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0일 월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고린도전서 강해 <23>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2:4-7, 개역한글)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전12:11, 개역한글)
이시간에는 고린도전서 12장 4-7절까지로 은사의 5가지 틍징에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은사는 성령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일가요?
성령님은 믿지 않는사람들에게 역사하십니다. 그들의 마음을 두드려 하나님의 역사를, 주 예수님을 믿도록 역사하십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16:8, 개역한글)
책망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세상사람으로 하여금 자기가 죄인임을 확신하고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감동하셔야만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모든죄는 해결되어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믿지 않는 죄입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16:9, 개역한글)
주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볼수 없으나, 주님께서 하신일을 깨닳을수 있습니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16:10, 개역한글)
세상은 예수님을 죽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승리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승리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사단이 십자가에서 재판받았고 더이상 사단은 사람의 죄에 대해서 주장할수 없습니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요16:11, 개역한글)
두번째, 성령님은 믿는성도가운데 역사하십니다.
먼저 개인에게 두번째로 교회에게 역사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요3:3, 개역한글)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3:5, 개역한글)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 있는것은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3:18, 개역한글)
주의 영은 성령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영광스럽게 변화시키십니다. 최종 목적이 주님을 닮게 하는 것입니다.
이일을 성령님께서 하십니다.
그 방법은 말씀을 통해 말씀속에 나타난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하십니다.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님의 영광을 보고 주님을 닮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먼저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십니다.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요일4:13, 개역한글)
우리가 주님안에 있고 우리안에 주님이 계신것을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주셨습니다.
5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4:5-6, 개역한글)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 아빠라고 부를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이 무서운 분이었고 하나님과 내뜻이 달랐으나 이제는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이것을 성령께서 하십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고후3:17, 개역한글)
성령이 계시면 우리에게 자유함이 있습니다.
1.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앞에서 인정받으려 하는것에서 자유해집니다.
2. 죄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이제는 죄를 거절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수 있습니다. 참다운 자유가 주어집니다.
이 외에도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교회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성령은한 개인에게 있으실뿐 아니라 교회가운데 게셔서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중 하나가 예배가운데 예배를 인도하십니다.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계4:2, 개역한글)
.. 보좌에 앉으신 모양이..(11절)
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4:10-11, 개역한글)
사도요한은 이장면을 성령의 감동하심을 얻어 봅니다.
우리가 성령에 감동하게 되면 주님앞에 엎드려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성령께서 한성도를 감동하게 하시면 기도하고 말씀을 일고 찬송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다른성도를 감동케 하시고, 또 다른성도를 감동케 하십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이 예배를 주장하십니다.
성령께서는 교회의 예배를 인도하십니다.
두번째, 성령께서는 교회에서 성도들 사이의 교제를 인도하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 (고후13:13, 개역한글)
성령의 교통하심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성도들이 함께 교제하는 것을 성령께서 인도하십니다.
성도의 가르침을 받아 교제하며, 떡을떼고 기도했습니다.
성령은 교회가운데서 예배를 인도하시고 교제를 인도하십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행13:2, 개역한글)
세번재, 성령께서는 안디옥 교회에 인도자들을 세우고 인도하십니다.
성령께서 바울과 바나바를 세우사 전도여행을 가게 하십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4:3, 개역한글)
네번째, 성령은 하나되게 하십니다.
하나됨은 성령이 만드십니다. 사람의 집회를 저희는 반대합니다.
세상중에 wcc라고 모든 종교를 하나되게 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복음을 전하는 교파와, 천주교와, 일반교파들이 섞여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되자고 하십니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외적으로 하나된 모습을 보입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사람들은 분열시키는 작업을 중단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어떻게 하나되게 하시나요? 구원받은 성도들은 다 다릅니다. 이런 이들을 하나되게 성령은 하십니다. 그것이 성령의 은사입니다.
각 성도들이 자기의 은사를 바른방법으로 사용할때 하나됨이 나타납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고전12:1,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무지에 대해서 깜짝 놀랍니다.
고린도교회는 다양한 은사가 조화롭게 사용되어 아름다움과 주님의 영광을 세상에 보이는 대신 그들가운데 실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8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전12:8-10, 개역한글)
은사를 주님께서 다 나누어 주셨는데 그 은사는 합당하게 사용되지 못했습니다.
분열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쓰지 않을때 일어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성령의 원리를 좆아 사용하고 있어야 하며, 방해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에 일치가 생깁니다.
고린도교회는 이와같은 다양한 은사가 있음에도 실패했습니다.
그들이 육신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말로 그들에게는 자존심이 있었습니다.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찌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찌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고전12:15-16, 개역한글)
고린도교회는 이 은사를 육신적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은사를 인간적인 관점에서 평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부분에서 일치되도록 은사를 나눠주셨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서 못난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 사용하지 않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은사를 거부했습니다.
'이것 해봐야 나에게 유익이 없다'
그들은 인간적인 자존심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그들은 신비종교의 역사를 교회에 들여왔습니다.
뭔가 신비한 것을 즐겨하고 그것을 교회에서 행했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고전12:4, 개역한글)
은사를 헬라어로 바꾸면 '카리스마'입니다.
은사를 사용하면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끕니다.
은사라고 하는 이 단어는 항상 '은혜'라는 단어로 바꿔 번역할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은사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은사는 거저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은혜는 받을수 없는 자격이 없는데, 거저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만한 일을 한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저 주신것입니다.
받을만한 자격이 없으나 예수님의 희생으로 거저 얻은 것입니다.
우리가 은사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습니까.
우리는 주님십자가로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것입니다.
이같은 사람이 해야하는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15:10, 개역한글)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고전15:9,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사도입니다. 그는 은혜로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사도바울이 될만한 영광스러운 일을 한적이 없습니다.
행위로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가 어떻게 사도가 되었습니까. 은혜로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항상 겸손합니다.
은사가진사람의 첫번째 특징은 항상 겸손합니다.
어떤 말씀전하는 은사를 가진분이 있다면, 그가 훌륭해서 은사를 가진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거저 주셨기 때문에 그 은사를 받은것입니다.
은혜받은 사람의 두번째 특징은 책임감이 강한것입니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고전12:5, 개역한글)
직임이라고 하는 표현은 헬라어 원어로 '디아코노스'입니다.
곧, 집사라는 뜻입니다. 다시말하면 종입니다.
곧, 직임을 섬김, 혹은 봉사라고 번역하는것이 옳습니다.
종의 자리에서 봉사하고 섬기고 희생하는것이 은사입니다. 이것이 옳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4:10, 개역한글)
은사를 주신이유는 그 은사를 가지고 다른 지체를 세우는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세우는것은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은사를 주신 이유는 그것을 사용하여 다른사람이 높아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후서에 가서는 통역없이 방언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고전12:6, 개역한글)
역사는 에너지라는 뜻입니다.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힘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은사를 사용할때 하나님께서 힘주지 않으시면, 하나님게서 돕지 않으시면 그 은사를 사용할수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돕거나, 복음상담을 할때 주님께서 도우십니다.
만일 개인상담을 할때 상담하는 사람은 막막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전도를 할때 내 실력으로는 할수 없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로인해 구원받는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주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만 감당할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 (행14:19, 개역한글)
사도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 있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죽노라 합니다.
그날 아침에 일어나면 사도바울은 그날 죽을수도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을 죽이려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사람이 40인이 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돌에 맞았고 죽은것 같았으나 살아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살게 하신것입니다. 다시 그로하여금 성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할 힘과 마음을 주셨습니다.
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고후2:12-13, 개역한글)
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6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고후7:5-6,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디도를 고린도교회로 보냅니다. 디도는 아주 중대한 임무를 가지고 고린도교회를 방문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사도바울의 사도권을 주장하며, 사도바우르이 사도권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징계를 요구합니다. 이 편지를 디도가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이 디도를 드로아에서 만납니다. 만일 고린도 교회가 불순종 하면 고린도 교회와는 더이상 교제할수 없습니다.
드로아에 왔는데 디도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면 될것입니다.
더욱이 드로아에서 복으므이 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마음이 편치않아 디도를 만나러 마게도냐로 갑니다.
사도바울의 심정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겠다 합니다. 왜인가요?
고린도교회의 태도와, 걱정과 염려로 그 마음을 감당할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디도를 보내사 위로하시고 그 은사를 다시 쓰게 하십니다.
사도바울은 그래서 말합니다. "나는 그때 포기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시 내게 힘주시고 내게 할수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딤후4:10, 개역한글)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딤후4:16, 개역한글)
데마는 사도바울의 훌륭한 동역자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입어 함께 한마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마음을 바꿔 데살로니가로 가버렸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여 떠났습니다.
데마만 떠난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다 나를 버렸다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혼자 남은 것입니다.
이세상에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나혼자뿐이라도 주님을 섬기시겠습니까.
당연히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다른 모든사람들은 세상에 비난받지 않고 적당히 살고 있습니다. 혼자만 남아 주님을 신실히 섬길수 있나요.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딤후4:17, 개역한글)
이때 주님께서 홀로 남은 바울에게 오셔서 위로하시며 강건케 하십니다.
은사의 세번째 특징이 이것입니다. 은사는 하나님의 힘으로만 작동합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2:7, 개역한글)
네번째, <각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은> 나타남이란 공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은사는 반드시 모임의 공동유익을 위해서 공동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은사는 개인으로, 자기와 친한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전12:11, 개역한글)
다섯번째, 그은사를 받은 사람은 세상에서 유일무이하게 독특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십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셀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사람도 똑같은 은사를 받은사람이 없습니다.
어떤사람에게는 이은사와 저은사가 배합되어서 주시고, 또다른사람에는 다름 저은사와 그은사를 배합해서 주십니다.
다른사람이 대체할수 없는 은사를 배합해서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게는 은사가 있으나 너는 은사가 없지 않느냐 라고 할수 없습니다.
모든사람이 하나님앞에서 독특한 은사를 받고 있습니다.
1. 은사는 은혜로 주어짐으로 자랑할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2. 은사는 반드시 자기를 세우지 않고 다른사람을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3. 은사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야만 사용됩니다.
4. 은사는 교회를 위해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5. 은사는 유일무이 합니다. 서로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작은 성도라도 존귀히 여길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성령이 주신 은사에 대해 가르친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은사를 합당하게 사용하여 교회를 세우고 주님처럼 변화되는 은사사용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인도해 주실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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