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열왕기하 7장 3-10절(요약)
3 성문 어귀에 문둥이 네 사람이 있더니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4 우리가 성에 들어가자고 할찌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찌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두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하고
5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황혼에 일어나서 아람 진 가에 이르러 본즉 그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6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저희로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7 황혼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8 그 문둥이들이 진 가에 이르자 한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서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9 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찌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
10 드디어 가서 성 문지기를 불러 고하여 가로되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 보니 거기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
(왕하7:3-10, 개역한글)
[ 3-10절 성경읽기 ]
- 김태우 형제님 사회 : 오늘 교제할 내용에는 성문에 앉아있는 네명의 문둥병자들이 나온다. 그들은 진 중에서 함께 생활할 수 없었다. 문둥병자들은 어떠한 경제활동도 할수 없었기 때문에 친인척들이 가져다 주는 음식들로 연명할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안은 친 자식을 잡아먹을 정도로 궁핍했기에 당연히 이들에게 주어지는 음식은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어차피 죽을거라면 아람사람들에게 나아가자고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미 아람 군대들을 큰 소리로 내어 쫓으셨기 때문에 아람의 진에는 아람 군인들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 전의석 형제님 : 이 대목에서 문둥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성안으로, 진으로 들어갈수 없는 문둥병자였다. 또 아람 군대로도 갈수 없는 그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구원받기 전의 내 모습과 굉장히 닮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죽을 날만을 생각하게 되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아람의 진까지 가게 된다.
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찌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 (왕하7:9, 개역한글)
그들은 자포자기하는 가운데 아람 진으로 나아갔고 하나님께서 아람군대를 내 쫓으시고 남은 것들을 문둥병자들이 취하게 된다. 그러던 중에 이 좋은 소식을 진 중에 알리자고 한다. 하나님의 이 큰 은혜를 제일 먼저 받은 자들이 문둥병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먹을것을 충분히 먹고 의복과 많은 것들을 숨겼지만 그 양심에 찔림으로 성 중으로 가서 이 좋은 소식을 알린다.
내가 이 문둥병자들보다 나은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말로나 행함으로나 나타내야 할 책임이 있지 않은가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이나, 근엄한 사람들을 통해서 이 은혜의 소식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소외받고 경멸받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 은혜의 소식을 전하시는 것을 보게된다.
- 장승훈 형제님 : 문둥이가 성경에서는 죄인을 상징하고 또 주변사람들의 도움이 없으면 삶을 유지할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성중의 상황이 자신의 자식을 먹을수밖에 없는 참혹한 상황이다. 그렇기에 문둥이들이 먹을수 있는것이 있을리가 없었다. 그래서 아람진영으로 가서 그들이 살려주면 살고 죽이면 죽으리라고 결정한다. 이 판단은 현 상황을 잘 알고 이성적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 문둥병자들의 모습은 현대의 죄인들을 상징한다고 볼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죄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현재 상황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그들은 멸망을 향해 가고 있고 그들에게는 결국 멸망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가볼까, 하는 것이 문둥병자들이 아람진에 가볼까 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라 할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아람진으로 들어간 시점을 5절에 특정하고 있다. 가보니 아람 진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굉장한 절망과 고통으로 몰아 넣었던 수많은 군대의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 된 연고인지를 6절에서 말하고 있다.
이것은 6장에서 엘리사가 사환의 눈을 열어 보게 한 불말과 불병거가 하늘을 가득 채운 모습과 7장의 모습을 비교한다면 7장이 훨씬 초라한 것이다. 7장은 단지 소리를 내신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매우 강력했다. 그것이 이들에게 은혜가 임하게 된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하심이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고난 당하신 것을 연상되게한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때 주님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 일체 응하지 않으셨고 돌아가셨다. 그런 주님의 죽음은 매우 초라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주님의 죽으심의 결과는 매우 강력한 결과를 가져왔다.
- 김보영 형제님 : 7장 1절의 말씀을 보면 매우 파격적인 예언이다. 나귀머리 하나가 일년치 금액에 해당하는 물가였지만 하루만에 모든 물가가 평소의 물가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한 장관이 이에 대해서 불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성취되는 과정이 이스라엘 백성을 포위하고 있던 아람군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아람군대는 말도 타지 않고 도망갔다. 하나님께서는 말도 탈 생각도 못하고 도망가게 할 정도로 아람군대에게 큰 두려움을 주셨다.
그리고 진에 들어간 문둥이들은 처음에는 자기들의 배를 채운다. 그 후에는 금과 은을 감추고 또 옷을 감춘다. 이런 모습에서 하나님 없이 사는, 죄인들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은 의식주이다. 그러나 그것이 채워지면 재물이나 권력에 대한 욕심이 그 빈 자리를 채우게 된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목적이 이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을 위해서 아주 집착하게 되고, 또 갖게 되면 만족하는 것이 아니고 더 허전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인 삶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시39:6, 개역한글)
사람이 아무리 재물을 많이 쌓는다 해도 그 재물을 자기가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가 죽으면 다른 사람이 그 재물을 쓰게 되는 것이다.
참된 소유는 재물을 갖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 진정한 만족, 진정한 행복, 진정한 소망은 우리 주님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39:7, 개역한글)
우리도 참으로 놀라운 소식을 듣고 구원을 받은 자이다. 그러나 그 소식을 받고 잠잠히 있으면 안된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반드시 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기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자기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복음에 대한 전파, 전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 김대현 형제님 : 구원받기 전에는 내가 하려고 하고 내가 할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할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말씀에 순종해서 나를 포기할때, 나를 내려놓을때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네명의 문둥병자들도 모든 것을 포기할 때에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다.
주님께서는 또한 아람 군대들에게만 병거소리와 말발굽 소리를 듣게 하셨다. 오직 주님께서만 이러한 역사를 행하실수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네명의 뭉둥병자들이 아람진을 노략하는 모습을 보면 인간의 나약한 모습, 또한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던 중에 9절에서 문둥이들은 자신들의 태도를 반성하게 된다.
우리 또한 선민사상에 빠지지 않고 주변에 복된 소식을 전해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나아만 장군이 포로로 잡혀온 아주 작은 계집을 통해서 복음을 들었듯이 또한 북이스라엘을 구원한 소식은 네명의 문둥병자들을 통해서 전해졌다. 하나님께서는 약하고 천대받는 사람들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심을 생각하게 된다.
- 최재홍 형제님 : '황혼에 일어나서' 아람 진으로 갔을때 한 사람도 없었다. 이 말은 1절에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 라고 했던 말을 생각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셨지만 그 어떤 사람도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생각하게 된다.
8절에서 문둥병자들이 자기 욕심을 채우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생각하지 못했지만 9절에서는 반성하며 왕궁에 가서 좋은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이 말씀을 통해서 복음과 구원의 모습을 그림자적으로 보여준다고 할수 있다.
이 문둥병자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죽을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문둥병자들이 나아갔을때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승리하셔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구원을 경험한 자들은 주변에 이 복된 소식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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