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4일 수요일 강사 : 정형모 형제님
< 디모데전서 강해 1>
일년만에 다시 사랑하는 성도님들을 뵙게되어 기쁩니다.
저희들이 주님을 믿고 섬기는 신앙생활 안에서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달려갈길을 달려갔다' '믿음을 지켰다'라고 말할수 있도록 주님께서 지켜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번기간중에 주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디모데전서를 통해서 주님을 확신가운데, 기쁨가운데 섬기기를 원합니다.
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찌어다
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5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6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딤전1:1-7, 개역한글)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딤전1:18-19, 개역한글)
14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딤전3:14-15, 개역한글)
오늘은 첫날로 디모데전서의 몇구절을 읽었습니다.
디모데전서가 쓰여진 배경과 사도바울의 심중의 소원과 목표를 살피고 계속해서 말씀을 살피고자 합니다.
저희들은 사도바울이 신약에 7교회에 보낸 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중 디모데전후와 디도서는 목자서신입니다. 사도바울은 이와같은 서신을 쓸때 각 교회에, 각 목자에게 그마음에 많은 눈물이 있었습니다.
모임안에서 많은 문제들을 듣게 될때에 그 모임안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때 사도바울은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을 드러내야 하는것을 마음에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이 사도바울의 이 마음을 살피게 될때 도전을 받게 됩니다.
12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13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 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치 못한 것을 용서하라
(고후12:12-13, 개역한글)
사도의 표를 이야기할때에 사도바울은 제일먼저 너희가운데 모든 '참음'이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그 인생가운데 어떠한 난관과 역경을 통과했는지 이야기 합니다. 이는 자신의 사도권을 입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훼손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영광을 받을수 있도록 이 편지를 쓴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난을 통과했는지 이야기 합니다. 이것을 다 말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부족한 것입니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후11:28, 개역한글)
사도바울은 고통과 고난을 통과할때 그 마음속에 교회를 염려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따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위엄의 일을 부탁하셨습니다. 그는 그것을 매일 마음에 두고 어떻게 선한싸움을 싸웠는지 우리는 볼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땅에 있을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마음을 품으시는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이땅에서 이룰것을 우리는 사도바울을 통해서 교훈을 받게됩니다.
사도바울은 마게도냐에서 이 서신을 쓰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이 서신을 쓰면서 어떠한 소원을 가졌을까요? 이를 오늘 살피겠습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딤전1:1, 개역한글)
바울은 이 서신을 쓰신 분입니다.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찌어다 (딤전1:2, 개역한글)
이 서신을 받는자는 디모데 입니다. 사도바울과 디모데는 참으로 각별한 관계에 있습니다.
세상 사람인 역사가 들, 곧 믿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사람을 바울로 뽑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전파한 것은 그가 전에 믿고 있던것과는 전혀 파리한 것을 지칠줄 모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으로 전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도 부인할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어떻게 예루살렘 교회의 지체로 받아들여 졌는가는 사도행전 9장에서 잘 알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또한 사도바울과 바나바를 인도하여 전도를 하게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의 1차 전도여행은 안디옥으로부터 시작해서 구브로와 아나톨리아를 거쳐(터키) 밤빌리아 지역으로 들어갑니다.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을 거쳐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믿기에 루스드라에 살던 디모데가 사도바울의 1차 전도여행때 구원을 받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개인적으로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만난것은 2차 전도여행때라고 말합니다.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쌔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줄 다 앎이러라
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행16:1-5, 개역한글)
디모데의 부친은 헬라인이요 모친은 유대인입니다.
사도행전 16장 말씀에서 소개하는것은 디모데가 사도바울을 만났을때 그는 이미 구원받았고 그가 신앙안에서 어떠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지 말합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서 칭찬받는 자다> 라고 말합니다.
그가 사도바울의 동역자가 되어서 그토록 충성스럽게 일할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가 구원받고 주님을 섬기기를 주변사람들에게 '칭찬받는자'로 섬겼습니다.
내가 구원받고 주님을 어떻게 섬길까를 생각합니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를 이땅에서의 관계가 아닌 영원한 관계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할때에 자연스럽게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먼저 하나님앞에서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아버지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나아가 다른성도와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됩니다.
디모데는 주님을 따르며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그를 사랑했습니다.
디모데는 주님의 뜻을 먼저 마음에 두고 주님을 섬기는 것을 실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가정안에서 참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바로 어머니와 외조모로부터 받은 놀라운 신앙의 유산인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때 그가 복음을 듣고 주님의 은혜를 받고 구원받아 교회에 더해졌습니다.
우리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아버지 어머니가 다 유대인인 가정에서 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보았을때 기쁨과, 믿음과, 열정이 있음을 보았을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속의 부담으로 보게 됩니다.
너무나도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루스드라에 갔을때 디모데가 눈에 딱 들어왔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먼저 할례를 줍니다. 디도에게는 그가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할례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아버지는 헬라인이고 어머니는 유대인이었기 떄문에 할례를 준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과 같이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증거하거나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할때 쓸데없는 낭패를 당치않도록 준것이라 생각합니다.
2차 전도여행은 안디옥으로부터 시작해서 육지로 진행됩니다.
성령님께서는 사도바울이 유럽으로 건너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바다건너 빌립보로 갑니다.
거기서 루디아와 빌립보 간수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전도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위대한 역사를 이루셨는지 보게 됩니다.
우리들이 기대할수 없는것이 사도바울의 여행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이 전도여행을 통해서 그는 헬라지역에 전도를 합니다. 한가지 말씀을 나누고 싶은것은 사도바울이 아덴에 와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모임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에 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1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행18:1-4, 개역한글)
우리는 사도바울이 이미 동역을 할수 있는 동역자 디모데를 만난것을 압니다.
우리가 주님을 함께 섬기게 될때에 우리가 행할수 있는 놀라운 특권과 은혜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믿음과 같은 목적과 같은 대의를 가진다는것은 얼마나 소중한가요.
우리는 성경안에서 나타난 아름다운 동역을 보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참 아비요, 디모데는 참 아들입니다. 어떻게 디모데가 사도바울을 섬기고 같이 일했는가를 보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만세의 교훈인 것입니다.
구약에서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를 보게 됩니다. 또다시 엘리아와 엘리아의 후계자 엘리사를 보게 됩니다.
엘리야는 어느날 절망에 빠지고 자기의 목숨을 취할것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그를 살리사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아를 하늘로 올리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이루는데 엘리사를 두셨습니다.
모세는 훌륭한 하나님의 시종이었습니다. 그후 여호수아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었나요?
신약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두사람을 들라면 이 두사람은 사도바울과 디모데입니다.
당시 글라우디오 황제는 로마에서 모든 유대인을 추방합니다. 이 반 유대정서는 역사적으로 많이 일어납니다.
이때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로마에서 쫒겨나 고린도로 오게 됩니다. 이는 참으로 불행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대한 뜻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비극과 수많은 슬픔속에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 두 부부가 로마에서 쫒겨나면서 왜 고린도를 선택했는지는 알수 없지만 그들은 고린도로와서 장막을 만들면서 살게 됩니다.
두 부부는 원래 장막을 만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바울도 장막을 만들던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식들이 생계를 꾸려나갈수 있는 기술을 가르칩니다. 가장먼저 장사하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사도바울은 위대한 지식인이고 학자였지만 사도바울은 어려서부터 장막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인도하셔서 사도바울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따라가는데 가장 탁월한 사람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두 부부가 사도바울을 만나서 얻게 되는 유익은 말로 할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이 선포되게 될때에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분들 곁에서 배울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절대로 이 특권을 버리지 마십시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사도바울의 곁에서 얼마나 많은것을 배웠는지 모릅니다.
그 두 부부는 사도행전 18장 끝에서 에베소로 이동하게 됩니다. 에베소에서 아볼로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구약과 하나님을 잘 아는 학자였지만 두 부부에게 복음적인 가르침을 받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사도행전 18장에서 짦게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고안하신 뜻안에 거할때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것을 내 신앙생활에 축적할수 있습니다.
고린도에서 사도바울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만나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에게 얼마나 많은 유익을 끼쳤나요?
두 부부는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옮겨 갑니다. 오늘 디모데전서를 생각할때 에베소를 빼놓을수 없습니다.
에베소는 세속적으로도 참으로 독특한 도시입니다. 에베소는 수도는 아닙니다만 지방, 도의 수도라고 할수 있었습니다.
에베소는 강가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이것은 무역을 하게 될때 수많은 지역의 도시 겔리들이 에베소로와서 수많은 물품들을 옮겨 싫어 나르는 곳이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에베소는 우상의 중심지였습니다.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 여신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이 신전은 다른 어떤 신전보다도 크기가 크고 처음으로 대리석으로 지은 신전이었습니다.
많은 은장색들이 이 신전의 여신상을 만들면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우리가 에베소를 볼때 이 도시가 매우 큰 대도시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당시 45만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년 5월이면 아시안 게임이 열렸습니다. 그 게임을 위해 그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세상 사랍들은 우상을 섬기고 스포츠에 열심이고 물질주의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에베소 주변의 많은 도시들은 에베소를 통해서 해상으로 나갈수 있었습니다.
세속적으로 에베소 도시는 매우 호감이 가고 모두가 가고싶어하고 살고싶어하는 곳이었습니다.
18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가로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행18:18-22, 개역한글)
이렇게 2차 전도여행이 끝나게 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에베소로 옮기게 됩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를 떠나려고 할때 사도바울은 다시 돌아올것을 약속을 하고 떠나갑니다.
3차 전도여행의 시작은 안디옥에서 시작해서 에베소로 직행합니다.
소아시아 지역에 믿는 사람들이 있어 그 지역을 지나면서 성도들을 돌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바로 에베소로 가려고 합니다.
1차 전도 여행은 1년 반정도의 기간이 걸렸습니다. 2차전도여행은 2년 반정였고, 3차 전도여행은 4년을 보냅니다.
그중 사도바울은 3차 전도여행 중 3년을 에베소에서 보냅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아데미 여신에 대해서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했나요?
이는 우리가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들이 가장 기대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요? 에베소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것과 같이 우리는 앞을 보지 못하고 의미없는것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신화 전설에 의하면 아데미 여신은 제우스에게서 태어난 여신입니다. 사냥과 비옥의 여신 가산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아데미 신상을 보면 많은 유방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아데미는 여자 아이들의 보호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의 쌍둥이 아폴론은 남아들의 보호자 였습니다.
그들은 보호자 였지만 언제든지 아이들을 죽일수 있는 신으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자신을 죽일수 있는 신은 얼마나 두려운 것입니까? 이것이 바로 사단의 모습입니다.
아폴론과 아데미의 권세라는 것은인간의 마음속에 두려움으로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이야기할 가치가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산화속에 담겨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있는 에베소 사람들은 죄와 허물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죄악과 쾌락속에서 살아갔습니다.
사도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같이 에베소에 들어갔습니다.
에베소는 눈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제일먼저 케이스 강이 보입니다.
에베소는 처음에 바다에 인접한 도시였으나 세월이 지나갈수록 내륙으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그 옆의 밀레도가 경쟁의 항구로 일어납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처음와서 한 일이 무엇인가요?
아볼로라는 사람은 그곳에서 구약의 회개의 세례를 전파합니다. 그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에게 다가와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은세례요한의 세례가 끝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죽음과 부활과 성령의 임함과 교회의 지체가 되는 것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에서 아굴라와 같은 사람 12명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그들에게 성령께서 임하게 됩니다.
이와같은 일이 사도행전에서는 세번 일어납니다.
성령께서 처음 예루살렘에 임하셨을때 성령은 유대인에게만 임하는 것으로만 성도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0장에서 이방인인 백부장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만 성령을 받는다는 그들의 편견을 철저히 붕괴시키셨습니다.
그 누구라도 주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것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편견을 막으십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편견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생각과 나의 고집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이 편견은 하나님의 말씀앞에 굴복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임의로 무작위로 변화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대로 뜻대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행전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구원받고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가이사랴에서도 이와같은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세번째, 에베소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에서 가서 제일 처음 일어난 사역이 이것입니다.
먼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에게 했던것처럼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면 사도바울은 사도로써 요한의 열두제자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구원받고 교회의 지체가 된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한 교회의 지체는 어떻습니다. 이때에는 유대인이 있었고, 이방인이 있었으며, 또다른 특이한 부류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변환기 시절의 한 그룹 이었습니다.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가라고 하는 메세지가 유대인의 거절로 연기 되었습니다. 그들은 공중에 붕 떠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려두지 않고 사도바울을 보내사 그들을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실천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교회진리를 알고 있었으나 그것을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3차 전도여행이 끝난후 예루살렘에 잡혀 로마로 호송된후 감금된 상태에서 4개의 서신을 씁니다. 그것은 교회의 대 진리 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서 교회의 대 진리를 선포합니다.
우리는 에베소와 관련해서 생각할때, 에베소는 암흑속에 있었던 도시 였음을 기억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다시오마라고 약속한후 다시 왔을때 3년이나 에베소에 머무는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열두명의 요한의 제자들이 구원받고 난후 석달동안 회당에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 후에는 두란노 서원에 가서 공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근면하게 증거합니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근면,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자 합니다.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행19:10, 개역한글)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을 우리는 볼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복음의 말씀이 증거된다는것은 참으로 중요한것입니다.
그들이 받든지 받지 않든지 같에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되었습니다.
아시아 지역이라는 것은 아나톨리아 지역을 말합니다.
그곳에는 적어도 10개 이상의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이와같은 교회들이 세워지게 된것은 사도바울의 전도여행 덕분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두란노 서원에서 증거될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 아마 다른곳에 가서 복음을 증거해서 다른사람들이 구원을 받은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행19:20, 개역한글)
이 말씀은 참으로 듣기 좋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력을 얻고 흥황하고 사람들을 이긴다는것은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마술하는 자들이 그 마술책들을 다 태워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자 이제는 은장색들이 일어납니다.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것은 진리이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것은 돈을 버느냐, 아니냐 입니다.
아테네에는 아데미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세속적으로 위대하다고 하는 아테네에서 그들이 위대하고 생각하는것은 부유한 생활이었습니다.
그 생이 위태롭게 되자 그 극장에서 난동이 일어납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동안 밤낮 가리지않고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방인이 가지고 있는 부와 헌신을 예루살렘에 전하고자 하였을까요?
사도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써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는 이 거리감을 깨기를 바랐습니다.
이방인 성도들이 유대인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사도바울은 보이고 싶었습니다.
이 둘이 하나되기를 사도바울은 마음으로 원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로마로 갑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의 옥중에서 옥중서신으로 에베소서를 씁니다.
사도바울은 예루살렘에 가기전에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모아 고별강론을 합니다.
사도바울은 자기가 어떻게 주님을 섬겼는가를 장로들과 토로합니다.
사도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받을 고난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의 진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것을 이야기 합니다.
18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행20:18-19, 개역한글)
지역교회가 하나님의 간증을 계속해서 보전하는것은 먼저 장로들이 자기를 다스리고 주의 해야합니다.
그리고 양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또한 양들 자신도 자신을 주의해야 합니다.
말씀을 전파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는 교사가 아닙니다.
양들을 돌보더라도 자기를 돌보지 않는다면 장로가 아닌 것입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행20:28, 개역한글)
그는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에 마음속에 큰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는 마치 모세가 신명기 32장에서 <내가 떠나면 너희가 운데 부패가 들어올 것을 내가 안다> 라고 한것과 같습니다.
사도바울은 이와같은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는 자기는 떠나지만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20:32, 개역한글)
떠나면서 주님 자신과 주님의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고 떠나갑니다.
그는 로마에 2년동안 감금되어 있습니다.
그 후에 그는 무죄로 석방됩니다. 그는 다시 여행을 떠납니다. 이것을 소위 5차 여행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네로는 주후 64년의 여름에 시상이 떠오르지 않자 로마에 불을 질러버립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무마하기 위해서 이 일을 그리스도인이 한 것처럼 꾸밉니다. 이것은 참으로 유명한 사건입니다.
이 일 이후로 그리스도인을 대대적으로 핍박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에 사도바울은 체포됩니다.
사도바울이 어디서 체포되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그는 다시 체포되어 감금됩니다.
사도바울의 5차 전도여행의 코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레테에 디도를 두고 온것으로 생각합니다. 디도를 그 모임의 장로로 세우고 모임의 질서를 세우게 한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밀레도로와서 골로새로 와서 디모데를 빌레도에 남겨둡니다.
이는 각 지역모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딤전1:3-4, 개역한글)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둔 이유는 에베소 교회가 이와같은 일을 따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서를 쓰게된 이유, 적어도 세가지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5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6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딤전1:5-7, 개역한글)
1. 경계하기 위함입니다.
사도바울은 마게도냐의 필요에 의해 가 있었습니다. 모임의 오늘 영적인 간증이 좋다고 해도 내일은 좋지 않을수 있습니다. 사도는 이를 위해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장로들은 모임안의 문제가 생길수 있는 가능성때문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가 잘 보전이 되면 그 주변의 모임도 보전이 되고 영향을 받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영적인 전략 요충지인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사도는 디모데를 에베소에 둔것입니다.
14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딤전3:14-15, 개역한글)
2.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어떻게 처신할것을 알게하려 함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이세상에서 주님을 섬길때 우리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을 보전하며 모임을 보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안에서 어떻게 행할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1) 교리를 제대로 가르치라 2) 모임안에서의 처신의 중요성
세번째를 살피겠습니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딤전1:18, 개역한글)
3. 사도는 디모데를 격려하기 원했습니다.
사도는 디모데에서 애뜻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 예언의 말씀을 항상 기억하라>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름에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부르신 임무에 대해서 철저한가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이 세가지를 위해서 디모데전서가 쓰여졌습니다.
내일부터 디모데전서 1장부터 장마다 살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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