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1일 일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마태복음강해 20>
21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마5:21-26, 개역한글)
마태복음을 통해서 주님께서 왕으로 오셔서 주님이 세우시는 나라의 백성들의 특징과 그나라의 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12절까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백성들의 영적인 성품들을 말합니다.
그는 심령이 가난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애통하며 마음이 깨끗하고 의를 위하여 핍박받으며 기뻐합니다.
13-16절까지는 이와같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이세상에서는 어떻게 사는가를 말합니다.
그들은 빛과 소금으로 삽니다. 소금은 이세상의 부패를 막는것입니다.
부패를 막고 주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빛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17-20절까지 이와같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은 구약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과 어떠한 관계를 맺는가를 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히 여깁니다.
신약백성이 구약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달리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어떻게 이와같은 성품을 가질수 있을까요?
어떻게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을때입니다. 구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있을때 가능합니다.
<너희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보다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제 주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세인의 차이점을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번 이와같은 표현을 쓰십니다.
'옛사람의 말한 바' ,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 간음치 말라하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증서를 줄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
'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렇게 주님은 여섯가지의 예를 들어서 바리세인들과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차이를 말합니다.
왜냐하면 바리세인들은 하나님의 구약 말씀을 외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구약과 신약을 대조하고 있는것이 아닙니다.
구약에 대한 바리세인들의 이해와 구약에 대한 예수님의 이해를 대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살인에 대해서 살피겠습니다. 살인은 십계명에 나와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인하면 안됩니다. 사람을 죽인자는 사람을 죽인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형상을 죽인것입니다.
그래서 살인자는 죽어야 합니다.
또한 타락 이후의 인간의 최초의 범죄가 살인입니다(가인과 아벨)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8:44, 개역한글)
살인이라는것을 맨처음 그마음속에 만들고 시행시킨자가 바로 사단입니다.
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롬1:28-29, 개역한글)
죄의 목록중에 살인이 있습니다. 이 살인은 하나님이 마음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마음인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미 살인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살인사건이 드물고 있어도 화자가 되지 않았으나 요즘은 자주 일어납니다.
살인을 하면 살인범에 대해서 뉴스에서 보도합니다.
세상은 그 살인자를 보도하면서 그가 어릴적부터 얼마나 불행하게 살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그의 생애에서 환경적인 요소가 오늘날 이와같은 끔찍한 범죄를 일으킨 요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살인이 환경탓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살인이나 자살은 사단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한 마음속에 사단이 역사해서 일어나는 범죄입니다.
'살인치 말라' 는 하나님의 계명이 있습니다.
그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살인하지 않습니다. 바리세인은 그것을 근거로 자기가 의롭다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끔찍한 살인범죄가 일어납니다.
검찰에서는 공개수사를 하고 범인을 잡습니다. 그 후에는 현장검증이라는것을 합니다.
현장검증을 할때 많은 사람들이 나아와 지켜봅니다. 그것을 보면서 많은 시민들이 분노하며 이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는것을 방지할것을 이야기 합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만, 이일 중에 일어나는 문제는 '나는 저정도로 끔찍한 흉악범이 아니다. 나는 저런 죄를 짖지 않았다' 라고 여기며 분노하는 자세가 잘못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형제를 미워하는 너희가 살인자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실제로 살인을 저지른자와 형제를 미워하는 우리가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외적인 행위,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16:7, 개역한글)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을 평가하시는 분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에 드러난 생각을 평가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속으로 미련한 놈이라고 생각할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살인했다고 보시는것입니다.
다윗의 시를 살피겠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그의 남편 우리야를 죽이고 그 죄를 지적받았을때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시51:6, 개역한글)
다윗은 이제 두번다시 살인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속이 진실하기를 기도합니다. 내안의 속이 동기가 깨끗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바리세인들과 달라야합니다. 우리는 종교인과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도덕적인 사람과 달라야 합니다.
도덕적인 사람들 중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의와 우리의 의가 달라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는 그 속이 깨끗해야 하며 그 동기가 옳아야 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5:22, 개역한글)
바리세인은 살인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의롭다 여기고 있기 떄문에 그 자기 정당화를 주님께서는 공격하고 계십니다.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5:23-24, 개역한글)
또한 바리세인들은 제사를 드리는 문제나 의식에 있어서도 문제없이 행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인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사람은 그것을 느끼고 하나님께 그 죄를 아뢰고 짐승을 가지고 나아와서 하나님앞에 그 짐승을 예물로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물을 드릴때에 형제에게 원망들을만한것이 생각나거든 먼저 화목하라고 하십니다.
화목을 먼저 실천해야 하는것입니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사1:11-15, 개역한글)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너희들의 절기와 제사가 모두 싫다고 하십니다.
왜입니까?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사1:16-17, 개역한글)
그들이 동료 백성들과의 사이에서 악을 행하면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것을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 가운데, 또한 더 넘어가서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가운데 불화한 일이 있는데 그것을 해결하지 않고 예배만 드린다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내가 원망들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리는 그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외모를 받으실때는 그 중심이 제대로 표현될때만 받으십니다.
그리고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속에서 원망들을만한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마5:23, 개역한글)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마5:25, 개역한글)
송사하는 자는 누군가가 나에게 소송을 건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을때 우리는 먼저 해결하고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전것과 유사합니다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화목하고 공의롭지 않으면서 하나님 앞에 와서 예배만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는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세인들도 이렇게 했습니다.
우리는 서시관과 바리세인들보다 나아야 합니다.
우리모임의 가장 중점적인 것이 예배입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예배시간에 늦지않고 감사함으로 주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합당한 예배가 드려질까요?
우리가 형제들 가운데 있는 문제들을 합당하게 해결하고 와야만이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성령께서 합당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일을 즉시하라, 서둘러서 해야 합니다. 긴급하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이렇게 적용해 보겠습니다.
율법을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되고 그말씀을 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바리세인들은 문자적으로 이해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 의문은 죽이는것이요 살리는 것은 영이니 >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이해할때 문자적으로만 이해할 뿐 아니라 그것을 말씀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이 첫번째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지킬때에 겉에 쓰여진 하나님의 맗씀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으로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두번째, 부정적으로 무엇을 하지말라가 아니고 긍정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살인이라는 잘못된일을 안할뿐 아니라 형제와 화목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일을 해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겐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심령을 가져야 합니다.
세번째, 율법은 항상 그 내용 자체가 목적이라기 보다는 그것을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야 합니다.
바리세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자기가 영광을 받았습니다.
네번째, 사람을 정확하게 심판하실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속을 자세히 아시는분은 하나님밖에 없으니까요.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 하지말고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시인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마지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함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
이것은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궁극적인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렇게 될수 있겠습니까? 이에대한 질문은 로마서 3장 20절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3:20, 개역한글)
그러므로 다른의가 하나 있습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셨으며 죄를 범치 않으셨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3:21, 개역한글)
우리는 주님을 믿을때 우리는 의롭다함을 얻을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이를수 있는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겉을 보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내속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해 졌는가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십니다.
형식은 내용이 항상 갖춰져야 합니다. 내용이 갑춰지지 않은 형식은 위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받을때에 우리 마음에는 다 찔림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우리는 주님의 도움으로 해결해 내야 합니다.
먼저 형제와 화목하고 송사하는자와 화목하고 예배를 드릴때에 주님의 거룩과 영광이 제대로 표현되는 예배가 될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는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질문하십니다. 누가 살인자 입니까?
우리는 대답해야 합니다 "내가 살인자 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죄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고 우리죄를 모두 짊어지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사랑이 우리 가운데 계속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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