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한봉래 형제님(요약)

마태복음 강해 17

박이레 2022. 7. 10. 00:52

2016년 1월 30일 토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 마태복음 강해 18 >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마5:3-12, 개역한글)

그동안 여덟가지의 복중에서 7가지의 복을 다루었습니다. 이제 10-12절에 있는 마지막 8번째 복을 다루겠습니다.

주된 주제는 핍박을 받는자가 복되다는것입니다.
누가 핍박을 받겠습니까?
첫번째부터 일곱번째의 복을 누리는 사람이 핍박을 받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랍니다.
이것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연약한것입니다.
심령이 약해서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느니 내 주먹을 믿는다고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자는 하나님의 죄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여 슬퍼하는 자입니다.
온유한 자는 어떻습니까?
그는 겸손하여 자신을 낮추는 자입니다.

세상은 강하고 확신이 있는사람을 추천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사람을 하나님은 복되다 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은 의에 주린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긍휼히 여기는자, 다른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입니다. 세상은 긍휼히 여기는자를 못났다고 합니다.

마음이 청결한자, 세상은 부패되어 있습니다.
평안을 추구하는자, 세상은 경쟁합니다.

그래서 첫번째 복부터 일곱번째의 복을 따라 사는 사람이 핍박을 받습니다.

11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일과 어떠한 핍박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딤후3:11-12,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핍박은 반드시 받는다고 말합니다. 이 핍박은 선택적이지 않습니다.
앞에 말한 일곱가지의 복의 원리에 따라 사는사람은 반드시 핍박을 받습니다.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에서 당한 핍박이 무엇입니까?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잡혀서 돌에맞아 거의 죽습니다.
이것이 1차 전도여행 갈라디아서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이사건을 보고 디모데가 구원을 받습니다. 루스드라에 전해진 복음은 핍박과 함께 전해진 복음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1:29,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음을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베푸심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곧, 주님을 믿는 믿음의 결과입니다.

믿는사람은 반드시 핍박을 받기 위하여 은혜가 베풀어져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살전3:3,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3주동안 복음을 전합니다. 이 기간동안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핍박으로 인해 다른지역으로 떠난 사도바울은 편지를 써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편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 이것을 받도록 너희가 세워진줄을 앎이라>

그리스도인은 핍박받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핍박을 받는 우리에게는 안식을 허락하시고 핍박을 베푼 그들에게는 멸망을 주시는것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핍박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왜 이러한 핍박이 올까요?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22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25 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15:18-25, 개역한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는 이유는 세상이 주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완벽하게 의롭게 사셨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능력으로 도저히 이루어낼수 없는 거룩한 삶을 사셨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거룩한 삶을 살지 않으셨다면 사람들은 변명할수 있었을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님의 삶을 보았으므로 변명할수 없을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주님께 마땅히 거룩한 삶을 사는지 물어와야 했을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주님을 대적하였고, 이 빛을 끌어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예수님을 죽인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이유는 나때문이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1:24,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고난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요한복은 15장 말씀을 근거로 하는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주님께 부름을 받기전에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나타나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사도바울은 주님을 핍박하는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믿는자들을 핍박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것을 주님을 핍박하는것으로 보셨습니다.
이와 같은 원리로 사도바울은 말하는 것입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갈6:17,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매를 맞고 감옥에 갖히며 몸에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상처를 예수의 흔적이라고 합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5:10, 개역한글)

핍박은 의때문에 일어납니다. 이 의는 주님의 십자가로 세우신 의 입니다.

그 의때문에 우리가 핍박을 받습니다. 핍박의 원인은 두가지 입니다. 1. 예수님  2. 의
세상은 이 두가지를 못견뎌 합니다.

예수님을 미워하고 의를 미워합니다.
우리가 핍박을 받을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 핍박은 나를 미워해서 일어나는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의로우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핍박의 형태는 어떻게 일어날까요?
세가지 형태를 띱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5:11, 개역한글)

1. 욕하고
2. 핍박하고
3.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합니다.

1. 욕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성도의 삶을 제대로 살면 세상사람들은 반드시 뒤에서 욕합니다.
이 '욕하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때 강도들이 '욕하고'와 같이 쓰인것입니다.

주님께서 받으신 욕을 보겠습니다.
<저는 죄인들의 친구로다>
<먹기를 참하는 자로다>

2. 핍박하고
핍박한다는것은 쫓아낸다는 뜻입니다.
같은 구릅에서 쫓아내는것입니다. 그것이 심하면 감옥에 가두는 것입니다.

제가 믿기로 이 말을 들은 열두사도(가룟유다제외)는 전부 순교합니다.
오직 사도요한만이 밧모섬에서 유배되어 비찬한 삶을 삽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께서 계시록을 계시하십니다.

3. 악한말을 합니다.
욕은 근거있이 하는것입니다. 그러나 악한말은 근거없이 하는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들은 가장 강한 악한말은 이것입니다.
다빈치 코드책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 그래서 태어난 아들이 프랑스 무슨 왕조를 이루었다'
말이 안되는 소리입니다.

주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인도에 가셨다고 합니다. 그곳에 가서 마술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악한 말입니다.

이것이 첫번재붙너 일곱번째의 원리를 따라 사는사람에게 반드시 필연적으로 있어야 할 일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천국이 저의 것임이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주는 모든 혜택을 받게 될것입니다.

세상에서 미국 시민이 되면 엄청난 혜택을 받게됩니다.
한 나라에 전쟁이 나도 미국시민권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그 나라에서 빼어져 갑니다.
이와같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계에서 빼어질것이며 천년왕국에서 놀라운 상을 받을 것입니다.
세번째, 예수님께서 우리마음을 다스리시며 우리의 왕이십니다.
우리마음속에 놀라운 풍요로 축복하실 것입니다.

28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막10:28-30, 개역한글)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하신 약속입니다.
핍박을 겸하여 하여 받습니다. 그리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못할자가 없습니다.

이것은 부자청년이 근심하며 돌아간 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 이땅에서 버린것의 백배를 얻는다. 그러나 핍박도 겸하여 받는다 내생에서 반드시 영생을 얻는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마5:12, 개역한글)

그러므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것은 강조적인 것입니다.
너무 즐겁고 기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너무 즐거우면 사람은 팔짝 뜁니다.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몸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크다는 말이 성경에서 두번쓰였습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두번째는 선지자의 반열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땅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자는 하늘에서 반드시 상을 받을 것입니다.

이땅의 삶은 70-80입니다. 우리가 받을 상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죽을때 그는 로마의 시민이었기 때문에 십자가에서는 죽지 않았을것입니다.
도끼로 그 목을 쳤을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현재의 고난은 우리가 장차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수 없도다>
그러므로 핍박이 왔을때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들도 핍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게서 선지자를 보낼때마다 세상은 선지자를 핍박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와 같이 다루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와같이 취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세상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주님을 믿지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핍박을 받지 않을것입니다.

이세상에서 핍박을 받지 않는이유는 세상이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관대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질이 그만큼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핍박이 없는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런 코멘트도 하지않는다면 우리는 핍박받지 않을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신약의 첫번째 성경입니다.
마태복음 5장은 주님께서 하시는 첫번째 설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행복의 내용이 세상과 다릅니다.

애통하는자, 가난한자, 목마른자, 긍휼히 여기는자, 온유한자, 의에주린자가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저희들이 이세상을 살고 다시오실 주님을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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