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단말씀 요약글 모음/한봉래 형제님(요약)

창세기6_전능하신 하나님

박이레 2022. 7. 10. 00:42

2017년 7월 7일 금요일

강사 : 한봉래 형제님

<창세기6_전능하신 하나님>

1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4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찌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창17:1-14, 개역한글)

복음적인 측면에서 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의 중동땅에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국가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의 조상이 되는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 입니다.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사람은 원래 중동에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원래 메소포타미아 사람입니다. 성경으로는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어떤 우상인지는 모르지만 미신을 믿는 집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 미신을 믿는 땅에서 떠나라. 내가 새로운 땅을 줄테니 그리로 와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해서 가나안 땅에 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제일 큰 약속이 자식을 주겠다고 한 약속입니다.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의 나이는 99세 입니다. (창세기 17장 기준)

아브라함이 75세이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100세가 되었을때는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지 25년이 흐른 후 입니다.
25년간 하나님은 약속한 아들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어떻게 실수하는지 보겠습니다.

15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의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 륙세이었더라
(창16:15-16,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지만 그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아브라함이 잘못합니다.
아내인 사라 사이에서 자식이 나오지 않자 다른 아내를 얻었습니다. 그것이 하갈입니다. 그리고 하갈과의 사이에서 자식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마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겠다 말씀하시면 그 약속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하셔놓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게 하십니다.
그래서 지쳐서 다른여자를 얻었습니다. 다른여자를 통해서 나은 이스마엘은 오늘날 중동국가 중 아랍국가 입니다.
지금도 아랍과 이스라엘은 갈등 가운데 있습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아브라함에게 능력이 없더라도 이루어 질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 안되는것 같으니 두번째 방법을 씁니다.
그것은 내가 내 능력으로 자식을 낳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가 내가 내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게 약속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과 구원의 방법입니다.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17:1, 개역한글)

<전능한 하나님>
이는 기적을 행할수 있는 하나님입니다.
왜 이렇게 아브라함의 99세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23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4:19-25,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가 되었을때 (99세가 되었을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이냐면 아브라함이 자식을 낳을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가 자식을 낳는것에 대해서는 죽은몸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 남자구실을 할수 없게 됩니다.
아내 사라의 경우는 태가 죽어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폐경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시간을 끄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이 두사람이 자식을 낳을수 없는 지경이 되기까지 시간을 끌어버리셨습니다.

이 두사람은 이대로 기다릴수 없어 하갈을 취해 자식을 낳아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삭만을 인정하십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자식을 낳을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능력없는 무능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하신 것입니다.

이는 내 능력으로 너에게 자식을 주겠다고 하신것입니다.

지금도 구원을 얻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이 자기 능력으로 구원을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는것입니다. 금식, 십일조 등 내가 내 능력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서는 안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또 하나는 나는 구원받을만한 자격도, 조건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셔야 합니다.
구원이 위로부터 나야 합니다. 내가 태어나지 못하니 하나님께서 나를 태어나게 해주셔야 합니다. 이것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4:25, 개역한글)

아브라함의 사건이 기록된 것은 우리를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죄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줌이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전능한 하나님>이라 하시고 그들이 아이를 갖기에 불가능한 몸이지만 아이를 주시겠다 하셨습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이 이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믿은 아브라함을 의인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를 위해서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이야기 하셨지만 우리에게는 '너희는 지옥에 갈 죄인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아브라함이 자식을 낳을수 없는 상황가운데 있는데 자식을 주겠다고 하는것과 똑같은 말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경우에 하나님의 말씀은 말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다른 종교들은 그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럴듯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이 안되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자식을 낳습니까? 우리는 또 "내가 왜 죄인입니까?"라고 합니다.
혹은 우리의 죄를 시인하기도 합니다만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어렸을때 엄마 지갑을 털어 과자 사먹은 것도 죄이긴 하지."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죄인은 영원토록 지옥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 생각대로면 우리가 죄를 지었어도 죄와 벌은 상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죄를 지은만큼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지으면, 보통 사람의 수명이 100년 정도 되기에 100년 지옥에 갈것이라면 동의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결은 영원토록 지옥에 떨어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판결을 들었을때 우리는 하나님의 벌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너의 죄를 2천년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그 죄를 영원히 속해버렸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모두 용서했다."

우리는 또 이 말씀을 들으면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아니 내 죄는 내가 책임져야지. 중동땅에 있는 알지도 못하는 예수라는 사람이 십자가에 죽은것이 왜 내 죄를 용서하는가?"

성경은 첫번째로 들어보면 말이 안됩니다. 말이 안되는 이야기를 합니다.
말이 안된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말이 안된다고 우리가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는 사람이 만든 종교입니다.들어보면 사람이 만들었기에 좀 복잡하고 어려워도 몇번 들어보면 이해가 갑니다. 믿을려고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그 종교는 전부 우리가 무엇을 해서 추구하는것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은것입니다.

이 길로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능한 능력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는 이 길이 있습니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2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
3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아문에 모여
4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5 말하기를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마26:1-5, 개역한글)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흘리고 죽으십니다. 이 사건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인류 역사상 많은 사건들이 일어납니다만 이 사건은 모든민족, 모든 사건을 통틀어서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인간의 역사를 끌고가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핵심적으로 말씀하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어 버리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이후 모든 인간은 죽어야 합니다. 그 전에는 죽음이 없었으나 이 사건 이후로 인간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여자의 후손을 보내 주겠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유는 뱀 때문입니다. 그는 사실 사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을 것이다."

여자의 후손이 사단과 사단이 행하는 모든 능력을 없애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은, 이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굼치를 물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입니다.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뱀의 머리를 밟으십니다. 그리고 뱀이 예수님의 말꿈치를 뭅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모든 죄의 배후에는 사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죄의 형벌을 예수님께서 없애버리십니다.
사단은 예수님을 죽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발꿈치를 문 것입니다. 예수님은 삼일만에 부활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이스라엘에게 다섯가지 제사를 드리게 하십니다.
제사는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뿌리고 고기를 먹고 하는 것입니다.
이 제사는 다섯개가 있습니다. 번제, 속죄제, 속건제, 화제, 화목제, 소제가 있습니다.
소제를 뺀 나머지 제사의 특징이 바로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또 일곱가지 절기를 주셨습니다. 우리로 치면 추석과 구정같은것입니다.
그중에서 이스라엘에 중요한 절기가 유월절이라는 절기 입니다.
다시하나 서론적으로 도입해 보겠습니다. 침례요한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여자가 나은자 중 가장 위대한 자라고 인정하셨습니다.

이세상에 살았던 인간 가운데 위대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더나 징기스칸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같은 위대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위대한 인물이 침례요한입니다. 그가 왜 위대할까요?

세상의 다른 위인들은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지도를 완성하고 한글을 발명해서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침례요한이 위대한 것은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보라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 입니다.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하도록 하나님께서 설명해 주신것이 유월절에 드리는 어린양입니다.

마태복음 26장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이틀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 (마26:2, 개역한글)

자신이 이틀후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것을 죽으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이는 사람, 권력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4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5 말하기를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마26:4-5, 개역한글)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지만 유월절이라는 명절에는 죽이지 말자 합니다. 명절이 지나고 죽이자고 합니다.
왜냐하면 유월절이라는 명절에는 유대인들이 전부 예루살렘으로 모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는 전부 사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유월절에 전부 양을 잡기 때문에 피비린내가 진동합니다.
그때 예수님을 체포해서 죽이면 백성가운데 여러가지 소란스러운 일이 생기니, 명절이 끝나고 사람들이 다 돌아가고 난후에 예수님을 죽이자고 합니다.

이것이 실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유월절에 죽는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나요?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이시기 때문입니다.
유월절 양은 그 양의 피를 뿌리고 그 피를 집문에 바르면 그 집안에 있는 사람들은 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유월절 양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뿌리고 예수님을 마음에 믿으면,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구원의 근거를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유월절에 죽으십니다.
유월절은 니산월입니다. 유대인으로치면 1월입니다. 우리로치면 3월 쯤입니다. 유월절은 니산월(1월) 14일이고 금요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오후3시에 죽으십니다.

이 달 십 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출12:6, 개역한글)

하나님께서는 양을 잡을날을 미리 정해 놓으셨습니다.
14일 해질때에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니산월 14일 오후3시 해질때 입니다.
그날 모든 이스라엘 민족들이 그 때에 양을 잡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때에 모두 모여 양고기를 먹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날 예수님께서 죽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사람에게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확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힘이 없어서 체포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뜻이 좌절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죄가 있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는 것은 유월절 양이 피를 흘리기 때문입니다.

유월절 양이 피를 흘리면 그 피를 뿌리고 집 문에 바릅니다. 그리고 그 집안에 있으면 죽음이 넘어갔습니다.
유월이라는 것이 영어로는 pass over입니다. 죽음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영원히 살것입니다. 사망이 그를 건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죄가 용서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망이 온 이유는 죄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죄가 용서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으시는 날짜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후 세시에 죽으시는 것은 그 시간에 잡았던 유월절 양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양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죽이되 절대로 그 시간에는 죽이지 않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스스로 유월절 양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뜻이 이루어져야 합니까?
현실적인 권력과 힘을가진 이들의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들이 다 결정권자입니다.
그러나 그들 뜻대로 되지 않고 예수님 뜻대로 정확하게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예수님께서 죽으십니다.
그렇다면 자기의 죽음의 때와 방법을 정하시는 이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사람 가운데 그럴수 있는 분이 없습니다. 이분은 사람으로 오셨지만 사람처럼 행동하셨지만, 완벽한 사람이셨지만 이분은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요19:14, 개역한글)

예수님꼐서 빌라도라는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날과 시간을 말하고 있습니다.
<때는 제 육시라> 이것은 새벽 6시 입니다. 시벽 6시에 재판이 열리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의 사형판결을 내리고 사형집행을 합니다. 그 시간이 유월절 예비일입니다.

설명드리겠습니다.
유월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양을 잡아먹는 날이 유월절입니다. 그리고 유월절부터 일주일간을 무교절로 지킵니다.
누룩없는 빵만 먹어야 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유월절이 있고 이어서 6일간 계속되는 무교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합쳐서 유월절로 불러버립니다.
유월절 이후에 무교절과 합쳐서 8일간 계속되는 날을 유월절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유월절의 첫날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유월절의 예비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것이 양잡는 날입니다.
그날 예수님께서 빌라도 총독에게 새벽 6시에 재판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못박히십니다. 그리고 오후3시에 죽으십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을 죽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분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적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사람들의 죄악된 행동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기적은 눈에 보이는 초월적인 사건이 아니고, 진짜 기적은 겉으로는 눈에 보이는 아무런 사건이 없는데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의도대로 일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뜻과는 달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연출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감독이십니다. 거기에 등장인물들이 여러명 나옵니다.
빌라도, 가룟유다, 대제사장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각각 맡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고 자기들의 판단과 선택과 책임을 따라 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입니다. "내가 유월절에 죽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유월절 양이기 때문이다. 유월절 양을 잡는 그 시간에 내가 십자가에 피 흘려 죽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사람은 절대로 그 시간만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에 예수님은 죽으십니다.
그럼 우리는 이분을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이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분이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 생애에 가장 중요한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입니다.
우리 생애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기 전 후로 나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받아들이기 전에는 죄인이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받아들인 후에는 의인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분깃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수천년전에 유월절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되어 예수님께서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오셔서 어린양으로써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수천년 후에 우리는 이분을 역사의 주인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입니다.
여러가지 경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전부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도록 여러가지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 와있는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의 죄를 사했다. 너는 영원토록 지옥에 가야하는 죄인이었다. 그러나 내가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너의 죄를 단번에 용서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며 우리에 대한 호소입니다.
이제 이것을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좋아서 믿는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을 열어주셔서 예수님을 밝히 보여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자식을 낳을수 없는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셨듯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해가 안되는 내용이지만, 마음문을 열고 이것이 참 진실임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을 앞에 무릎을 꿇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은 나의 유월절 양이십니다. 당신의 십자가는 범죄한 자를 위하여 내어주셨고 이제 나를 위하여 다시 살아나신 나의 주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틀후에 죽으리라고 예언하신 예수님은 또 삼일후에 살아나리라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금요일에 못박히십니다.
토요일은 안식일입니다. 그리고 주일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을 기념하여 모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두가지를 바꾸십니다. 첫번째는 아브라함의 이름을 바꾸십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십니다.
두번째, 할례를 주십니다.

아브람의 이름의 뜻은 '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이 뜻은 아브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아브람을 갈대아에서 부르신 하나님, 그리고 이제 이삭을 주시는 하나님은 존귀하신 나의 아버지 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으로 바꾸십니다. 아브라함의 뜻은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누구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네가 누구냐라는 이름으로 바꿔주십니다.
그 이름은 수많은 민족의 조상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이란, 이라크의 민족들도 전부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스마엘의 후손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수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 약속을 받을때에 그에게는 자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부부생활을 할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름을 하나님께서 바꿔주시고 또 불가능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수 없고 납득할수 없는, 받아들일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를 하나님이 의로 여기셨습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내가 죄인이다, 아니다는 죄가 무엇인지 아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수준이 낮아서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다른사람들도 다하니 죄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그만 거짓말도 죄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생각에는 그정도는 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죄의 대가는 영원한 지옥이다.

우리의 생각에는 과일 하나를 따먹은것 가지고 에덴동산에서 쫒아내신것은 너무한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와같이 모르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설명하십니다.
"너는 영원토록 지옥에 있어야 할 죄인이다."

저희는 그 말을 듣고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것이 지옥에까지 갈만한 죄인가?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제가 지옥에 갈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원토록 지옥에 가도 절대로 용서될수 없는 그 죄가 예수님이 2천년에 십자가에 피흘렸다는 그 하나만으로, 다른 어떤 이유없이 영원토록 용서되었습니다. 이것은 말도 안되고 이해할수도 없습니다.
이 일을 성령께서 내마음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그 안에서 일어난 전능하신 놀라운 하나님을 볼때 구원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믿는다고 표현하지 않고 믿어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힘과 능력으로 이것을 붙드는 것이 아니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삭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사람이 구원에 이르며 진리는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왜 안되나요? 내가 진리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롬1:18, 개역한글)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의 처소인 하늘로부터 임할 것입니다.
불의를 가지고 하나님의 진리를 막는사람에게 임할것입니다. 이것은 도덕적인 표현이 아니고 영적인 표현입니다.
불의를 가지고 내 생각을 가지고 내 경험을 가지고 전능하신 하나님, 참되시고 거짓말을 못하시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옥에 갑니다. 우리의 죄때문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그 놀라운 일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는 십자가에서 처리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묻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가 지옥에 가는것은 처리해주신 주님,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측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인간적인 철학을 가지고 높으시고 거룩하시고 사람과 차원이 다르신 하나님의 놀라운 말씀들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옥에 가는 사람들에게 선고되는 죄목입니다.

우리 생각을 굴복시키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진리되는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 마음이 열리지 않습니다. 저도 제 마음을 열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제 마음을 바꾸실수 있습니다. 하나님 제 마음을 바꿔주십시오."

하나님은 이 기도를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게 오는 자를 내가 하나도 내어쫓지 않겠다"

예수님께 나아왔는데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께 가고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눅11:9-10, 개역한글)

아브라함 사건을 통해서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 마음을 두드리고 호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구원에 이르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