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마가 믿음의 고백을 할수 있던 이유 > 2022년 5월 22일 일요일(요약1) / 장승훈 형제님
24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20:24-29, 개역한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20:31, 개역한글)
요반복음의 기록 목적이 20장 31절에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도마에 관한 이야기도 읽었습니다. 도마의 이야기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 저희들에게 제시해주신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저희들이 요한복음을 읽고 전하는 이유가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20:25, 개역한글)
확실한 것을 나에게 제시하지 않는다면 나는 절대로 믿을수 없다. 믿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도마의 모습입니다. 며칠후에 여드레를 지나서 주님께서 다시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요20:26, 개역한글)
제자들이 집안에 있고 문들이 닫혀 있었는데 주님께서 그 가운데 오셨습니다. 부활하신 몸으로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자신을 보이시고 도마가 말했던 것을 그대로 보이십니다. 그리고 도마는 고백합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20:28, 개역한글)
도마는 예수님을 나의 주 뿐만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주일뿐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라고 할때에 두가지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자신과 하나님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 '나'라는 주체는 도마 자신입니다. 그는 의심많고 확실한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는 도마와 하나님이 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는 대단히 결합되기 어려워 보이는 것인데 어떻게 연결되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20:25, 개역한글)
주님의 손에 못이 박혀서 십자가에 매달리셨고, 또 옆구리에는 창에 찔려서 창자국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그 상처에서 물과 피가 다 흘러 나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손가락을 넣어보고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학생들은 복음을 들을때에 일부 아직 못믿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마는 믿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말로 들었습니다. 그에 대해서 도마는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는 대단한 불신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 그가 나의 하나님, 나의 주시라고 말한 것입니다.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시84:1-4, 개역한글)
시편 기자가 참새와 제비를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말합니다. 참새와 제비를 말한 것은 하나님과 같이 거대하고 영존하시고 만문을 지으신 거대하신 분 앞에, 참새와 제비를 말하면서 시편 기자가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은 미물인 것을 말한 것입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참새가 얼마나 팔리는지, 가치를 얼마 치지 않는 미물인 것을 말씀합니다. 시편기자는 그와같은 미물에 자기 자신을 투영시켜서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이 미물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막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번제단입니다. 제사장이 양과 염소를 잡아서 번제단에서 피가 흘려지고 불로 태워지는 장소입니다. 그 제단을 근거로 해서 제비와 참새와 같은 미물도 하나님 앞에 거할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근거없이 크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할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주장을 할때에는 그 말에 대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시편기자는 주의 제단을 근거로 미물도 하나님 앞에 은혜를 얻을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20:27, 개역한글)
그냥 도마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셨기 때문에 너무 감사한 나머지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도마는 주님의 손에 난 못자국을, 옆구리에 난 창자국을 본것입니다. 이것은 시편기자가 주의 제단을 보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을수 있는 자인 것을 말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전에는 살아계셨지만 잠시 죽임을 당하셨던 주님을 본 것이고 구약에 계속 제시되었던 유월절 어린양, 고난 받으신 어린양을 도마는 본 것입니다.
인간적인 호의를 바탕으로 주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수 없는 것입니다. 수많은 번제단의 제물의 실체되신 주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사시다가 정하신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시고 죽음을 당하신 것을 도마는 본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람은 사도요한입니다. 생명을 얻는다는 것, 하나님의 아드님을 믿는다는것은, 결국 가장 중요한것은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이 요한복음의 목적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을 믿게하고 그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말하기 직전에 보여주는 것이 도마의 불신과 도마의 믿음인 것입니다.
도마가 더 주님의 직접적인 상처를 보는 가운데 믿음을 고백하지 않고 제자들의 증거를 통해서 믿었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20:29, 개역한글)
도마는 주님의 상처를 보고 나를 위해서 고난 당하신 것을 알고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말씀을 통해서,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알고 믿는 것이 가장 복된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위해서 요한복음이 기록된 것입니다.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10:14-15,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의 관계를 통해서 저희들에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신대로 독생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저희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드님과의 관계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를 그대로 가져다가 주님과 저희와의 관계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을 믿은 저희들을 양으로 불러주시고 계십니다. 그럴때에 어떻게 답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까?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시편기자는 자신을 참새로 비유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더 정확하게 안다고 한다면 참새만도, 벌레만도 못한 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저희를 십자가를 근거로 해서 내 양이라고 부르시고 그분의 양들을 모으십니다.
우리 믿음이 그렇지 않은데 억지로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씀을 지속적으로 듣고 들음으로 말미암은 믿음을 얻기를,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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