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봉래 형제님/성경 인물

야곱 : 브니엘의 교훈

박이레 2026. 10. 5. 16:39

야곱 : 브니엘의 교훈 / 한봉래 형제님 / 26년 9월 19일 토요일

이 시간에는 창세기 32장, 브니엘 사건 살펴보겠습니다.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사자들을 자기보다 앞서 보내며 그들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너희는 이같이 내 주 에서에게 고하라 주의 종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에게 붙여서 지금까지 있었사오며 내게 소와 나귀와 양떼와 노비가 있사오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고하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더라 하라 하였더니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가로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고 가로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야곱이 또 가로되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야곱이 거기서 경야하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암염소가 이백이요 수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수양이 이십이요 젖 나는 약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나귀가 열이라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눠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 종들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상거가 뜨게 하라 하고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엣것은 뉘 것이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그 둘째와 세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고하고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의 생각에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으리라 함이었더라 그 예물은 그의 앞서 행하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경야하다가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쌔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창 32:1-32).

아멘, '브니엘 사건'인데요.
야곱에 대해서 우선 몇 가지 간단하게 정의를 해보면, 아브라함이 있고, 그다음에 이삭이 있고, 그다음에 야곱이 있죠. '아브라함'은 주로 성경에서 저희들에게 '믿음'이 무엇인가를 보이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믿음이 강조돼 있습니다. '이삭'의 경우는 '사랑'이 강조돼 있습니다. 그가 리브가와 이렇게 결혼하는 장면, 사랑이 강조돼 있습니다. '야곱'의 경우는 저희들이 야곱의 생애를 쭉 살펴보면 야곱의 경우에 가장 강조돼 있는 것은 '소망'입니다. 그가 죽을 때 열 두 아들을 놓고 그들이 훗날 어떻게 위대한 생애를 살 것인지를 예언합니다. 그래서 야곱의 경우는 믿음, 사랑, 소망 중에서 소망과 관련된 생애를 산다, 이렇게 간략하게 정리해 볼 수 있고요.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보면, 이렇게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생애를 보면 처음에 출발을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원 받을 때 구원 간증부터 초기에 주님을 섬기는 삶을 잘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죽을 때 마지막에 어떻게 그의 생애가 마무리되는가 하는 걸 보면, 1). 아브라함의 경우는 처음에 하나님께서 영광의 하나님이 부르셔서 그가 아비, 본토, 친척집을 떠나오고 이렇게 하죠.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은 잘 출발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가 죽을 때도 믿음으로 죽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출발과 마지막이 믿음으로 선하게 간증을 낸 사람입니다. 2). 이삭은요, 이삭은 저희들이 살펴본 대로 그가 처음에 결혼할 때 보면 믿음으로 삽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창세기 28장 벧엘 사건, 이런 거 볼 때 어떻게 했냐면 이삭이 말년의 간증이 좋지 않습니다. 축복을 누구한테 해야 되냐면 야곱한테 해야죠. 에서한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삭은 출발을 잘했지만 마지막에 선한 간증을 못 낸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3). 야곱입니다. 야곱은 출발이 나쁩니다. 그가 이 벧엘부터 해서 출발해서 쭉 32장 브니엘까지 선한 간증이 안 나옵니다. 그리고 야곱의 경우에 저희들이 봐야 될 것은 놀랍게 그가 말년에 선한 간증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야곱은 출발이 시원치 않았지만, 그러나 성장하고, 성장하고, 하나님의 다루심을 잘 받아서 그가 나중에 선한 간증을 낸 사람이다. 이게 야곱의 생애에 대한 저희들이 간략한 정의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야곱이 여러 가지 하나님이 다룰 수밖에 없는 인간적인 연약이 많은데, 하나님이 그것을 계속적으로 인내하시고 교훈하셔서 그로 하여금 참된 소망을 이렇게 예언하게 하신 데는 야곱이 보이고 있는, 저희들이 이렇게 읽을 때 보이고 있는 여러가지 연약한 것들이 그의 행동은 육신적인 행동을 했을지라도, 그의 중심에 있어서, 그래서 저희들은 저희들은 외모를 보죠. 야곱의 겉의 행동을 보고 평가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리고 그를 선히 인도하셨다, 이렇게 볼 수 있고요.
그다음에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하나님을 배우는 방법이 크게 간략적으로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모임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잘 순적하게 배워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가 있고요. 하나님의 뜻을 잘 따라가서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는 방법이 있고, 그다음에 두 번째, 2).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길로 가다가 여러 가지 연단을 받아서 하나님을 배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첫 번째 방법을 추천합니다. 이것저것 이렇게 하지 말고 그냥 잘 주님을 따라가서 주님을 잘 배우는 것이 좋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쪽이 아닙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방식을 계속해서 거부하고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자기 생애를 끌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을 잘 배웁니다. 그래서 이 후자에 속한, 우리가 볼 때 전부 모임에서, 집 안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길을 간다 할지라도 그가 끝내 하나님을 잘 배워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야곱의 생애를 통한 우리들의 교훈입니다. 우선 이 정도 놓고 살펴보겠습니다. 한 절 한 절 보겠습니다.

32장 1절,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여기 있는 길은 벧엘로 가는 길입니다. 잠깐 다 아시지만 성경 하나 찾아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돌아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창 31:13).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돌아가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내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여기 벧엘 사건을 설명하는 겁니다. 창세기 28장, 저희들이 한 번 다룬 적이 있는 야곱이 구원받은 장면입니다.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그때 그가 말한 거죠. 기름을 붓고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했죠. 그 약속을 지금 20년 지났거든요. “그 약속을 지켜라.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제 벧엘로 돌아갑니다. 다시 32장 1절입니다. 벧엘로 가는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희들이 잠깐 하나만 더 생각해 보면 벧엘로 가는 길은 그냥 단순히 물리적인 길이 아닙니다. 그냥 벧엘로 돌아가면 되는 게 아닙니다. 여기 '영적인 의도'가 숨어져 있습니다. 벧엘로 간다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벧엘이 어떤 곳이냐 그러면, 그가 창세기 28장에서 하나님의 집을 두 가지로 부릅니다. "여기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내가 몰랐다."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으로 가는 겁니다. 벧엘로 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집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거기 가면 누가 계시죠?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1). 벧엘이 첫 번째 뜻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2). '하늘의 문'이라고 그가 불렀습니다.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로다." 그랬죠. 그때 문이 뭐냐 그러면 '통치하는 곳'입니다.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죠. 또 누구죠? 보아스가 성문에서 이렇게 계약을 합니다. 10명 놓고 “네가 구속할래? 내가 한다.” 이렇게 국가가 결혼을 이렇게 만드는 거잖아요. 그래서 하늘의 문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입니다. 그걸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냥 길만 가서 될 일이 아닙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수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돼야 됩니다. 그게 준비돼야 됩니다. 이 길 가운데 하나님이 그걸 하시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그 길을 진행하더니" 진행할 때 두 가지 사건을 보겠습니다. 천사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야곱이 “이들이 하나님의 군대구나.”라고 이름을 '마하나임'이라고 붙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십니다. 우선 한 가지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시면 아브라함의 생애 가운데  하나님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발언은 "하나님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아브라함의 경우는 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이 말씀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하나님이다. 이게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하신 중요한 메시지고요. 야곱의 생애 가운데 야곱에게 하신 하나님이 하신 가장 중요한 말씀은 벧엘 사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항상 너와 함께하리라.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겠다. 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너와 함께하겠다." 이게 야곱에게 하신 하나님의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에게 “네가 어디로 가든지, 무슨 일을 당하든지, 내가 함께하겠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킵니다.
그가 벧엘로 돌아가고 있는데 하나님이 천사들을 보여줍니다. 저희들이 천사가 눈에 안 보이죠. 천사들이 나타나야 되죠. 그래서 보통 이 사건을 엘리사가 있었는데 시리아 사람들이 엘리사 때문에 지금 우리 군사 정보가, 왕궁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사 정보가 다 샌다. 이거 왜 그런 거야? 엘리사 때문이다. 그래서 군인을 보내서 엘리사 집을 포위하죠. 그러니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아이고 이제 우리 죽었네." 이렇게 하고 있을 때 엘리사가 기도하죠. "게하시의 눈을 열어 천사들이 우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게 하옵소서." 이렇게 하죠. 여기서는 하나님이 그렇게 안 하시고 이렇게 보이지 않는 천사를 통해 보호하시는 게 아니고, 천사들을 보이게 하십니다. 야곱이 볼 수 있도록, 이렇게 말하신 거죠. “네가 벧엘로 돌아가는 길은 너 혼자 가는 게 아니다. 네가 내 말에 순종해서 가지만 내가 너희를 지키고 보호하겠다.”라고 약속을 보이신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야곱에게 "네가 가는 길 내가 보호하고 지켜주겠다." 야곱이 뭘 두려워하죠? 에서를 두려워하죠.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에서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천사를 통해 너를 보호해 주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그걸 알아듣습니다. 그래서 '마하나임', 이렇게 한 거죠.

그래놓고, 그다음에 입니다. 에서에게 소식을 전하죠. 소식 전하는 것은 이렇게 전합니다.
1. 첫번째 4절에 보시면, "주의 종 야곱이",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그는 축복을 받았는데요. 그는 우선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샀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형입니다. 자기가 형이고 에서가 동생입니다. 그런데 "동생아" 이렇게도 못 부르고 자기가 "종"이라고 낮춰야 합니다. 그리고 이건 뭐 하고 또 연관이 되냐면, 잘 아시겠지만 이삭이 축복한 내용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기를 27장 29절 보시겠습니다. 이렇게 축복해 줍니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창 27:29).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이 같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원래부터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뱃속에서부터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고, 그가 장자권을 샀고, 그리고 아버지 이삭이 축복하기를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겠다." 이렇게 축복 다 받았죠. 그런데 그건 이제 명분만 그렇지 실제로는 에서에게 '주의 종'이라고 말해야 되는 형편입니다. 그렇게 자기 사정을 말하는 거죠.
2. 그다음에 두 번째 보겠습니다. 32장 4절 "주의 종 야곱이" 이렇게 말하고, "내가 라반에게 붙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소식을 못 전한 것을 변명하는 것입니다. 라반 때문에, 라반이 아주 그냥 혹독하게 나한테 일 시키고 그래서 뭐 왕래를 한다든지 소식을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3. 그다음에 세 번째, "나에게 소, 나귀, 양, 노비가 있으므로" 하나님이 나에게 물질적인 축복을 주셨습니다. 내가 가는 것은 형의 재산을, 아버지의 재산을, 형이 가질 수 있는 아버지의 재산을 내가 조금이라도 축내기 위한 의도가 없습니다.
4. 그다음에 네 번째,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과거에는 갈등 가운데 있었지만 이번에는 평안하게, 평화롭게 형과 살고 싶습니다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사자들이 "400명을 데리고 오고 있습니다"라고 하니까 이제 야곱이 두려워한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하죠? 두 떼로 나눕니다. 그래서 다시 보겠습니다. 야곱은 어떤 사람이냐 그러면 하나님이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천사를 보내서 너를 보호한다. 에서가 너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저희들이 잘 알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앗수르 군대 죽일 때 천사 한 명이 18만 5천 명인가를 죽입니다. 그 천사가 부대를 이루어서 야곱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야곱과 같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에서가 두려워서, 두 떼로 나누어서 틀림없이 에서가 치면 자기들은 자기는 당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까 일부는 희생하더라도 일부는 살아남아야 되지 않느냐 라고 하는 작전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야곱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천사들을 눈에 보이게 그에게 보여서 내가 천사를 통해 너를 지킨다, 두려워할 거 없다라고 해도 그것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기 꾀로 이 상황을 극복하려고 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게 야곱에게서 계속 나타나고, 하나님이 계속 이걸 다루시는 거죠.
그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가 이렇게도 합니다. 그가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하나님, 에서가 두렵습니다. 에서가 나를 죽일까 봐 두렵습니다. 에서에게서 나를 보호해 주십시요."라고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어떻게 하죠? 뇌물을, 예물이라고 써졌지만 이건 뇌물을 준비합니다. 이게 야곱이 32장에서 보이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게 벧엘에 올라갈 수 있는 합당한 태도가 아닙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벧엘에 가면 몸은 벧엘에 가 있어도 그는 영적으로 벧엘에 합당치 못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걸 하나님이 다루시는 내용이 32장입니다.

계속 보겠습니다. 8절 보시면 "피하리라 하고" 그랬는데요. "한쪽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두 떼로 나누어서 일부라도 살아야 된다. 일부는 죽더라도 이렇게 했는데, '피한다'라고 하는 단어를 잠깐 보겠습니다.
야곱은 자기가 육신적으로 행동을 해서 두려운 상황이 오면 도망가버립니다. 창세기 28장에서 도망갑니다. 에서가 죽이려고, 자기가 축복을 가로챘죠. 야곱이 에서라고 해서 이삭은 에서인 줄 알고 축복을 한 거죠. 나중에 와서 에서가 화가 나서 죽이려고 하죠. 그때 도망갑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라반하고도 도망갑니다. 하나님이 다 말씀하셨거든요. 라반 떠나라, 라반에게서 돌아가라 이렇게 하셨거든요. 그런데도 라반이 있을 때 정정당당하게, 그리고 여기는 야곱이 잘못한 게 별로 없습니다. 라반이 좀 잘못한 게 많죠. 그래서 라반에게 이야기하고 가는 게 아니고 도망갑니다. 두 번 도망갑니다. 이번에도 도망가려고 합니다. 이제 하나님이 다루십니다. 못 도망간다, 너는 대결해야 된다. 에서는 피할 수 없다. 이게 하나님이 다루시는 방법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그가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9절 기도 내용을 보겠습니다. 첫 번째, 9절 기도 내용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벧엘로 가는 이유는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가는 것입니다." 이게 9절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신 것이므로 보호해 주십시요." 이렇게 말한 거고요. 그다음에 10절, 그가 깨달은 중요한 원리인데요.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는데 은혜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이 10절의 고백이 굉장히 중요한 고백입니다. 이제까지 그는 자기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년 동안 라반과의 삶을 통해서 그가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는데 나는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게 지금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은혜는 자격 있는 사람한테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자격 없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그게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로소 은혜가 뭔지를 압니다. 자격 없는 나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사옵고, 그래서 은혜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자기가 자격 있는 거 받으면 감사하지 않습니다. 뭐 하죠? 에베소서 2장을 치면 자랑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을 멸시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가 은혜를 자격 없는데 받아서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11절, 기도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에서가 무섭습니다. 그가 죽일까 겁납니다. 과거에 제가 마지막으로 헤어졌을 때 나를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럴지, 400명을 데리고 그렇게 할지 그것이 두렵습니다. 여기서 건져주십시오.”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셔야 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말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뭐냐? 하나님의 약속은 야곱에게 세 가지를 약속하셨죠. 첫 번째, '땅'을 주시겠답니다. 두 번째, '후손'을 주시겠답니다. 세 번째,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고 하는 거죠. 그중에서 야곱은 이 약속을 하나님께 제시합니다. “제 후손이 바다의 모래처럼 많겠다라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여기 있는 게 제 후손들입니다. 이들이 죽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보호해 주십시요.”라고 그가 말합니다.
이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어떻게 들으시냐? 야곱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면서, 어떤 문제를 기도하면서 이 문제가 없어지기를, 상황이 변화되기를 이렇게 기도하죠. 그걸 기대하면서, 그런데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어떻게 응답하시냐면 에서를 놔두고, 에서는 400명 데리고 계속 옵니다. 그래서 에서가 도중에 무슨 사고가 생겨서 못 오든지, 에서가 야곱을 이렇게 칠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뀌든지, 이렇게 하지 않고 에서는 그대로 놔두고 하나님은 기도 응답입니다. 야곱을 절뚝발이로 만듭니다. 이렇게하나님이 하시는 거죠. 이 기도를 응답하셔서 하나님이 야곱을 위골되게 만들어서, 절뚝발이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왜 그렇게 응답하셨는지 나중에 보겠습니다.

그다음에 13절, 그다음에 그렇게 기도해 놓고 13절부터 쭉 어떻게 하냐면 뇌물을 이렇게 씁니다. 떼를 나누어서 이렇게 하고, 보겠습니다. 맨 마지막에 그가 이와 같은 자기 꾀와 방법을 계속 사용하는 이유는 20절, "이는 야곱의 생각에" 자기 생각을 하는 거죠. 자기 생각이 계속 들어간 거죠. 야곱의 생각에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이걸 이렇게 주면, 야곱을 받고 나에 대한 미움이 완화돼서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을 수 있다 라고 하는 계산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방법과 꾀를 계속해서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32장의 야곱입니다.

그리고 이 야곱을 어떻게 다루시느냐 그러면 24절 보시겠습니다. 야곱은 홀로 남아 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이건 저희들이 알고 있는 주님이시죠. 그런데 야곱은 처음에는 주님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여간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이 이 근처에서 살고 있는 강도인지, 에서가 보낸 암살자인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씨름을 하는 거죠.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나타날 때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야곱에게는 씨름하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생애가 씨름의 생애였기 때문입니다. 항상 어떤 사람과 맞붙어서 자기가 이기고, 자기 힘과 꾀로 이기고 그리고 축복을 획득했던 이런 생애를 쭉 살아왔습니다. 에서하고도 그랬고, 라반하고도 그랬고, 계속 그런 거죠.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서 "그럼 나와 씨름하자." 그래서 하나님이 씨름의 모습으로 야곱과 씨름을 합니다.
야곱은 저항을 했는데요. 25절 보면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못 이깁니다. 야곱이 어떻게 저항을 하는지 이길 수가 없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이 씨름이 시작이 됐냐 하면 이게 한 밤중에 일어났다고 보면 새벽녘까지 하니까 한 6시간을 버팁니다. 어떻게 해도 야곱이 계속해서 저항하니까 그분이 이렇게 합니다. 환도뼈를 칩니다. 그래서 6시간쯤 씨름을 하다가 도저히 야곱이 포기를 하지 않으니까, 하나님께 져야 되죠. 하나님께 항복해야 되죠.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이런 겁니다. 하나님만 신뢰해라. 하나님이 천사를 보냈으니 천사가 보호할 것을 믿고 두 떼로 나누지 마라. 한쪽 당하면 남은 쪽이라도 살아야지 이런 거 하지 마라. 그다음에 두 번째,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게 이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으면 보호해 주십시요. 에서가 무섭습니다. 하나님이 에서에게서 저를 보호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으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것을 믿고 그 믿음으로 나가라는 거죠. 그렇게 안 하고 기도해놓고 하나님이 이 기도를 들으시겠지,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거야 해놓고, 그렇지만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겠다고 하는 믿음이 있지만, 그래도 그래도 어쩔지 모르니까, 혹시 하나님이 기도 응답 안 할 수도 있고, 이게 너무 중요한 문제니까, 이거 잘못하면 죽는 문제니까, 이건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문제니까, 자기 꾀를 또 쓰는 것입니다. 뇌물을 준비하는 것, 하나님 그거 하지 마라. 하나님만 신뢰해라. 네 꾀를 쓰지 마라라고 씨름을 한 거죠. 그런데 "아니요, 해야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만 믿고, 그다음에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냥 맡기고 있을 수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환도뼈를 칩니다. 쳤더니, 그가 어떻게 됐습니까? 이제 절뚝발이가 됐습니다.
그다음에 26절,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절뚝바이로 만들어 놓고 그분이 떠나려고 합니다. "이제 나는 간다. 나 가겠다." 이렇게 한 겁니다. 이때 야곱이 두 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 반응은 이분에 대해서 원망 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라고 알고 있으니까요. 하나님에 대해서 원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생각해 보십시요. 에서가 400명이나 데리고 나를 죽이려고 오고 있는 것 같은데, 저를 절뚝발이로 만들어 놓으면 저는 싸울 수도 없고, 그리고 제가 잘하는 거 안 되면 도망갔었는데 이제는 도망도 못 갑니다. 하나님이 나를 죽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라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비판할 수 있습니다. 이게 첫 번째 방법이고요. 그런데 야곱이 그렇게 안 합니다. 2). 두 번째로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아까 희미하게 고백했던 건데요. "하나님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 저를 떠나지 마시고, 하나님 가시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저에게서 가지 마시고 저를 축복해 주십시요." 그리고 그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가 이제까지 하나님의 축복을 계속 받으려고 이삭을 속이기도 하고 또 이렇게 했었죠. 그리고 그가 아까 말한 대로 은혜를 입었고 자격이 없다고 하는 걸 고백한 것처럼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축복 제가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제 힘으로 취하거나 뺏을 수 있는 게 아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축복해 주십시오라고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호세아서 가서 살펴보겠습니다. 이걸 호세아가 이렇게 설명을 했는데요.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호 12:3-4).

앞에는 하나님이라고 그러고 그다음에는 천사라고 그랬는데요. 천사는 영어로 보면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그 천사'입니다. 유일한 천사, 즉 주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그다음에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그래서 이 대목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일단 야곱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울며 하나님께 기도하여 축복을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울면서 기도한 것입니다. 왜 울었을까요? 저희들이 보통 하는 말인데요. 애들이 이제 길을 잃거나 부모님을 잃어버리면 부모님을 찾아야죠. 시장에서 엄마를 놓쳐버린 거예요. 자기는 큰일 난 거죠. 막 찾기도 하고 그런데 쉽게 안 찾게 되고 하고, 드디어 엄마를 만나면 그때 웁니다. 그전에는 울 수 없습니다. 찾아야 되니까요. 드디어 안심할 수 있을 때 우는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어떻게 받는 것인지를 이해하고 그가 웁니다. 이제까지 내가 얼마나 내 힘으로 축복을 얻으려고 했던 삶이 힘들었는가, 그리고 그것은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시인하고 웁니다. 하나님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했는데 그가 하나님께 항복한 것이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줬었는데 두 떼로 나누는 짓을 다시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혹시 모르니까 내 꾀를 쓰고, 이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하나님께 축복을 그가 구합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이 축복을 하십니다.
축복의 내용이 뭐냐? 축복은 이름을 바꾸는 것입니다. 축복의 내용은 야곱이라고 하는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야곱이라고 하는 이름은 그가 한 번 이렇게 말하죠. 이사기 축복하기 전에 야곱에게 물어보죠. "너 누구냐?" 야곱이라고 대답해야죠. 그런데 그가 거짓말합니다. "에서입니다." 이렇게 했죠. 아버지 앞에서는 거짓말했는데 하나님이 물어보십니다. 몰라서 묻는 건 아니시죠. 하나님이 물어보시는 "이름이 뭐냐?" 대답해야죠. "야곱입니다." 이때 야곱은 단순히 이름을 말한 게 아니고 야곱이라는 뜻이 '발뒤꿈치를 잡은 자'라는 거죠. 늘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다른 사람을 다른 사람을 사용해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겨냈던, 얻어냈던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바꿀 것이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름은 뜻이 해석을 이렇게 돼 있습니다. '제 성경에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이렇게 돼 있는데요. 그렇게 보기도 하고, 이스라엘을 다시 해석하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왕자'라는 뜻입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셔서, 그를 축복하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 이게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겨우 이겼다'라고 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누가 이겼습니까? 그래서 ‘이긴 게 뭐냐’라고 하는 거죠. 요한일서 저희들이 한번 했으니까 보겠습니다. 요한일서 5장에 보면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이깁니다. 뭘로요? 믿음을 가질 때 이깁니다. 그래서 ‘이긴다’고 하는 것은 ‘믿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고 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살던 생애를 울면서, 그 힘들었던 생애를 포기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이게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29절, 야곱이 물어봅니다. "이름이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을 때 대답해 주지 않습니다. 이유는 첫 번째, 이미 알기 때문입니다. 이름은 그가 벧엘 하나님입니다. 이미 그는 이분이 하나님인 것을 알고 있는 거죠.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35장 그가 이제 벧엘에 돌아왔을 때 35장 9절 보면,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창 35:9-10).

한 번 반복되는 거죠. 11절,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다 알려주십니다. "전능한 하나님", 전능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경우에 나타난 하나님이 전능한 하나님입니다. 다시 보겠습니다. 그래서 32장, 이름을 묻느냐 하고 29절,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여기서 축복한 내용은 아마도 다시 한 번 확인하셨을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후손을 주겠다. 그리고 너에게 땅을 주겠다. 그리고 너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오셔서 세상 만민이 축복을 얻을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거죠.

그다음에 30절,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부릅니다. 마하나임이라고 부르더니 이번에는 브니엘이라고 부르는데요. 브니엘은 뜻이 뭐냐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 함이더라" 해석해 보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느낍니다. 자기같이 하나님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 꾀도 계속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 자기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죠? 심판받아야 됩니다. 심하면 그가 죽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조금도 죄와 인간적인 것을 용납하지 않은 하나님을 만났으니 그가 심판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축복하셨답니다. 생명이 보존되었다는 것은 그가 살게 되었다, 죽지 않고 살았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새로운 생명,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31절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고" 그러니까 그전까지는 밤이었다는 거죠.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그가 절뚝발이로 걸어갑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야곱이 절뚝발이, 이렇게 맨날 정상적으로 못 가고 절고 가는 거죠. 성경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야곱은 길을 갈 때마다 절면서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내 힘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과거처럼 내 지혜, 내 방법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으로 사는 사람이다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다시 보면 그가 이제 에서 만나야 되는데, 에서를 만나러 이렇게 가고 있는데 그러면 도망도 못 가고 에서가 죽이려고 하면 저항할 수도 없는 상태에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그가 가장 강한 때입니다. 이게 저희들이 고린도후서 사도바울이죠.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하죠. 자기 육체의 가시가 있습니다. 사단의 사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도가 사단의 가시, 육체의 가시가 있으니 제거해 주십시오." 주님이 제거 안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해 주시죠. "네 은혜가 족하다." 이렇게 하시죠.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약할 때 네가 강함이니라."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단이 계속 그를 공격하고 있으니까,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는 그냥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이렇게 된 거죠. 그래서 이제 야곱이 절뚝거리고 있을 때 그가 가장 강한 사람입니다. 그가 두 발로 서서 도망갈 수 있고 싸울 수 있을 때 그는 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절뚝거리며 도망가지도 못하고 싸우지도 못하는 이때 그가 가장 강한 야곱입니다. 이게 지금 성경이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씀을 줄여보겠습니다. 창세기 28장에서 그는 부잣집 도련님이, 아브라함이 할아버지고 이삭의 아버지죠. 그는 이제 에서가 죽이려고 하니까 도망갑니다. 도망가다가 사흘 길을 갔는데 돌을 베개로 하고 누워서 자야 합니다. 베개가 돌이 되면 되겠습니까? 우리 다 푹신한 베개를 써야죠. 돌을 베개로 하고 누워 자야 합니다. 그는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때 그는 굉장히 외로웠을 것입니다. 자기 혼자고, 사랑하는 부모님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돼야 될지 모를 이때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십니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계보를 잇는, 너를 통해서 세상 만민이 복을 받는 너는 복된 존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창세기 28장은 이겁니다. 창세기 28장에서 야곱은 뭘 경험하냐 그러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경험합니다. 내가 이렇게 아무것도 없고, 외롭고, 능력이 없고, 뭐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전능을 배웁니다.
그래서 이제 저희들이 두 개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능력을 배워야 되고요.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그리고 약속하신 대로 하늘에 데려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변화시키셔서 주님을 닮는 자로 만드실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그걸 배워야 합니다. 야곱이 첫 번째 28장에서 하나님의 전능을 배우고, 32장에서 뭘 배우냐? 그러면 이 두 개를 배워요. 1). 하나님은 전능하심, 2). 두 번째 나의 무기력함,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하면 할수록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 나는 내 인생에서 손을 떼야 된다. 이걸 32장에서 배웁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이 두 가지를 배워야 돼요.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나는 무능한 사람이다. 내가 내 아이디어와 내 계획을 하나님의 계획에 집어넣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을 32장 브니엘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이게 주님이 저희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다시 보겠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인간적인 꾀를 계속 쓰고 있어도 하나님이 그를 변함없이 돌보고 변화시키시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이 보시기에 그 마음속에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을 보시고 그를 변화시켜 가십니다. 우리 가운데 그 중심은 없는데 계속 이렇게 꾀를 쓰는 사람을 보면 나중에 넘어지는 사람도 많습니다. 차이가 야곱의 경우, 그가 그런다 할지라도 그의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선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브니엘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나는 내 인생에서 손을 떼야 된다. 보통 이렇게 말하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요구 사항입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16장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죠.
마태복음 16장에서 저번에 제가 교회 진리 할 때 첫 번째 계시되는 게 ‘예수님이 누군가’가 계시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죠.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죠.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십니다." 여기 계시됩니다. 첫째 ‘주님이 누군가’, 두 번째 ‘교회’가 계시됩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십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들로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주님이 계시하신 게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죠. "내가 십자가를 져야 된다." 그랬을 때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죠. "그리 마옵소서." 아까 굉장한 칭찬을 받았던 베드로를 주님이 이렇게 또 책망하시죠. "사단아 물러가라." 주님이 교회를 세울 때 뭘로 세우시냐? 십자가의 죽음으로 세우십니다. 다른 방법으로 안 세우시고 십자가로 세우십니다. 그런데 그다음입니다. 주님만 십자가를 지는 게 아닙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주님만 십자가를 지는 게 아니고, 주님의 교회에 속한, 주님의 교회에 들어온 모든 지체들이 다 십자가를 져야 됩니다. 십자가는 고난이 아니고 '죽음'입니다. 십자가는 죽으러 가는 도구잖아요. 죽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생각합니다. 네 생각을 넣지 마라. 하나님의 뜻만 순종해라라고 하면 그걸 어떻게 해야 되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이 32장 야곱의 생애에 나타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내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내 꾀를 더 이상 쓰지 않게 될 것인가?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을 믿을 때입니다. 맨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나보다 더 좋은 계획을 갖고 계신다라고 하는 것을 확신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마음의 보좌에 앉히우고 그리고 내가 내려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야곱의 생애를 통해서 저희들에게 교훈하시는 내용입니다.
주님께서 이 같은 말씀으로 저희 마음을 주장하셔서 저희가 주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주님의 방법대로 주님의 목표를 이루고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그런 생애를 살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