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래 형제님/성경 인물

막다라 마리아에게 처음 주님께서 나타나신 이유

박이레 2026. 10. 6. 18:23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 주님이 나타나신 이유 / 한봉래 형제님 / 26년 9월 20일 일요일

이 시간에는 요한복음 20장, '막달라 마리아'라고 하는 자매님에 대해서 살펴보고 교훈을 받으려고 합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쌔"(요 20:1-3).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줄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요 20:10-18).

아멘, 성경을 몇 곳만 조금 더 찾겠습니다.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눅 8:2-3).

"[예수께서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막 16:9).

여기까지,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시면 우선 이 자매님은 일곱 귀신이 들렸던 자매님입니다. 귀신이 들렸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쫓아내 주셨어요. 자기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 주님을 이 막달라 마리아 자매님은 예수님을 섬깁니다. 너무 감사해서, 다른 자매들과 함께, 자기만 은혜를 입은 게 아니고 다른 자매들도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다른 자매들과 함께 자기 소유로 섬깁니다. 주님을 섬기고 있었던 자매님인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제일 먼저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이 막달라 마리아와 관련된 구절들을 쭉 읽었는데요. 이제 몇 가지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1. 첫 번째, 왜 예수님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일 먼저 베드로에게 나타났다, 자연스럽죠. 혹은 제 생각에는 의심하고 있는 도마에게 나타나셨다, 뭐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안 하시고 '막달라 마리아에게 제일 먼저 나타나셨어요.' 그래서 왜 그러셨을까?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고 교훈이 있는가? 이걸 한번 생각해 보고요.
2. 그다음에 두 번째, 이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거든요. 여기 내용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일찍 구원받고 한 2년 정도를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계속 이렇게 섬깁니다. 또 예수님과 열 두 제자들이 어디 가서 복음 전하고 이렇게 일하시면 함께 가면서 여러 가지로 돕고 이런 일을 한 2년 하셨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나타나셨어요. 그런데 보고도 몰라 봅니다. 그래서 두 번째 질문은 '왜 몰라봤을까?' 2년이나 함께 생활 했는데, 왜 몰라봤을까?
3. 그다음에 세 번째,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져서 막 안타까워하다가 예수님이 나타나니까 막달라 마리아 자매님의 첫 번째 반응이 예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하십니다. "나를 만지지 말라." 왜 만지지 말라고 했을까요? 성경에 보면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마태복음 28장을 나중에 찾아보시면 이 막달라 마리아 말고 다른 자매들이, 이게 다른 자매들이 무덤에 같이 갔는데 가보니까 무덤 문이 열려 있고 예수님은 없는 거예요. 막달라 마리아는 이 일을 베드로하고 요한한테 알려야 된다. 그래서 베드로 요한테 알립니다. 그래서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베드로 요한은 가버립니다. 그런데 그 안에 이제 천사들이 있어서 대화를 하고 이러거든요. 그리고 나중에 순서대로 이 여자들이 예수님을 만나요. 그래서 예수님의 발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경배합니다. 다른 여자들은 예수님 발을 붙잡았는데, 막달라 마리한테는 "만지지 말라, 붙잡지 말라." 이렇게 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
4. 그다음에 "만지지 말라" 그래놓고 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서 걱정하고 있는데, 이 울고 있는 마리아를 위로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가 부활했다라고 부활을 제시하면 됩니다. 그런데 부활을 제시 안 하세요. 그리고 뭘 말하냐면 만지지 말라 그래놓고, "내가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다"라고 부활보다 '승천'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님께서 1). '왜 맨 먼저 나타나셨는가?', 2). '왜 몰라봤는가?', 3). '왜 만지지 말라고 하셨는가?', 4). '왜 부활이 아니라 승천을 말씀하시는가?' 이런 내용들을 가지고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우선 첫 번째로 '왜 맨 먼저 나타났는가'를 보면 11절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그 바로 앞에는 베드로와 요한은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원래 이 여자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왔어요. 그런데 와보니까 시신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부활이라고는 못 믿어요. 누군가가 시신을 가져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부활을 믿지 못하고 가져갔다고 생각하는데, 잠깐 보겠습니다.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요 20:8).

이 8절의 제자가 누구냐 하면 사도 요한입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입니다. 무덤에 가보니까, 자기들은 있었는데 막달라 마리아가 와서 "예수님 무덤에 시신이 없어졌습니다."라고 말을 듣자 베드로와 요한이 이거 큰일이다. 아니, 누가 예수님 시신을 가져간 거야? 뭐 하려고? 불길한 생각이 든 겁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의도로 가져간 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죽인 것도 마음 아픈 일인데, 그 시신까지 훼손하거나 모독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라고 하는 걱정이 든 거죠. 그래서 무덤에 가봅니다. 이제 나중에 내용을 읽어보시면요, 가서 여기 읽어보고 요한은 이렇게 합니다. 믿어요. 뭘 믿었다는 거죠? 부활을 믿습니다. 이것은 부활이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된다. 이건 부활이다라고 믿어요. 그래서 8절에 사도 요한이 부활이라고 믿습니다. 9절,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요 20:9).

부활이라고 믿었어요. 이건 논리적으로 상황을 딱 보면 부활이다라고 믿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냐면 막달라 마리아한테 "예수님 부활하셨어. 울지 마, 부활하셨으니까 기뻐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라."고 말해줘야 됩니다. 그런데 말을 안 하고 그냥 가버려요. 그리고 그 이유를 성경이 이렇게 설명합니다. "말씀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요, 우리가 논리적으로 이건 이럴 수밖에 없다라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힘이 없어요. 힘은 어디서 나오냐? 말씀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있어야 다른 사람한테 증거하고, 다른 사람이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 같아." 해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니까 이게 맞는 거야."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내가 논리적으로 확신하면 다른 사람한테 말을 못합니다. 다른 사람은 그 논리에 동의 안 할 수 있거든요. 하여간 이렇게 돼 있고요. 그래서 베드로하고 요한은 그냥 집에 가버립니다.
그리고 11절, 막달라 마리아는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 막달라 마리아가 뭘 하고 있냐면 계속해서 13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시신을 찾는 거죠. 지금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잖아요. 향품을 준비해 왔으니까, 향을 바를 시신을 찾고 있거든요. 13절, 천사들이 물어보니까 대답을 이렇게 합니다. "내 주를 가져다가" 그는 여전히 죽으신 예수님을 "나의 주님"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찾는 것은 부활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실제로 부활이 일어났다, 이런 정보도 아니에요. 이 여자가 원하는 것은 나는 다른 거 다 모르겠고 예수님, 혹은 예수님의 시신이 어디 있는가만, 나는 그게 관심이 있다. 예수님의 시신을 찾으면 내가 거기다가 향품을 바르고 다시 무덤에 넣어놓고 울더라도 나는 예수님의 시신을 찾아야 된다라고 하는 일념밖에 없는 거예요. 이게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뒀는지 알지 못한다" 이렇게 돼 있고요. 그다음에 천사들이 말한 거니까 잠깐 보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마태 복음을 찾아보시면 마태복음에서도 이 무덤에 있다가 막달라 마리아가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는 제일 먼저 베드로가 요한한테 가버린 것 같고 나머지 여자들이 있다가 천사를 만납니다. 그래서 천사가 말을 합니다. 천사가 이렇게 말을 할 때 이 여자들의 반응을 성경은 어떻게 말하냐면 "무서워하더라"입니다. 거룩한 천사들이 구원받았다 할지라도 육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만나면 육신을 가진 죄 있는 사람이 두려워합니다. 거룩한 존재 앞에 서면 두려운 것입니다.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 혼자 천사들이 말을 걸어도 두려워하지 않아요. 왜요? 이걸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 여자의 온통 관심은 예수님에게 붙잡혀 있었다.' 이게 주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 나타난 이유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보십시오. 15절 보시면 천사들은 이렇게 물었거든요. 13절에 보면 "왜 우느냐?" 울고 있으니까 왜 우느냐 이렇게 물어본 거죠. 이것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됩니다. 그다음에 15절 예수님이 질문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질문합니다. 이번에 "왜 우느냐?" 플러스 "누구를 찾느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아신 거예요. 예수님을 찾고 있는 겁니다. 이 여자는,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만나야 된다. 그게 죽었건 살았건, 부활이건 아니건, 나는 부활은 모르겠고, 증거도 모르겠고, 그런데 하여간 '나는 주님이 있어야 된다'라고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부분을 제가 저희들에게 교훈으로 적용을 해보겠습니다. 빌립보서 4장으로 가겠습니다. 정확하게 맞지는 않은데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 4:6-9).

6절부터 9절을 보면, 어떤 사람이 염려합니다. 어떤 성도가 염려해요. 막달라 마리아처럼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서,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몰라서, 혹은 자기가 정말로 추구하던 것들이 좌절됐을 때 울고 있는 거죠. 대비를 해 보면 우리들의 경우는 염려가 되는 거예요. 이게 어떻게 될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아야 되는데, 이런 일이 생길 것만 같아. 그래서 염려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9절의 마지막 결론은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약속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막 울고 있다가 예수님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타나신 거죠. 그걸 우리에게 적용하면요. 첫 번째, 우리는 '염려'가 있습니다. 이건 자연스러운 거죠. 이 세상을 살면서 저희에게 모든 능력이 있지 않고, 또 상황은 항상 저희에게 어려움을 주고, 그래서 염려가 되죠. 이때 이렇게 하는 겁니다.
첫 번째, '기도해라' 입니다. 염려하지 말고, 걱정해봐야 소용이 없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안 벌어져야 되는데라고 내가 걱정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고 울고 염려하지 말라, 이겁니다. 이게 성경이 말하는 겁니다. 염려 말고 어떻게 해라? 하나님께 맡겨라. '하나님 이게 염려가 됩니다. 하나님 이게 어떻게 이렇게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고 이 기도가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도면 결과가 어떻게 되냐면 평안해집니다. 이 문제는 하나님이 맡아서 해결하신다고 그랬으니, 나는 걱정하지 말고 평안하다. 여기 대표적인 사람이 저는 개인적으로 구약에 나오는 한나라고 하는 여자입니다. 한나가 자기는 애가 안 생기고, 브닌나는 애가 여러 명 생기고, 그래서 "너는 애도 없는 게" 이렇게 격동시키고,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갔을 때 하나님 왜 저에게는 저에게는 자녀를 안 주시고, 이렇게 성격이 나쁘고, 육신적인 사람은 세상적으로 잘 살아서 나 무시하고, 그래서 우는 거죠. 그래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기도로 하나님께 딱 맡기고 하나님 이거 해결해 주십시오. 딱 맡기고 수색이 없습니다. 염려 안 합니다. 저희들도 그렇게 돼야 되죠. 염려하지 말고 기도로 맡기는 겁니다. 기도로, 정말 성경이 말하는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하면 평안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알아서 할 거니까 했고요. 내 문제 아닙니다. 내 손을 떠났습니다. 이제 평안하죠.
그리고 나서 마음의 평안을 찾으면 그다음부터 해야 됩니다. 첫 번째로 해야 될 게 뭐냐? 8절,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제 그 문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문제를 맡겼으니까 생각할 필요 없죠. 그러면 '나는 무슨 생각을 할 것이냐' 하는 거죠. 이 8절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8절에 생각이 참되며, 막 있는데요. 여러 가지 것들을 8절에서 두 가지로 요약합니다. "덕이 있는 것" 덕 세우는 생각입니다. 그다음에 "기림이 있는" 기림이 있는 생각, 기린다고 하는 건 칭찬한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염려할 게 없으니까, 평안을 찾은 다음에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냐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생각'을 합니다. '주님이 원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게 앞에 있는 ‘덕’입니다. 주님은 내가 염려하지 말고 무슨 생각을 하길 원하실까라고 내가 개인적으로 믿는 그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기림'은 이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이 칭찬하실 생각' 우리는 주님 만날 거잖아요. 그러면 주님이 그때 잘했다, 그 생각한 거 잘한 거다. 내가 염려하지 않고 그 생각으로 바꾼 것, 잘한 일이다라고 인정받을 만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걸 우리가 해야 되는 겁니다. 이걸 하면, 첫 번째는 생각을 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9절에 보시면 '행하는 것'입니다. 생각만 하면 안 되고 이런 생각을 하고 그다음에 그 생각을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기본적인 거지만 '주님은 복음을 전하길 원하시는구나.' 그러면 복음에 관한 생각을 합니다. '내 친구한테 복음을 전해야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예를 하나 들면 제가 좋아하시는 형제님 중에 광진 모임인데, 이름을 장자호수 모임으로 바꿨는데, 거기 김인수 형제님이라는 형제님이 계신데, 이 형제님이 중학교 선생님으로 근무를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정년 퇴직을 했어요. 그래서 이분이 뭘 어떻게 하시냐면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내가 거기서 사립이니까 이동이 없습니다. 사립이니까 그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계속 근무하셨거든요. 그런데 내가 그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교무실에서 한 번도 복음을 전하지 않은 선생님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 선생님한테는 한 번도 내가 복음을 안 전했네.' 그 생각이 나니까 이 형제님이 전화를 걸어서 그 선생님하고 약속을 합니다. "점심식사 식사하시죠. 제가 점심을 사겠습니다." 그래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기뻐하는 생각을 하고, 그러니까 뭐 꼭 복음 전도든지, 혹은 어떤 성도에게 사랑을 보이든지, 누구 또 위로를 해야 된다든지, 이렇게 주님이 기뻐하신다는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이걸 하고 있어야 합니다. 염려하지 말고, 마음의 평안을 유지한 다음에, 그다음에 주님이 기뻐하는 생각을 하고, 생각만 하면 안 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을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때 뭐가 나타나냐면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이게 막달라 마리아가 울다가, 예수님을 찾다가 예수님을 찾을 수 없어서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주님이 직접 나타나신 것을 저희들이 이렇게 적용해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데요. 그럴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자기 본을 이야기합니다. 9절에 보면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썼는데요. 그러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사람은 빌립보서의 사도 바울이 말한 것을 경험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사도 바울은 이렇거든요. 복음 전하는 자입니다. 주님께서 전도자로 세우셨죠. 이방인의 사도로, 그런데 감옥에 갇혀버렸습니다. 이제 복음 못 전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감옥에 갇혀서 복음을 못 전할 것 같았는데, 복음의 진보가 일어났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다른 일들이 벌어졌다. 왜냐하면 내가 복음을 안 전하니까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나왔다. 이때 '내가 사도바울보다 더 전해야지.' 하는 육신적인 성도가 나오고, 혹은 '사도 바울이 못 전해? 내가 사도 바울을 사랑하는데 그 형제님이 못 전하는 것을 내가 대신 해드려야지.' 라고 하는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나와서 복음을 두 배로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자기가 로마의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었던 가이사의 사람들, 로마 황제의 직속 부대 사람들을 그가 복음을 전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빌립보서에 말합니다. "나는 평안하다." 감옥에 갇혀서 평안하다. 왜냐하면 나는 복음에 관련된 사람인데, 복음의 진보가 일어났기 때문에 나는 감옥에서 기뻐한다라고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사도 바울이 또 4장에 와서 어떤 이야기를 하냐면 이게 참 놀라운 간증인데요. "나는 가난에도 처할 줄 알고 부에도 처할 줄 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가난은 아무 문제가 안 된다. 부에 처해도 그 부가 교만하게 나를 사로잡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하면 일반적인 사람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하고 간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식으로 평강의 하나님을 경험하면 그는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됩니다. 이게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울고 있었던 것들을 적용해 본 것입니다.

다시 막달라 마리아에게 돌아가겠습니다. 그다음에 '왜 몰라봤는가?' '왜 붙잡았는가?' '왜 붙들지 말라고 했는가?' '왜 승천했는가?' 한꺼번에 보겠습니다.
2. '왜 몰라봤냐면' 이렇게 되는 거죠. 다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무덤 앞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없어서, 그런데 울다가 가만히 무덤도 들여다봤죠. 없었는데 진짜 없는 거지, 들여다봤더니 안에 천사가 있었어요. 천사가 말을 걸었어요. "왜 울어요?" 울 이유가 없는 거예요. 왜 우십니까라고 천사가 말을 하자 대답을 했어요. "누군가가 내 주님 가져가서 울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천사랑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이때 갑자기 뒤에 인기척이 느껴진 거예요. 누군가가 온 것 같아요. 그래서 뒤를 돌아봤어요. 그랬더니 예수님이 계셨어요. 그런데 예수님을 몰라봐요. 예수님이 불러줘야 알아봅니다. 성경에서 보면 부활한 예수님을 봤는데 몰라본 사람들이 여기 말고 엠마오 제자도 나오고요. 요한복음 21장에서 7명의 고기 잡으러 간 제자들도 모르다가 예수님이 불러줘야 압니다. 예수님이 불러주시는 거죠. 다시 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식하는 것은 과거에 내가 알고 있었던 예수님을 기준으로 아는 게 아닙니다. 이분은 영광스럽게 변화된 분입니다. 옛날에 같이 있었다고 알 수 있는 분이 아니세요. 그래서 예수님 불러주세요. "마리아야." 했더니 이 음성을 듣고, 예수님인 거예요. 음성이 예수님인 거예요. 그래서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하고 말합니다. 저희들이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르면 항상 비판적인 생각을 갖는데요. 예수님은 물론 선생님이시죠. 하나님은 진리를 가르쳐 주셨으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단순한 랍비가 아닙니다. 여기서 “랍오니여”라고 하는 단어는 선생님 중에서 최상급 존경 표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최고로 선생님이라고 높여도 이게 맞는 대답이 아닙니다. 그가 왜 몰라봤냐?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 주셨어요. 그런데 저희들은 귀신 안 들렸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고 에베소서 2장에 보면 우리가 누구냐 하면,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른 사람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 사단이 극단적인 형태로 그에게 귀신들린 것이고 우리는 현대적인 점잖은 방법으로 공중에 권세 잡은 자를 따른 자입니다. 이 막달라 마리아가 우리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과거에 내가 구원받고 예수님을 사랑해서 섬기던 이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그가 몰라본 것입니다.
3.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만지지 말라." 옛날에 막달라 마리아는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 너무 감사하죠.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희생해서 예수님을 섬겼어요. 다른 성도들과 함께, 이 관계가 아니다, 입니다. 과거에는 눈에 보이는 예수님을 섬겼다면 이제 막달라 마리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주님은 여기 계속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승천하실 거예요. 그러면 '승천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이냐' 하는 거죠. 이걸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지금 저희들이 예수님 눈에 안 보입니다. 어디 계세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섬기는 게 될까요? 나를 위해 죽으신, 나를 사랑하신 주님을 내가 마음으로 섬기고 싶어요. 주님께 뭘 해드리고 싶어요. 그러면 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게 막달라 마리아의 고민이고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주님이 설명하시는 거죠. 그다음에 17절 보시겠습니다.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못했다." 이건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승천'이고요.

그다음에 첫 번째, "너는 내 형제들에게" 여기서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이제 예수님께서 이걸 가르치시는 건데요. 예수님은 우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막달라 마리아한테, "베드로 요한한테 가라." 그런데 이번에는 베드로 요한한테 안 가고, 18절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요 20:18).

18절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누구한테 가냐면 다락방으로 갑니다. 그리고 거기 열 한 제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제자들"이라고 돼 있거든요. 18절은, 그런데 17절에서 예수님은 뭐라고 부르냐면 "형제"라고 부릅니다. 이제는 주님께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과 같은 생명을 가진 형제인 것입니다. 이건 히브리서 2장을 보겠습니다. 잘 아시는 대목이지만 히브리서 2장 11-13절 보시겠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찌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히 2:11-13).

여기까지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형제라 부르십니다.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아니 하셨습니다. 형제라 부르신 이유가 뭐냐 그러면, "거룩하게 하시는 자"는 예수님입니다.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는 우리들입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거룩하게 하시는 자냐 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피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를 거룩하다 하셨습니다. 이게 거룩하게 하시는 자죠. 그다음에 우리는 거룩함을 입었는데 어떻게 입었냐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셔서 내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이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생명이, 은혜가 우리에게 더해지는 거죠. 그래서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전부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주님의 십자가를 받아들이게 하신 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형제다"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가 가진 거죠. 형제들을 부르는 거죠.
그래서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 대목을 가지고 다시 적용하겠습니다. 그러면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2절을 적용하면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첫 번째, 12절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그랬으니까, 우리는 교회 가운데에서, 형제들입니다. 그 구원받은 형제들이 모인 교회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을 계속 배워가야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주님이 가르치신 내용입니다. "너는 교회에서" 곧 주님이 승천하시면, 오순절이 시작되면 사도행전 2장에 교회가 시작됩니다. 그때 막달라 마리아가 교회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더 배워야 합니다. 이게 첫 번째예요. 그다음에 두 번째,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그리고 교회 가운데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배우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어떻게 예배를 드리냐면 예수님을 중심으로, 예수님을 사용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그리고 세 번째 13절,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그리고 세상에서 살 때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입니다. 1). 교회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고, 그리고 2). 가장 중요한 예배를 교회 가운데서 드리고, 그리고 3). 세상에서의 삶을 하나님을 믿는 가운데 살아가라 라고 하는 말이, 이 가르침이 "내 형제들에게"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다시 이쪽으로 오겠습니다. 다시 요한복음 20장으로 오시면 "내 형제들에게 가서" 말했지요. 그다음에 아까 히브리서 12장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 올라간다"했는데요. '아버지'는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된 거예요. 마태복음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너희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해라. 무엇을 먹을 것인지 마실 것인지 염려하지 말라. 이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너희 아버지가 아시느니라. 공중의 새를 봐라. 들의 핀 백합을 봐라." 이렇게 돼 있죠.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 모든 걸 아신다. 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 관계다라고 하는 친밀한 관계를 이 아버지라고 하는 개념에 담아둔 것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아버지가 아니고 '하나님'이라고 했는데요. 하나님은 원래는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우리를 심판하실 거룩한 분입니다. 그런데 구원받고 나서는 심판받아 마땅한 나를 사랑하시는 아들을 죽이시고 대신 자녀 삼으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건 '예배의 대상', 하나님은 예배의 대상입니다. 아버지는 '기도의 대상'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라. 이게 "내 형제들" 이라고 하는 것 속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하나만 더 하고 마치겠습니다.

4. 그다음에 17절에 보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했다" 그랬는데요. '올라갔다' 이거 하나 보겠습니다. 올라갔다, 승천하신 거죠.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 3:1).

그래서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아버지께로 올라간다, 승천한다"를 말씀하신 것을 골로새서 3장을 적용해서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내가 올라간다." 이 말은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위의 것을 찾으라" 이런 말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하나님 우편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달라 마리아는 위에 것을 찾는 겁니다.
위에 것을 찾는다고 하는 건 뭐냐 그러면, 첫 번째 뜻입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께서 원하시고 관심을 갖는 것을 내가 이 땅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게 위에 것을 찾는 것입니다. 위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땅에 있는 나에게 하기를 원하는 것, 그것을 추구하는 것, 이게 위에 것을 찾는 것입니다.
위에 것을 찾는 방법 보겠습니다. 첫 번째입니다. 5절,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는 것"입니다. 땅에 있는 걸 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하늘에 있는 것을 추구하며 산다. 이게 위에 것을 찾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넘어가겠습니다. 골로새서 3장이 복잡하게 가는데요. 그냥 저는 한 절만 하겠습니다. 16절입니다. 이걸 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 혹은 우리 교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풍성해지면 벌어지는 일은 이것입니다. 첫 번째,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여기 "피차"니까 한 명이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서로 가르칩니다. 서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칩니다. 이게 말씀입니다. 이게 진리입니다라고 가르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권면합니다." 서로 권합니다. 말씀이 이렇게 돼 있으니까 형제님 이렇게 사시지요. 성경이 이렇게 말하셨으니까 형제님 이렇게 행동하시는 것이 합당합니다라고 서로 권면합니다. 모임에서 이렇게 이렇게 권하면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때 자꾸 "아니, 사실은 그게 아니고 형제님이 잘못 보신 거예요. 저는 사실 이런 사람이거든요."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말씀이 잘 가르쳐지고, 그다음에 구체적인 적용을 서로 합니다. 말씀만 잘 가르치는 게 아니고 서로 구체적으로 권면해서, 이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서로 권해야 됩니다. 이게 모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쉽지는 않은데요. 하여간 저희들이 기도하는 제목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말씀이 풍성하면 가르침과 권면이 있습니다. 그다음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찬양이 있습니다. 모임 가운데 찬양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꼭 찬송가를 많이 부른다는 것일 뿐만 아니라 뭐가 있다는 것이냐 하면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하늘에 속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 안에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그래서 만나서 찬송하고, 그래서 제가 외국에 가서 가정집에 초청을 받으면 가정집에서 주로 뭘 하냐 그러면, 몇 시간이고 찬양을 해요. 가정집마다 많은 성도들이 모였을 때 쓸 수 있는 찬송가가 막 여러 개가 있어요. 그래서 가면 뭐 식사하고 그다음에 계속 찬양을 부르는 거예요. 어떤 형제님이 한 곡 부르면 그럼 다음 곡 누가 부르고, 심지어는 거기서는 박용수 형제님은 같이 가면 안 돼요. 독창도 막 시켜요. 박용수 형제 같으면 막 시킬 거 아니에요? 그럼 거기서 시키면 막 부르고, 이런 분위기가 서로 함께 찬양을 서로 이렇게 부르고 이러는 게 있고, 그다음에 세 번째입니다. 가르침, 그다음에 찬송, 그다음에 중요한 것입니다. 세 번째 '감사함'이 있습니다. 서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불평하는 게 아니고 감사하는 것, 이 형제님이 있어서 너무 좋다. 또 우리한테 이와 같은 어려움이 있어서 너무 좋다. 환경적인 어려움이 있어서 너무 좋다. 왜냐하면 우리로 같이 기도하게 하고, 우리로 한마음이 되게 하고, 이 모든 연약함이 우리를 더욱 강하게 할 걸 알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게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맨 먼저 나타나셔서 예수 나는 예수님을 찾지 않고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라고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첫 번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형제들이다" 이제 제자들 아니다. 여전히 제자들이죠. 그런데 주님은 "내 형제들한테 가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내려왔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자들이 내 십자가 은혜를 받아들여, 내 동일한 생명을 가지고 있으니 형제들이다. 이 말씀은 1). 지역 모임 안에서 계속 하나님을 배우고, 그리고 특별히 2).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 3). 실제 삶을 하나님을 의지하여 믿는 삶을 살고, 이걸 하나님이 가르치신 거죠.
그리고 승천을 말씀하십니다. 승천은 주님이 하늘에 계시고, 그 하늘에 계신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교회로 모여서 풍성한 말씀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1). 서로 권하고, 2). 찬양하고, 그리고 말씀대로 3). 감사할 것입니다. 어려울 때 감사하고, 형통할 때 감사하고, 기쁨이 있을 때 감사하고, 고통이 있을 때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이게 막달라 마리아에게 맨 먼저 나타나셔서 부활하신 주님이 가르쳐 주시고 막달라 마리아가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전한 말을 성령께서 감동하셔서 히브리서를 쓰게 하시고, 사도바울을 통해서 골로새서를 쓰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 말 뜻이 무엇인지, 혹은 그것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성경으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들이 대전 중구 모임에서 말씀 그대로 성취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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