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구 성경읽기(요약글)/열왕기하 성경읽기(요약) 완료

성경읽기 : 열왕기하 6장 1-7절

박이레 2021. 9. 29. 20:47

성경읽기 : 열왕기하 6장 1-7절(요약)

1 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한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2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취하여 그곳에 우리의 거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가라
3 그 하나가 가로되 청컨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하소서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가리라 하고
4 드디어 저희와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5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가로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어온 것이니이다
6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무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서 도끼로 떠오르게 하고
7 가로되 너는 취하라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취하니라
(왕하6:1-7, 개역한글)


[ 1-7절 성경읽기 ]
- 김태우 형제님 사회 : 열왕기상하의 시점은 시간적인 순서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6장의 시작은 엘리사와 함께 지내는 생도들의 장소가 좁아졌고 더 넓은 곳으로 이주할 것을 엘리사에게 제안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내용이 있다.@ 우선 1-7절을 교제해주시기를 원한다.

- 전의석 형제님 : 저번주에 교제한 내용을 추가로 교제하기를 원한다. 5장 26절의 내용을 생각하게 된다. 이 내용은 마치 게하시아 나아만을 만날때에 그 옆에서 엘리사가 모든 사실을 보고 있었던 것처럼 말한다.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라고 말한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주님과 함께 한다는 감각이 있다면 게하시와 같은 실수와 연약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도 주님이 주님이심을 드러냈을때 그 마음이 뜨거워 졌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의 삶에서 주님을 감각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실수이며 손실이 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게하시는 이 실수로 인해서 엘리사를 섬길 수 있는 자격을 박탈 당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 뿐만 아니라 그 자손에게도 계속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충성스럽지 못하면 그것이 하나님께 손실을 미칠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오히려 그 사람에게 손실을 미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6장 6절에서는 엘리사와 생도들간의 문제들에 대해서 기술이 되어 있다. 4장에서부터 계속해서 이러한 구조를 보게 된다. 4장에서는 생도 중의 한 사람이 죽고 빚을 떠안고 가족들이 남았다. 그리고 그를 바로 잡아준 것이 엘리사였다. 그리고 솥에 독이 들어갔을 때도 엘리사가 바로 잡는다. 또한 6장에서 도끼날이 빠져서 물에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그것도 엘리사가 바로 잡는다.
모두 주님을 예표한다. 처음에는 기름을 주었고, 두번째는 고운 가루를 주었고, 세번째는 나뭇가지로 능력을 보인다.
6장에 있는 일은 여러 형제님들이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보는 견해가 여러가지로 갈라져 있다. 저는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선지자의 생도들이 거할 만한 처소가 부족해 졌을때 지역교회가 어떻게 세워지는가를 생각하게 되고 그 가운데 도끼가 빠졌을때 그 일이 어떻게 해결되어지는지가 많은 교훈이 된다고 생각한다.
요단에서 이 일이 이루어지는데, 요단은 죽음을 상징하는 곳이다. 생도들은 엘리사와 함께 하기를 요청했고 엘리사는 생도들과 함께 했다. 엘리사를 주님으로 본다면 교회가 주님과 함께함으로 교회를 세워가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도끼날이 빠졌다. 도끼는 나무를 자르는 도구인데 그 도구가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이는 은사를 사용할수 없는 상황, 개인적인 연약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빌려온 것이다. 이는 개인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빌려주신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일을 해결할때에, 엘리사가 새로운 가뭇가지를 자른것이 아니라 있는것을 던졌다. 그럴때에 도끼날이 물 위로 떠오른다.
이처럼, 우리의 회복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없음을 생각하게 된다.
또한 7절에 보면 엘리사가 그 도끼날을 주워서 다시 주는게 아니라 그 도끼날을 잃은 사람이 다시 최하라고 한다. 이는 그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이 계속해서 사용하여 섬기라는 것으로 보인다.
  
- 김대현 형제님 : 지난주에 교제했던 내용을 교제코자 한다. 5장 22-23절을 생각하게 된다. 게하시는 은 한 달란트와 옷 두벌을 달라고 했지만 나아만은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준다. 왜 이렇게 나아만이 주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게하시는 자기가 갖고자 하는 마음에 은 한달란트를 얘기한 것이다. 그러나 나아만이 보기에 두 소년이 왔다는 얘기를 듣고 은 두 달란트를 준 것으로 보인다. 나아만은 구원에 대한 감사함으로 더 풍부하게 준 것을 보게 된다. 우리가 어떠한 은혜를 받을때에 충분한 감사의 표시가 이러한 행동이 되지 않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5장 26절의 내용을 생각하게 된다.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이는 처음에는 게하시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심령이"이다. 그가 아니라 엘리사를 말하는 것이다. 엘리사는 게하시가 나아만을 만날때에 그 상황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 무엇도 숨길수 없음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게하시와 같은 마음이 아니고 엘리사와 같은 마음으로 임해야 하지 않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6장 6절 처음에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던저 도끼날을 떠오르게 한다. 이러한 이적은 우리의 생각과 과학적인 상식으로는 절대로 이해할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 선지자적인 능력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만이 할수 있는 기적이다.

- 최재홍 형제님 : 1-7절의 내용이 대수롭지 않게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 내용을 볼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심을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적으로 큰 일만을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개인의 삶, 작은 생활에도 관심을 기울이시며 주관하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당시에도 계속해서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지자의 생도들은 주위의 환경이 어떠할찌라도 주님을 섬기는 것을 멈추지 않고 영적으로 성장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생도들은 자신들의 처소를 세우자고 엘리사에게 얘기한다. 이는 그들이 이 일을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엘리사에게 이 일을 먼저 엘리사에게 허락을 받는다. 또한 엘리사와 함께 가기를 청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기를 그들이 원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선지자의 생도들은 각자 나무를 맡아 벌목한다. 이는 모두가 다 이 일에 참여해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특정 성도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을 협력해서 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 김보영 형제님 : "좁으니" 라는 단어의 원어를 보면 아주 너무나 좁은 상태를 뜻하고 있다. 그렇기에 요단에 가서 거할 건물을 짓자고 생도들은 엘리사에게 제안을 했고 엘리사는 승낙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어떤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반드시 주님의 뜻 안에서 일을 계획하고 행해야 함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라고 한다. 종이라고 할때, 이것은 노예, 신복이라는 뜻이다. 이는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때에 주님의 말씀에 완전히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각각 한 재목을 취하여" 우리가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어떤 사람만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협력해서 일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6:2, 개역한글)

일을 행함에 있어서 주님 중심으로 하되, 주님께서 이 일을 반드시 이루어주심을 믿으며 해야 한다. 겸손하게 순종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주님 앞에 맡겨야 한다.
우리가 어떤 일을 계획할때 말씀 안에서 계획하고 진행할때에 모든 성도가 협력하여 순종해야 한다. 그럴때에 주님께서 그 일을 성취하신다.

- 김태우 형제님 사회 : "싱령에 감각이 되지 아니하였느냐" 라는 말씀이 6장으로 연결이 되는것 같다. 우리의 삶에 주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할때가 많은것 같은데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우리의 삶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6장에서 "좁으니" 라는 단어의 뜻에는 좁아서 고통을 받을 만큼의 장소라는 뜻도 있다. 그럴때에 생도들은 엘리사에게 장소를 옮길것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모임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