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2015년 플러싱수양회(요약)

< 뉴욕플러싱 모임 여름수양회 11 >

박이레 2022. 7. 13. 23:18

2015년 8월 29일 토요일      강사 : 정형모 형제님

 

< 뉴욕플러싱 모임 여름수양회 11 >

 

올해 수양회를 시작하게 되어 기쁩니다. 주님께서 저희들에게 이런 은혜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시간 나누던 내용들을 계속 나누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엡1:3, 개역한글)

 

저희들이 영적인 싸움에 관해서 지난시간 생각해 봤습니다. 지난 시간 사단이 어떻게 저희들의 부요함을 빼앗는지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진 복은 하늘의 신령한 복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풍요로운가를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후에 우리의 생활속에서 절절히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자의 역사'속에 빨려들어가고 있는게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8:9, 개역한글)

 

오래전에 한 형제님께서 이 말씀을 성경 중에 보화라고 말씀하신적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부요하신지를 우리는 헤아리고 헤아려야 합니다. 부요하신 주님께서 얼마나 가난해 지셨는지는 성경과 복음서 말씀을 통해서 잘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대신 얼마나 부요해 졌는지 고린도후서 8장 9절은 말해줍니다.

 

주님께서는 베들레헴 구유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목수의 아들로서 자라시고, 또한 이 세상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얼마나 가난해 지셨나요?
공중의 새와 여우도 굴이 있지만 주님은 머리 둘곳이 없었습니다.

 

이를통해 주님께서 하늘에서 누리던 부요를 우리를 위해 어떻게 포기하셨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직 < 우리로 부요케하기 위해서 > 가난해 지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모든삶에서, 심령안에서, 미래에 누릴 모든 부요의 현실을 생각할때에 사도바울은 '하나님께 찬송하리로다' 라고 합니다.

 

에베소서는 옥중 서신입니다. 그는 감옥에서 이 서신을 쓰고 있음에도 심령의 부요함과, 우리에게 주어진 보든 복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이 복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께서 주신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복은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부요함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던 것이었지만, 감히 상상조차 할수 없던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를 마음속에 두고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으로는 감히 측량할수 없는 부요함입니다.
이 주제는 영원토록 찬송할 주제 입니다.

 

< 이는 성령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

 

은혜로부터 주님의 영광을 찬송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를 양자삼기 위해서 선택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에게 기업을 주실 목적으로 양자를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 입니다. 후사라는 것은 기업을 잇는자 입니다.
이 기업은 우리의 생각으로는 감히 측량할수없는 어마어마한 기업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하기 위한 후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그리스도를 닮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기업은 얼마나 위대합니까.
이 얼마나 분에 넘치는 은혜인가요?

 

그리스도는 너무나 완전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와 너무나 먼 자입니다. 이 쌍방이, 같은 기업을 누린다는것은 얼마나 어울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양자 삼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에게 구속, 죄사함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위대한 영광을 버리고 이땅에 오신다는것은 너무나 위대한 결단입니다.

 

이 모든것들은 우리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걸으며 세상의 외면을 견디고 얻으신 결과입니다.
주님께서 어떠한 고통을 받으셨나요? 주님께서는 죽으시기까지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죄사함, 주님께서 주신 이 은혜는 영원히 썩지 아니할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입니다.
이 풍요로움은 사실 물질도 포함합니다. 정신세계뿐 아니라 물직적인 풍요도 말할것이 없습니다. 
이 풍요로움은 이세상의 어떠한 것으로도 값주고 살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입니다.
땅에 있는것, 하늘에 있는 모든것이 그리스도로 풍요롭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비밀이었지만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게하셨습니다.
구약의 누구도 이 비밀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부요한가는, 다른 말로 우리가 주님과 얼마나 가까운가로 말할수 있습니다.
천지창조때에 6일동안 모든 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6일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때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이는 얼마나 풍요로운것인가요?
이 풍요로움으로부터 인간은 타락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우리를 다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6일째 마지막에 창조된것은 여자입니다.
하와는 무엇인가요? 곧 그리스도와 교회를 상징하는것 중, 교회를 나타내지 않습니까?
아드님의 마음속에 가장 소중한 대상은 누구인가요? 바로 교회입니다. 이는 얼마나 위대한 풍요로움인가요.

 

약혼자가 반지를 끼고있습니다. 그 반지는 매우 비싼 반지입니다. 이는 풍요로움입니다.
또한 약혼자가 나를 사랑한다는것은 더욱더 큰 풍요로움입니다.

 

반지가 아무리 비싼 것이라 하더라도 약혼자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 반지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너무나 초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 세상의 모든것은 그리스도와 함게 통일 될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이러한 풍요로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귀는 우리에게 다가와 이 풍요로움을 잊게 만들고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사회의 문제 때문에 이 풍요로움을 잊고 세상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엡1:11, 개역한글)

 

되었으니, 는 얻었다는 것으로 해석할수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창세전에 선택하시고 예정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성인으로 삼으셨습니다. 왜 성인으로 삼으셨나요? 성인이 되야 아버지의 기업을 누릴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기업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아들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을뿐 아니라 이제 성인으로써 위대한 기업을 누리는 부요한자가 되었습니다.
사단은 우리가 이러한 부요를 누리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얼마나 스스로 가난해 지셨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서 위대한 기업을 누리게 될것입니다. 또한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이해하고 있습니까?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1:12, 개역한글)

 

이 기업은 찬양과 관련해서 생각할수 있습니다.
우리의 부요함은 하나님의 풍요로움과 관련 있습니다. 거기에는 영광과, 위엄과,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이 풍요로움은 말로 할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슬며시 우리에게 다가와서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우리의 육이 활동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 풍요로움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세상이 아닌 하늘의 정사와 권세 악의 영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들은 정부, 관료의 배후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동시에 악의 영들은 권력의 배후에서 역사하며 하나님을 공격하고 성도들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서 이런 풍요로움을 앗아가려고 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초라함이나, 자기연민에 빠지게 하려고 너무나도 큰 노력을 기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1:13-14, 개역한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복이 있습니다.
첫째, 인치심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순간 성령님께서는 우리안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임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감사할 주제인가요.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완성을 성령께서 인치심으로 영원히 확정하셨습니다.

 

< 이는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사 >

 

둘째, 기업의 보증이 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약혼을 하고서도 파혼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파혼이 있을수 있습니다만, 약혼이라는것은  원래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하는것입니다.

 

보증이라는 말은 '반드시 ~ 된다' 라는것을 전제로 하는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기업을 절대로 놓치지 않고 영원히 누리게 될것을 확증하신것입니다.

 

우리는 아들을 통해서 그분의 자녀가 되었을 뿐 아니라 기업을 잇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놀라운 풍요로움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정신을 산란하게 하고 이 세상것에 마음을 두게 합니다.
그래서 이와같이 주님께서 주신 영적인 풍요로움을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됩니다.

 

지난시간에 모든것을 가졌으나 그것을 누리지 못한 수전노 여인에 대해서 이야기해 드렸습니다.
우리는 그 여인과 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위대한 기업때문에 우리는 풍요롭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간직하고 주님을 찬송하며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것입니다.
우리가 마귀를 경계하고 주님께서 주신것을 누릴 때에만 예배가 풍요롭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것을 이 시대에 원하십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2:6, 개역한글)

 

우리는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있는 영에게 이끌려 살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풍속과 가치관을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서 복음을 전할 위대한 특권이 있습니다.
우리도 죽은 자 였으나 이제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2:4-5, 개역한글)

 

우리는 지금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땅에 발이 닿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와 보좌에 함께 앉은자의 삶이어야 합니다.

 

에베소서1장에서는 아버지께서 주신 풍요로움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이제 2장에 와서는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분 위치의 풍요로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떄론, 고위직에 앉아 있음에도 청렴, 빈곤한 삶을 사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것을 가졌지만 빈곤하게 사는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가요?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보좌에 앉은 자입니다.
아드님은 하나님으로 부터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 라는 말을 받았으며, 아버지께서 원하시는대로의 삶을 살고 십자가에 죽는것도 기뻐 하셨다고 했습니다.

 

정말 기뻐하셨습니까?

 

주님께서는그 말로 하실수 없는 고난을 기뻐하실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 질것을 생각하면서 주님은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감당하셨습니다.
이로인해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무덤에서 살리시고 하늘위로 올리셨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우리가 이 아들과 같은 보좌에 앉아 있으며 아들과 같은 위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위엄을 가지고 있다는것을 자각하고 있다면 우리의 삶과 행동이 보통사람과는 다를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어렵고 때때로 연약할찌라도 우리가 가진 신분과 위엄은 말로할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라.(9절)>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2:10, 개역한글)

 

만드셨다고 하는것은 헬라어로는 '포이에'라고 합니다. 이것은 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 뿐아니라 주님의 보혈로 우리를 전혀 새로운 창조물로 만드셨습니다.

 

여기서 <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 라는것은 주님의보혈로 인한 새 창조를 말합니다.
글을 제대로 쓴다는것은 많은 훈련, 많은 묵상과 조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이 있어야만 제대로된 글을 쓸수 있습니다.
시라는것은 산문이 아니기 떄문에 아주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는 하게 하는 시는 아무때나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창조로 만드실때 만드신, '시'라는 것, 그 시를 쓰는 시인이 가진 저력을 우리는 감히 상상할수 없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는위대한 시, 감동을 줄수 있는 세상의 그 어떤 시보다보 뛰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로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이셨는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 창조로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무한한 생각과, 계획과, 실행과, 집행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이 산물이 바로 우리입니다.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드셨나요?
<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묵상 속에서 우리가 탄생되었다면 선한일, 곧 하나님께 가치가 있고, 사람들을 변화시킬수 있는 그런 일들을 우리는 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이 진리 우리가운데 어떻게 역사하는지 보아야 합니다.

 

때때로 마음속에 좌절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스며들어가면 하나님의 영광건럼 계획을 보고 그사람은 벌떡 일어나게 됩니다.

 

세상이 하는 선한 어떤일보다 이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사실 세상은 선한일보다 악한일을 더 많이 합니다.

 

우리는 어떤 자입니까? 선한 일을 할수 있는 존재입니다. 자선사업가와 같은 선한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선한 일을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는것이며, 영원히 지속될 일입니다.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2:21-22, 개역한글)

 

여기는 성전을 말합니다.
에베소서 2장 이후에는 이방인과 유대인과의 막혔던 담이 허물어집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구별없이 한군데 모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모퉁이 돌이 되사 이방인과 유대인이 모여 성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유대인과 더불어 성전이 되었습니다.

 

창세기에에서는 '하나님께서 동행하셨다' 고 나옵니다 . 출애굽기에 와서는 '하나님께서 거하셨다' 고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성소, 회막에 거하십니다. 구약시대에 와서는 성전에 거하십니다. 이영광은 엘리시대에 떠나가 버렸습니다.

 

다윗은 언약궤로 많은 고민을 했고, 때가되어 언약궤를 성으로 모셔 옵니다.
그는 성전에 대해서 생각하지만, 하나님께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하였고 하나님으로부터 그 성전의 양식을 받았습니다. 그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은 성전을 떠났습니다. 에스겔서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의 양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대가 변해 하나님의 영광은 어디에 임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육체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다른영광이 내려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오순절날에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 임하게 됩니다.

 

전에는 상상할수 없는 이 위대한 현실을 주님께서는 비밀이라 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지어가는것은 얼마나 위대한 부요함인가요. 우리는 하나님의 플랜속에 담겨 있습니다. 이는 총 교회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지역교회 안에서 교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이시대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습니다.
마귀는 교회를 얼마나증오하는지요. 그는 우는 사자와 같이 교회를 파괴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는 절대 교회를 파괴할수 없습니다.
그는 이길수 없다는것을 알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교회를 분열시키기 위해서 세상적인생각, 패션에 대한 생각, 자리를 탐하는 생각을 성도들에게 넣습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마귀는 더욱 더 역사합니다. 우리는 이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모든 겸손과, 주님께서 주신 보화를 마음으로 더욱 더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지역교회를 아름답게 세우는 일에 주님앞에 마음을 드리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깨어 기도하고 주님의 도움을 구하고 우리의 시야를 밝혀 주님께 찬양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주님게서 우리들의 마음을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