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한봉래 형제님(요약)

고린도전서 강해 14

박이레 2022. 7. 12. 10:44

2015년 6월 5일 금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고린도전서 강해 <14>


고린도전서 8장 1-3절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고린도전서 구조를 살펴보면 고린도전서는 7장에서부터 12장 끝에 이르기까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사도바울에게 질문하고 사도바울이 대답합니다.


예를 들어서 한번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1절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 결혼에 관한 질문을 사도바울이 대답합니다.


고린도전서 8장 1절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대하여는' 는 질문에 대답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절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11장에서는 너울과 만찬예배에 대한 대답을 합니다.
예를들면 34절의 < 그남은것은 내가 언제든지 갈때에 규정하리라> 라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절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여기서도 신령한것에 대하여, 은사에 대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고린도전서 8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우상의 제물에 관한 대답을 8-10장에 걸쳐 사도바울은 대답합니다.


8장은 우상제물에 관한 원칙을 말합니다. 9장은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10장은 적용을 다룹니다.


다시하나 고린도전서 8장을 나가기전에 한가지를 전제해보겠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명백하게 명령하신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해야하는것이 있습니다.


십계명을 봐도,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부모를 공경하라" 라고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살인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말라"는 하지말아야 할 명령들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와서도 이와같은 명령들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성경은 분명하게 금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적극적으로 해야 할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될일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이 영역에 속한것을 다루지 않습니다.


우상의 제물에 관한 한 우리는 거의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원리를 끌어낼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의 원리에 성경에서 분명히 하라고 하고, 하지말라고 한것을 적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는 '회색지대'라고 물리웁니다.


이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서 달라질수밖에 없는 문화에 대해서 다룹니다.
이는 성경에서 명백하게 다루지 않은 부분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영화를 보는 것이나, 담배를 피는것, 술취하지 않고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음악을 듣는데 어떤 종류의 음악을 들어서는 곤란한가, 어떤 음악이든 들어도 상관없는가를 고민합니다.
또한 주일에 쇼핑을 해도 되는가, 자매님들이 어디까지 화장을 할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고민할것인가, 성경에서 말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회색지대'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다룰것인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당시에는 고린도교회는 그리스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가 쓰여질 당시의 고린도는 로마의 통치아래 있었습니다.
그리스는 다신교입니다. 더욱이 고린도의 수도 아테네는 사람의 수보다 신의 수가 더 많다고 알려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수많은 신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신전이 있었고 그곳에서 수많은 행사와 결혼식 등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럴때 그곳에 초대받은 그리스도인이 그곳에서 나온 음식을 먹을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보통 제사에 드린 고기는 시장에팝니다. 그래서 시장에는 그냥고기와 우상에게 드린 고기가 혼재되어 있었습니다.
이 고기를 먹을것인가 말것인가의 문제를 고린도전서에서는 다루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 1절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고린도전서의 8장의 내용을 보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의 질문의 뉘앙스를 보면 "우리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것을 지지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이렇게 판단한 것에대한 근거를 3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 1절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우리는 지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뒤져봤는데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4절에 나와있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 4절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우상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우스를 만들고 신전도 만들고 동상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우스는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제우스 신상은 돌맹이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고기를 먹을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26절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사도바울이 곳곳마다 전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것은 참 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사도바울의 가르침과 근거를 두고 고린도 교회는 우상의 제물을 먹을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번째 근거는 고린도전서 8장 8절에 나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 8절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족함이 없으리라


세번째 이유는 하나님은 먹는것에 관해서는 크게 상관하지 않으신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주장하는 근거 세가지를 살피면
1. 하나님께서는 명확하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2. 우상은 없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먹는것으로 뭐라 하지 않으십니다.


디모데전서 4장 3-4절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이 세가지 근거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다 반박합니다.


1. 지식이 있다
이에대한 사도 바울은 '지식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2. 우상의 제물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에대해서 사도바울은 우상의 제물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우상숭배하는것과 다르다고 합니다.


3. 식물은 상관이 없다.
식물은 상관이 없지만 식물을 먹는 사람의 다른형제와는 상관이 있다라고 합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자유롭게 먹는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논리를 피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식의 문제에 대해서 다루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명백하게 다루지 않았으므로 먹어도 된다라는 부분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저희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적용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특별히 교육열이 높습니다. 그래서 취직은 안될지언정 대부분 대학을 나왔습니다.
또한 모임에서도 웬만하면 성경을 잘 압니다.


그래서 그 지식을 근거로 어떤 결정들과 선택을 합니다.
그래서 그 지식에 맞지 않으면 평안해 아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지식의 문제점에서 네가지를 말합니다.
우리는 지식의 문제점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1.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할 가능성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고전8:1>

지식은 인간만이 할수 있는 고급스런 일입니다.
사람만이 생각할수 있고 경험을 축적할줄 압니다. 이것이 뛰어난 인간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 지식이 가지는 문제점은, 자기를 만족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할수있는 것을 못하는 사람을 무시합니다.
이것이 지식이 가질수 있는 함정입니다.


이사야 47장 10절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니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지혜와 지식은 이렇게 우리를 유혹합니다.
"나밖에는 없다" 지식은 커다란 자기만족을 주며 자부심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그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는 부작용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을 근거로 우상의 제물을 먹을수 있다고 말하는 고린도교회를 보고 사도바울은 "교문"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이것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지식은 필요한 것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그러나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식이 사랑을 동반하지 않으면 반드시 불순종하게 됩니다.


지식은 우상의 제물을 먹을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형제를 실족지 않기 위해서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 이것이 사도바울의 답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이 사랑을 동반하지 않으면 지식은 반드시 불순종으로 돌아갑니다.


2. 지식이 없는 사랑은 망하게 합니다.


< 내가 열심을 품었으나 지식을 좇지 않았다 >
사도바울은 주님을 만나기 전, 올바른 지식을 쫓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를 핍박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8장 2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지식의 기본은 모든 지식인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것은 < 우리는 모든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 > 이라는 거입니다.


유명한 철학자 중 소크라테스가 있습니다. 그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습니다.
이말을 쭉 풀면,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너는 네가 무식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라는 뜻입니다.


지식인들은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많은 무지를 압니다. 이것이 마땅히 알아야 할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9절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사도바울은 사랑장에서 "우리는 부분적으로 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것입니다.


욥기 38장 1-4절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욥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단이 욥의 의를 하나님 앞에서 고소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욥을 시험하는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욥은 연고없이 재앙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하나님앞에서 너의죄를 자복하는것이 마땅하지 않느냐고 말했을때 욥은 그것을 거부 합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과 함께 논쟁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와같은 욥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무지한 말로, 알지 못하는 말로 하나님의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네가 아니냐?


그리고 하나님은 욥에게 두가지 질문을 하십니다.
1. 네가 아느냐
2. 네가 할수 있느냐


이것이 욥기 38장부터 그 뒤로 나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갈때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는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지식으로 말합니다. "우상의 제물은 먹을수 있다" 그에대해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첫번째,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 네가 교만해 졌다


두번째, 마땅히 알것을 놓치고 있다.


그리고 세번째를 알아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 3절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구원은 출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고 하는것은 이제 새 생명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자라가고 배워가야 합니다.


이와같이 지식은 출발지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목적으로 가야 합니다.


미태복음에 보면 마태복음 7장에 이와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 주여 주여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쫒아내며 능력을 행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이사람들은 주님을 알고,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가지 봉사와 수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예수님께서 모르신다는것입니다.


중요한것은 하나님이 나를 아느냐 인 것입니다.


내가 아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알고 계셔야 합니다.


두번째,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자기 자녀로, 자기 백성으로 어떻게 아시죠?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를 봅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런 자격과 조건이 없을때 아무 대가없이 그 사랑을 얻은 우리가 그 사랑을 인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안다 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17-20절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70인에게 예수님은 귀신을 제어할수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70인은 예수님께 나아와 귀신이 쫒아 낸것을 감격스러워하며 보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귀신을 쫒아낸것은 사람이 한것이지만, 우리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한것,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아시고 우리에게 임무를 주시는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지식의 주체는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지금까지 세가지를 말했습니다.


1. 지식은 교만하게 합니다.
2. 마땅히 알아야 할것을 우리는 모릅니다.
3. 지식은 사랑으로 가야합니다.


네번째는, 4. 내가 아는것을 최고의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고자 하신 영적인 진리들은 사람이 자기 지혜로 절대로 알수 없습니다.
이는 성령만이 보이실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2장 12절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영적인 진리들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영적인 진리를 알게 하십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깨닳을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오묘한 진리들을 우리는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알게하셔야만 압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비밀'이라고 합니다.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교회를 알지 못했습니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조차, 스스로 예언하면서 그 예언의 내용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알고 있는것이 최종적이고 완벽한 지식이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토록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가 우상의 제물을 먹을수 있다고 말할때 사도바울은 지식의 위험성에 대해서 말합니다.


1.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
2. 마땅히 알아야 할것을 모른다.
3. 지식은 출발이고 반드시 사랑과 동행해야 한다.
4. 지식의 출처는 하나님께서 보이신 것이므로 우리의 지식이 최종적일수 없다.


우리가 생각할때에 이와같은 것에서 주의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단의 유혹에 하와는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하여' 자기의 지식과 판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불순종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식을 근거로 불순종 할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도 그 지식을 근거로 불순종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자식을 주실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자신의 상황을 근거로(불가능한 상황) 생각지 않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고 기뻐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믿음의 원리를 따라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리아 산에 이삭을 번제로 드릴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 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위배되는 명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은자 가운데서 능히 살리실줄을 믿고 이삭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와같은 생각과 사고를 그리스도인은 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0장 5절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이와같은것이 아브라함에게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와같은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성경에서 명백하게 명하거나 금하지 않은 영역을 통과할수 있는 질문 7가지를 드리겠습니다.


1. 이와같은것이 반드시 나에게 필요한가?


히브리서 12장 1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경주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는 피해야 할것이 있습니다. 피해야 할것은 죄입니다.
그리고 죄가 아닌것이 있지만 무거운것이 있습니다. 마라톤을 할때 무거운 겨울코트를 입고 해도 반칙이 아니지만 코트를 입지 않습니다.
그렇게하면 지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속도를 늦추는 일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필요합니다.




2. 이것을 함으로써 내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유익이 있는가?


고린도전서 6장 12절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3. 주님께서 나와같은 상황에서 주님이라면 하셨을까?


요한일서 2장 6절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4. 그와같은 선택이 복음에 유익한가?


골로세서 4장 5절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5. 이와같은것이 다른성도나 교회에 유익을 줄수 있는가?


고린도전서 10장 23절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6.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는가?


고린도전서 10장 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7. 이와같은것이 다른사람이 본받을만한 행동인가?


로마서 14장 13절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이모든질문에 YES라고 할수 있으면 해도 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로또를 합니다.
로또는 필수적인 것인가요?
영적인 유익을 줍니까?
주님이라면 하셨을까요? ....더 진행할수 있습니까?


고린도교회의 첫번째 문제는 그들은 지식이 있다지만 충분한 지식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두번째 그들은 사랑이 있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않는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아니하리라 라고 대답합니다.


저희는 다 지식이 많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와같은 지식이 있을때 이와같은것을 유의해서 주님앞에 합당하게 세워져서 주님앞에서 칭찬받은 모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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