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31일 화요일
강사 :한봉래 형제님
<마가복음 2_ 왜 무서워 하느냐>
35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막4:35-41, 개역한글)
예수님의 질문이 두가지 있습니다. <왜 무서워 하느냐> <너희가 왜(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여러분이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왜 무서워 했습니까? 죽음을 두려워 했습니까? 그럼,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인데 구원받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것이 옳습니까?
38절에 제자들이 주님을 깨우면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이 말을 오늘날로 풀이해 보면 우리는 죽게 생겼는데 주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죽게 생겼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상황을 하나님께서 돌보지 않는다고 여긴것입니다. 곧, 하나님이 내 상황에 무관심하다 여긴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기도를 했는데도 전혀 응답이 없습니다.
그럴때에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응답이 없으신 하나님이 하나님이 맞는가?' 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구원받은 후에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의문이 들때 어떻게 합니까?
정말 하나님이 계심을 어떻게 확신할수 있습니까?
제자들이 처한 상황은 자신들이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있고 주님이 돌보시지 않았다고 여긴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주님을 깨우면서 한 말은 약간의 원망조의 말이 섞여 있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왜 무서워 하느냐> <왜 믿음이 없느냐> 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이 질문을 제자들에게 적용하는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이 상황속에서 믿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란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은 날 돌보고 계신다고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은 날 돌보고 계신다"고 말하는것입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상황이 나빠지고 예수님께서 주무시고 계시니, 예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없는것입니다.
믿음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나의 판단과는 달리 그 배후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돌보고 계신다는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둠을 무서워하는 은주자매가 어둠속에 있으면서 그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기 위해 계신다고 말하는것입니다.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막4:35, 개역한글)
<그날 저물때에>
그날은 언제입니까?
그날은 예수님께서 바닷가에서 씨뿌리는 비유를 가르치신 때입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에서는 13장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3장부터 예수님은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고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비밀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태복음 12장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마12:24, 개역한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마12:31, 개역한글)
마태복음 12장에서 굉장한 충돌이 일어납니다. 바리세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귀신의 가르침이라 말하고 예수님은 성령을 훼방하는것은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 후부터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날>
이것은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가르치실때 훼방을 받으면서도 가르치신, 그날입니다.
왜 주님은 가르치시다가 가르침을 중단하시고 가셨을까요?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막4:36, 개역한글)
<배에 계신 그대로> 이는 예수님께서 배에서 무리에게 가르치셨음을 뜻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루종일 배안에 계셨습니다.
밝을때는 계속 가르치시다가, 저녁이 되자 주님께서는 계속 배에 계신 그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왜 계속 가르치시지 않고 떠나셨을까요?
첫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그 다음은 (우리도) 사는것이 중요합니다.
계속적으로 지식을 쌓는것이 중요하지 않고 주님이 계신대로 사는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알고 있습니다. 주님에 대해서 너무많이 압니다. 그리고 아는대로 살지않고 머리만 커져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대중을 가르치시고 한가한 곳으로 가시는 이유는, 제자들고만 따로 시간을 보내시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이 말씀을 보건데 예수님께서 계시던 배가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으로 예상합니다.
소수가 타고 다른 제자들도 그 배에 탑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12명입니다. 그 중에 어부가 몇명입니까?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요21:3, 개역한글)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요21:2, 개역한글)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세베대의 아들들(야고보, 요한), 이름이 나오지 않은 두 제자 합하여 7명입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막4:37, 개역한글)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막4:38, 개역한글)
<고물>이 무엇입니까? 고물은 배의 뒷편입니다.
예수님께서 배의 뒷편에서 주무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제자들은 <우리의 죽게 된것을>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40절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막4:40, 개역한글)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 하느냐> 이것은 왜 무서워 하느냐 입니다.
이 말씀은 죽을 지경일때에 나오는 말씀입니까? 제자들의 말과 달리 이일은 죽을지경까지 간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매일 고기를 잡던 사람들입니다.
그날도 물이 배에 가득 찰 정도이니 매우 심한 상황이지만 그러나 이 사람들이 이와같은 심한 상황에 처음 직면했을까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상황들은 그들이 경험했던 악한 상황중 하나 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왜이렇게 무서워 하느냐 라고 하신것입니다. 이것은 당장 죽게된 것이 아니지 않느냐 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뭐 하나만 잘못되도 죽을것으로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직장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거 하나만 가지고 굶어 죽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혹은 남들보다 1-2년 결혼을 늦게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 평생 노처녀가 될것이라고 생각힙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까지 무서워 하느냐>
사람들은 자기가 처한 상황이 매우 심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 안들어온 사람은 모른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니라고 하신것입니다.
두번째,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배에 물이 들어와 죽게 되었다는것이 아니고 그와같은 상황속에서 주님이 돌보시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믿음이 없느냐>
상황에 대해서 겁을 먹고 '하나님이 돌보지 않는다'라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들은 왜 주님을 따랐을까요?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막1:27, 개역한글)
1. 예수님의 가르침이 하나님으로부터 온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께서 능력을 행하심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에게 명령하니 순종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귀신이 무엇입니까? 사단을 따르는 천사들 중 하나가 성경에서 말하는 귀신입니다.
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의 일로 예수께 여짜온대
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막1:30-31, 개역한글)
두번째, 예수님은 병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을 행하실때 먼저 귀신을 쫓아내시고 또 병을 고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것을 두 눈으로 본 자들입니다.
그럼 귀신을 쫒아내시고 병에게 명령하신 분이 자연에게 명령할수 없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귀신과 병에게 명령하실수 있다는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권위있는 말씀을 전하시고 하나님만이 하실수 있는 능력을 행하시는것을 본 제자들은 주님을 따를때에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여기고 따른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막1:1, 개역한글)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따른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에게도 예수님께서 명령하실수 있다고 믿는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왜 믿음이 없느냐>라고 질문하신것입니다.
앞의것 두개를 믿고 지금의 것을 믿지 않는 것이 말이 되느냐 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때에 믿은것이 무엇입니까? 내 죄가 다 용서된 것을 믿었습니다.
내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이 나의 직장문제를 해결해주지 않겠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8:32, 개역한글)
예수님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어떤것을 아끼시겠습니까?
다시 보시겠습니다. 우리의 믿음입니다.
내 죄를 없애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까지 우리에게 내어주셨는데 무엇을 아까워 하시겠습니까?
만약 안주신다면 아까워서 주신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치 않거나 없어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안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태풍에서 제자들을 충분히 구원하실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제자들을 태풍 가운데 그렇게 고통스럽게 하셨을까요?
주님께서는 이 열두 제자를 사랑하시고 선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 배를 타고 같이 갔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태풍을 부르셨습니다. 주님의 허락없이는 이 태풍이 불수 없습니다.
그 태풍 때문에 배에 물이차고 어렵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이러한 상황을 허락하신 것일까요?
이것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고난은 믿음을 키울수 있는 하나님의 학교입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막4:39, 개역한글)
이 말씀은 자연의 법칙을 바꾸신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직후에 모든 자연이 그 순간 순종한 것입니다.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붙들고 계시고 또한 만물을 해체하실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기 위해서 이 물질로 된 세계를 없애 버리실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세계를 만드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실것입니다.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막4:41, 개역한글)
제자들은 처음에 무엇을 무서워 했습니까? 파도를 무서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파도를 잠잠케 하자 더 무서워 했습니다. 배 밖에 있는 파도가 무서운 것이 아니고 배안에 있는 예수님이 무서운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들이 하나님 앞에 와 있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눅5:8-9, 개역한글)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가 밤새 고기를 잡으려고 하였지만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깊은데로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던졌더니 그물이 찢어질만큼 고기가 잡힌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 베드로는 예수님이 사람이지만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신성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을때의 그다음 반응은 두려움 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 말의 뜻은 "저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있을수 없습니다. 저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 많은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예를들면 이사야가 그렇습니다. 이사야가 성전에 들어가서 보고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직접 본다면 우리의 반응은 항상 두려움입니다.
제자들이 이 경험을 통해서 주님을 파도보다 더 무서워 합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주님께 경외심을 더욱 가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면 알수록 우리가 주님을 더욱 무서워 해야 합니다. 주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것입니다.
<왜 이렇게 무서워 하느냐> 이 말씀은 왜이렇게 과장해서 무서워 하느냐, 이것이 처음이 아니지 않느냐 라는 것입니다.
<왜 믿음이 없느냐> 왜 아직까지 믿음이 생기지 않느냐 라고 질문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내가 두려워 하고 있는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이렇게 두려워 해야할 것인가?
그리고 내 믿음은 무엇인가? 내가 주님을 어떻게 믿어왔고 어떤 마음을 갖는것이 믿음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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