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 : 창세기 36장 1-8절(요약)
에서 곧 에돔의 대략이 이러하니라 에서가 가나안 여인중 헷 족속중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중 시브온의 딸 아나의 소생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취하고 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취하였더니 아다는 엘리바스를 에서에게 낳았고 바스맛은 르우엘을 낳았고 오홀리바마는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를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들이요 가나안 땅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얻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 동생 야곱을 떠나 타처로 갔으니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의 우거한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인하여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산에 거하니라 (창36:1-8, 개역한글)
- 최재홍 형제님 사회 : 오늘은 36장이 교제가 될 텐데요. 에서의 가족과 그 후손이 하나의 민족으로 발전하는 내용입니다. 훗날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계속 등장하는 에돔민족에 대한 기원입니다. 그리고 아말렉이 등장합니다. 훗날 그는 이스라엘의 강한 원수가 됩니다.에서와 야곱 사이에 있던 갈등이 훗날 이스라엘과 그 후손들 가운데서 계속되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36장은 에서의 계통이 정리되고 마무리 됩니다. 37장에서는 다시 하나님의 구속사적 초점이 요셉으로 옮겨가 다뤄지는 것이 나옵니다.
오늘은 36장을 나갈건데요. 36장의 개요에 대해서 말씀해 주셔도 좋고요. 1-19절까지 자유롭게 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윤철 형제님 : 35장은 야곱의 열두 아들에 대한 족보가 나온 직후에 36장은 전체사 에서의 족보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에서의 족보는 언약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면 왜 한장 전체가 에서의 족보로 기록되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에서는 야곱보다 훨씬 빠르게 왕들과 족장들과 큰 민족을 가진 후손들로 성장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여전히 족장으로 가나안 땅에 머물고 있으며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마침내 민족을 이룹니다.
이 대조는 인간의 왕권은 각기 다른곳에서 일어났다가 사라지지만 이스라엘의 왕권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권은 절대 사라지지 않음을 생각하게 되빈다. 에서의 족보는 자신들의 노력으로 세상적인 성공을 이루지만 성도들으느 그에 기반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위에 전적으로 서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형제님 말씀처럼, 저도 36장에서 이삭이 죽은 이후에 에서에 대해서 왜 기록하는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항상 영적인 것보다는 육적인 것이 먼저 기록됩니다. 그러나 육적인 것은 짧게, 대략적으로 기록됩니다. 그래서 "에서 곧 에돔의 대략이 이러하니라"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를 크게 생각하고 비중있게 다루지만 하나님은 비중있게 다루시지 않습니다.
36장이 끝나고 37장은 요셉과 야곱의 아들들에 대해서 다루십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더 가치있게 생각하시는지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가보면 거기 새 예루살렘 성문에 이스라엘의 열두 자녀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성을 쌓은적이 없이 장막에 거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예루살렘에서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이 그 성문에 적혀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대조를 창세기 13장에서 보았습니다. 롯과 아브라함은 그 육축이 많음으로 헤어졌습니다. 롯은 자기 소유의 목양을 할수 있는데로 나갔고, 소돔에 거했고, 그 성문에 앉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에서도 야곱과 거할수 없었기에 세일로 나갑니다. 그리고 거기 있는 사람들과 통혼하며 새로운 결합을 하며 분리없이 세상과 함께 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에서는 초반부에 보았듯이 세명의 부인을 둡니다. 늘 세상이 먼저인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저희보다 먼저 권력을 취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있지만 그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36장이 저희에게 교훈해 주시는것 같습니다. 개요에 대해서, 또 7절까지 함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교제를 드렸습니다.
- 김윤철 형제님 : "에서 곧 에돔의" 라고 1절에 말씀합니다. 창세기 25장 30절에서 야곱이 팥죽을 에서에게 팝니다. 그때 에서의 별명이 에돔(붉은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 에서의 별명이 36장에서 다시 기록됩니다. 육체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순간의 결정으로 인한 거래가 에서의 민족으로 불리우게 됨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오바댜서 전체가 에돔의 심판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고 합니다. 한순간의 결정이 그도록 오래 흔적으로 남는 이름이 되는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전의석 형제님 : Q.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에서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에서는 어떻게 하는것이 하나님 앞에서 최선이었을까 여쭤보고 싶습니다.
- 김보영 형제님 : 27-35장에 이르기까지 야곱의 행적이 기록됩니다. 35장 마지막절에 이삭이 죽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선택했고 선택받은 자로써 늘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생애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의 생애는 파란만장했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받지 않아도 될 고난을 겪으며 35장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35장에서 아버지가 죽습니다.
그러면 야곱의 남일 일생을 기록해야 할 것 같은데, 에서 에돔의 행적을 기록합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에서도 에돔으로 이름이 바뀝니다. 왜 에돔의 행적을 기록했을까 보았을때 주석가들이 세가지 추정을 합니다. 1. 에돔과 이스라엘은 주님께서 오시기까지 계속 적대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에돔의 기원도 적어야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2. 또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의 성취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에돔도 기록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경 말씀에 이스라엘과 에돔이 서로 대적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3. 가나안 땅을 하나님께서 야곱, 이스라엘에게 주시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에서는 자진해서 가나안을 두고 세일산으로 떠났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를 에서가 받아들이고 있는것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특이한 점은 36장에서 소개하는 에서의 아내들의 이름이 26장에서 나온 에서의 아내들의 이름과 다릅니다. 그들의 이름이 바뀌어져 있습니다. 에서의 이름이 에돔으로 바뀌었고, 그의 아내들의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어떤 특이한 사건이 시작되면서 그들의 이름이 바뀐것도 하나님의 어떤 섭리에 의한것이 아닌가 하는것도 있는데요. 정확한 것은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에서가 좋은 땅을 두고 자진해서 척박한 세일산으로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되는 것이고 역사가 하나님이 섭리에 의해서 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 김윤철 형제님 : A. 하나님께서는 32장에서 야곱을 이스라엘로 부르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시거든요. 하지만 에서는 축복을 받지 못했어서, 또 야곱만큼 생육하고 번성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혼부분에 대해서 영적인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됩니다. 그리고 야곱을 결혼을 위해 밧단아람에 보내는 것을 보고 에서는 이스마엘의 딸을 자기의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를 볼 때에 에서의 성품이 드러납니다. 그는 처음부터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또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떠나는 것을 볼 때에도 언약의 사람을 얻는것이 아니라 약속에서 제외된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얻습니다.
이를 볼 때에 에서는 처음부터 선택받지 못했지만 그의 마음의 중심에서도 하나님의 선택이 관심에 없었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 김보영 형제님 : A. 야곱의 에서의 관계를 살펴볼 때에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된 것이지만, 에서는 이방 여인과 결혼함으로써 약속의 자녀라는 혈통에서 멀어져 갑니다. 또 이방여인과 통혼함으로써 민족의 정체성을 잃어버입니다. 이는 25장 26절에서 이미 예언되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태중에서 싸웠고, 출생했을때 그 생김새도 달랐고 추구하는 것도 달랐습니다. 이 두사람의 행적이 성경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야곱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에서는 미워했다고 합니다. 선택할때부터 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었스빈다.
그리고 창세기 27장에서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서 축복을 가로챘을때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33장에서 화해하고, 또 36장에서 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로부터 에돔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옆구리의 가시로써 활동합니다. 사울왕 때에 와서는 그것이 더 심해지고 다윗왕 때에는 에돔을 절멸시키기를 시도하지만 다 죽이지 못합니다. 그 이후 에돔은 계속 이스라엘의 속국으로 있었습니다. 바벨론 침공이 있을 때에 두 나라가 다 바벨론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초림하셨을 때에 헤롯왕이 예수님을 죽이기를 시작합니다. 그 헤롯왕이 에돔족속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에돔은 거의 전멸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번성했습니다.
로마서에서는 하나님의 택정의 교리가 제시됩니다. 또다른 측면에서 진리와 불법이 함께할수 없다는 본보기가 되기도 합니다. 빛과 어둠이 함께 할수 없고, 불신자와 믿는자가 함께 할수 없다는 교훈도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우리에게 상당한 교훈을 줍니다.
- 전의석 형제님 : A. 에서가 자기의 소유를 포기하고 야곱과 함께 했다면 어땠을까? 롯도 마찬가지죠. 물론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손해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그가 영원한 축복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마찬가지로 외인이었지만 주님의 은혜를 접하게 되었을 때 그 안에서, 그 약속을 붙잡고 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 약속을 떠나갔지만 떠나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데까지 나가게 됩니다.
아말렉이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가장먼저 공격했고, 하만이 이스라엘을 멸족시키려고 했습니다. 또 헤롯왕이 주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육신의 것을 선택하였을때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를 대적하고 죽이려는데까지 나갈수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 장승훈 형제님 : A. 저도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요. 25장에서 에서가 곤비해서 야곱에게서 팥죽을 먹고 장자의 명분을 팔았습니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오?" 에서는 장자의 명분보다 팥죽이 더 중요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인생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가정이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에서가 돌이켜서 자기의 것을 버리고 야곱과 같이 있는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면 에서가 무슨 행동을 해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가 되고 야곱은 무슨 행동을 해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가 되는가 하는것은 어려운 문제라고 합니다. 이런 내용이 많은 오해를 낳을수 있습니다. 그 부분은 좀더 깊게 공부해 보아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떤 사람은 나기도 전에 천국으로 가기로 정해져 있고, 어떤 사람은 지옥으로 가는게 정해져 있다고 보면 너무 어렵고요.
어째든, 지옥으로 가는 사람은 그가 영적인 것을, 믿음의 선택을 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 야곱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사람을 사랑하시는가 하는데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저희가 구원받은 것에 저희의 어떠함이 있지 않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야곱은 팥죽을 주고 장자의 명분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주님의 족보에 야곱이 올라갑니다. 물론 그런 비겁한 방법을 쓰지 않아도 주님께서 야곱의 족보를 통해 오셨겠지만, 야곱은 주님의 족보에 자신이 들어가고자 하는 선한 소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에서는 그 장자의 명분을 팥죽보다도 경홀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에서는 헷족속의 딸들을 아내로 취합니다. 이는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이 안중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깊게 보면 하나님의 뜻이 그 마음에 없는 것입니다. 이는 정말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사람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과 에서는 함께 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씀해 주신것 같습니다.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찌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경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영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말1:3-4, 개역한글)
하나님께서 얼마나 에서와 같은 인생들을 증오하시는지, 그들이 쌓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신다는 대단한 각오를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36장은 에서의 후예에 대해서 마무리 됩니다. 36장은 하나님의 약속의 계보에 들지 않은 에서의 계보에 대해서 따로 뗴어서 정리하는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방향에 대해서 한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창세기 33장에서 에서가 400인을 거느리고 야곱에게 옵니다. 그리고 에서는 세일로 회정합니다. 그는 왔다가 다시 돌아갑니다. 그러나 야곱의 방향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곳을 향해서 가는 인생이며, 에서는 자기가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김윤철 형제님 : 6절부터 보면 에서와 야곱은 소유가 풍부해서 그 땅에서 함께 살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서는 세일산으로 다시 돌아가 버립니다. 이는 롯과 아브라함이 서로 갈라지게 되는 장면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롯의 선택은 소돔의 멸망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세일산을 선택한 에서는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을 떠나는 것입니다. 에서에게 가나안 땅은 반드시 붙들어야 할 약속의 유업이 아니라 넓은 목초지를 얻기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떠날수 있는 땅으로만 보았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나중에 애굽으로 내려갈때조차도 자기의 뼈를 가나안에 장사해달라고 할 정도로 가나안, 약속의 땅에 애착이 있었음을 볼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 약속의 땅을 대하는 두 형제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 최재홍 형제님 : 리브가가 임신 했을때에 하나님께서 두 국민이 네 백속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에돔의 족보가 36장에 기록됩니다. 이 부분이 왜 기록되어 있는가 생각할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한 민족이 실제로 역사상에 있었음을 기록하심으로써 후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알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돔의 대략이 이러하니라" 대략이라는 것이 계보나 후예, 역사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에돔의 역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에서는 개인이였지만 에돔으로 불리면서 민족이 됩니다. 에돔의 개인의 성향이 그 민족적인 성향으로 나타남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리브가와 이삭이 에서의 결혼에 대해서 많은 근심이 있었지만, 그는 장자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가치를 두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갔던 사람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32-33장을 보면 에서가 세일에 있었다고 많이 언급됩니다. 그래서 36장이 말씀해주는 것은 이때를 기준으로 에서가 완전히 세일산으로 갔음을 보여준다고 보입니다. 또 그가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있지 않았지만 그에게 부가 있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로라 (신2:5, 개역한글)
에서의 소유가 풍부해지고 번성한 것을 보여줍니다. 많은 족장과 이스라엘의 왕이 있기전에 에돔의 왕이 세워집니다. 부가 있고 번영이 있고 왕들이 세워진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증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에돔이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과는 상관없이 제쳐진 민족임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에서는 세일산에서 빠르게 정착하고 족장이 되고 민족을 이루었지만 야곱은 여전히 가나안에서 작은 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계속해서 야곱에게 있고, 사람의 눈에는 느리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심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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