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열왕기하 9장 21-29절(요약)
21 요람이 가로되 메우라 하매 그 병거를 메운지라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쌔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22 요람이 예후를 보고 가로되 예후야 평안이냐 대답하되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23 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아하시야에게 이르되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24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기어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살이 그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저가 병거 가운데 엎드러진지라
25 예후가 그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취하여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 아비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 아래 같이 저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2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젯날에 나봇의 피와 그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 시체를 취하여 이 밭에 던질찌니라
27 유다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동산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쫓아가며 이르되 저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저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28 그 신복들이 저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성에서 그 열조와 함께 그 묘실에 장사하니라
29 아합의 아들 요람의 십 일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
(왕하9:21-29, 개역한글)
[ 21-29절 성경읽기 ]
- 최재홍 형제님 사회 : 북왕국과 남유다는 연혼으로 잘못된 길로 같이 동행했다. 그리고 오늘 공부하는 구절에서 두 왕은 예후의 손에 죽게 된다.
- 최재홍 형제님 : 22절에 보면 예후가 요람을 보고 "네 어미 이세벨"이라고 말한다. 이세벨은 아합이 왕으로 있을때도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이 있었다. 그리고 아합의 죽음 이후에도 그녀는 북왕국 안에서 상당한 권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 이는 바알을 숭배하는 우상숭배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음행을 행하는 것과 같다. 또한 술수를 생각할때, 술수는 마술을 뜻하는 단어인데,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타락하게 하는 이세벨의 영향력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된다.
- 김민원 형제님 :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이 구절을 보면 이 땅이 마치 나봇의 토지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영어성경에서는 "나봇의 토지였었던"이라는 과거형이 쓰였다.
요람은 이 땅이 나봇의 토지를 빼앗은 거라는 것을 인식 못하고 그냥 아버지께로 받은 땅으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그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지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예후가 그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취하여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 아비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 아래 같이 저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왕하9:25, 개역한글)
"네가 기억하려니와"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으러 갈 때에 예후와 빗갈이 아합을 따랐던 때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서 하신 예언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엘리야의 예언을 성취하였다.
- 전의석 형제님 : 예후를 기름 부을때에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하게 된다.
요람이 예후를 보고 가로되 예후야 평안이냐 대답하되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왕하9:22, 개역한글)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또한 하나님의 종들의 피와 선지자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주리라고 말씀하셨다. 유다왕국과 북이스라엘은 이 시대를 제외하고는 항상 전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사람의 관점으로 보았을때 연혼으로 나라가 안정되어 보였다.
우리의 삶에도 외형적으로 안정이 있고 더 편하게 사는것처럼 보일수 있지만 이세벨의 악처럼 하나님께서 용납하고 계신 것이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길이 참으시다 정하신 시점에 심판을 이행하셨다.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을 용납했다. 이세벨의 가르침을 받고 성도들로 행음하게 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세벨이라고 하는 특정한 사람은 없지만 세상의 영향력이 우리의 삶 가운데 들어올수 있음을 생각한다. 그러한 것들을 제하지 않고 용납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날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
- 김대현 형제님 :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요람은 원래 아람왕 하사엘과의 전투중에 부상을 입고 이스르엘로 돌아오게 된다. 사실 그는 하사엘에게 죽었을수도 있다. "하사엘의 칼을 피한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이 말씀을 생각하게 된다.
요람은 예후를 맞이했다. 그런데 그 만나는 장소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였다. 참으로 이 모든 상황을 이끌어가신 하나님의 섭리에 놀라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 예언하신 모든 것을 말씀하신대로 이루셨고 그대로 심판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틀리지 않고 실행이 된다.
- 김윤철 형제님 : 27절에 아하시아의 죽음이 나온다. 예후가 그를 죽인 이유는 아하시아가 아합의 집과 연혼 관계에 있었던 혈족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보복을 당할 것이 두려웠던 예후는 그를 죽인 것으로 보인다.
만일 아하시아가 요람을 문병오지 않았다면 그는 예후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1:1-2, 개역한글)
참으로 복된 삶은 세상의 인연을 쫓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쫓는 삶이라는 것을 교훈받게 된다.
- 김보영 형제님 : 21절 말씀에서 요람과 아하시야가 자기를 죽이러 오는 예후를 만나러 가고 있다. 그들이 예후를 만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지만 그들은 그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 아합을 따라서 갖은 악행을 행하고 있었지만 자기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이 세상도 또한 재림하실 예수님을 앞두고 있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이 세상의 심판자로 오시는 것이다. 그렇기에 요람과 아하시야의 예가 우리와 전혀 무관치 않음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교회는 세상이 심판받을 때에 그와 같이 들어가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상급의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부끄러운 구원을 받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 전의석 형제님 : '므깃도'라는 장소를 교제하고 싶다. 예루살렘 북쪽에 있는 곳인데 아마겟돈과 므깃도가 동일한 지명으로 되어 있다. 아마겟돈은 나중에 주님을 반대하는 군대들을 주님께서 크게 패하게 하시고 실패하게 하실 곳이다.
유다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동산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쫓아가며 이르되 저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저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왕하9:27, 개역한글)
므깃도에서 굉장히 많은 전쟁이 일어났다. (기드온, 드보라) 요시아라는 훌륭한 왕이 있었다. (역대하 32장 2절) 그는 므깃도에서 화살을 맞고 죽었다. 그래서 예레미아가 요시아를 위해서 애가를 지었다. 동일하게 유다왕이 므깃도에서 실패를 경험한다.
주님께서 아마겟돈에서 모든 대적을 훼파하시고 승리하시는 날이 또한 올 것이다. 참으로 말씀이 오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같은 장소에서의 계속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시는 것에 그날이 너무나 고대가 됨을 느낀다.
- 최재홍 형제님 : 25절에 보면 예후가 쏜 화살에 요람은 죽었다. 예후는 장관 빗갈에게 요람의 시체의 처우를 일임한다. 그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떠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해서 선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해서 선포되고 있다. 우리는 삶의 기로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지, 아니면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을 따라 선택할지를 결정할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선택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 김보영 형제님 : 요람과 아하시야 둘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 우상을 섬기고 악을 행했던 왕이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 이후는 큰 차이를 보인다. 요람의 시체는 길에 던져져 무덤을 얻지 못했지만 아하시아는 다윗의 묘실에 들어가 장사된다.
그 신복들이 저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성에서 그 열조와 함께 그 묘실에 장사하니라 (왕하9:28, 개역한글)
그리고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은 아하시야가 덜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과 그의 아버지 때에 하나님을 신실히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하시야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다음 세대를 생각할 때에 어때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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