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열왕기하 9장 14-20절(요약)
14 이에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으니 곧 요람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아람 왕 하사엘을 인하여 길르앗 라못을 지키다가
15 아람 왕 하사엘로 더불어 싸울 때에 아람 사람에게 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던 때라 예후가 이르되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전하러 가지 못하게 하라 하니라
16 예후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요람이 거기 누웠음이라 유다 왕 아하시야는 요람을 보러 내려왔더라
17 이스르엘 망대에 파숫군 하나가 섰더니 예후의 무리의 오는 것을 보고 가로되 내가 한 무리를 보나이다 요람이 가로되 한 사람을 말을 태워 보내어 맞아 평안이냐 묻게 하라
18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만나 가로되 왕의 말씀이 평안이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가로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돌이키라 하니라 파숫군이 고하여 가로되 사자가 저희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
19 다시 한 사람을 말을 태워 보내었더니 저희에게 가서 가로되 왕의 말씀이 평안이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가로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돌이키라 하니라
20 파숫군이 또 고하여 가로되 저도 저희에게까지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의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
(왕하9:14-20, 개역한글)
[ 14-20절 성경읽기 ]
- 장승훈 형제님 사회 : 지난 시간에 교제했던 것처럼 예후가 요람을 반역할 계획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리고 선지자의 생도 중에 한 명이 그 말을 했을때에 그것이 주변에 전달이 되고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받는 것을 보게 된다.
지리적 배경을 살펴 볼 때에 예후가 주변 동료들과 있는 곳은 길르앗 라못이다. 그리고 길르앗 라못에서 요람이 하사엘과의 전투 중에 부상을 당하고 이스르엘로 가 있는 상태이다.
요람은 유다왕 아하시야의 삼촌이다. 두 왕가가 깊은 교제 가운데 있었고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굉장한 배교로 보신다는 것을 이후에 나온 사건을 통해서 생각해 볼수 있다.
- 전의석 형제님 : 예후라는 왕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가 반역을 저지르며 제일 먼저 한 것은 이스르엘로 말을 매우 빠르게 몬 것이다. 그는 왕으로 등극하기 위해서 전혀 지체하지 않았다.
16 가로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
17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 남아 있는바 아합에게 속한 자를 죽여 진멸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왕하10:16-17, 개역한글)
그는 자기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이 부합할때에 굉장히 열심으로 속도감 있게 일을 해내는 것을 보게 된다. 예후의 본성적인 성격은 매우 열정적이고 사내답고 급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아합의 가문을 멸망시키는 것을 직접 하실수 있었지만 예후를 사용하셨다. 예후가 그 일을 하였고 바알을 섬기는 자를 다 멸하고 바알 숭배지를 변소간으로 만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보고 그 말씀을 자기 열정과 자기 성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온유함과 충성으로 해야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
유다왕 아하시야를 죽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요람을 죽이는 날에 더 쫓아가서 아하시야까지 죽이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더 나아간 것이다.
북왕국과 남왕국은 역사상 항상 전쟁이 있었지만 이 시기에는 연혼함으로 매우 가깝게 된다. 이것은 이세벨이라는 여자를 통해서 미쳐진 영향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거짓된 평화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무산되는 것을 보게 된다.
예후를 통해서, 그리고 요람왕과 함께 있는 아하시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 김대현 형제님 : 장관들이 예후를 왕으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때도 예후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은 아합의 집을 멸망시키는 것이었다.
아람 왕 하사엘로 더불어 싸울 때에 아람 사람에게 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던 때라 예후가 이르되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전하러 가지 못하게 하라 하니라 (왕하9:15, 개역한글)
그리고 그것이 철저히 지켜진다. 모든 사람들이 예후가 하는 일에 대해서 공감하고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던 것을 보게된다. 또한 예후는 사자들도 해하지 않고 자기의 부하로 만든다. 한 사람도 왕에게 예후의 반역을 전하지 못하게 했다.
이 말씀을 볼 때에, 모임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져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한 사람이라도 사단의 뜻대로 움직이는 일이 없어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모든 성도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 김보영 형제님 : 예후는 12절에서 선지자의 생도가 전한 말을 장관들에게 전한다. 그리고 그의 말을 장관들은 그대로 받는다. 이를 통해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사람이었음을 생각할수 있다.
예후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을 믿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때 부하들이 신뢰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 진정으로 그 삶이 드려지지 않으면 참 간증이 될수 없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11:1, 개역한글)
- 최재홍 형제님 : 17절에 나와있는 파수꾼을 생각하게 된다. 파수꾼은 단순히 성문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멀리서 다가오는 위험을 알리는 사람이다. 이와 같이 파수꾼처럼 영혼을 위협하는 여러 위험들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깨어 있어야 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5:8, 개역한글)
또한 파수꾼의 일은 다가올 일을 경고하는 일을 한다. 파수꾼은 본 것을 그대로 전한다. 자신의 생각을 더하거나 빼지 않는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하는 것이다.
17절에 또 보면 요람이 사자를 예후에게 보내어 "평안이냐"라고 묻는다. 이 평안은 샬롬으로, 인사를 의미한다. 요람은 다가오는 무리들을 당연히 아군으로 생각하고 전장의 상황을 듣기를 원했다. 요람은 부상으로 인해서 전장에서 오래 떨어져 있었기에 전장의 상황을 궁금해 했다.
- 김윤철 형제님 : 하나님께서는 예후를 선택하셨을뿐 아니라 여러가지 상황들을 예후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놓으셨다. 요람왕이 부상을 입어 이스르엘로 돌아가게 만드셨고 왕이 자리를 비운 틈에 예후가 군을 장악할 수 있게 만드셨다. 또한 요람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유다왕 아하시야가 요람을 보러오게 만드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실뿐 아니라 모든 상황도 뜻대로 주관하실수 있음을 보게 된다.
- 김보영 형제님 : 14절에 보면 아람왕 하사엘과 예후가 나온다. 그 둘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 쓰임 자체가 전혀 다르다. 하사엘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만 사용되었다. 그러나 예후는 공의를 나타내는 하나님의 도구로서 아합의 집에 심판을 내리는 도구로 사용된다. 그러나 심판뿐만 아니라 더 큰 뜻을 품고 그를 사용하시는 것이다. 아합의 집을 심판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역할로 사용하신다.
북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새로운 왕이 등장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새로운 소망이 될수 있는 문제이지만 이방의 왕은 전혀 그렇지 않다.
- 장승훈 형제님 :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하신 평가를 생각하게 된다.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나리라 하시니라 (왕하10:30, 개역한글)
그리고 20절의 후반부를 보면 예후의 평소 성품을 생각할수 있는 구절이 있다. 이를 어떻게 볼지는 방향이 서로 갈라질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합의 집을 심판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잘 지켰다는 것을 볼수 있다.
요람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지만 정작 그는 그 상황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파수꾼의 전한 말을 듣고도 그에게는 자신에게 임박한 심판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자신에게 임박한 심판을 감지할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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