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1일 월요일
강사 : 조나단 블락 형제님
< 신명기 >
오늘 살펴볼 모세오경의 책은 다섯번째 책인 신명기 입니다.
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찌니라
(신6:6-9, 개역한글)
4 너희 하나님 여호와에게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
5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6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7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찌니라
8 우리가 오늘날 여기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서는 하지 말찌니라
9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10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로 너희 사방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로 평안히 거하게 하실 때에
1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실 그곳으로 나의 명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찌니 곧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12 너희와 너희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찌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13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든지 번제를 드리지 말고
14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의 택하실 그곳에서 너는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찌니라
15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즐기는 대로 생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무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음 같이 먹으려니와
16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17 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우양의 처음 낳은 것과 너의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너의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너의 각 성에서 먹지 말고
18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19 너는 삼가서 네 땅에 거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찌니라
2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대로 네 지경을 넓히신 후에 네 마음에 고기를 먹고자 하여 이르기를 내가 고기를 먹으리라 하면 네가 무릇 마음에 좋아하는대로 고기를 먹을 수 있으리니
21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멀거든 내가 네게 명한대로 너는 여호와의 주신 우양을 잡아 너의 각 성에서 네가 무릇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먹되
22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무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음 같이 먹을 수 있거니와
23 오직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아울러 먹지 못하리니
24 너는 그것을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으라
(신12:4-24, 개역한글)
22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것이며
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서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으로 가서
(신14:22-25, 개역한글)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신16:16, 개역한글)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18:16-20, 개역한글)
여러분이 혹시 성경에 여백이 있고 거기에 참조 구절이 적혀 있는 구절이 있다면 마태복음 18장에 우리가 읽은 말씀옆에 참조 구절로 신명기를 말하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16절에서 <만일 듣지 않거든 두세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는 구절을 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에서 교회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가 18장에 제시된 것을 봅니다.
또한 마태복음 18장이 신명기의 주요 단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언적인 성격을 잘 드러냅니다.
신명기는 두번째 말씀하신것을 제목으로 합니다.
그것은 헬라어 제목의 뜻입니다. 하지만 또한 신명기 히브리어의 원어의 제목은 첫번째 제목에서 따 왔습니다. 신명기의 첫번째 구절을 따라서 그 제목은 '이 말씀이니라'라 그 제목입니다.
우리는 신명기에서 <이 말씀>이라는 표현을 자주 발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명기에서 '이 말씀'을 자주 살펴볼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저는 마포모임에 저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 온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온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명기 차트를 보면 제가 세개의 단어로 제목을 붙인것을 볼수 있습니다.이 세개의 단어는 신명기를 요약적으로 말해 줍니다.
1-11장 까지는 기억하고 반복해서 말하는것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시간 새로운 세대가 나타났고 그 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준비를 하는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모압평지에서 그 약속의 땅을 건너가기 직전에 이 말씀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이 새로운 세대가 전진하기 위해서는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어떻게 행하셨는지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많은 사람들이 다시 들어가지 못합니다.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 '기억하다'라는 단어는 신명기의 주요 단어입니다.
이번 말씀시간의 절반정도를 기억하는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실제로 이번 집회 시간에는 두가지 것을 주요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번째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전반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지난 한주동안 성경을 상고해본것을 전체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것을 반복해서 말씀드리는것을 여러분께 먼저 양해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반복은 배우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후반부에 배우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이 반드시 모여야 하는 한 장소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억해야 하는 다섯가지를 말씀드리겠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야 하는 한 장소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다섯개의 문을 말씀드린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명기의 문이 무엇인지 질문하실것입니다. 우리가 신명기 6장을 볼때 문이라는 단어가 자주 반복되는 것을 봅니다.
신명기 차트의 왼쪽을 보시면 아주 특별한 이야기가 기록된 것을 봅니다. 그것은 히브리어로 '메주자'라고 기록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이스라엘 지방을 여행하신다면 여러분은 이것을 볼수 있을 것입니다. 유대인의 집을 방문하게 될때, 문설주에 이것이 걸려 있습니다. 그것은 약 3인치 되는 길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열어본다면 그 안에 다섯개의 두루마리가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을 토라라고 부릅니다. 월요일날 저는 모세오경을 부르는 다른 이름중의 하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와같이 유대인들이 하고 있는것은 신명기 6장에서 기록된 말씀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6절에 <이 말씀>이라는 단어가 반복되어 기록된 것을 주요하게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가정에서 주요하게 가르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삶의 모든 방면에서 그들의 삶을 통제하고 있어야 하는 중요성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6절에서는 또한 신명기의 주요단어를 발견할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이라는 단어입니다.
여러분이 관주를 가지고 오늘날이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그것이 71번이나 사용되는것을 보게 됩니다. 왜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게 사용되었을까요?
비록 신명기가 과거에 있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말하는 책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는 새로운 세대가 어제 무슨일이 있었는지 알기를 바라시지만, 여러분이 신명기의 파노라마를 살펴본다면 하나님께서 이 새로운 세대가 오늘날의 중요성을 인식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즉시 우리가 오늘날 받을수 있는 실제적인 교훈을 신명기가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날도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저는 형제님들에게 이 한국에 복음이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흥미로운 역사였습니다.
어떻게 지난날에 이 복음이 이 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듣는것은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교제하게 될때 중요한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행할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의 주요 세 단어는 첫번째 기억이고 두번째 반복이고 세번째 순종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도전은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순종하겠는가 입니다. 제가 다시 한번 젊은 성도님들께 이러한 도전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이번주간동안 이 말씀을 들으면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야겠다는 마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내가 공부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겟다고 결심했기를 바랍니다.
신명기의 말씀은 내가 나중에 어떻게 하겠다, 미래에 어떻게 하겠다고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명기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또한 가정에서 어떻게 역사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마음에서부터 시작하지만 가정에서 그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칠것을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말씀은 반드시 가정에서 가르쳐져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밥먹는 식사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묻고 답할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 손목에 차기까지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심지어 기도할때에 그 말씀을 이마에 붙여 놓습니다.
그 눈위에 붙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보는 시야도 말씀으로 주관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9절에서는 그 말씀을 문설주 바깥에 기록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신명기에 나와 있는 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붙어있는 문입니다.
우리가 출애굽할때 문 바깥, 문서주에 발라진 양의 피로 구원을 받았다면 그 증거는 우리 가정에서부터 나타나는것이고 그 가정에서 말씀을 높이는것이 구속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제가 때때로 신자분의 가정을 방문하게 되면 그 문에 붙어져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참으로 기쁘게 보게 되는 내용입니다.
제가 특별히 그런데 자주 사용되는 말씀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여호수아서의 구절입니다. <나와 내집은 여호와를 섬기리라>
정통 유대인들은 그 집을 나가게 될때, '메주자'를 문설주에 붙여놓고 나갑니다.
그들이 이사가게 될때, 집에 새로 이사오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집에 어떤 사람이 살았는가를 알수 있게끔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정통 유대인들은 믿음이 없는것이고 말씀에 어두움 가운데 사는 사람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여러분의 집 문 옆에 이 말씀을 붙여야 한다고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와같은 것을 기록한 신명기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교훈을 받을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출애굽기에서 첫번째 노래 구속의 노래를 보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노래를 부르는대로 행하기만 했다면 그들은 빠르게 축복의 땅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많은 찬송의 노래를 부르지만 실제 행하는것은 그 노래와 다른것을 봅니다.
우리는 또한 신명기에서 다른 하나의 노래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모세의 노래라고 불리웁니다.
모세오경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아주 놀랍게 말씀하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진실 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말씀에 대해서 또한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진리의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이 참된것을 증거하십니다.
슬프게도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수 없었습니다. 왜 들어가지 못했나요?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반석을 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행한 사역과 그 행한 일에 대해서 놀랍게 보상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신명기 마지막에 모세가 느보산 꼭대기에 서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신명기 차트에 나와 있는 사진이 오늘날 느보산에서 가나안쪽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인 것입니다.
모세가 그 자리에 서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자신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들었을때 그가 느꼈을 생각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할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시간 하나님의 뜻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으로 모세에게 끝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에서도 모세가 기록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느보산 꼭대기에 있는 모세가 아니었습니다.
변화산 꼭대기에 나와있는 모세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약속의 땅에 들여 보내셨음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모세가 영광중에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모세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변화산에서 말하게 됩니다.
하지만 물론, 그 자리에서 가장 중요하신 분은 그리스도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세의 삶이 그렇게 신명기에서 끝나지 않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큰 격려가 됩니다.
우리가 앞서 찬송을 부른대로 주님께서 오실때에 우리는 그렇게 변화될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분과 함께 영광중에 나타날것을 고대하는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보았습니다.
그렇게 모세와 엘리야를 구별해서 본것처럼 우리는 하늘나라에서도 서로를 구분해서 알아볼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주님과 함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있는 서로에 대해서 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내용은 첫번째 기억해야 할것, 5장의 기억하라는 말씀으로 연결 됩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5:15, 개역한글)
이제 새로운 세대가 기억해야 할 첫번째 것은 바로 그들의 구원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도 절대로 잊을수 없는 그러한 내용입니다. 참으로 이것은 단순한 것이고 기쁜 일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것에 대해서 참으로 기쁘게 여길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구원을 절대 잊지 말기 바랍니다. 이 구원과 관련해서 잊지말아야 할 두가지 것이 있습니다.
그 첫번째가 강한 손이 그들을 구원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하나님의 강한손이 그들을 구원했다는것을 생각할때 그들은 계속해서 전진할수 있습니다.
바로 그 강한 손으로 구원하신 분이 여러분을 지킬수 있는 분이라는것을 잊지 말기바랍니다.
사도바울 역시 그의 생애 마지막에 구원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나를 구원하신 자를 내가 알고 또한 그가 나의 마지막 날까지 나를 지키실것을 확신한다>고 그는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의 구원과 저의 구원을 통해서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시간 갈렙이 이러한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의지했을때 전진하고 한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악한 평가를 하였던 정탐들은 다른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 땅으로 들어갈수 없다. 왜냐하면 거기 거하는 거민들이 우리보다 강하다. 거기에 거인들이 살고 큰 성이 있다."
그들은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의 강한 손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이와같은 많은 거인들을 직면할때가 있을것입니다. 여러분은 많은 성벽에 가로막힐때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능욕을 주는 거인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핍박하는 거대한 벽이 여러분의 앞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계속해서 기억할것을 당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서에서 여리고의 큰 성벽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다윗이 큰 거인 골리앗을 만나게 되었을때 하나님의 강한 능력으로 그는 골리앗을 이길수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벽과 큰 거인은 하나님께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한 기억해야 할 두번째 것은 강한 손뿐만 아니라 편 팔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멀리까지 미칠수 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땅을 정탐한 사람들은 거인들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들의 신장은 굉장히 크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그 큰 신장을 가진 사람보다 멀리 미칠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긴 편팔을 사용하셨는지를 생각해 보신적이 있습니까?
다윗은 시편 140편에서 그분의 편팔이 나를 끔찍한 웅덩이에서 건져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번째 하나님의 백성이 기억해야 하는것은 성별입니다.
17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이 민족들이 나보다 많으니 내가 어찌 그를 쫓아 낼 수 있으리요 하리라마는
18 그들을 두려워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로와 온 애굽에 행하신 것을 잘 기억하되
(신7:17-18, 개역한글)
여러분은 때때로 17절에 기로된 질문을 할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어떻게 할수 있겠는가?"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잘 살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렇게 많은 대적들이 있는데? 그 대적 셋은 이 육신과 세상과 사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바로와 홍해에게 어떤 일을 행하였는지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그 신앙의 가장 큰 장애는 두려움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그것을 제거할수 있습니까?
어떻게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써 내 친구들 앞에서 행할수 있을까요?
우리는 다시 기억해야 하는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점점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두렵건대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 (신7:22, 개역한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승리라는 것이 단지 한순간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점차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것을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원과 애굽에서의 성별을 기억해야 할것입니다.
우리가 신명기 7장 초반부를 보게 될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하시기를 그 가나안에 살고 있는 족속들을 다 멸하실것을 말씀하십니다.
4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5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
(신7:4-5, 개역한글)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신7:6, 개역한글)
우리가 신명기 말씀을 이해하게 될때, 여호수아와 사사기와 룻기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렇게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그땅에는 이스라엘 대적들이 이미 살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족속입니다 .그외에 다른 족속, 대적들의 이름이 여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구원을 약속하셨는데 그 조건은 이들이 이방 족속을 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 족속들이 행하는 행악은 너무나 심각했던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아이를 희생제사로 드리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거룩하게 구별된 백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그 족속을 멸할뿐 아니라 그들의 왕도 멸할것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 명령을 불순종 하였습니다.
여호수아에서 이제 그들이 그 땅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들은 신명기 7장에 기록된 것처럼 이방 족속들을 완전히 멸하지 않았습니다.
그와같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적들 가운데 억압받고 있게 되는 상황을 허락하십니다.
이 여호수아에서는 많은 승리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땅을 완전히 소유하고 즐길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아파트와 새로운 차를 샀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돈은 다 지불하고 전 주인이 열쇠도 주었습니다.
여러분이 받은것을 여러분은 언제 누릴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그 열쇠를 여러분의 주머니에 계속 넣고 다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실제로 그 아파트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것을 누릴수 없습니다.
그리고 더한것이 있습니다. 그 전에 살고 있던 사람이 그 아파트에서 나가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완전히 그것을 누릴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을 이스라엘 백성이 누리기 위해서 그들을 다 멸할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 명령의 중요성을 여러분은 이해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사사기에서야 그들이 그 땅을 실제적으로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이번시간에 자세하게 다루지 않겠지만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사기에서 그토록 많은 대적들의 억압 가운데 있었던 것을 이해할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신명기 7장에서 하나님께서 그 대적들을 점차 쫓아내실것을 말씀하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25절에 기록된 것처럼 우상들의 신상들을 불사르고 멸할것이 명령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받게 되는 교훈은 이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누리고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행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하실 일을 하십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 해야할 책임을 행해야 합니다.
예를들어 육신의 정욕을 위해서 기회를 주어서는 안됩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범하게 된다면 그 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삶에 있어서 여러가지 불평들을 겪게 된다 할찌라도 하나님께 불평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여러가지 잘못되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범하기 쉽습니다.
우리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은 항상 우리의 책임이고 잘못입니다.
또한 우리는 사단의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가 비록 사단의 직접적인 공격을 받지 않을때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전체가 사단의 권세아래 있는 영역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세번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것을 신명기 8장에서 보게 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신8:2, 개역한글)
제가 영국 런던에서 차를 운전하게 될때 이러한 경험을 한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위성으로 길 안내를 받는 네비게이션은 참으로 유용한 도구 입니다.
그런데 이 네비게이션이 잘못된 길을 가르칠때도 있습니다. 제가 네비게이션을 따라가지 않을때에 네이게이션은 재 탐색을 하게 됩니다. 제가 올바른 길로 돌아올때까지 계속해서 그 경로를 안내 합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정로를 안내하는 네비게이션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돌아오라고 말씀하실때가 있습니다.
젊은 성도님들이 맨 처음 구원받았을때 그 다음단계는 침례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와같이 젊은 성도님들께서는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지를 구할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 여러분이 가져야 할것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가 하나님의 성령입니다. 두번째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두가지는 결고 반대되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고 계시다면, 그리고 여러분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것을 하고 계시다면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실제적인 두가지 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젊은 부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만난 사람이 구원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결혼하고자 하는 상대가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믿지않는자와 멍에를 함께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안에서 그와같이 결혼할수 없습니다.
한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모임에 나오지 않는 성도가 있습니다.
구원받았다 할찌라도 모임에 있지 않은분과 그리스도안에서 결혼할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같은 관계속으로 여러분은 인도하고 계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결혼한다는것은 구원받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안에서 결혼한다는 것은 단지 구원받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와같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벗어나서 다른것을 추구하고 있다면 그것은 결국 분리되는 가정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두번째 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중에 여러분의 직장에 대해서 이직에 대해서 고민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 얻으려는 직장이 여러분에게 더 많은 봉급을 제시합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추구하는것 그 자체가 나쁜것은 아닙니다. 부요하고 부자가 되는것 자체가 나쁘지 않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그가 가진 부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렸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얻으려고 하는 직장이 여러분은 모임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여러분이 그 전에 하고 있었던 것처럼 성도님들이 모이는것을 어렵게 하는것이라면 그 또한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강조의 말씀을 드리는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항상 희생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행한 사업을 통해서도 그것을 배웠습니다.
더 큰 고객을 유치하는 것에 대해서 항상 유혹을 느낍니다. 그리고 보다 더 많은 돈을 얻을수 있다는 것에 유혹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또한 알고 있는것은 제가 그것을 취하는 것으로 인해 제가 지역모임에서 행할수 있는 반경이 좁아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 네비게이션을 따르게 될때,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더 순종할것인지를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격려를 받게 되는것은 우리가 비록 잘못된 길을 들어선다 할찌라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다시 올바른 길로 인도해 가실수 있습니다.
네번째로 그들이 기억해야 하는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격동시켰다는 것입닏다.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케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 (신9:7, 개역한글)
그들은 이제 그들이 과거 세대가 하나님을 격동 시키고 하나님께 불순종 했던 것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가르치시는데 두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입니다. 제가 말씀드린대로 이 말씀에 순종할것을 말씀하십니다.
여기 두번째 우리를 가르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를 징계하시는 손으로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에서는 이 징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그와같은 징계를 하시는 것입니다.
불순종한 아이들이 아버지께 징계를 받는것처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징계를 받지않고 자라는 아이들은 훌륭하게 자랄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징계를 통해서 우리가 가르침을 받을때는 우리가 고통스러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것이 더 좋은길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여러분과 저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자주 이러한 방법으로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주님의 만찬에 대해서 이렇게 배웠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와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중에 약한 자들이 있고 자는 자들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징계의 손을 고린도 성도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왜냐하면 굉장히 중요하게 기억해야 하는것을 말씀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상황에 대해서 평가하는데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의 어려움과 그들의 병과 상황만으로 그들의 잘못을 쉽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와같은 것을 징계로 그들에게 주고 계신다. 그것은 우리가 말해야 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만 말할수 있습니다.
많은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이러한 시험과 어려움을 통과해 나갔습니다. 그들의 불순종 떄문에 그러한 어려움이 닥친것이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그들이 얼마나 신실하고 충성된지를 그러한 것을 통해서 나타내주고 계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하는 것은 16장에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유교병을 그것과 아울러 먹지 말고 칠일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아울러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속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너의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신16:3, 개역한글)
여기에 그 유월절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그 무교병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 장에서 세개의 절기가 꼭 지켜져야 하는것을 보게 됩니다. 유월절과 오순절과 장막절입니다.
이것들이 모두 우리에게 말해주는것은 항상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줍니다.
우리가 특별히 유월절을 통해서 기억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가 애굽에서 나오던 시각 곧 초저녁 해 질 때에 드리고 (신16:6, 개역한글)
여기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장소에 대해서 언급이 됩니다.
이제 남은 15분의 시간동안 두번째 주제인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신 한 장소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마태복음 18장에서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실때에 그것은 미래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보게될때, 제자들이 이 새로운 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은 우리 주님께서 내려보내신 성령님에 의해서 이해하게 될대까지 교회의 전체 의미에 대해서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 교회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는 원리 '그분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교회이든지 이스라엘 백성이든지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두신곳에 모이게 하신 것입니다.
교회라는 단어는 에클레시아이고 그것을 '불러내어진 무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스라엘과 교회에 대해서 분명히 구분해 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단순하게 말해서 그리스도를 거절하였고 흩어지게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이 한 무리를 이끌어 내십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해줍니다.
이는 교회의 모든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믿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구성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진리 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에 있는 믿는자들이 지역교회에 모이게 하는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보게 됩니다.
이 지역교회는 단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축소형이 아닙니다. 여기에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첫번째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들어가는것은 단지 구원으로 들어갑니다. 그분의 몸인 교회에 들어가기 위해서 침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상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믿는 순간 그리스도의 몸의 구성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가 병상에서 나와 침례를 받을수 없다 할찌라도 그리스도의 몸의 구성원이 되는것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역교회에서 말하고 있는 사도행전 2장의 말씀을 보게 될때 <하나님의 말씀을 기쁘게 받은 자들이 침례를 받고>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의 차이점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서 우리가 출교되는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안전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역교회 안에서 어떤 신자가 징계를 받게 될때 그는 지역교회 밖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에서는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그 촛대를 옮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지역교회의 차이점을 잘 아시기 바랍니다.
잠깐 신명기 12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4 너희 하나님 여호와에게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
5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신12:4-5, 개역한글)
첫번재 우리가 지역교회의 장소에 대해서 배우게 되는것은 그것은 구별의 장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2절에서 다른 이방 민족들의 장소를 모두 파멸할것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 민족들이 섬긴는 신을 다 훼파할것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들의 여러 장소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그들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은 단수인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세상의 여러 모든 장소와는 달리 구별된 장소인 것입니다.
이 지역교회는 그래서 세상과는 구별된 불러내어진 무리들이 모인 장소인 것입니다. 구원과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불러 내어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복음주의적인 교회에서도 많은 분들이 아직 구원받지 못한것을 볼때 슬픕니다. 그리고 세상과 전혀 구별된 모습을 갖고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교회는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장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과 구별될뿐만 아니라 세상의 이름들과도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서 그 이름을 그곳에서 멸하라 (신12:3, 개역한글)
<그 이름을 그곳에서 멸하라>
이 장소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이 있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두신곳을 택하셨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줍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그는 이와같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내가 어느 교회를 선택해서 들어가야 합니까?"
그것에 대한 답변은 당신이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택하셨고 그 교회는 단지 하나입니다.
이 모임이라는 것은 교회의 다른 형태중 대안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서울에 있는 여러 형태의 모임을 방문하고나서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될때 하나님의 교회는 단지 하나만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때 오직 혼돈만이 거기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될때 오직 하나의 본만이 여기 제시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교회도 아니고 여러분의 교회도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모임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장소에 있는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어떤 다른사람의 이름으로 모인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떤 그룹의 협회의 이름으로 모인것이 아닙니다. 어떤 자선단체 이름으로 모인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어떤 신학회의 종파의 이름으로 모인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것입니다.
오직 그분이 그분 이름을 두시기 위해서 택하신 장소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나의 선택만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지역교회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역교회에 들어가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그리고 지역교회는 바로 하나님이 그 이름을 두신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12장에서는 이 장소에 대해서 몇가지 것들을 더 말해주고 있습니다.
11-12절까지는 그 장소가 섬김의 장소임을 봅니다. 그들이 희생과 제사를 가지고 오는 장소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섬김은 그분의 이름이 있는 그 장소에서 행해지게 됩니다. 바로 그것은 그분의 일을 행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찬양의 희생제사를 드립니다. 또한 복음을 전파합니다.
또한 떡과 잔을 통해서 이 교제를 표현합니다. 그리고 13절에 나와 있는것처럼, 이 장소가 특별한 장소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13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든지 번제를 드리지 말고
14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의 택하실 그곳에서 너는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찌니라
(신12:13-14, 개역한글)
맨처음 가나안땅에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오게 될때 성막은 실로에 있었습니다.
바로 거기에 그분의 이름이 있었고 그분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역교회로 모이는것에 중요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모일때에 그분의 임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교회의 교제는 특별한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여기로 특별히 모입니다.
바로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이는 것을 할때에 어떻게 모이는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보게 될때, 주님의 만찬은 우리가 모일때에 행해지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그들이 각자 집에서 행하는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어디 휴가가서 따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이 지역교회로 모일때에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집에서 따로 모이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는 때입니다.
이 모임이 나위어져 각자의 그룹의 집에서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각 성도의 집에서 교제를 나눌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지역교회로 모이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나누어진 다른 소규모 입니다. 우리가 맘대로 정해서 그렇게 모이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두시기 위해서 택하신 곳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자들만 따로 모이지 않습니다. 또한 여자들만 따로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여 그분의 임재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화요일에 출애굽기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보시길 바라는것은 21절에 있습니다.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멀거든 내가 네게 명한대로 너는 여호와의 주신 우양을 잡아 너의 각 성에서 네가 무릇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먹되 (신12:21, 개역한글)
만약에 여러분이 무엇을 희생제사로 드리기 위해서 가져오게 될때, 그 서막이 그들에게 있어서 너무 멀었습니다.그들은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오는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들이 희생제사로 드릴것을 돈으로 바꾸어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두신곳이 멀찌라도 여전히 주님께 나아가는 것을 중요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신16:16,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 장소에 모일때에 그들은 어떻게 나와야 합니까?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라고 얘기하십니다.
이 말씀의 교훈은 이것입니다. 여기에 교훈이 두가지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얼마나 멀리까지 갈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장소까지 가기까지 얼마나 멀리 갈수 있습니까?
그리고 두번째로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것을 그 손에 들고 갈수 있습니까?
이번 주일의 만찬을 위해서 이와같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손에 들고갈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드릴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명기가 말해주고 있는 교훈입니다. 다섯가지를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야 하는 한 장소를 신명기는 우리에게 또한 말합니다.
제가 모세오경을 마치면서 이런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민수기 6장을 읽는것이 참으로 유익할 것입니다.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찌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민6:24-27, 개역한글)
여기에는 참으로 위대한 복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들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주시기를 원합니다.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게 될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복들을 내려주시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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