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장승훈 형제님(요약)

다윗과 므비보셋의 관계로 보는 하나님의 은혜

박이레 2022. 5. 29. 12:30

< 다윗과 므비보셋의 관계로 보는 하나님의 은혜 > 2022년 5월 29일 일요일(요약1) / 장승훈 형제님

"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사울의 종 하나가 있으니 그 이름은 시바라 저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저에게 묻되 네가 시바냐 가로되 종이 그로소이다 왕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시바가 왕께 고하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이니이다 왕이 저에게 묻되 그가 어디 있느냐 시바가 왕에게 고하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다윗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저를 데려오니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서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가로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대답하되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찌니라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왕이 사울의 사환 시바를 불러서 이르되 사울과 그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저를 위하여 밭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을 공궤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 다섯이요 종이 스물이라 시바가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온갖 일을 종에게 명하신대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 하니라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 므비보셋에게 젊은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 무릇 시바의 집에 거하는 자들은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그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삼하 9:1-13).

오늘은 므비보셋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므비보셋은 다윗과 사귐 가운데 있었던, 요나단의 아들이었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절뚝발이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의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 나이 다섯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하더니 급히 도망하므로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 (삼하4:4, 개역한글)

므비보셋은 원래 절뚝이가 아니었는데 사울과 요나단의 죽은 소식을 들었을때 유모가 그를 급히 안고 도망하다가 떨어뜨려서 절뚝이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었을때 사울과 그 집안을 완전히 진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울의 집안에 남은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진멸하려 하였지만 다윗은 사울의 집의 남은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려 합니다.
므비보셋을 저희들과 연결하여 생각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므비보셋은 원래 절뚝이가 아니었지만 그 유모가 급히 도망하다가 절뚝이가 되었습니다. 인간도 원래 죄가운데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원래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할수 있게 창조되었지만 간교한 뱀으로 인하여 범죄해 타락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영광과 존귀 가운데서 떨어졌습니다. 저희가 그와 같은 사람입니다. 원래는 온전했지만 떨어져 절뚝발이가 된 므비보셋과 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신 대로 걸어갈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하 4장 4절에서 읽었던 것처럼 유모가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가 떨어졌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은 블레셋에 의해서 죽게 되고 그 공포가 유모와 므비보셋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가 그들에게 찾아왔고 유모는 아이 므비보셋을 안고 급히 도망한 것입니다. 그리고 로드발이라는 지역에 가서 숨어 지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희가 어떤 것을 알고 있냐면, 사울이 죽이려 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므비보셋이 피해야 하는 것은 로드발이 아니라 다윗을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의 아비는 다윗을 선대하였지만 그 할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하였기 때문에 므비보셋은 로드발로 피한 것입니다. 로드발의 뜻은 초목이 없는 황무지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죽음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라고 할지라도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것이기에 완전한 공포가 없다고 할수 없습니다. 저희가 아무리 도망가려 해도 죽음은 우리를 따라와서 우리를 붇잡고 죽음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사망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잊기 위해서 열심히 일합니다.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열심히 이룹니다. 혹은 종교 생활에 심취해서 죽음을 잊고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같은 모든 것들은 죽음의 공포를 피할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결국 죽음을 피해야 하는 곳은 하나님뿐입니다. 마치 므비보셋이 로드발로 도망갔지만 그가 결국에는 다윗 앞에 가서 온전한 구원을 얻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 친구들이지만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은혜를 구한다면 더 합당하게 인생이 세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삼하9:1, 개역한글)

다윗은 애초에 이렇게 은혜를 베풀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므비보셋 쪽에서 먼저 나아와 은혜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먼저 인생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다윗이 찾는 사람이 자신에게 잘해줬던 사람이 아닙니다. 사울의 집은, 사울은 다윗을 죽이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계속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힘썼습니다. 그 사울왕가는 망해버렸고 일부 도망한 사람은 숨어있습니다. 그 사람을 찾아서 호의를 베푼다 한들, 그는 그 은혜를 갚을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오신 것입니다.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삼하9:8, 개역한글)

이 말이 그냥 자기를 낮추려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기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때에 저희가 그럼 부름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기 위함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하였지만 다윗은 오히려 왕이 되어서 사울의 자손에게 은혜를 베풉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과 닮아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조건적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요나단을 인하여"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풉니다. 사무엘상 20장 말씀을 읽어본다면 그와 같은 말씀을 볼수 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이 베푼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며 사울의 자손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그 은혜를 받는 사람의 상태나, 신분을 보지 않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옆에 달린 강도는 주님의 은혜를 받을만한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님의 은혜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므비보셋은 그 아비 요나단으로 인하여 은총을 받게 됩니다. 이것을 좀더 일반화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죄인은 은혜를 받을만한 어떠한 근거가 그 안에 없습니다. 그 근거는 죄인의 밖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이 친밀하고 서로를 위하는 관계에 있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은 그와같이 친밀한 교제 가운데 계셨고, 아드님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이땅 가운데 육체를 입고 임하셨습니다. 또한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셨고, 돌아가실때에 다이루셨다고 외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생이 져야 할 모든 죄값을 주님께서 다 치루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죽으신지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이 구원이 더 확실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위해서 간구하시고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와 같은 인생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평소 생각이나 그 행동을 보면 죄임임이 분명히 드러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굉장히 착해보이고 천진난만해 보이지만 그 마음의 죄의 본성을 부인할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아드님을 인해서 베푸시는 은혜는 저희가 부인할수 없습니다.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2:8-9, 개역한글)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그와같은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다윗보다 더 큰 위대하신 왕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와같은 은혜를 베푸시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