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한봉래 형제님(요약)

고린도전서 강해 26

박이레 2022. 7. 12. 21:33

2015년 8월 10일 월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13:1-13, 개역한글)

 

오늘은 1절부터 3절까지 살피고자 합니다. 
1절부터 3절까지는 사랑의 뛰어남을 말합니다. 4절부터 7절까지는 사랑의 내용 합당함을 이야기 합니다. 8절부터 12절까지의 사랑의 영원함, 13절까지는 사랑의 뛰어남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볼때에 우리는 말씀을 문맥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은사의 목록이 나와 있습니다. 이제 고린도전서 14장에서는 집회가운데 은사를 사용하는 내용에 대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은, 은사를 사용하는 이류가 사랑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생활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사용하는 삶을 사는것이 영적인 삶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삶을 어떻게 살수 있을까요?
성령의 은사가 있고,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지 않는 은사는 성령의 은사가 아닙니다.
참으로 영적인 은사는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성령의 통제아래 사는것이 영적인 은사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갈라디아서 5장에 나와있습니다. 9가지 열매중 첫번째가 사랑압니다
은사를 사용하는데 그안에 사랑이 없다면 그는 육신적으로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우선은사에 대해서 잠깐 살피기를 바랍니다.

 

5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고전1:5-8, 개역한글)

 

고린도전서 1장 2절을 보시면 중요한것을 알게됩니다. 교회는 성도들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모임입니다.
성도에 관한 정의를 6-8절이 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그사람 속에서 견고케 된 사람입니다. 복음을 그가 간증으로 나타낼수 있는 사람입니다.
6절은 성도의 과거형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여 내것으로 만든사람입니다. 그것이 성도입니다.
성도는 복음이 그 마음속에 해결된 사람입니다.

 

7절은 진행형입니다. 그 성도는 은사를 따라 살아갑니다.
8절은 성도의 미래입니다. 주님께서 공중으로 오시는날 주님앞으로 올라갈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와, 그리스도와의 혼인을 희망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죄가 처리되었습니다. 미래가 약속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은사를 사용하며 삽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풍복했습니다. 세가지 풍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1. 구변, 2.지식, 3.은사

 

< 소망의 관한 이유를 뭍는 자들에게는 대답할것은 온유함으로 준비하라 >

 

자기에게 일어난것을 말로 표현할수 있는것을 '구변'이라고 합니다.
두번째 지식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러개가 있습니다. 모든사람이 구원받고, 모든성도가 거룩하며 하나님의 뜻을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첫째로, 복음을 전할수 있습니다.

 

복음은 은사있는 전도자만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전도자도 있지만 모든성도들은 세상사람들과 다른삶을 살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사람이 질문할때 대답할수 있습니다.
두번째, 모든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은사는 교회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모든성도는 지역모임에 속합니다. 지역모임에 속하지 않은 성도는 없습니다.

 

지역모임의 한 지체로서 지역모임을 섬기지 않는 성도는 성경의 원리상 없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다를지라도 그곳에서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구원받게 하셨고, 하나님의 뜻을따라 거룩하게 살게 하셨고 세번째, 교회를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8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전12:8-10, 개역한글)

 

고린도전서는 아직 기적이 사용되고 있던시절에 쓰여진 서신입니다.
로마서 12장에 가면 기적적인 은사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초대교회 처음시절에 기적이 사용되었지만 그 기적이 그친것을 알수 있습니다.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찌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고전12:15, 개역한글)

 

은사를 가진 지체들이 시기 질투 할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에 대해서 불만을 드러내는 것과 같습니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고전12:21, 개역한글)

 

반대로 드러나는 은사를 가진사람이 드러나지 않은 은사를 가진사람을 무시하고 낮추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와같은것이 고린도 교회의 문제였습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어떠한 은사를 가진것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은사를 가졌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은사를 알때에 비교하거나 경쟁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아닌 내가가진 은사를 사용할수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전12:31, 개역한글)

 

<너희는 더욱큰 은사를 사모하나 >
라고 바꿀수 있습니다. 헬라에서는 목적어와 서술형이 구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사람들은 드러나는 은사 '방언'과 같은것을 은사를 사모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러나 정말로 좋은 은사를 알려주겠다고 하며 13장으로 넘어옵니다.

 

우리는 고린도 교회에 이와같은 문제가 있었고 사랑이 중요함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영적인 은사를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우리는 바로 하늘로 가지 않고 이땅에 남아 살아갑니다 왜일까요?

 

주님께서 영적인 은사를 사용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은사를 교회에 사용해야 합니다.
영적인 은사는 사랑으로 해야합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무엇을 해도 무의미한 것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을 말하겠습니다.

 

1.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을' 말하지 않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5:25, 개역한글)
- 여기서는 부부간의 사랑을 말합니다. 이때의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부의 사랑은 에로스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한 사랑을 합니다. 
성경은 어떤경우에서도 남녀간의 사랑을 말한적이 없습니다.

 

2. 성경은 어떤경우도 사랑을 감정과 연결시켜서 사용한적이 없습니다.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5:43-44, 개역한글)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5:48,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것은 감정이 좋이지라는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너무 좋아 그사람과 교감이 있어 그사람에게 무엇을 해주는것을 성경에서 사랑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감정적이라기보다 의지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수 되었을때에 그 아들을 보내사 대속물로 무셔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아담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변했나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쫒아내셨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아담을 사랑하셨습니다

 

3. 모든 것을 용납하는것을 성경은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인의 자리에 섰을때,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을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사랑에 대해서 분명하게 그 사랑을 정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지 않는 사람을 사랑압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제 다시 고린도전서 13장으로 가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13:1, 개역한글)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찌라도>
이는 사도바울이 직저 한다는것이 아닌 가정형으로 ~할찌라도 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하는것은 방언은 항상 외국어 입니다. 영어나 외국어를 잘하고 싶다면 공부해야 합니다.
영어를 배운적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셔서 갑자기 외국어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방언입니다.

 

배우지 않았는데도 언어를 해버리면 사람들이 놀라는 것입니다.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행2:5-11, 개역한글)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벨론 포로가 된 ㅣㅇ후에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아 있지만 역사적으로 헬라제국 등이 들어서며 이스라엘은 나라를 이루지 못하고 흩어져 삽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드는백성들은 일년에 3차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경배합니다.
외국에서 사는 이스라엘은 사는곳의 언어와 헬라어 두개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모두 성전에 모였을때

 

그리스도인들이 방언, 외국어를 말합니다. 그들은 갈릴리 지역사람들이었습니다. 갈릴리는 그들에게로 치면 변망의 사람들이 외국어를 하는것입니다.
그 방언의 내용은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사28:11, 개역한글)

 

이사야는 남유다의 선지자 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합니다.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 당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합니다. 그들을 책방하는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은 백성은 모국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자기나라 말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책망하십니다.
"너희들이 모국어로 해도 듣지 않았으므로 외국어로 책망을 들을것이다"

 

유다가 바벨론에게 끌려갈땐 바벨론 언어로 그들이 말하는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방언이란,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이야기할때 하나님을 어떤언어로 말해야 하겠습니까? 히브리어로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사람들에게 외국어로 말하게 하셨습니다. 왜인가요?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중에 믿는자가 있으나 교회는 주로 외국인으로 채워지게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은 하나님께서 이스레을을 징계한 표적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항상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사도바울이 수십개의 외국어를 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외국어를 할줄알면 서로 교제할수 있습니다.
미래 언젠가는 언어의 장벽이 무너지는 날이 올것입니다. 무든 열방이 주님을 한목소리로 찬양하는 날이 올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언어가 다릅니다. 그래서 외국어를 통역할지라도 사랑으로 하지않으면 이는 울리는 꽹과리와 같습니다.

 

천사의 언어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는 천사의 언어에 대해서 정확히 지목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가끔 천사들이 말합니다. 주님의 탄생시와, 주님의 무덤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의 언어로 말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천사의 언어'는 천사들의 언어가 있다 할지라도 하는 가정형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8:26, 개역한글)

 

성령하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게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할수 없는' 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수 없는 입니다.
곧, 이땅의 언어가 아닌 하늘의 언어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것이 있다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제 예언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예언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ㅡㅈㅇ거하는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이 이해할수 있도록 지금상황에 맞게 밝혀주는것이 '예언'입니다.
인생의 사건들을 하나님의 관전에서 설명해주는것이 '예언'입니다.

 

혹은 복음서에 나타난 우리주님을 생생하게 우리에게 제시해 주는것이 에언입니다.
혹은 서신서에 나와있는 구체적은 진리들을 적용시킬수 있도록 알려주는것이 예언입니다.
그럼에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노래를 지어 가로되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민24:15, 개역한글)

 

<눈을 감았던자>=>이는 눈을 뜬자로 해석할수 있습니다.
과거에 눈을 가망ㅆ지만 이제 뜨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 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민24:17, 개역한글)

 

발람이 메시야를 봅니다. 이는 주님이 오시기 수천년전입니다.
한왕이 이스라엘에서 나올것입니다. 이는 놀라운 예언입니다. 그는 비밀을 압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봅니다.
그런데 그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민25:1, 개역한글)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죄케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민31:16, 개역한글)

 

발람은 예수그리스도를 봅니다. 그에게는 예언의 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꾀를 내어 이스라엘을 범죄케 합니다.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이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민31:8, 개역한글)

 

그는 이스라엘에 의해서 사살당합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영광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오실 메시아를 봤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사랑치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적용하겠습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지역모임내에서 말씀으로 섬깁니다.
성경읽기 시간에 성경을 읽기도 하고 복음을 전하기도 하고 말씀시간에 말씀을 전하기도 합니다.
물론 전심사역하는 형제님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말씀을 증거할때 중요한것은 말씀을 듣는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어떤분은 성도를 사랑하지만 진리가 없고 어떤분은 진리를 말하지만 성도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불균형이 있을수 있습니다. 이것은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지리를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4:15, 개역한글)

 

<사랑안에서 참된 생활을 하여>
-영어번역으로 진리를 사랑으로 행하다 라는 뜻입니다.

 

발람의 경우 그가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게 해를 끼칩니다. 
좋은은사를 가질수록 상대방에 해를 끼칠수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13:1, 개역한글)

 

말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요. 우리는 말을 통해서 어떤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그 인생을 변화시킬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을 잘하는 사람은 얼마 없습니다. 말을 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말이란 인간이 가진 고급한 능력이고 위대한 것입니다. 말로써 위대한 것을 해낼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사람이 이땅위에 있는 모든 인간의 언어를 통달한다고 보겠습니다. 그것은 괭장한 능력입니다.
그러나 그런사람이 설사 하늘의 언어를 할수 있다해도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것입니다.

 

그것은 예언을 제시한다 할찌라도 입니다.
그리고 비밀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성경에서 비밀은 항상 감취어둔것을 말합니다.
구약에서는 교회가 비밀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나타내 주지 않았기 대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인물들은 교회를 알지 못했습니다. 침례요한은 주님을 밝히고 감옥에 갖혔을때 "오실이가 당신이니오니까"하고 뭍습니다. 침례요한은 구속자와 지배자를 구분하지 못한것입니다.

 

비밀에는 교회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리고 불법의 비밀이있습니다. 
사단은 복음을 변절시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기에게 경배하게 합니다. 이것이 푀고의 불법입니다.
하지만 이와같은것은 하나님께서 감추어 두셨기 때문에 우리는 모릅니다. 비밀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비밀을 알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산을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17:20, 개역한글)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지 고산을 옮깁니다. 이도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산을 옮길수 있는 믿음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살피면 이와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제자중 세명을 데리고 변화산으로 가셔서 변화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시지만 그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산밑에 있는 제자들에게 귀신들린 아들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가 와서 귀신을 쫒아내줄것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쫒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게서 오셨고 아들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할수 있거든" 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주님께서 "할수 있거든이 무엇이냐, 믿는자에게는 능치못할일이 없느니라"라고 하십니다. 그후 나온 이야기 입니다.

 

19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17:19-20, 개역한글)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9:28-29, 개역한글)

 

두가지는 같은사건이 있은후 기술한 내용입니다. 주님은 믿음과 기도가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게 귀신을 쫒아내는 능력을 부여 받았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귀신을 좆아낸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에수님께서는 믿음과 기도를 지적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나온 산을옮길만한 믿음은 기도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런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13:3, 개역한글)

 

어떤사람이 전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구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몸을 불사른다는것은 순교하는것입니다. 예를들면 다니엘의 세친구들입니다. 그들은 기꺼이 불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지금도 이슬람쪽에서는 자살테러가 있습니다.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자기몸을 버리면서까지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1절을 보면 사랑이 없으면 그는 가치있는것을 만들지 못합니다.
2.절을 보면 사랑이 없으면 그는 무가지 한 사랍니다.
3.절을 보면 사랑이 없으면 그는 가치있는 상을 받을수 없습니다.

 

구제에 대해서 한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제의 사람,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있었습니다. 그는 밭을팔아 드렸습니다. 일부를 감추었습니다.
그는 왜 죽었나요? 그는 사랑으로 한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헌금했기 대문에 죽은것입니다. 사랑이 얼마나 핵심적인 요소인지 성경이말하고 있습니다.

 

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렘1:5-6,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예러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십니다. 그는 예언하는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 사역을 감당할수 없다고 말하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찌니라 (렘1:7, 개역한글)

 

주님께서는 누구에게 가라고 하든지 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무슨말을 명령하든지 너는 그대로 하라고 하십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렘1:10, 개역한글)

 

말씀사역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말합니다.
예레미야가 말씀을 전할것입니다. 그 말씀을 받느냐 안받느냐에 따라가 나라가 망하고 흥합니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이 그러합니다. 이스라엘의 흥망은 예레미야의 사역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려 있습니다.

 

17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두렵건대 내가 너로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게 할까 하노라
18 보라 내가 오늘날 너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19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1:17-19, 개역한글)

 

반대를 두려워 하면 안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 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 네가 나팔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렘4:19, 개역한글)

 

저희들이 예레미야를 읽으면서 반복적으로 알게되는것은 예레미야는 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때 그 말씀이 게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느냐는 1.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2. 울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사람을 생각하고 슬퍼해야 합니다.

 

18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
19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 왕이 그 중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르시기를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케 하였는고 하시니
20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렘8:18-20, 개역한글)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벨론 포로를 예언합니다. 그리고 바벨론에게 항복할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하면서 웁니다. 그러면서는 그는 정확하게 진리를 전합니다.

 

이스라엘이 우리가운데 하나님이 게시지 않는가? 라고 하자 예레미아냐는 하나님이 너희가운데 없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행20:19,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19절에서 눈물을 말합니다. 그는 에베소를 사랑하여 강력하게 복음을 전하면서 그의 마음은 울고 있었습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행20:20,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울면서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해야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사랑이 있어야 이 강력한 전도가 먹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해야 하며 강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그의 영적인 생활은 웁니다.

 

에베소 교회는 첫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촛대가 옮겨 졌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그는 하나님앞에서 산것이 아닙니다. 그가 아무리 위대한 이릉ㄹ해도 그는 무의미 합니다.
교회에 사랑이 없다면 그 교회는 사라질것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5:16, 개역한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5:22, 개역한글)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

 

사랑을 좇아 행하면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성령을 좆아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안에 있는 성령께서 우리가 세상에서 일하게 하는 근원이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좆아 행해야 하는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것이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사람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성경이 말하는 사랑을 이루는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여구가 인간이 이룰수 없는 수준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두번째, 사단이 우리를 강력히 공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늘 우리를 방해합니다. 그것을 이길수 있는분은 성령닙뿐입니다.

 

< 설령을 따라 행하라>
이 동사의 시제는 게속적인것인것입니다. 매일매일 우리는 성령님게 모든것을 맡겨야 합니다.
오늘하루 저를 주장해 주시기바랍니다. 오늘하루 일가운데 저를 깨워주시길 원합니다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도와 연습을 매일매일 해야 합니다.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엡5:18-21, 개역한글)

 

성령충만의 결과는 세가지가 나옵니다.
1.기뻐합니다.  2.감사합니다    3. 순종합니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골3:16-18, 개역한글)

 

여기도 세가지가 나옵니다. 16절은 기쁨이 나옵니다. 17절 감사함이 나옵니다. 18절 순종이 나옵니다.
에베소서 5장과 똑같은 구절입니다.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야기 합니다.,

 

성령충만은 말씀충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마음을 지배하고, 내머리를 지배해야 합니다.
하나님말씀에 대한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그 첫번째 열매가 사랑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린느 구원받은 성도로써 하나님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땅에 남기시고 우리에게 기대하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것입니다. 그래서 주신것이 은사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말합니다. 그 은사를 사랑으로 사용해야 한다. 사랑으로 하지않을때 그 은사는 무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랑으로 핼할까요?

 

성령으로 충만할때입니다. 성령으로 어떻게 충만한가요 말씀으로 충만할때입니다.
우리는 매일아침 일어나 제일먼저 주님을께 기도하고 말씀을 봐야 합니다.

 

어떤일이 일어날때 말슴을 묵상하고 물씀에 순종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을 위하여 싸울때 우리는 영적인 삶을 살수 있습니다.
이와같은 일이 이루어져 지역모임을 세울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