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2015년 플러싱수양회(요약)

< 뉴욕플러싱 모임 여름 수양회 10 >

박이레 2022. 7. 13. 23:17

2015년 8월 27일 목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 뉴욕플러싱 모임 여름 수양회 10 >

 

- 복음말씀 -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기록된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롬3:4, 개역한글)

 

사람은 그가 믿건 안믿건간에 그의 마음깊은곳에서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에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때에 그 앞에서 변명할것이 있는가, 본능적으로 심판에대한 변명을 준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모든 실과를 먹되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먹었습니다.
일은 사람이 저지르고 수습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아담은 범죄함으로 숨었고, 하나님은 아담을 찾으십니다. "아담아 어디 있으냐"

 

"왜 먹었느냐" 라는 하나님의 질문에 아담은 "주님께서 옳으시고 제가 죄인입니다" 라고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내 하와가 주어서 먹었습니다."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와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뱀이 꾀어 먹었습니다" 하와또한 같습니다.
그들은 본등적으로 자신의 죄를 축소, 은폐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것이 옳습니다.
"모든것은 거짓되되, 하나님은 옳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한일을 주님앞에 제출합니다.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말합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내게서 돌이키라"

 

<사람은 거짓되되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라고 할때에만 우리는 구원을 얻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루터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는 독일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에겐 많은 동생들이 있었습니다.
많은자녀들 중 공부를 잘하는 자녀가 있으면 그 아이를 도시로 보내 공부를 시킵니다.
루터는 도시로 가서 공부해 법대에 들어 갔습니다.

 

루터는 가족들을 위해서 성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 없는 일이 그의 생애에서 일어납니다.
그의 친구가 어느날 벼락에 맞아 죽었습니다. 루터는 그 순간 죽음의 문제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그는 법대에서 신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됩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것을 알기위해 전공을 법대에서 신학으로 바꿨습니다.
루터는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편지로 씁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반대했습니다. 그때 우연인지, 자녀들 중 하나가 그때 죽어버립니다.

 

아버지는 자기가 반대함으로 하나님께서 진노해서 아이가 죽어버린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루터의 뜻을 더이상 반대하지 못합니다.

 

루터는 신학으로 전공을 변공하고 시편22편을 처음 보았습니다.
루터는 심판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을 보았고, 십자가에서 우리죄를 위해서 돌아가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루터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 루터에게 로마서를 공부하라고 지령이 내려왔습니다. 루터는 로마서를 읽고 누구보다 경건하게 행동하기 어려울 정도로 행동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행동하면서도 루터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을것이라는 확신을 얻지 못합니다.
그는 카톨릭 교황이 있는 건물의 계단을 무릎으로 올랐다 내려갔다 하는 고행을 합니다. 무릎에서 피가터지도록 계속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이 떠오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17, 개역한글)

 

<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루터는 이 구절로 인하여 구원의 확신을 얻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만한 행위를 근거로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게 여기실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루터는 말씀으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것을 깨닳았습니다.

 

그 후 교황이 베드로 성당을 짖고자 했으나 돈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면죄부를 팔기 시작합니다. 돈을 벌기위한 목적으로 사람들의 효심을 자극해서 면죄부를 팝니다.
루터는 말씀을 근거로 이것이 잘못되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루터에 의해서 종교개혁이 시작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세상은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만 참되시다'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3:19-20, 개역한글)

 

사람들의 오해 중 대표적인 오해는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나를 천국에 들어가게 하실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을 막기 위함입니다.

 

"주님 저는 어찌할수 없는 죄인이며 이세상에 옳은분은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라고 말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롬7:7, 개역한글)

 

탐내지말라는 것은 십계명 중 맨 마지막 계명입니다.
십계명은 행위를 규제하는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와같은 행위를 하지 않으면 십계명을 지켰다고 오해합니다.

 

대부분 이렇게 오해합니다. 왜이렇게 자신있게 말할수 있느냐면, 바로 제가 그랬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또한 그러했습니다..

 

< 탐내지 말라 > 라는 부분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너희가 살인치 말라는 명령을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한 자니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 말이 진실하지 않겠습니까?
어린아이들은 자주 싸웁니다. 싸우면서 욕도 합니다. 하지만 싸우거나 욕을 하는것 하나만으로도 하늘에서는 그것을 살인죄로 봅니다.

 

우리가 십계명의 참된의미를 모를때에 예수님은 십계명의 참된의미를 설명해 주십니다.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은 행동을 규제하지 않고 마음을 규제합니다.

 

사도바울은 십계명이 다 행동을 규제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다 지킬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가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기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어떻습니까?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다 거룩하라 > , < 하늘에계신 너희 아버지가 온전한것 같이 너희도 다 온전하라 >

 

그럼에도 우리가 스스로 의롭다 생각하는것은 죄의 기준을 자기가 할수 있는수준까지 낮췄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신것은 이것을 지키라는것이 아니라 십계명을 통해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3:23-24, 개역한글)

 

하나님의 말씀이 비춰졌다면 한다면 우리는 23절의 말씀에 동의할것입니다.
23절과 24절은 나뉘어져 있지만 한 문장입니다.
23절은 모든사람이 죄인임을 말하고 24절은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사람이 의인이 되었다는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의인이 된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역과 은혜로 의인이 된것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오해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항상 죄만 짖는 죄인은 없습니다. 어떠한 죄인이라도 자기 자식을 사랑할줄 알고 가족을 사랑할줄 압니다.
또한 눈뜨기 전부터 눈감기까지 선만 행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좋은일을 행한것과 나쁜일을 한것 중 더 많은 것을 한것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모든 종교가 그렇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하나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생각은 항상 다릅니다. < 모든사람이 죄인이나 하나님은 그 모든사람을 의인이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신을 재판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자기 인생의 채점자라고 보는것입니다.
채점을 해서 총점을 내는것, 이것이 종교의 신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김연아가 요즘 유명한데 이런 스케이팅을 타는 선수가 나오면 여러사람들이 채점하고 점수를 결정합니다.
그럼 채점관이 높습니까? 선수가 높습니까?
주체는 선수에게 있습니다. 채점관은 화면에 잘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럼 인간이 높습니까? 채점하시는 신이 높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의 인생을 채점하는 배경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세상에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죄인이라 부르고 심판하지 않고 자기 아들을 보내사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다른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경의 진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4:5, 개역한글)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

 

경건치 아니한 자는 죄인입니다.
죄인을 의롭다하시는 이는 성경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상하지요? 분명히 내가 죄인인데, 그래서 죽으면 하나님앞에서 심판받을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의를 행하려고 노력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미 의롭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나가면 우리는 지옥에 떨어집니다. 우리는 오직 성경이 말하는대로 하나님을 받아야 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3:22, 개역한글)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종교는 자기들이 믿는단체에 들어와야 구원받는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우리가 만일 예수님의 이복형제라면 구원받을것이라고 생각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에서는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의 동생이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혹, 예수님의 12사도속에 들어가면 틀림없이 천국이 보장되리라고 생각지 않나요?
아닙니다. 그속에 속했지만 지옥에 간 사람이 바로 가룟유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열려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와 성경의 차별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셨을까요?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3:25-26,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하시는 방법은 두개(25절)입니다.
1. 길이 참으셨습니다. 인류는 오래도록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참으셨습니다.
2.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삼으셨습니다.
한번에 흘려진 예수님의 피로 온세상의 사람들, 과거로부터 미래의 마지막 사람의 죄까지 예수님의 피로 씻으시고 의롭다 하셨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1:29, 개역한글)

 

세상이라는 뜻은 이세상에서 태어나고 죽는 모든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죄를 지고 광야로 가버려서 사람들의 눈에 더이상 보이지 않는, 아사셀 염소와 같이 우리죄를 멀리 옮기셨습니다.
이것이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2:24,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직접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것이 화목제물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히9:12, 개역한글)

 

예수님은 자기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단번에 성소(이곳에서는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의롭지않으신가요?

 

하나님의 말씀에는 거짓된말이 없습니다. 단 하나라도 믿어서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사람의 견해는, 종교인의 견해는 믿을수 없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자를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하십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3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마27:3-5, 개역한글)

 

74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마26:74-75, 개역한글)

 

여기에 두사람이 나옵니다. 가룟유다와 베드로입니다.
이 둘은 매우 유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들의 생애에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을 따랐고 열두제자에 뽑혔습니다.
그럼에도 이둘의 결과는 정 반대로 갈리게 됩니다.
가룟유다는 지옥에 있으며 베드로는 천국에 있습니다. 왜인가요?

 

이 둘 사이에는 돌이킬수 없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유다는 은 30을 받고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유다는 자기의 잘못을 뉘우칩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를 옳다고 합니다. 그래서 은 30을 도로 갖다주고, 예수님이 죽자 자기도 죽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보기에 옳은것입니다. 사람의 상식적으로 가룟유다는 옳은것입니다.
우리 나라만봐도 크게 신문으로 문제가 나고 검찰이 조사가 들어가면 자살합니다. 자살하면 더이상 죄를 뭍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보호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살아납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이것은 가룟유다의 죄만큼이나 심각한 죄입니다.
그는 나가서 웁니다. 울면 되나요? 책임을 져야지. 그러나 그는 자기가 책임질수 없다는것을 압니다.
나의 죄까지 십자가에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구원의길을 걸을수 있습니다.
구원받을때 가장 방해되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물론 세상일은 내 생각대로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영적인 일로 들어오면 구원으로, 교회로 들어오면 이것은 맞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지혜로운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자가 적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지혜를 교회안에서 쓰고자 하기 떄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지혜없는자가, 어린아이들이 구원에 들어갈수 있는것입니다.

 

모든 사람이죄인입니다. 저도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심판하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을 심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서 저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주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 영광스러운 일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