은 공격을 받습니다. 많은 고난을 당합니다.
특별히 이세상에서 살아갈때, 학교를 위하여 공부하고 직장을 위하여 올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성실히 교회를 나오며 세상에서 휴가를 얻고 약간 눈치보이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세상에서 반드시 쳐지게 됩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 전체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질그릇같이 연약한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질그릇속에 보배가 있습니다.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이 모든것들을 능히 감당할수 있을뿐 아니라 질그릇이 깨질때 이 보배가 더욱 빛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 있을때 이 보배를 통해 더욱 힘낼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드러낼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낙심하거나 꺼려하지 말고 주님이 드러낼 좋은 찬스가 온것에 기뻐해야 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2:13, 개역한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믿고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할수 있는 것을 소원해야 합니다. 주님을 닮는것을 참으로 소원해야 합니다.
주님을 더 닮는것을 다른 어떤것보다도 소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와같은 능력을 주셔서 이와같은 것을 알고 참아낼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셨다는것을 고백하게 되는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1:29, 개역한글)
우리가 지역모임 가운데 주님을 섬기는것은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해야하는 일이며 사단이 방해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하시는 일과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 해서는 안되고 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께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이 싸움에 동참 시키셨습니다. 우리가 승리하도록 힘을 주시고 계십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우리는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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