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모임(요약글)/장승훈 형제님(요약)

사마리아를 전쟁의 굶주림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박이레 2022. 6. 12. 13:15

< 복음 : 사마리아를 전쟁의 굶주림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 2022년 6월 12일 일요일(요약2) / 장승훈 형제님

24 이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25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합분태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26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통과할 때에 한 여인이 외쳐 가로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27 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28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29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
30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저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31 왕이 가로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날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찌로다 하니라
(왕하6:24-31, 개역한글)

저희가 수요일에 하는 성경읽기 시간에 열왕기 말씀을 공부하는데, 저희들이 공부했던 내용입니다. 성도님들은 잘 기억이 나실 것이고, 주일학생들도 들은 내용이기에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고 실제로 있었던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아람이라는 나라가 군대를 이끌고 북이스라엘을 포위한 것입니다. 그 어떤 식물도 들어갈수 없는 상태를 지속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성 안에 있는 식물로 버틸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성 중이 크게 주리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주린 적이 별로 없습니다. 옛날에는 굶주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사마리아 성중에도 큰 주림이 있었습니다.
나귀는 부정한 짐승이기에 이것이 거래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귀머리가 은 팔십세겔에 거래되고 있는 것입니다. 쳐다보지도 않던 것이 거래되고, 합분태는 비둘기 똥입니다. 비둘기 똥을 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먹을게 하도 없다보니 비둘기 똥도 거래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가치없는 것을 정말로 큰 대가를 주고 구해야 하는 상황 가운데 놓인 것입니다. 오늘날 저희들이 사는 시대 또한 이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희가 무한 경쟁 가운데 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커서는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합니다. 거기서 만족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저희들에게 절대 만족을 주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들은 그런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가족들을 위해서 산다고 해도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저희들 일부는 알고 있고 또 일부는 삶을 살면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저희들의 영적인 배를 배부르게 할수 없는 양식인 것입니다.

여기서 보았던 것처럼 주림이 극에 달하니까 자기 자녀를 삶아서 먹는 것입니다. 자녀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어미가 나를 삶아서 먹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끔찍한 상황입니다. 저희들이 뉴스에서 흉악한 범죄들을 보고 혀를 차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흉악범과 얼마나 다른 사람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마리아 성중에 임했던 극한 주림과, 그로 인해서 벌어진 참상은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왕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엘리사를 저주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음으로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회개하기보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저주합니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하나님께서는 일시적으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려고 아람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오늘날 인생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심판하시는 방법은 그대로 내어버려두는 것입니다. 그들의 상실한 마음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손길로 인생들을 제어하지 않으실때 인생들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았을때 말씀에서처럼 자녀를 삶아먹게 되는 것입니다.
저희 또한 저희의 정욕대로 인생을 살았다면 뉴스에 나온 흉악한 범죄자들과 다를 것이 없는, 그들이 범한 범죄를 충분히 저지를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악해질수 있는지를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이는 특별히 악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상태에 누구나 이를수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 때에 엘리사가 그 집에 앉았고 장로들이 저와 함께 앉았는데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내었더니 그 사자가 이르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자식이 내 머리를 취하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 그 주인의 발소리가 그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하고 (왕하6:32, 개역한글)

왕이 엘리사를 죽이려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장로들과 앉아있습니다. 앉아있다는 것을 볼 때에, 사마리아의 참상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가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고 참된 만족을 아는 사람의 모습은 같은 상황, 시대에 있지만 너무나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에 자기를 죽이러 온 사람에게 엘리사가 말합니다.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왕하7:1, 개역한글)

6장에서 나귀머리 하나에 은팔십세겔이고 합분태 사문의 일갑에 은 다섯세겔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에 고운가루 한 스아에 한세겔이 되는 것입니다.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있는 이 상황 가운데 음식이 들어올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믿는다면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한 장관이 이것을 어떻게 믿을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우리가 듣는 복음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말씀을 듣지만, 우리가 마음의 잘못이라든지, 그것이 어떻게 죄가 된다는 말인가? 나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인데, 내가 하나님을 좀 모른다 한들, 내가 지옥에 간단 말인가? 나는 이것을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 이천년 전에 온 예수라는 사람이 내 대신 죽었다 한들 어떻게 내 죄가 사해진다는 말인가? 이와 같은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받아들일수 없다고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왕하7:2, 개역한글)

이와같은 판결은 주님의 백보좌 심판대에서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루어질 일입니다.

3 성문 어귀에 문둥이 네 사람이 있더니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4 우리가 성에 들어가자고 할찌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찌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두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하고
5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황혼에 일어나서 아람 진 가에 이르러 본즉 그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6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저희로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7 황혼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8 그 문둥이들이 진 가에 이르자 한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서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왕하7:3-8, 개역한글)

문둥이 네사람이 있었는데요. 문둥이 네사람은 죄를 진 모든 인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문둥병은 죄를 나타내고 4라는 숫자는 인류를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사마리아 성중이 굶주렸기에 문둥이들에게 줄 음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하나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람 진으로 갔습니다. 갔을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군대로 아람 군대를 다 쫓아내셨습니다.
문둥이 네사람은 혹시나 우리가 아람 진으로 가면 목숨을 건질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갔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군대로 아람 군대들을 다 내쫓으신 것입니다. 그들이 황급히 도망하느라 말과 장비를 다 두고 도망했습니다. 저희가 전혀 모를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천년전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사단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다는 것으로 승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실때 인생의 죄를 지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이루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인생의 죄를 다 담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죄가 해결되면 사망은 힘을 낼수 없는 것입니다.
저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죄를 가지고 죽게 되었을때 그 이후에 있는 심판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을때에 죽음은 우리의 삶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단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동일한 승리가 하나님의 진과 아람의 진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우리 주님의 승리도 일방적인 것입니다. 이 전투로 인해서 문둥이들은 구원을 얻고, 동시에 사마리아도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만일 문둥이들의 결정이 없었다면, 사마리아는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군대가 없음에도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문둥이들은 불확실한 가능성을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복음을 전할때에 불확실한 가능성을 가지고 전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과 그로 말미암은 구원의 결과를 제시해 주시면서 분명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오라고 말씀해주십니다.

문둥이는 무엇을 얻었습니까? 금과 은과 의복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에서 죄사함만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말씀안에 담겨 있는 주님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이와 같은 귀한 역사가 이 복음을 듣는 어린 영혼들에게도 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