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한봉래 형제님(요약)

고린도전서 강해 12

박이레 2022. 7. 12. 10:41

2015년 5월 30일 토요일    고린도전서 강해 <12>


강사 : 한봉래 형제님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전6:1-11, 개역한글)




특별히 고린도전서는 한지역 모임에서 일어날수 있는 여러 사건들이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교회적으로 어떻게 주님앞에서 행동함이 합당한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은 특별히 형제가 형제를 송사하는 사건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있는 고린도 도시는 현재의 그리스입니다. 성경에서는 헬라라고 되어있으며 그리스의 중요한 도시중 하나 였습니다.


그당시에는 그리스를 로마가 통치하고 있었는데 로마는 그지역의 자치권을 그 지역에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성도들은 그 교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교회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수 있었습니다.
유대교의 유대 회당의 일을 회당에서 해결하는 법이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럼에도 성도들은 교회안에서 해결할수 있는 일을 로마법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들의 전문가적인 부분을 따지라면 교육적인 부분일 것입니다.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하는가는 한국인의 깊은 관심사입니다.
이와같이 고린도 사회의 전문가적인 기질이 드러나는것은 '변호사'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 사회는 소송이 흔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사도바울은 세가지 이유로 질책합니다.


첫번째 잘못은 교회가 어떠한 존재인지 잊고, 성도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존재인지 잊고 있습니다.
두번째 잘못은 구원받은 성도의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잊고 있습니다.
세번째 잘못은  구원이라는것이 세상과 얼마나 다른지를 잊고 있습니다.


그럼 하나하나 따져보겠습니다.


1-6절까지는 성도의 교회의 영광을 모르고 있는점을 비난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고전6:1, 개역한글)


구태여 = 감히 라고 영어성경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세상을 판단하는 존재(2절) 입니다.


하나님게서 교회를 얼마나 영광스러운 존재로 부르셨는지요.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계2:26-27, 개역한글)


이것은 교회에 주신 서신 입니다. 교회는 만국을 심판할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3:21, 개역한글)


주님께서 아버지의 하나님의 심판의 보좌에 앉으신 것처럼, 교회도 주님의 보좌에 앉게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보좌는 재판장의 좌석입니다. 만일 교회가 말씀에 순종하여 이길경우 이와같은 보좌에 앉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계20:4-6, 개역한글)


주님께서 공중재림으로 오시고, 그후에 지상재림을 하실때 천년동안 주님께서 다스리는 나라를 세우십니다.
그때에 교회는 주님의 신부로써 주님과 함께 천년간 이땅을 통치할것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이 세상사람들에게 가서 재판을 받겠다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세상을 심판할 우리가 세상에 가서 심판을 받는것이 말이 되느냐고 비난합니다.


우리는 어떤일을 볼때에 마지막날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세웠는가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고전6:3, 개역한글)


또한 우리는 천사를 판단할 것입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우리 주님에 대한 이와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잠깐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고>


주님께서 성육신 하신것을 히브리서 2장에서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영광스러운 존재가 천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천사를 판단하는 자리로 주셨습니다.
교회는 영적인 존재인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않는 천사들을 판단할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가 세상일을 판단치 못하겠습니까.


고린도교회의 행동은 성경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엡3:10, 개역한글)


정사와 권세는 천사를 가르킵니다.
교회를 보이지않는 천사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치십니다.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찌니라 (고전11:10, 개역한글)


자매들이 너울을 쓰는 두번째 이유가 천사들을 위하여 입니다.
창조질서 중 하나가 천사가 인간보다 더 높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하나님 앞에 모셔서는 존재 입니다.


마리아의 임신소식을 알려주는 존재또한 천사였습니다.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가 천사이지만 교회는 그 천사보다 영광스러운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돈문제와, 이해관계의 문제로 세상법정으로 가는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떠한 존재로 세우셨는지를 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고전6:4, 개역한글)


이 부분은 약간 문제가 됩니다만, 영어성경으로는 이와같이 되어 있습니다.
< 너희가 세상사건이 있을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성도에게 부탁해라 >
이는 이 문제를 세상으로 가져가느니 교회에서 가장 연약한 성도에게 맡기는게 낫다라는 뜻입니다.


고린도 사회에 두가지 종류의 모임이 있습니다.
첫째는 유대인의 회당입니다. 두번째는 바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바깥에 나가서 들쳐내고 흠잡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가 이와같은 일을 했습니다.


< 이와같은 범죄는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바라 >


인류는 오직 두가지로 나눌수 있습니다. 죄인이거나, 의인이거나.
그런데 의인인 우리가 죄인들 가운데 가서 판단을 받고 합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판단이 합리적으로 보일지라도 성도들은 영적인 시각으로 보며 판단해야 합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고전6:5,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를 부끄럽게 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곧, '부끄러운줄 알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와같은것을 못하면 부끄러운 것입니다.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13:34-35, 개역한글)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만이 사랑할줄 압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었다고 말할수 있는 근거는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죄인을 위하여 죽는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 가운데 이러한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형제를 소송했을때 사도바울은 '이것은 너희들의 신분과 모순되는 행동이라'라고 비난합니다.


7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고전6:7-8, 개역한글)


두번째 질책은 그리스도인의 본질과 어긋나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소송으로 이긴다 할지라도 진것이라고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23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26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32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18:23-35, 개역한글)


우리는 모두 일만달란트를 빚진 종입니다. 그러고서 백데나리온을 빚진 동관을 용서치 아니하면 모순되는 것입니다.
백데나리온은 100일 일하면 갚을수 있는 금액입니다. 일만달란트는 20만년 일해야만 갚을수 있는 금액입니다.
다시말하면 일만달란트는 절대로 갚을수 없는 돈입니다. 한나라의 국가예산급의 돈을 빚진 것입니다.
그 빚을 탕감받아놓고서 백데나리온 빚진사람을 용서하지 않는것은 말이되지 않습니다.


절대로 갚을수 없는 빚을탕감받은자가 형제의 빚을 용서치 않는것은 '그리스도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용서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5:38-42, 개역한글)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5:47-48, 개역한글)


주님은 산상수은에서 놀라운 요구를 하십니다. 세상법칙은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원수라 할찌라도 사랑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과 같아야 합니다.


< 만일 누군가 우리를 핍박하거든 축복하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라 >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밥이 되고, 네로황제의 정원에 불을 밝이는 원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원수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할수 있는 이유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셨습니다. 또한 구원은 나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은 전적인 은혜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경쟁하거나, 이기고자하거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자가 아닙니다.
기거이 양보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챙기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챙기는것을 성경에서는 '고아'라고 하며 '불신자'라고 합니다.
우리를 챙기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바로 나를 위해서 사용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만이 양보할수 있으며 기꺼히 짐을 질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작은자에게 물 한그릇 준것을 잊지않을 것입니다.
또한 이 작은자에게 행하지 않은것을 주님께 행하지 않은것으로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용서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최종적인 심판자이심을 아는 자입니다.
공의로운 하나님을 믿기에 담대하며 용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법의 원리는 이렇습니다.
법은 어떤사람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보호해 줍니다.
그리고 법을 이용해서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방어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이와같지 않습니다.
주님은 하늘영광을 버리시고 사람의 몸이 되셨습니다.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시고 피곤하시고, 배고프시며, 가난하셔야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잔을 마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과 세상의 법은 반대됩니다.


형제를 소송한다고 하는것은 교회를 부르신 영광스러운 목적과 맞지 않습니다.
또한 교회를 부르신 본질적인 목적과 맞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세상과 완전히 구분됩니다.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6:9-10, 개역한글)


우리는 다 이와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그 속의 내용이 달라지고 목표가 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에서 소송을 한다면 구원이 우리 자신을 변화시킨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개역한글)


구원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 구원은 새로운 것이며, 세상과 다른 것이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 (갈6:15, 개역한글)


새로지으심을 받은자, 곧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뿐 할례는 상관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2:10, 개역한글)


여기에서는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훌륭한 예술가이며 놀라운기술가이십니까.


우리는 세상과 다른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구원받아 새롭게 변화된 새로운 사람입니다.
소송은 고린도 사람들이 늘상 했던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하는대로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고전6:9, 개역한글)


소송은 지옥에 떨어질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다. 그런데 너희가 이렇게 하느냐, 라고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구원은 다른것입니다.


고린도전서가 쓰여진 시대는 시대적으로 삼국시대입니다. 아주오래전 일인데도 불구하고 고린도전서를 읽은 꼭 지금시대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패하고 타락하였습니다.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6:10, 개역한글)


이와같은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우리는 나온자입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전6:11, 개역한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3:5, 개역한글)


씻음은 거듭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우리는 의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이는 우리의 행위가 아닌 예수님의 피를 보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의인으로 보십니다.
거룩함은, 신분뿐만 아니라 상태적으로도 의로워질수 있습니다.


우리는 새 생명을 얻고, 새로운 신분을 가지며, 새로운 능력을 가진 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옛날로 돌아갈수 없습니다. 옛 성품을 따라 되돌아갈수 없습니다.


~이름으로 라는것은 그 사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는 주예수님의 속죄를 말합니다.
성령은 또한 이 사실을 우리에게 내것으로 적용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받아들였을때 영원한 확신과 기쁨으로 인을 쳐주신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을 행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성도를 송사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나 하는 것입니다.


만일 성도를 송사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놓치고 있으며, 세상과 다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용서에 대해서 말해 보겠습니다.


한국에는 여러지역모임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오랜시간이 흐르자 각 형제님들에대한 갈등이 쌓여 갑니다. 마치 신혼때에 마냥 좋다가도 신혼이 지나면 흠이 보이는것과 같습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4:32, 개역한글)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이 용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용서처럼 해야합니다.


주님은
1. 의도적으로 용서하셨습니다. 용서를 목적으로 하고 굳게 결심하고 하셨습니다.
- 우리또한 주님처럼 용서하기를 굳게 먹어야 합니다.
2. 용서하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주님 자신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 우리는 용서하기 위해서 그 대가를 치뤄내야 합니다.
3.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다.
4. 완벽한 용서를 하셨습니다
< 내가 너희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


이러한 일이 우리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일만달란트의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백데나리온 빚진자를 용서하지 못해서는 안됩니다.


모임간에 교제가 되지 않는것은 과거의 잘못은 지금까지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저희 모임가운데는 소송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통해 사도바울이 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의 내용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왕이며, 하나님의 자녀며,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이 신분에 어울리는 행동을 해야 하며, 그자리에 있을때 부끄러운 자여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때만 세상에 복음이 전파됩니다.
만일 모임가운데 구원받은 자가 적다면, 그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사랑을 보고 세상사람들이 매력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다릅니다. 삶의 원리가 다르며 인생의 내용과 목표가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반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삶의 원리가 우리가운데 행해져서 영광스러운 주님을 세상에 드러낼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